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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일제에 앞서 조선을 망가뜨린 청나라 야심가 

100년 전처럼, 기로에 선 대한민국 주권 

마지막 자주 개혁 기회 빼앗긴 조선, 식민지 암흑시대 맞아
미·중 압박 거센 한반도, 역사의 악몽 재현 막을 새 전략 요구


▎감국대신 위안스카이/이양자 지음/한울엠플러스/2만8000원
지난 세기 비극적인 1910년 국권 상실의 원인에는 외인(外因)과 내인(內因)이 있다. 외인만 따져볼 때, 우리의 정치적 기억에서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일본이다. 편향된 기억이다. [감국대신 위안스카이]는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외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시도다.

에드워드 핼릿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1961)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대화를 주도하는 역사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양자 동의대 사학과 명예교수(전 중국사학회 회장) 같은 ‘학자 역사가’가 있고, 학자들이 생산한 콘텐트를 소비하고 평가하는 ‘독자 역사가’가 있다.

[감국대신 위안스카이]는 ‘학자 역사가’의 ‘독자 역사가’를 향한 절규와 같은 책이다.

국제정치는 항상 변화한다. 위안스카이라는 인물을 전후로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바뀌었다. 그는 임오군란(1882년)에서 청일전쟁(1894년)에 이르는 10여 년간 우리나라에 머물렀다. 위안스카이 이전 조선은 비록 청나라에 사대(事大)를 했지만, 그 사대는 ‘의식(儀式, ritual)’에 가까웠다. 위안스카이는 의식적인 사대 관계를 종속관계로 바꾸었다. 조선을 속국으로 만든 것이다.

왜일까. 서구 제국주의의 도전을 받은 중국은, 유교적인 천하(天下) 관념에 기반한 ‘사대(事大)·종번(宗藩)’ 관계를 폐기하고 그 자신이 서구식 제국주의 모국으로 탈바꿈하려고 시도했다. 조선이 만만한 타깃이었다.

청은 조선을 속국화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총독’ 구실을 하는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를 내세워 정치·경제·외교 분야에서 전례 없는 온갖 간섭을 자행했다. 조선에 머물며 내정간섭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조선을 정치적·경제적·외교적으로 청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조선 정부의 차관 교섭을 방해하고, 외교관 파견을 봉쇄했다. 위안스카이 치하에서 조선은 국가적으로 크나큰 모욕과 수모를 당했다. 출세가 목마른 조선의 사대부들은 사실상 ‘조선 국왕’인 그에게 잘 보이려고 혈안이었다. 주권확립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golden time)의 기회를 상실한 조선은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시대에 빠졌다.

23세였던 1882년 조선에 온 위안스카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불행히도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 상황판단이 빠른 기회주의자였던 그는 조선 경력을 기반으로 대총통과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국제정치는 항상 변화한다. 국제정치의 구도나 원칙이 바뀔 때마다 주권의 의미를 재해석해야 한다. [감국대신 위안스카이]는 위안스카이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권의 의미를 묻는다. 미·중 패권경쟁시대에 미국과 중국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 다른 정책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주적 개혁의 마지막 기회, 골든타임(golden time)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패권경쟁이 한층 더 거세지며, 한반도에 대한 두 국가의 영향력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치 19세기 역사의 재현인 양, 주변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종속과 자멸이냐, 번영과 통일국가로의 도약이냐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새로운 전략은 ‘역사 읽기’에서 나온다. [감국대신 위안스카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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