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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목민관 열전] ‘현장주의자’ 오승록 노원구청장의 뚝심 

“급할수록 정도 걷고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무슨 일이든 직접 현장에 가 보고 경험해 봐야 직성 풀리는 성격
지난해 한국표준협회 행정서비스 평가 서울 자치구 中 2위 ‘기염’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은 “현안 해결만큼이나 지역 미래를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진:신인섭 기자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은 지독한 ‘현장주의자’다. 늘 승합차를 타고 직접 현장을 찾는다. 그리고 ‘이거다’ 싶으면 수첩을 펴서 메모한다. 국회의원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서울 시의원(2010~2018년)을 거친 오 구청장은 2018년 7월 민선 7기 노원구청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1년 6개월여 동안 그가 차량으로 달린 거리(국내 기준)는 4만1000㎞.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51번 왕복한 거리에 해당한다. 우수 사례 수집을 위해 다녀온 곳만도 지방 35개소, 해외 12개국에 이른다.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 지방 출장도 자주 있었다.

오 구청장의 열정과 아이디어는 지역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동북부에 위치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밀집한 베드타운에서 구청장이 나서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오 구청장 취임 후 노원구가 꿈틀대고 있다는 게 주민 다수의 목소리다.

“일상의 행복 느껴야 애향심도 생긴다”


▎오승록 구청장(노란색 점퍼)이 3월 4일 서울 노원구청 평생교육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예방 힐링 마스크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노원구
가장 큰 변화는 주민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의 행복을 위한 여건 마련. 개발을 통해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여러 관계 기관과의 입장과 역할 등이 서로 맞물려 있다 보니 구청 홀로 추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선 과제로 정한 것이 주민 휴식의 삶이다. 잘 쉬어야 에너지를 얻고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다는 게 오 구청장의 소신이다.

“다행히 노원구는 자연환경이 우수하다. 수락산·불암산·영축산·초안산이 지역을 감싸고 있고 중랑천과 당현천이 도심을 흐른다. 그동안 좋은 여건을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 구청장의 말처럼 노원구는 사람 시야에서 식물의 녹색이 보이는 비율, 이른바 ‘녹시율(綠視率)’이 서울에서 최고다. 이를 많은 주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노원구는 권역별 힐링 공간을 만들고 있다. 중계동 불암산 나비정원 일대의 힐링타운, 공릉동 경춘선 철도공원 주변에 조성한 서울 최초의 야간 불빛정원, 월계동 영축산 무장애 숲길 조성이 대표적이다.

경춘선 철도공원의 야간 불빛정원의 경우, 오 구청장은 최초 구상 이후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이어 원주 오크밸리의 ‘소나타 오브 라이트’ 불빛 쇼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직접 느껴봤다. 지난해 12월 21일 개장한 불빛정원은 연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서울의 새로운 야간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수락산 휴양림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 구청장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피오르트리 하우스에 직접 다녀왔다.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TV 속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의 모험]에서 봤던 나무 위의 집이 현실화되고,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심어줄 로망의 장소가 곧 탄생할 것으로 노원구는 기대하고 있다.

주민 문화·예술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오 구청장은 매년 4월 개최하는 ‘당현천 등(燈) 축제’를 노원구 대표 축제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경남 진주의 남강 유등 축제 현장에 다녀왔다. 또 하계동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신체활동 시설인 어린이 상상나라를 만들기 위해 핀란드 액티비티 파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T) 디키디키, 하남 스타필드 ‘스포츠 몬스터’, 전북 완주의 ‘놀토피아’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2013년 시작된 노원의 대표 축제 ‘노원 탈 축제’의 위상 제고(提高)다. 지난해부터 기존의 거리 행진 방식에서 벗어나 경연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축제를 ‘축제답게’ 변화시켰다. 또 전문 공연팀과 동아리팀을 구분해 재미와 함께 축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 구청장은 ‘당연히’ 국내외 가면 축제 현장에도 다녀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가면 축제에서 관객과 참가자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필리핀 가면 축제인 바콜로드 축제와 원주 댄싱 카니발 현장을 보면서 노원 탈 축제에 역동성을 가미했다.

지역의 미래를 가꾸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노원구에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대규모 개발 예정지가 있다. 지하철 4호선 차량기지와 운전면허시험장 26만4000여㎡ 부지, 월계동 광운대 역세권 개발 예정지다.

