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책갈피] 80년생 작가 윤고은 일곱 번째 소설집 

개성 신도시 아파트에 투자?, 이 시대 청춘들의 삽화 여섯 장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양말들’ ‘평범해진 처제’ 등 모두 감칠맛 나는 얘기
담담하게 읽어 나가다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될 수도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 윤고은 지음 / 문학동네 / 1만2500원
표지 안쪽 책날개의 눈길 끄는 작가 사진(표지 안쪽 절반쯤 접히는 부분을 책날개라 한다. 요새 작가는 외모로도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번번이 작가의 외적 조건을 초과하는 느낌의 매력적인 작품들. 1980년생 소설가 윤고은을 이렇게 요약하자. 그의 일곱 번째 소설책이다. 그동안 기자는 역시 무심했던 거다. 아니면 문학판에서도 빠르게 돌아가는 취향의 시계에 혼자 뒤처졌거나. 혼밥 시대, 혼자 밥 잘 먹는 법을 가르치는 기상천외한 학원을 소재로 삼은 단편 ‘1인용 식탁’, 재난 지역 전문 여행사를 내세운 장편[밤의 여행자들], 달이 여러 개로 분화되는 상상력을 발휘한 장편 [무중력 증후군], 윤고은이 이런 작품들로 주목받으며 한겨레문학상·이효석문학상 등을 받아 챙길 동안 그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색하고 이번 소설책을 통독해 보니 알겠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윤고은이어야 하는지. 2003년 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가 어째서 소설책을 한 권 한 권 늘려가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지.

소설책에는 윤고은이 작가의 말에서 2016~2017년 썼다고 밝힌 6편의 조금씩 길고 짧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기자의 [중앙 SUNDAY] 5월 11일 자 칼럼에도 썼지만, 소설책의 표제작인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을 읽고 감탄했다. 시의적절하고(북한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이다. 요철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래서 뉴스성이 있고(소설도 결국은 현실을 ‘뉴스’처럼 반영한다), 현실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장하고 있을 뿐더러(가령 살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미루는 예비부부) 주인공 남녀 커플이 재현하는 요즘 세태가 읽는 재미를 한껏 끌어 올린다. 소설은 개성과 평양에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가 남한에서 분양되는 가상 상황이 배경이다. 새로운 통일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소설책에 실린 나머지 작품들과 한데 뭉뚱그린다면, 결국 ‘부루마불…’도 통일 같은 거대담론이나 투기 자본주의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애환 같은 PC(정치적 올바름) 한 얘기이기보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 전략에 대한 삽화, 풍속도라고 해야겠다.

소설책의 단편들은 소재나 글쓰기 측면에서 어느 하나 얌전한 것들이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오믈렛이 달리는 밤’에서는 제목 그대로 작품 말미 환상적인 반전이 벌어진다. ‘평범해진 처제’의 소설 쓰는 여주인공(다른 작가들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윤고은 소설에도 소설가 주인공이 가끔 나오는 모양이다)은 본격 작가 생활로 해결할 수 없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야동’ 리뷰를 주기적으로 올린다.

‘우리의 공진’과 ‘물의 터널’은 어쩌면 인생극이라고 해야겠지만 역시 남녀의 로맨스가 배경으로 깔린다.

‘부루마불…’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던 작품은 맨 앞에 실린 ‘양말들’이었다. 사소하지만 너무 소중하거나, 너무 슬퍼 말하기 어려운 대상은 차라리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자. 양말은 그런 아이디어에서 끌려 나온 소품이다. 죽음이 있고, 뒤늦게 찾아오는 인생과 사랑에 관한 깨달음이 있다. 소설의 죽은 화자가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를 떠다니며 자신의 파혼,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울음을 목격하는 과정을 뻔뻔할 정도로 능란하게 그린다. 고즈넉한 카페에서 담담하게 소설을 읽어 나가다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될 수도 있다.

201906호 (2019.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