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양영유 전문기자의 대학총장 열전] 따뜻한 나눔의 리더십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 

“바이오메디컬 실용연구 특화 세계적 대학 브랜드로 키울 것” 

학생 주도형으로 교육 틀 바꿔 4차 산업혁명 선도할 인재 양성
대학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교육 특성화가 경쟁력 승부처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이 9월 5일 학예관 2층에 위치한 ‘미디어 인사이드’ VR스튜디오에서 VR 콘텐트인 ‘의료수술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스크린을 통해 가상의 의학실습을 재현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는 따뜻한 나눔교육을 실천하는 앙뜨레프레너 대학(Entrepreneur University)으로 유명하다. 모든 신입생이 기숙형 학습공동체인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인성 함양과 진로 탐색 등 ‘밀착형 케어’를 받으며 인간을 사랑하는 순천향인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인간사랑’ 은 1978년 의과대학으로 개교한 순천향대의 건학이념이다. 순천향대는 1974년 당시, 신경내과 권위자였던 향설(鄕雪) 고(故) 서석조 박사가 서울 한남동에 세운 의료법인 순천향병원이 모태가 된다. 서 박사는 1978년 1월 학교법인 동은학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 3월 전문의료인 양성을 위해 순천향의과대학을 개교했다. 1980년에 순천향대로 교명을 변경한 뒤 1990년에 종합대로 승격돼 충청권의 중추적인 교육기관으로 우뚝 섰다.

올해 건학 41주년을 맞은 순천향대는 6만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현재 9개 단과대, 5개 대학원에서 1만2000여 명이 수학하고, 전국 4곳(서울·부천·천안·구미)에 부속병원이 있다. 순천향대는 최근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문명사적 전환기와 학령인구 급감시대를 맞아 ‘더는 지역 대학에 머물 수 없다’며 대대적인 변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 움직임은 9월 5일 산업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인더스트리 인사이드(industry inside)’를 취재하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캠퍼스에는 팩토리(factory)·미디어(media)·헬스케어(healthcare)·마켓(market) 등 4개 인사이드가 있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팩토리 인사이드 입구에는 3D 프린터로 출력한 조각 270개로 만든 ‘헐크’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김승우 경영부총장은 “설계와 스캔, 출력까지 모든 3D 장비가 갖춰져 있어 학생들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직접 현장을 돌며 설명했다. 팩토리카페에서 만난 윤수정(나노화학공학과 3)씨는 “3D 프린터로 작품을 구상하며 친구들과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예관의 미디어 인사이드에서는 가상현실(VR)과 드론 스튜디오가 인상적이었다. 카메라 102개와 204개 LED 조명 아래서 전신을 촬영한 데이터로 실물을 구현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역동적이었다. 학생창업 공간인 스타트업 플라자에는 인공지능(AI)형 기업가 로봇인 앙봇(Entrepreneur Robot)이 학생들의 질문에 깜찍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대학원생 이지현(빅데이터공학)씨는 “앙봇은 첨단 기술이나 기업정보를 문답형으로 제공하는 창업 도우미”라고 했다.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본관 총장실에 들어서니 서교일(61) 총장이 반갑게 맞았다. 내과 의사기도 한 그는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캠퍼스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시설이 좋은 대학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불혹을 넘긴 순천향대는 새로운 10년을 위해 혁신 중입니다. 아는 인재보다는 할 줄 아는 인재가 키워드입니다. ‘해 보긴 했어?’라는 고 정주영 회장의 질문처럼 도전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해결능력과 창의력, 협동심이 생깁니다.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교수법은 설 자리가 없어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커리큘럼, 그게 학습혁명입니다.”

학습혁명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나요?

“인더스트리 인사이드에서 보셨듯 학생이 주체적·능동적·협동적인 교육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수는 학습 환경을 디자인해 주고, 학생은 스스로 학습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순천향의 교육 방향을 자기주도형 학습, 즉 ‘TLST(Teaching Less for Self Teaching)’로 이름 붙였습니다.”

교수가 학습 환경 디자인해 주고 학생 스스로 학습


▎1978년 순천향 의과대학 1회 신입생들이 저수지 둑에 앉아 설립자 서석조 박사의 축하 노래를 듣고 있다. / 사진:순천향대학교
교수는 길잡이, 학생은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맞아요.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 협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셀프 티칭(self-teaching)이 중요해요. 캐나다의 워털루대학교는 교수강의 방식의 50%를 글로벌 인턴십으로 바꿨고, 창업교육으로 유명한 미국의 뱁슨(Babson)칼리지는 기업가 정신 커리큘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교육으로 어떤 브랜드 파워를 갖느냐가 중요하죠.”

