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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특집] 여권 미래권력의 강점·약점 (2) 이재명 경기도지사 

여당 간판 되려면 ‘발톱’부터 감추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검찰수사 치명타 피하고 돌파력 입증해 전국구로 발돋움… 포용의 리더십 보여줘야 당내 반감 잠재우고 전선 분명해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도덕성의 발목을 잡았던 여러 의혹에서 벗어났다. 앞으로 벌어질 법정 싸움을 잘 마무리할 경우 그는 명실상부한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발돋움할 발판에 서게 된다. 지난 10월 19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지사가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장 큰 고비 하나는 넘겼다.”

지난 12월 12일 검찰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부인 김혜경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이 지사의 한 측근이 한 말이다. 그가 말한 가장 큰 고비는 일명 ‘혜경궁 김씨’ 사건에 연루된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것을 뜻했다. 그만큼 이 지사 측에서 혜경궁 김씨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었다”면서도 “다만 이 문제가 당내 분열의 핵심 소재로 계속 활용될 가능성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대체로 이 지사에게 나쁠 것 없다. 그동안 도덕적 비난과 정치적 공격의 핵심 소재가 됐던 의혹들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나서다.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선거 때마다 이 지사를 괴롭혀온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을 비롯해 성남지역 조폭 연루설, 일베(일간베스트) 활동 의혹 등이 그것들이다.

이제 남은 건 세 가지.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업적 과장, 검사사칭 사건 거짓 해명, 친형 강제입원 시도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직권남용의 혐의가 적용됐다. 이 지사 측은 무리하게 기소가 이뤄졌기 때문에 법정에서 다퉈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먼저 2001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당시 검사를 사칭했다가 벌금 150만원을 받은 전과에 대해 이 지사는 선거 과정에서 “누명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노영희 변호사는 검찰의 처분 직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본인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나는 억울하다, 그러지 않았다라고 항변할 수 있는 건데 그걸 허위사실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의 개발 이익을 확정적으로 선전한 것에 대해 이 지사는 “‘사전 이익 확정식’ 공영개발 방식이어서 공사 완료와 무관하게 5500억원 상당의 이익을 받게 돼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남시도 2017년 3월 7일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환원한 대장동 개발 이익금은 모두 55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사실관계만으로는 이 지사가 불리하지만 계약내용 등 당시 상황이 참작된다면 최악의 상황(도지사직 상실)은 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친형 강제입원 시도에 대한 관련자들의 증언은 이 지사에게 불리하다. 다만 실제 강제입원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추후 아내에 의해 실제 정신병원에 입원됐다는 점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 지자체장은 일반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선거법 위반죄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다.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검찰과의 법정 싸움은 이 지사가 명실상부한 차기 대선주자로 안착하기 위해 거쳐야 할 첫 관문이다. 도지사직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를 괴롭혀온 여러 의혹을 단번에 씻어낼 수 있다. ‘정치인 이재명’의 리더십이 평가받는 본격적인 시험대는 그 다음부터다.

시험대를 무사통과하려면 당내에 남아있는 ‘반 이재명 정서’를 극복해야 한다. 이 지사의 측근은 친문 진영의 견제가 “잠복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일베나 극우진영 등으로 상대와 전선이 분명해 싸우기가 쉬웠지만 지난 경선부터 피아 식별이 무의미해졌다”고도 말했다. 이 지사가 당내 비토 세력에 드러내놓고 맞서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지사는 “우리 안에 침투한 분열세력과 이간계를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상은 지칭하지 않았다.

경기지역의 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은 “판세를 정확히 읽어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영리하게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순발력과 선명성은 이 지사를 ‘변방 장수’에서 대선 잠룡으로 발돋움시킨 가장 중요한 강점이다. 지난 2016년 촛불 정국에서 이 지사는 정치인들 중 가장 먼저 탄핵을 주장했다. 이듬해 대선후보 경선 때에는 가장 유력했던 문재인 당시 후보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선명성을 보여줬다.

최근 ‘혜경궁 김씨’ 수사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의 특혜채용 의혹 규명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도 그의 순발력과 승부사다운 면모를 방증한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문준용 의혹을 꺼냈다”면서 “절묘한 변호사고, 순간을 포착하는 정치인”이라고 호평했다.

