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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추적] 정당이 전직 대통령 자제들에 러브콜 보내는 이유는 

익숙한 이미지가 마케팅의 핵심 포인트 

노태우 장남 재헌씨 “정치? 가능성 0% 아니라 마이너스” 손사래
DJ 삼남 홍걸씨, 노무현 사위 곽상언씨 등 출마… 불공정 세습 비판도


▎지난해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왼쪽)가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을 찾아 사죄한 뒤 광주광역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김대중홀을 방문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독자제공
# 장면 1: “0%가 아니라 마이너스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55) 한중문화센터 원장은 단호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혹시 정치할 생각이 있냐”는 물음에 노 원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근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노 원장은 “정치인도 아닌 사람이 자꾸 정치인처럼 비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다시 말하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하는 일 더 열심히 할 생각뿐”이라고 한 번 더 선을 그었다. 이어 “아버지·어머니(김옥숙 여사) 두 분 다 건강이 안 좋으시니 그저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여의도 일각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원장의 4·15 총선 출마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노 원장을 영입해 수도권에 공천할 거라는 이야기도 그럴싸하게 나돌았다. 얼마 전 한 매체는 민주당이 노 원장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가 나간 직후 민주당은 “검토한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여운은 쉬 가시지 않았다.

노 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했고 민자당(민주자유당) 대구 동을 지구당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는 정치와 거리를 둔 채 공익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노 원장은 사단법인 두 곳을 이끌고 있다. 하나는 한중문화센터, 또 하나는 ‘뷰티플마인드’다. 한중문화센터는 한·중 양국 간 우의를 다지고 문화를 교류하는 단체로 2012년 설립됐다. 2007년 출범한 ‘뷰티플마인드’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국제 자선 단체다.

월간중앙과의 티타임이 끝나갈 무렵 노 원장은 향후 계획을 내비쳤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한·중 문화 교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태가 잘 마무리되고 나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한·중 문화 교류 사업을 추진하겠다.”

“국회의원 자체가 목적 아닌 아버지 유업 잇고자 출마”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이 2월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개성공단 폐쇄 4년 재개 촉구 각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장면 2: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홍걸(57)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이 1월 13일 광주광역시를 찾아 지역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김 의장은 “지역구나 비례대표 출마 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4·15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이어 “이번 총선에 나간다는 생각은 변함없다”며 “험지든 쉬운 곳이든 상관없으며, 당이 원하는 곳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국회의원이 안 되면 큰일 날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하지만 저는 죽기 살기로 금배지 달고 보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의원이 되면 아버지 유업(遺業)을 이어 외교나 평화통일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의 출마 가능성은 4년 전에도 제기됐었다. 김 의장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입당한 뒤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자 비례대표 출마 또는 광주 북을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형들에 이어 또 아버지 후광을 누리려 한다’는 일부 탐탁지 않은 여론 등 주변 여건이 썩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이에 김 의장은 2016년 3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면서 “지역이든 비례대표든 출마하지 않고 그저 당을 위해 제가 맡은 역할을 하겠다”며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인물 위주 투표 성향 보이는 한국 유권자들


▎곽상언 변호사가 1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주요 선거 때만 되면 전직 대통령 아들들의 거취가 정치권 뉴스를 장식한다. 대선 때는 전직 대통령 아들들의 지지 선언을 끌어내려 하고, 총선 때는 이들에게 직접 출마를 권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들을 유세에 활용하려 들기도 한다.

역대 대통령 아들 중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까지 된 경우는 DJ의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15~17대)과 차남 김홍업(70) 전 의원(17대)이 대표적이다.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61)씨는 여러 차례 총선에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배지를 다는 데까지는 한 뼘이 못 미쳤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직 대통령들의 아들들은 아버지들의 후광 덕분에 유권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속해 있던 정당의 이미지와도 쉽게 부합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전직 대통령 아들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아들들이 이념 편향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크게 실언할 경우 정당 입장에서 되레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가 지난해 11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재로선 이번 4·15 총선에서 실제 ‘전투복’을 입고 출전할 전직 대통령 아들은 DJ 삼남 김홍걸 의장 한 명뿐이다. 김 의장의 둘째 형인 김홍업 전 의원은 배지를 단 경험이 있지만, 현실 정치를 떠난 지 이미 오래됐다.

아들이 아닌 사위로 범위를 넓힌다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남편 곽상언(49) 변호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곽 변호사는 1월 11일 ‘험지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에 입당했다. 곽 변호사가 말하는 험지란 자유한국당 박덕흠 재선 의원의 지역구인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을 말한다. 이곳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곽 변호사는 출마의 변에서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노 대통령의 사위로 보지만, 오늘부터는 곽상언이라는 제 이름 석 자로 제 소명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지냈다”면서도 “충북 영동군은 지난 100년간 제 조상이 살았던 고장으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험지이지만 조상의 넋이 깃든 충북에서 정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 변호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노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씨와는 2003년 결혼했다. 곽 변호사는 “제 와이프는 (총선 출마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면서도 “(권양숙 여사는) 크게 격려해줬다”고 밝혔다.

다시 한정훈 교수의 말이다. “정치 이론 측면에서 보면 선거에서 유권자는 인물·정책·정당을 살펴보고 투표할 후보를 결정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정책을 보고 표심을 결정하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 ‘정책을 보고 투표할 정당(후보)을 결정한다’고 답한 유권자들의 경우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정당 간 정책이 유사한 부분이 많고, 그에 따라 아주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책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이어 “종합해보면 한국 유권자들은 인물을 보고 찍는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경향을 살펴볼 때 정당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경우 유권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정당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희비 교차했던 DJ 아들들과 YS 아들의 경우


▎2007년 4월 당시 김홍업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왼쪽)가 박상천 대표로부터 축하받고 있다.
DJ의 장남인 고 김홍일 전 의원은 3선 의원 출신이다. 그는 DJ가 1995년 정계복귀 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15대 총선(1996년)에 나가 당선된 뒤 17대 총선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15·16대 때는 전남 목포에서, 17대 때는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

김홍업 전 의원은 2007년 4·25 재·보궐선거 때 민주당 간판을 달고 전남 무안·신안에서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듬해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다.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김홍업 전 의원 측은 ‘DJ 정서’에 호소하기도 했으나 끝내 석패하고 말았다. 당시 김 전 의원은 같은 무소속이던 이윤석 후보에게 단 351표 차로 패해 고배를 들었다. 김 전 의원은 현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아버지 유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에 비하면 김홍업 전 의원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증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대선(1987년)을 돕기 위해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 이사는 신한국당 시절이던 1996년 실시된 15대 총선 때는 여론 조사와 선거 전략을 맡는 등 당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한때 ‘소통령’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YS 정권 말기 큰 부침을 겪은 그는 2008년에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김 이사는 2012년 제19대 총선 때 아버지 고향 거제에서 출마를 결심했으나,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끝내 눈물을 머금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로도 김 이사의 정치 여정은 굴곡이 심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비판하며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데 이어 5년 뒤인 2017년 5월에는 문재인 19대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의 대북·일자리·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김 이사는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직에 전념하고 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전직 대통령 아들들 가운데 일부는 아버지 후광효과로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며 “이 같은 후광효과 정치 마케팅은 유권자들에게 불공정 세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당과 후보 입장에서는 익숙함과 친밀감을 통해 비교적 손쉬운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며 “단시일 내에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유권자에게 어필해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저비용 고효율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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