좋은 말씀인데 사실 국내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 대학들은 특히 위기입니다.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합니다. 우리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인 ‘유니토피아(UniTopia) 2030’에 그런 의지가 담겨 있어요. 기존 교육 틀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이 핵심입니다. ▷교육 ▷연구 ▷산학협력 ▷글로컬 ▷경영 등 5개 영역에서 단계별로 학교를 바꿔 가려 합니다. 1단계(2019~2022)에서는 실용연구기반 혁신과 학습자 중심의 인프라 확충을, 2단계(2023~2026)에서는 융합 실용연구 국제 허브 구축과 글로컬 브리지 기능 강화, 3단계(2027~2030)에서는 융합·실용 연구경쟁력 상위 10% 진입과 대학 브랜드 가치 글로벌화에 나섭니다.”

서 총장은 순천향대의 출발점이 병원인 만큼 ‘바이오메디컬’ 글로벌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센터 육성을 위해 순천향의생명연구원(SIMS)을 설립해 기초와 임상을 연계하는 ‘중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건강 맞춤 미래 프로바이오틱스 플랫폼 구축사업(140억원), 오믹스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121억원) 등 굵직한 국가 과제를 수주했다. 의대를 만들고, 그다음에 자연과학대를 만든 강점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이 모태 ‘바이오메디컬’을 글로벌 브랜드로


▎1978년 3월 5일 열린 제1회 순천향의과대학 신입생 78명의 입학식에서 설립자인 서석조 박사가 축사하고 있다. / 사진:순천향대학교
연간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대학 브랜드는 힘입니다. ‘최고’가 있어야지요.

“그게 핵심이죠. 아직 부족하지만, ‘TLST’ 개념을 도입해 교육 틀을 바꾸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바이오메디컬 연구는 우리의 승부처입니다. 기초연구보다는 중개연구와 실용연구에 경쟁력의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구체적인 변화가 있습니까?

“2011년에 연구 특임교수제를 도입해 ‘순천향의생명연구원’에 활기를 불어넣었죠.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한인 과학자 초빙 광고를 냈는데 무조건 연구비를 1억원 드리겠다고 했어요. 새로운 인스티튜트를 짓고 대학원생을 뽑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조건도 제시했고요. 현재 6~7명 계시는데 20명까지 확대해 실용연구 혁신을 이끌 겁니다. 대형 국가 연구프로젝트로 선정된 혁신형 의료기술 실용화 연구와 당뇨합병증 연구센터가 선두에 섭니다. 저희 꿈은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핵심적인 실험연구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 총장은 이스라엘 얘기를 했다. 써먹기 좋은 실용연구를 잘하는 와이즈만연구소와도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와이즈만과 관련 있는 카디마스템이라는 기업이 베타셀을 줄기세포로부터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어요. 협업해 바이오벤처를 만들면 이스라엘에서 펀딩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어요. 브랜드 파워도 필요하지만 연구결과를 토대로 좋은 벤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 총장은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혁신만이 살길이다(Innovate or die)’라는 의지가 확고했다. 혁신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성원은 하나이고 함께 간다는 따뜻한 배려와 인간 사랑의 정신이 순천향대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서 총장은 대표적인 교육혁신 사례로 융합창업학부의 ‘웰니스 융합전공’을 꼽았다. 이 전공은 정규 학기 중 창업의 기초부터 심화과정까지 자기주도 학습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2015년 5개, 2018년 4개의 창업과목을 학기별로 진행했다. 2025년 웰니스 산업 인력 수요가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는 데 따른 ‘퍼스트 펭귄’ 전략이다.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 미래 키워드는 ‘웰니스(wellness)’였어요. 인문학·공학·의학 등 모든 부문이 연결돼 있어요. 휴먼텍(HumanTech)·메디텍(MediTech)·스마트텍(SmarTech)을 통한 웰니스 융합이 포인트입니다. 각 단과대 교수들이 커리큘럼을 짜고, 미국 MIT대도 다녀왔어요. MIT 미디어랩은 대학원으로 전공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곳입니다.”

수도권 학생이 75%, 지역사회와 상생 발전 모색


▎2016년 8월 캄보디아 캄폿(Kampot)도립병원에서 진행된 의료봉사에서 서교일 총장이 현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하루에 3000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 현지 방송사가 보도하기도 했다. / 사진:순천향대학교
SRC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순천향대의 또 다른 돌파구가 있나요?

