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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침묵을 깨다 

“대한항공은 특정 집단의 돈벌이 수단일 수 없어” 

■ “中 우한행에서 직원들에게 평생 간직할 고마움 느껴”
■ “누나 조현아 전 부사장의 외부 연대는 안타까운 일”
■ “대한항공은 이미 전문경영인을 구성해 책임경영 중”
■ “현대카드의 독특한 기업문화와 마케팅 배우고 싶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대주주로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일 뿐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정의했다. / 사진:한진그룹
조원태(45) 한진그룹 회장은 1월 30일 중국 우한에 갔다. 세상은 의외의 사람이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행동을 하면 놀란다. 야구에서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은 뻔히 알면서도 못 치는 돌직구다. 조 회장의 우한행이 그랬다. ‘보여주기’라고 폄하한 일각의 비판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원들과 함께하겠다는 조 회장의 행동 앞에 무력화됐다.

우한에 다녀온 뒤, 조 회장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대략 2주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유배했다. 대한항공(6일)과 한진칼(7일) 이사회의 경영개선안 발표에는 화상회의로 참석했다. 은둔 기간에 조 회장은 뜻밖의 행동을 하나 더 했다. 대한항공 익명 사내게시판 ‘소통광장’에 2월 7일 실명으로 글을 올린 것이다. A4 용지로 1페이지 넘게 빼곡히 썼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소회를 담았다고 알려졌다.

‘(…) 우리 직원들이 위험 지역에 자원해서 간 것은 대한민국의 국적사이자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직원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누군가가 우릴 칭찬해주거나 알아주길 바라서 간 것이 아닙니다. 우한에 계신 교민들은 평소에 대한항공 고객이셨습니다. (…) 전세기로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고객들을 위해 전세기 운항을 승인했고, 승무원들과 우리 직원들을 위해 항공기에 탑승한 것입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120개 이상의 댓글로 응답했다. ‘아직도 많은 직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뭐가 달라지겠어? 다 똑같을 건데? (…) 항상 자부심 가득했던 회사가 땅콩사건 이후로는 부끄러워서 회사 유니폼 입는 것조차 부끄러웠습니다. 회사 어디 다니느냐고 하면 공항 근처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요. (…) 다시 한번 우리 회사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회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잠시나마 느껴봅니다.’, ‘비행기에서 KIP(대한항공 총수 일가를 지칭) 모시는 것이 그동안에는 정말 두렵고 피하고만 싶었는데 우리 회장님은 꼭 한번 모시고 비행하고 싶습니다.’

한진家 시련의 계절(Darkest Hour)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조원태 회장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종업원이 지지하는 최고경영자(CEO)와 주주가 원하는 CEO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CEO 조원태를 향한 주주들의 평가는 3월 말로 예정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 주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때까지 ‘왜 조원태여야 하는지’에 관한 필연성을 주주와 국민에게 설득해야만 한다. 그 답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영역이다.

조 회장은 아버지 조양호 회장(2019년 4월) 별세 이후 그룹 수장이 됐음에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닌 한, 앞에 나서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중(喪中)’이라고 삼갔다. 행여 가족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중도 작동했다. 그룹에 “회장 개인 홍보는 일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이 순탄하게 돌아갔다면 계속 그렇게 됐을 것이다. 조 회장이 월간중앙과의 서면 단독 인터뷰에 나서는 시점은 보다 나중이었을 터다. 그러나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자 2월 12일 조 회장의 답신이 도착했다. 역설적이게도 자가격리 중이어서 가능했을 수 있다.

■ “‘가족끼리 화합해서 경영하라’는 부친의 유지”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다. 즉 한진칼 주총에서 이기는 쪽이 경영권을 쥔다. 2020년 1월 한진칼 공개 자료에 따르면 의결권 유효 지분은 조원태 회장 6.52%, 조현아(46) 전 대한항공 부사장 6.49%, 조현민(37) 한진칼 전무 6.47%, 이명희(71) 정석기업 고문 5.31%, 한진그룹 산하 재단 등 특수관계인 4.15%,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 17.29%, 미국 델타항공 10%, 반도건설 8.20%, 국민연금, 이 외에 카카오(1%), 대한항공 사우회, 외국인, 기관, 소액주주 등이 분포한다.