필요에 따라 몸을 완전히 낮출 줄 아는 것도 이 지사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 지사는 수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저에게 탈당을 권할 것이 아니라 함께 입당해 달라”는 입장을 냈다. 하루 전날까지 정가를 떠돌았던 ‘자진 탈당설’ ‘출당설’을 일축한 것이다. 대신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당원으로서 의무는 다하되, 권한은 내려놓겠다”는 거다. 이 지사와 처지가 비슷한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뒤따라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자기가 주도권을 갖고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저돌적인 스타일이 돋보였다”며 “중앙 정치무대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변방 장수’에 불과한데도 중견 정치인 못지않은 정치적 감각을 가졌다”고 평했다.

순발력과 선명성 타의 추종 불허


▎선명성은 이 지사의 최대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던 게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17년 4월 3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문 후보와 오렌지색 어깨띠를 건 이 지사.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것은 이 지사의 약점으로 꼽힌다. 친 이재명계로 꼽히는 국회의원은 고작 10명 안팎이다. 일부 의원은 이 지사에게 호의적이지만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이 지사의 경우 당내에서 차근차근 기반을 쌓으며 성장한 게 아니라 민심을 등에 업고 혜성처럼 등장한 케이스다. 당내에서 지지기반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권력투쟁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 지사에게 가장 큰 후견인은 이해찬 당 대표란 점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기간 중 이 지사의 한 측근은 두 달 뒤 있을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이런 바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우리 입장에선 이해찬 대표가 가장 좋은 그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앙당 상황은 신경 안 쓰고 경기도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동안 당내에서 제기된 이 지사 징계 요구는 이 대표의 벽을 뚫지 못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수사 결과가 나온 뒤 전화를 걸어온 이 지사에게 이 대표는 ‘당 문제(징계 요구)는 내가 책임질 테니, 담대하게 대처하고 재판 준비와 도정에 매진하라’는 당부를 전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뒤 몇몇 최고위원의 문제제기를 일축하고 이 지사를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대표의 우산 속에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친문 진영의 견제는 이 지사가 돌파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다. 전문가들은 감정의 골과 앙금을 남긴 지난 대선 경선 때와 다른, 보다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여의도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이 지사가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전투형’ 이미지를 바꾸지 않는다면 ‘비문의 수장’은 될지 몰라도 민주당의 간판이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국정농단에 대한국민의 분노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대선에서 많은 국민이 적폐청산을 가장 잘할 유능한 ‘칼잡이’를 원했다. 하지만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가 점점 늘고 있다. 다음 대선은 통합과 포용이 중요한 덕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군부를 청산하고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쳤던 YS의 뒤를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DJ가 이어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이 지사의 장점인 선명성과 과감한 돌파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똑똑하고 유능한데 얄미운 직장 동료’ 같은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과 대선·지방선거 경선을 거치며 맷집을 키웠고, 전투력도 입증했지만 포용력 있는 국가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이 지사가 보여줘야 할 자질은 유능한 행정가의 면모와 함께 포용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친문의 마음을 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친문을 대표할만한 주자가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문 잠룡에 대한 견제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지사의 측근들조차 “세간의 오해와 의혹이 사실무근이란 게 법리적으로는 밝혀졌어도 이 지사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지사를 프레임에 가두는 게 저들의 의도라면 이미 흩어져있는 여론의 불씨들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게 이 지사 측의 경계심이다.

친문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이 지사는 당분간 당권을 포기하고 경기도정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자신에 대한 당내 반발을 도정 성과로 극복하려는 전략이다. / 사진:연합뉴스
이 지사의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다. 다음 대선은 2022년 5월이다. 만약 재선에 성공한다면 임기는 2026년 6월로 늘어난다. 차차기 대선(2027년 5월)을 약 1년 앞둔 시점이 된다. 이 지사의 운명은 이 기간에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을 통해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방법도 있지만,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지금 배지 달고 가봤자 막내(초선) 아니냐. 여의도 바닥부터 시작하기엔 시간이 짧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지사 측은 당분간 도정에 전념해 성과로 인정받는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경기도는 인구 1300만 명을 넘는 최대 광역지자체다. 도시와 농촌이 뒤섞여있고 정치성향도 보수와 진보가 지역별로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미니 대한민국’이나 다름없다. 국가 경영을 연습하기에 최고의 환경이다. 8년간 성남시장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정에 접목해 성과를 얻은 행정 경험도 이 지사의 소중한 자산이다.

정치평론가로 변신한 정두언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판 결과에 따라서 다르지만 사람들은 잘 잊는다. 지사직을 잘 수행하면, 거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볼 만하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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