“학생이 오고 싶은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학교 주변 환경은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캠퍼스 밖에 주요 시설과 문화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만족할 만한 캠퍼스타운이 없어 아쉽죠. 학교 앞에 전철역이 닿으니 제대로 된 캠퍼스타운을 조성해야 합니다.”

순천향대 학생의 75%는 수도권 학생이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개설한 것이 열차 강의다. 통학생들이 길에다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열차 안에서 강의를 한 것이다. 2002년 새마을호에 개강한 교양과목 열차강의는 순천향대 명물이 됐다. 2008년 수도권 전철이 대학 인근 ‘신창순천향대역’까지 개통되면서 ‘누리로호’ 열차로 강의가 변경돼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강의는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학생 중심 커리큘럼을 운영하듯 캠퍼스타운으로 젊은 향기를 불어넣겠다는 의미였다. 서 총장은 “미국 메이오 클리닉처럼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메이오 클리닉은 어떤 병원인가요?

“로체스터에 있어요. 병원 랭킹이 존스홉킨스보다 앞에 있어요. 실용연구와 암 치료 연구를 많이 합니다. 로체스터시가 메이오 클리닉 때문에 존재할 정도입니다. 지역사회와 딱 붙어 있는 병원입니다. 메이오가 들어오기 전까지 로체스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메이오가 세계적인 병원이 되자 인프라가 생겼어요. 직접 고용인구만 2만 명이죠. 지역사회를 먹여 살리는 게 굉장히 부럽죠.”

지자체와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산시의 도움도 절실한데 우리가 직접 땅도 샀어요. 첨단 산업단지와 스타트업 둥지인 청년스타트업 단지를 만들려 합니다. 학교가 도와주면 거주지도 생기고, 회사 시설도 생길 수 있어요.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 지원을 받는 겁니다. 캠퍼스 혁신사업에도 지원했는데 아무래도 인프라가 없다 보니 인천 송도 같은 곳과는 경쟁이 잘 안 돼요. ‘스타트업 파크’를 조성하고 주거단지를 만들면, 놀고먹는 캠퍼스 타운이 아닌 젊은이들의 연구타운을 만들 수 있어요.”

서 총장은 인근에 경찰대가 있는 장점을 살려 보안산업을 육성하고, 문화 콘텐트 진흥을 위해 영화촬영장도 유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10년 후에 다시 와 보세요.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겁니다.”

10년 후가 기대됩니다. 그런데 10년 후까지 백화점식 전공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스탠퍼드대의 ‘2030 비전’을 보면 전공을 다 없애는 구도입니다. 전공 없이 뽑고 영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시스템이죠. 교수가 중요한데 구조조정을 많이 해 봐서 고충을 잘 압니다. 교수 때문에 못 하지는 않아요. 새로 뽑더라도 기존 교수를 포용했어요. 좀 느리게 가더라도 같이 가야지요.”

수시 74.4%, 정시 25.6%…신입생 전원 기숙사 생활


▎서교일 총장이 2017년 11월 재학생 40여 명과 뮤지컬 [레베카] 관람 전에 짜장면 미팅을 갖고 소통하고 있다. / 사진:순천향대학교
동남아 고등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정부 규제 때문에 진출이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대학에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많이 있어요. 우즈베크에 세종학당을 운영하는 인연 덕분이죠. 동남아에 교육 수출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규제가 많아 쉽지는 않아요. 교육부 정책은 100점 만점에 65~70점 정도 됩니다.”

순천향대 입장에서 제안해 주십시오.

“교지(校地)를 임대하기도, 팔기도 어려워요. 산업체 유치는 자유롭게 허용했으면 좋겠어요. 수익용으로 바꿔 임대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겁니다. 수익을 학생 교육에 사용하는 지만 확인하면 되잖아요. 외국 대학이나 기업과 합작해 해외로 진출하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공유대학을 통해 지역 대학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설·학생·교수를 공유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예컨대 국문과 학생 수가 60명에서 30명으로 줄면 두 대학의 학생을 교수 한 명이 가르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대학마다 포커싱 분야가 생길 겁니다. 대학이 신뢰를 쌓고 정부가 규제를 풀면 가능합니다.”

고등교육 혁신 과정에 입시 문제를 빼놓을 수 없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 대학의 학생 모집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입 개편 논란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입시 공정성·투명성·책임성 논란이 커졌습니다.

“수시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수시를 줄이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줄 세우기 교육이 나쁘니 다양한 능력을 보고 뽑자고 수시를 만들었잖아요. 제도를 그대로 놔두고 공정성만 강화하겠다는 건 수험생 평가 요소를 제한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평가 자료가 없으면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요. 다른 의미에서 또 다른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요. 입시 문제는 대학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과도 관련이 있어요. 대학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순천향대 입학정원은 2352명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입시를 진행하고 있나요?

