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여름에 들다 

 

한영옥

▎비 오는 날 공원길을 할머니와 손자가 걸어가고 있다. / 사진:박종근
며칠 째 이렇게 몸살 중에 있습니다
애면글면하며 조금씩 짙어지고 있습니다
빗줄기 잡아다가 주렴으로 쓸까하여
주렴 늘여놓고 고요히 좌정할까 하여
마냥 좋은 나뭇잎 장엄한 공원에 들었습니다
장화 신은 사내아이가 허공과 사귀느라
손잡고 나온 할머니 자락에서 멀어질까 하여
좋은 나뭇잎들과 눈짓하며 좀 더 짙어졌습니다
할머니 걸음 느려지는 듯하시니 다행입니다
당신의 걸음도 느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려주겠다는 기별 빗물에 섞어 보내시면
주룩주룩 빗물 속에서 한층 간절해지다가
꽉 차오른 빛깔을 드디어는 얻겠습니다
지금, 여름에 푹 젖어 드는 중이니까요
짙어지는 것들, 곧 테두리를 두를 테니까요.

※ 한영옥 -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늑한 얼굴] [다시 하얗게]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등을 냈다. 천상병시상·최계락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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