현 경영진인 조원태 회장 우호 지분은 33.45%(조원태+조현민+이명희+특수관계인+델타항공+카카오)로 계산된다. 이에 반대하는 소위 ‘조현아 연합군(이하 3자 연대)’ 지분은 31.98%(조현아+KCGI+반도건설)다. 양측 지분율이 1.47% 차이밖에 나지 않다 보니, 실적 동반 없이 한진칼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나머지 주주들의 포지셔닝이 중요해졌다. 국민연금은 지분율이 적어도 ‘정부의 표심’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 우리사주조합과 자가보험, 사우회 등은 조원태 회장의 지지 세력이라고 시장은 파악하고 있다.

고(故) 조양호 회장은 70세의 나이에 하늘로 돌아갈 때, “가족들끼리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장을 따로 남기지 못했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세상과의 작별이었다. 조양호 회장은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지분을 몰아주지 않은 대신, 합쳐야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 그리고 어머니 이명희와 특수관계인 지분 등을 합치면 28.4%에 달한다. 여기에 조양호 회장은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라는 유산을 남겨주고 떠났다. 대한항공과 피를 섞은 관계가 된 델타는 한진칼 지분(10%)에 참여했다. 모두 더하면 38.4%로 KCGI(17.29%)의 위협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감성의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2019년 12월 23일 법무법인을 통해 ‘조원태 회장을 그룹 총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의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조 회장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이후 조 전 부사장은 KCGI, 반도건설 연합에 합류, 루비콘강을 건넜다.

■ “대한항공의 개인 소유 안 된다”

첨예한 사안인 경영권에 관해 조원태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이 외부와 연대했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회사가 개인 소유 또는 돈벌이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며 “저는 대주주로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일 뿐, 회사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 경영진과 적대적인 3자 연대와의 관계 개선 가능성에 관해선 “그룹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주주들의 의견이라면 언제든 청취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열어놨다. 다만 “의견 개진이 특정 집단의 이익 극대화라는 판단이 든다면, 과감히 배제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명희 고문과 여동생 조현민 전무의 지지 배경에 대해선 “‘가족 간 화합해서 경영하라’는 부친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는 가족들의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이를 위해서는 가족 간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극적인 타협이 성사되지 않는 한, 주총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한 흐름이다. 투표는 본질적으로 ‘누가 더 혼나야 마땅한지’를 고르는 행위다. 그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 대한항공과 재계서열 13위 한진그룹의 미래 항로가 운명 지어질 것이다.

포인트 1 | 실적 반등의 조건


▎조원태 회장(왼쪽)은 대한항공 사장 시절인 2017년 미국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 운영을 위한 양해각서에 사인했다. 아버지 故 조양호 전 회장(왼쪽 둘째)의 유산이었다.
■ “수송사업에 집중하겠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두려움, 이익, 동정심 셋 중 하나다. 경영자가 주주들의 신임을 얻으려면 이익에 호소해야 한다. 주가를 올리고, 배당을 많이 주는 것이다. 조 회장도 “주주 배당은 최우선 과제이며 이를 못하면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려면 회사가 흑자를 내거나 잉여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항공업은 특성상 외부 변수에 따라 실적이 요동친다. 한·일 갈등처럼 외교 마찰이 생기거나,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돌거나, 유가 혹은 환율이 상승하면 불가항력적으로 실적이 악화된다. 반등 시점이 언제일지, 또 어떤 악재가 닥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조 회장이 내놓은 경영개선안 ‘한진그룹 비전2023’은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했다. 조 회장은 “한진칼과 대한항공 이사회의 경영개선안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호텔업에 애착을 갖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 진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는 일각의 시각도 있지만, 조 회장은 “송현동 부지 및 비주력 사업인 왕산마리나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 윌셔그랜드센터(미국 LA)나 그랜드하얏트 인천의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하기로 한 것은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본으로 돌아가 한진그룹의 근간이자 핵심 역량인 수송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조 회장은 “항공사업에 있어서도 수익이 나지 않는 노선은 고객 혜택이 축소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감히 조정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조원태식 ‘실리경영’은 퍼스트클래스 좌석 축소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시장 수요에 맞도록 지속적 변화를 꾀할 것이다. (국제선 퍼스트클래스가 70% 줄어든 만큼) 비즈니스클래스 좌석 숫자가 확대됨과 동시에 서비스는 퍼스트클래스 수준으로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한진칼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했다. 이에 따라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중에서 선출할 길이 열렸다. 한진칼 이사회의 사외이사 숫자는 늘어날 것이 유력하다. 종전까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은 조원태 회장이었다. 이번 한진칼 이사회에서는 조 회장이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결의했다. 그룹의 경영과 감시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방향성이다. 이에 관해 조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 한진칼은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진그룹은 주요 그룹사의 보상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했다”고 투명경영 의사를 부각했다.