“전체 모집 정원의 74.4%를 수시로, 25.6%를 정시로 선발합니다. 의대 입시에서는 최저학력기준을 없앴고, 지역 인재 전형도 많이 합니다. 의대의 경우 0.2점 차이로 붙고 떨어지는데 솔직히 0.2점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줄 세우기를 안 하고, 점수가 약간 낮은 학생을 받아도 전혀 문제가 없더군요.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학생을 뽑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신입생 전원이 생활관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특이합니다.

“우리 대학은 2015년부터 기숙형 학습공동체인 SRC(Soonchunhyang Residential College)를 운영하고 있어요. 희망하는 신입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인성 함양과 진로 탐색, 방과 후 활동 등 특화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신입생 ‘토털 밀착 케어’죠. 학과별 전공 교수 상담, 건강지도 교수 특강과 멘토링, 재학생 멘토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신입생 1명을 3명이 도와주는 셈이지요.”

순천향대는 SRC 프로그램을 통해 정규 교과 과정도 운영한다. 신입생들은 1년 동안 교양 필수로 ‘자기 계발과 전공 탐색’을 이수한다. 각 학과 전공 교수들이 ‘팀티칭’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또 비교과 활동으로 400여 개 동아리와의 연계 활동도 지원한다. 학생과 교수가 수평 관계이자 멘토와 멘티, 동반자로 함께하는 ‘사제동행’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순천향대는 인간 사랑을 강조한다. 대학 본관의 총장실 복도에도 ‘인간사랑’ 액자가 걸려 있다. 인간사랑의 요체는 나눔이다. 나눔 앙뜨레프레너 대학을 표방하는 까닭이다. 서 총장은 “나눔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다. 남의 도움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사랑도 남을 사랑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먼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어요. 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나눔을 베풀 수 있어요.” 서 총장은 바쁜 업무에도 국내외 의료 봉사를 빼놓지 않는다. 특히 해외 의료 봉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2005년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국가재건훈장도 받았다.

“나눔은 주고받는 것” 의료 봉사활동 활발


▎건학 40주년을 맞은 2018년 4월 교내 공과대 앞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는 서교일 총장. / 사진:순천향대학교
의료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취지로 대규모로 합니다. 초음파나 내시경 같은 장비도 가지고 갑니다. 섬은 물론 다문화 가정이 많은 곳도,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곳도 갑니다.”

해외 의료봉사 중 특히 캄보디아와 인연이 깊은 것 같네요.

“2001년 시작한 것 같아요. 보통 여름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를 합쳐 100명은 갑니다. 환자들이 워낙 많아 번호표를 나눠드리는데 1박 2일간 기다리시기도 해요. 여름이라 스콜이 쏟아져도 순서를 뺏길까 봐 비를 맞으며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세요. 그러니 어떻게 안 가겠어요.”

서 총장은 의사 집안의 3녀 1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사이고 고모도 의사다. 중매결혼을 했는데 장인과 장모, 처남도 의사이고 아들도 의사다. 집안 식구 중 아내와 딸만 의사가 아니다. 선친은 35살에 연세대 내과 취임 교수를 할 정도로 유명한 신경내과 명의였다. ‘뇌졸중’ 의학 용어를 처음 만든 의사이기도 하다. 가풍일까. 서 총장 또한 당뇨병 권위자이고, 아들(32)도 내과를 전공한 레지던트다. 3대가 의사인데, 딸은 의사를 권했지만 본인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해 서울대에서 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연말에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딸은 과학고 출신인데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적성을 존중해 줬더니 만족해 합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는 것이 제일 좋은 교육 같아요.”

당뇨병 권위자신데 마지막 진료를 언제 하셨나요?

“요즘도 진료는 합니다. 총장 일이 바빠 자주는 못 하지만, 쭉 봐오던 환자분들이 찾으면 진료해 드려요. 사실은 환자를 많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님처럼 따뜻한 명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런 상황과 거리가 멀어 아쉽네요. 연구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아쉽고요.”

