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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한진家 남매 전쟁 

누가 이겨도 ‘피로스(이득 없는 승리)의 승리’ 

조현아 전 부사장이 KCGI·반도건설과 손잡자 나머지 가족들 결집
조원태 회장 경영권 유지 위해선 국민연금 등 소액주주 지지 절실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 대한항공을 이끌 수장은 누가 될까. 조원태 회장 등 현 경영진과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외부 연대 세력은 치열한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서사에는 기원(origin)이 있다. 한진그룹 ‘남매의 난’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긋났기에 갈 데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일까. 바깥에서 몰랐을 뿐, 오래전부터 갈등은 잠복해 있었을 터다. 이런 와중에 이를 촉발한 트리거가 당겨졌다. 조양호 회장의 때 이른 죽음이 그것이다.

조 회장은 2019년 4월 8일, 미국 LA에서 7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심적 내상이 겹쳐지자 몸이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호불호는 갈려도 경영인 조양호 회장이 이뤄놓은 실적은 반박 불가의 영역이었다. 창업주 조중훈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1999년 대한항공 회장에 오른 뒤, 20년 동안 자산 규모 30조5000억원의 글로벌 항공·물류 회사로 키웠다. 창립 50주년이었던 2019년, 대한항공은 항공기 166대를 보유하고, 43개국 111개 도시에 취항하는 세계적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굳혔다. 전 세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Sky Team)의 창립을 주도한 멤버였다.

그러나 말년의 조양호 회장에게 트리플 악재가 엄습했다. 한진해운 파산,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 중도 사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연임 실패가 그것이었다. 한진해운 회생은 ‘육해공(陸海空) 수송업’이라는 조중훈 선대회장의 유훈이 걸린 일이었다. 조 회장은 2014년 직접 경영에 참여했고, 2016년까지 에스오일 지분(1조원) 등 약 2조원을 투입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6년 5월에는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도 반강제적으로 사퇴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비선인 최순실에게 찍혀서’가 정설로 통한다.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장 때(2009년)부터 애착을 가졌던지라 허탈감이 더 컸다. 그리고 카운터펀치는 2019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연임 실패였다. 당시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연임 안은 찬성 64.1%, 반대 35.9%였다. 연임 성공을 위한 지지율(66.66%)에 불과 2.5% 모자랐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2014년 12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스캔들이 줄을 이었고, 조양호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그룹은 18차례에 걸쳐 정부 각 부처의 압수 수색을 감내해야 했다.

조원태 6.52% vs 조현아 6.49%


▎조원태(왼쪽부터), 조현아, 조현민 등 유가족들이 조양호 회장 장례식에 참석했다.
조양호 회장은 생전 이렇다 할 승계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갑작스레 지병인 폐 질환이 악화되자 따뜻한 LA에서 요양에 들어갔다. 현지에서 부인 이명희(71) 정석기업 고문과 막내딸 조현민(37) 한진칼 전무가 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위독하다는 급보를 접했을 때,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 업무차 태국에 머물던 외아들 조원태(45) 회장(당시 대한항공 사장)은 급히 LA로 날아갔다. 런던에 머물던 장녀 조현아(46)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바로 이동했다. 가족들은 조양호 회장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러나 유언장은 없었다. “가족들끼리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유지만이 남겨졌을 뿐이었다.

재계에서는 “바로 이 순간부터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뿌려진 셈”이라고 봤다. 특정인에게 지분을 몰아주지 않은 이상, 가족 간 타협이 불가피했다. 문제는 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셈법이 같을 리가 없다는 데 있었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2020년 1월 기준, 조원태 6.52%, 조현아 6.49%, 조현민 6.47%로 거의 동일했다.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선 동생인 조원태 회장의 그룹 수장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할 마땅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그 권리의 가치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사이에서의 접점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진과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묵시적으로 ‘후계자는 조원태’라는 생각이 주류였다. 그러나 조원태 회장은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사정으로 한진은 끝내 동일인을 통일하지 못했고, 공정위가 임의로 조원태 회장으로 지정했다. 시장의 우려가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조원태 회장은 ‘히든카드’를 빼내 들었다. 미국 델타항공이 2019년 6월 한진칼 지분 취득을 선언한 것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늘려가며 경영권을 위협하던 시점이었다. 실제 델타는 6월 20일 “한진칼 지분 4.3%를 확보했다”고 발표했고, 9월 24일 10%까지 비중을 늘렸다. 시장은 델타를 현 경영진인 조 회장 측의 백기사로 일관되게 바라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델타는 아시아와 미주 지역에서 370여개 노선을 함께 운영하는 조인트벤처를 운영 중이다. 이를 두고 항공업 관계자는 “피를 섞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델타의 지원으로 조 회장의 경영권은 안착하는 듯했다. 조 회장은 2019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의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IATA는 ‘항공업계의 UN 회의’에 비견될 만큼의 국제적 위상을 지닌다. 아울러 2년 임기의 스카이팀 회장단 의장으로 선임됐다.