■ “국토부, 진에어 생존 도와 달라”

LCC(저비용항공사) 진에어는 조 회장의 ‘아픈 손가락’이다. 진에어는 2019년 영업손실 491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이후 10년 만의 영업손실 적자였다. 외부 악재에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로부터 18개월째 제재를 받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신규 노선 취항과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 등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진에어는 2019년 9월 ▷독립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재정립 ▷이사회 역할 강화 ▷사외이사 자격 검증 절차 강화 ▷준법 지원조직 신설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및 사회공헌 확대 등, 총 17개 항목에 관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가 2019년 12월 추가 보완책을 요청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진에어의 경영문화 개선 자구계획이 충실히 이행돼 경영 문화가 실질적으로 개선됐는지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점검해나갈 예정”이라는 것이 국토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경영 문화’의 측정이 어떤 기준으로 가능한지는 모호하다. 이런 이유로 ‘국토부가 명확한 제재 근거 없이 여론 눈치 보기를 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 제재가 장기화할수록 고통받는 이들은 진에어 노동자들이다. 서면 인터뷰에서 조 회장도 “진에어는 국토부에서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이행했다”며 “진에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상화 조치가 최대한 빠르게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바랐다.

그 이유로 “항공산업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성장할 수 있는 시점에 성장 동력을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진에어는 제재 장기화에 따른 사업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며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한·일 갈등 등으로 생존 가능성조차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포인트 2 | 전문경영인의 조건

■ “대한항공은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KCGI, 반도건설의 ‘3자 연합’은 2월 13일 주주 제안서를 내놨다. 명분은 “한진그룹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배경태 전 삼성전자 중국총괄 부사장,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를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이 외에 신규 사외이사 4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의 후보도 제안했다. 소액 주주의 지지를 끌어낼 목적으로 전자투표제도 요구했다.

‘오너 조원태 회장 vs 전문경영인’의 프레임을 짜면 주총 표심과 여론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이에 대해 조원태 회장 측은 두 가지 대항논리로 맞서는 형국이다. 첫째, 3자 연합이 내세우는 전문경영인의 이면에는 법적·도덕적 논란을 불렀던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조원태 회장 vs 조현아 전 부사장’의 구도로 봐야 타당하다는 시각이다.

둘째, 3자 연합이 내세운 전문경영인들이 현직 대한항공 경영진보다 더 전문적이냐는 물음이다. 조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한진그룹은 이미 전문경영인을 구성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며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 최정호 진에어 대표,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 등 모든 계열사에 유관 경력 30년 이상의 전문가들과 함께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 회장은 “항공업은 얼라이언스, 항공기 및 엔진 제작사 등과 같은 전문가그룹과의 긴밀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가 필수다. 이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항공업 어렵지만 극복 가능”

항공업은 외부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 업종이다. 대한항공 안에서 “그런 점에서 조 회장은 운이 없었다”는 말이 들린다. 취임 이후 일본, 홍콩, 중국발 악재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회장은 “어려운 외부 환경에서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며, 책임을 외부 탓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반등 시기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볼 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자신감도 내비쳤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시장점유율은 37.4%(2019년 국토부 집계 기준)에 불과하다. 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봤다. 이보다 조 회장이 우려하는 지점은 국내 항공시장의 공급 과잉에 있었다. “크지 않은 시장에서 여러 항공사가 경쟁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모든 항공사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현재도 단거리 노선의 경우, 경쟁 심화에 따라 유가조차 보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표시했다.

전년 대비 56.4% 감소했음에도 대한항공은 2019년 영업 이익 2909억원의 실적을 남겼다.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효과가 크게 기여했다. 전 세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의 의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은 “JV는 기대했던 효과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며 “특히 태평양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노선 경쟁력과 델타의 판매력 시너지 효과로 미주~동남아 간 수송이 증가했다”고 자평했다.