서 총장은 의사가 된 것은 선친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37살 때 막내로 태어났는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 2학년 때 결정적인 일이 생겼다. “점심시간에 당번이라 수돗가에 가 주전자에 마실 물을 떠 오는데 갑자기 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요.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죠. 거의 1년 동안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앓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때 ‘의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죠. 아버지는 아들을 돌봐주면서도 늘 환자 입장에서 얘기를 들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직접 치료해 달라고 했죠. ‘의사는 다 같은 의사가 아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질병은 하늘이 고치는 것이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나도 따뜻하고 세심하게 환자를 돌봐주고, 신뢰받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서 총장의 선친에 대한 애틋함은 남달랐다. 인생 멘토이자 스승, 따뜻한 아버지라며 회상에 젖었다. “제가 서울대 의대 78학번인데 고3 때 아버지가 대학 설립에 분주하셨어요. 어머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너무 무관심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아버님은 별말씀이 없으셨어요. 합격한 걸 아시자 밤에 저를 깨워 맥주를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순천향대(의대)를 만들 것이다. 네가 들어가는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이 될 거야’ 라고 하셨어요. 아버님은 병원에 오래 있다 돌아가셨어요. 흉상을 만들 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걷었어요. 생전에 아버님은 그런 걸 싫어하셔서 저도 부정적이었는데, 생전에 아버지와 교직원들 사이에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것이 가족 같은 학교라는 순천향의 뿌리가 되었어요. 우리끼리 사이가 좋아야 남도 도울 수 있어요.”

선친이 멘토이자 스승… 의사와 교육자 꿈 동시 이뤄


▎순천향대 ‘SCH미디어랩스’ 건물 6층에 위치한 24시간 개방 스타트업 광장에서 창업동아리 학생들이 진지하게 아이템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순천향대학교
의사가 안 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교육자가 되었을 것 같네요. 굉장히 보람 있고 재미도 있고요. (웃으며) 결국 의사 총장이 됐으니 둘 다 이룬 셈입니다.”

의사 집안이라 에피소드도 많을 듯합니다.

“아내도 의사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의료 분야에 밝아요. 의사 집안은 안 좋은 게 가족이 아프면 가족이 진단을 내려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그냥 가족이 진단하고 이런 약 사 먹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중한 병을 고칠 시기를 놓칠 때도 있어요. 주변 의사 집안을 봐도 그런 경우가 있더군요. 그건 가족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합니다.”

42세에 총장이 됐습니다. 다소 젊은 나이였지요?

“사실 그렇죠. 의사로서는 전성기인 시기였는데. 그때는 의사와 총장 둘 다 잘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과한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연구하는 분들을 많이 도와줘 그분들이 꿈을 이루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타인을 돕는 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좋아지네요. 그게 리더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리더는 구성원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평소 교육철학이 궁금합니다.

“학생들은 불씨 같은 존재입니다. 교육자가 할 일은 불씨가 스스로 알아서 커지면서 밝은 빛을 낼 때까지 외풍도 막아주고, 옆에서 잘 보살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버님께서 ‘질병은 하늘이 고치는 것이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듯 교육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자는 돕는 존재, 디자인해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글로벌 사회적 기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인도에 아라빈드 병원이 있어요. 백내장 수술이 미국에서는 1800달러인데 거기선 18달러입니다. 맥도널드 같은 형태로 운영하는 게 비결입니다. 같은 수술실에 여러 환자를 넣거나, 한 분이 계속 렌즈만 집어넣는 식으로 분업합니다. 백내장은 렌즈를 바꿔 끼워야 하는데 렌즈를 아주 싸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적정 기술이죠. 극빈층 환자가 워낙 많으니 싸게 받아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런 병원이 사회적 기업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많지만, 좌절도 많이 겪습니다.

“저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love of fate)’,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을 자주 얘기합니다. 무조건 운명이니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운명을 바꿀 수 없으면 바꾸기 위해 노력해 보라는 뜻입니다. 많은 역사학자가 비옥한 땅을 문명의 발원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널드 토인비는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이 도전하고 개척하면서 생겨나는 것이 문명이라고 주장했어요. 척박한 때일수록 자기 운명을 사랑하고 도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서 총장은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며 웃었다. 순천향대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꿈을 향해 달리고, 언젠가 시간 여유가 생기면 세계 여행을 가는 것이 버킷리스트라고 했다.


※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

■ 1959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의과대 졸업(1984), 의학 석사(1988년), 의학 박사(1994년)
■ 1984~1988년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
■ 1991~1993년 미국 남가주주립대 내분비내과 전임의
■ 1994년 순천향대 의과대 교수
■ 2001~2009년 순천향대 제4대, 5대 총장
■ 2009~2013년 학교법인 동은학원 이사장
■ 2013~2019년 순천향대 제7대, 8대 총장[주요 활동 및 상훈]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 충청남도 지속발전위 공동위원장, 청렴사회 민관협의회 위원
■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3), 캄보디아 국가재건훈장(2005)
■ 청조근정훈장(2009), 캄보디아 정부 훈장(2017), 공자아카데미 선진개인상(2018)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 [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201910호 (2019.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