이 무렵만 해도 설마 “가족 화합”이라는 조 회장의 유훈이자 대전제가 흔들릴 것이라고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2019년 11월 고(故) 조양호 회장의 밴플리트상 수상식에서였다. 밴플리트상은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으로, 고인이 이 상을 받게 된 케이스는 조양호 회장이 최초였다. 시상식은 미국 뉴욕에서 거행됐는데 조원태 회장을 비롯해 이명희 고문,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 등 가족 모두가 참석했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가족 간 갈등이 표출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무엇 때문에, 얼마나 심하게 다툼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2019년 12월 23일,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에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때 조 전 부사장은 현 경영진과 대척점에 서 있던 KCGI와의 연대를 시사한 것이었다. 이 맥락을 나머지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대한항공 사정에 밝은 인사는 “조원태 회장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조현아, ‘루비콘강’을 건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조원태 회장은 11월 29일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2019년 6월 최고마케팅전문가(CMO)로 돌아온 것과 대비됐다. 아울러 시중에 조 전 부사장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 임원들이 물러났다. 조 전 부사장으로선 지분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고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을 복귀시키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조 전 부사장이 여러 재판에 걸려 있는 상황인지라) 시기를 늦춘 것인데 이해를 못 얻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시점에 KCGI는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늘려 가고 있었다. 17.29%까지 사들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증권가에서는 조 전 부사장과 KCGI의 연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KCGI가 갑질 문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는데 갑질 논란의 중앙에 있는 사람과 손잡는다면 주주들에게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양측은 예상을 뛰어넘어 손을 잡았다. 한진칼 의결권 지분 8.20%를 소유한 반도건설까지 참여하는 소위 ‘3자 연대’를 결성한 것이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2월 초 내놓은 보고서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의 연합에 의해 조 회장이 한진칼 이사 연임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평창동 크리스마스 사건’이 터지며 조 회장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며칠 후 사과문을 발표해 봉합했지만, 어머니 이명희 고문과의 갈등이 외부에 노출된 것이다. 충돌 원인을 두고, 세상은 ‘재계에서 떠돌던 이 고문의 큰딸(조현아) 지지 입장이 사실로 입증됐다’는 해석이 나돌았다. 조 회장에게는 절체절명의 나날들이었다.

조 회장은 KOVO 총재를 역임하며 상황이 악화할수록 정면 돌파로 타개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최악의 국면에서 파격적 행동을 결행해 활로를 열었다. 2020년 1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전세기에 탑승한 것이다. 그는 “회장으로서 직원과 함께하는 책임감과 솔선수범의 의미”라고 밝혔다. 한국인은 유독 정(情)에 끌리는 국민 정서를 지니고 있다. 조 회장에게 우호적 여론이 생성됐다. 여론은 한진칼 지분과 무관한 듯해도,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동한다. 대한항공의 수장이 누구인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효과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2만 명에 달하는 대한항공 종업원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결과 어찌 되든 승자는 KCGI?

그 여운이 가라앉지 않은 2월 4일,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조원태 회장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한진그룹 대주주로서 선대 회장의 유훈을 받들어 그룹의 안정과 발전을 염원한다”며 “저희는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 한진그룹 전문 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다시 한진칼 지분 경쟁에서 조 회장은 누나인 조 전 부사장 등으로 구성된 3자 연대를 근소하게 앞서게 됐다. 어머니 이 고문과 여동생 조 전무의 지지에 대해 조 회장은 “부친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는 가족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현 경영진은 조원태 회장 우호 지분은 33.45%(조원태+조현민+이명희+특수관계인+델타항공+카카오)로 집계된다. 이에 반대하는 소위 ‘조현아 연합군’ 지분은 31.98%(조현아+KCGI+반도건설)로 추산된다. 이 밖에 대한항공 사우회가 조원태 회장의 잠재적 지지 세력이라고 분류된다. 다만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의 표심은 미정이다. 큰 구도가 잡힌 만큼 이제 캐스팅보트는 국민연금과 외국인, 기관, 소액주주 등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정확한 한진칼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국민연금이 남매 대결에서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 기관이나 소액주주가 영향받을 파급력은 존재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한항공 주총에서 주주권을 행사해 고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을 부결시킨 전적이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대기업 총수가 물러난 첫 사례였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 등, 부동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은 여론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현직인 조원태 회장과 한진그룹 전문경영인들은 2월 6일 대한항공 이사회, 7일 한진칼 이사회를 잇달아 개최해 경영 쇄신안을 내놨다. 재무구조 개선을 골자로 ‘유휴자산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비주력 사업인 왕산마리나 매각 추진’을 공개했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안건도 의결했다. ‘호텔 사업에 애착이 있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원천 차단하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조현아 전 부사장 등 3자 연대 측은 2월 13일, 주주제안으로 맞대응했다. 한진칼의 사내·외 이사의 전면 교체를 제안했고, 전자투표제도 요구했다. 사실상 ‘조원태 한진칼 대표를 바꾸라’는 압박이었다. 양측의 대립이 첨예할수록 실적 동반 없이 한진칼 주가만 올라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권 인사는 “승패를 떠나서 이미 (높은 주가 수익률을 기록한) KCGI가 승자”라고 평했다.

한진칼 주총은 3월 말로 예정돼 있다.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중 누군가가 이길 것이지만, ‘피로스의 승리(손실은 엄청나지만 이득은 없는 승리를 지칭)’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주총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닐 것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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