포인트 3 | 조직문화 개선의 조건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중국 우한 체류 교민들.
■ “나도 회사에 불만 많았다”

대한항공 2만 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대한항공 노조는 2월 14일 “3자 연합 낙하산 허수아비(전문경영인)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저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조현아 전 부사장, KCGI, 반도건설이 하루 전날(13일) 내놓은 주주제안에 대해 “(3자 연합의 이사 후보군은) 항공산업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3자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 전 부사장의 수족들로 이뤄져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노조는 명시적으로 조원태 회장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3자 연합처럼 비토 정서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숫자로 찍히지 않는 조 회장의 무형적 자산이다. 조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노조는 회사와 싸우는 조직이 아니라 직원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며 “내가 어려울 때 오히려 노조 관계자들에게 협조를 먼저 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카리스마의 할아버지(조중훈 창업주), 디테일의 아버지(조양호 전 회장)와 다른 무엇을 조 회장은 대한항공에 입히고 싶을까. 그는 뜻밖에도 “회사생활 17년째인데 그동안 나도 불만이 많았다”며 “내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을 고치면 자연히 직원들의 불만도 해소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고백했다. “최고경영자인 저부터 바뀌어야 하며, 제가 바뀌면 임원이 바뀌고, 관리자가 바뀌면 그 이후로 직원의 응어리가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다 풀리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는 말 속에서 방향성이 읽힌다. 경직됐던 대한항공의 조직문화를 혁신하겠다는 바람이다. 그 이유에 대해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고객도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회사의 직원들이 가장 큰 고객”이라며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려는 노력에 대해 직원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뢰를 쌓아갈 생각이다.”

■ “문제도, 해답도 현장에 있더라”

조 회장에게 우한은 ‘덩케르크’(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철수작전 성공으로 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프랑스 지역)였다. 최고경영자에게 위험지역에 가라고 권유할 만한 임원은 없다. 우한행은 조 회장의 판단이었다. 그는 “현재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다. 동행했던 승무원들도 2주간의 휴식을 통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한행을 강행한 심경에 관해 조 회장은 두 가지를 말했다. “혹시 모를 위험을 알면서도 흔쾌히 자원해준 우리 직원들에게 힘을 보태고, 신속한 결정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돌발 상황은 현지에서 없었다. 전세기 안에서 조 회장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애썼다”고 돌이켰다.

그의 우한행은 조중훈 창업주가 베트남전쟁 당시 격전지인 퀴논에서 수송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조 회장은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도 “직원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 창업주 회장님과 선대 회장님께서 보여주셨던 소명의식과 책임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조양호 전 회장은 아들에게 유독 엄격했다. 한진그룹에서 “누가 조원태와 친하다고 말이 돌면, 조 전 회장은 그 임원을 한직으로 보냈다”고 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조 회장 주변에는 친소관계와 무관한 전문경영인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게 됐다. 조 회장은 “아버님이 계셨기에 정말 도움이 되는 임원들이 제 주변에 남아 계신다. 같이 믿고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 조 회장은 “경영의 모든 것을 배웠다. 부친께서는 늘 현장을 강조하셨다. 문제도, 해답도 현장에 있음을 알려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2019년 3월 열린 대한항공 창립 50주년 기념식. / 사진:연합뉴스
조 회장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다. 말수도 적다. 그 대신 “잘 듣는다”는 평판이다. 조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곧잘 썼다. 2월 7일 회사 ‘소통광장’에 글을 올린 심정에 대해서도 그는 “땀으로 범벅된 방호복 속에서 승무원들이 교민 수송을 위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던 모습은 평생 간직할 값진 기억이 됐다.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정신으로 맡은 바 업무를 완수한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 사장 시절인 2018년 책 추천사를 쓴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영혼을 되찾은 CEO로 추앙받는 사티아 나델라의 자서전 [히트 리프레시]에 관한 소감이었다. 거기서 그는 “공감과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메시지”, “삶의 의미와 ‘함께’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델라의 인생관에 대해 “직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라고 극찬했다. 조 회장은 1월 2일 신년사에서도 대한항공 2만 명 임직원과의 화합을 강조했다. 서면 인터뷰에서도 “신년사에서 직원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를 실천하겠다”며 “직원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고객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 이후에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항공사가 되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19년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새로운 50년의 첫해가 되는 2020년, 대한항공의 양 날개는 안전과 변화다. 안전에 대해 조 회장은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선대 회장님 말씀을 경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며 “안전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보 없이 모든 역량을 쏟아 넣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뜻밖에도 “현대카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추구한 기업문화에 대한 호감을 나타낸 것이다. 조 회장은 “평소에도 뭔가 색다른 방법의 마케팅을 찾고 있었다. 현대카드의 독특한 기업문화와 마케팅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며 “작지만 강한, 그리고 사랑받는 기업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고백했다. 현대카드,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 및 협업에 관해서도 “변화 없이 소비자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킬 수 없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해 글로벌 경쟁력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설파했다. 조 회장은 정의로울 수 있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궈낸 회사를 지켜낼 힘을 쟁취할 수 있을까.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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