이곳에 일자리가 넘치는 자족도시 건립 구상을 위해 오 구청장이 다녀온 일본 ‘사이타마’와 도쿄 롯폰기의 ‘쓰타야’는 구 행정에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사이타마는 차량기지 이전(移轉) 부지 개발과 관련해 방문한 곳이다.

사이타마 시는 ‘신도심’ 개발 계획에 따라 폐지가 된 철도 부지에 3만7000석 규모의 ‘수퍼 아레나’ 공연장과 17개 기관이 입주한 합동청사와 적십자 그리고 어린이병원을 갖춘 다중 복합시설을 조성했다. 노원구에 위치한 지하철 4호선 차량기지와 운전면허시험장 이전 부지에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참고자료로 삼을 만하다는 게 오 구청장의 생각이다.

오 구청장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반도체와 자동차·바이오 관련 산업을 꼽는다. 이를 위해 차량기지 이전 부지에 세계적인 제약회사와 바이오 관련 회사 등을 유치하려 한다. 바이오산업 발전에 앵커 역할을 하는 것이 병원이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내외 대형병원과 연구단지 유치를 추진하자는 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앞으로 창동 인근에 K팝 전용 공연장을 완공하고, 차량기지 이전 부지에 이들 업무용 시설과 호텔까지 건립하면 8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노원구는 보고 있다.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조성 계획도


▎지난해 7월 관내 풍수해 취약 지역 현장 점검에 나선 오승록 노원구청장(오른쪽). / 사진:노원구
오 구청장은 광운대 역세권 개발 예정지 약 9917㎡에 이르는 공공용지를 월계동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 도쿄 롯폰기의 쓰타야를 다녀왔다. 오 구청장은 “쓰타야는 일본 최초의 북카페 스타일 서점”이라며 “여유롭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화·게임을 즐기는 문화 복합시설이어서 눈길이 갔다”고 전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구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지난해 한국표준협회가 민선 7기 지난 1년간 서울 25개 자치구와 경기도 중 인구 30만 명 이상인 16개 시 등 총 41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했다.

노원구는 공익적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는 ‘공공성’과 각종 편의시설 여부 등을 의미하는 ‘편리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서울 자치구 중 2위를 기록했다. 평가 방법이 최근 6개월 내 해당 지역의 각종 서비스를 1회 이상 받아본 사람 200명을 선정해 직접 면담 조사한 것이니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표준협회 발표 다음 날, 오 구청장은 모든 직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노원구의 주민 편의 정책은 전국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18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 여름철 ‘24시간 어르신 야간 무더위 쉼터’가 폭발적 인기를 끌어 지난해 행안부에 의해 전국으로 전파됐다. 또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 저학년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는 ‘아이휴 센터’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정책에 반영·시행 중이다.

오 구청장은 국회의원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서울 시의원을 거쳐 현재 민선 7기 노원구청장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생산했다. ‘오 구청장표 아이디어’가 서울시나 전국으로 퍼진 경우도 꽤 많다. 그가 ‘아이디어 구청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오 구청장이 말하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데는 3단계 법칙이 작용한다.

‘오승록 아이디어’ 발현 법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절실한 마음’이다. ‘변화는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하듯 꼭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노원에 터를 잡고 국회와 청와대를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면서 상계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내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베드타운인 강북권을 어떻게 하면 자족도시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모처럼 쉬는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보여주고 싶지만 멀리 가기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집 가까이에는 마땅히 가볼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된다.

둘째 ‘열정’이다.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단계다. 실행 의지가 있어야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을 수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검토 단계로 들어가는데 즉, 자료 수집이다. 시의원 시절에도 참고할 만한 것이 있으면 현장을 갔다. 국내외 유사 사례 벤치마킹을 위해 우리나라 방방곡곡은 물론, 주말을 이용해 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직접 보고, 해보고, 그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일지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본 것을 본 대로, 들은 것을 들은 대로


▎지난해 4월 7일 오승록 구청장 등 노원구 관계자들이 소방관들과 수락산 도안사 인근에서 화재 진압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사진:노원구
마지막은 ‘숙성 과정’이다. 기초자치단체는 국방·외교를 빼면 모든 나랏일을 직접 주민과의 접점에서 실행하는 곳이다. 일반 기업체도 새로운 제품 개발에 앞서 혹시 모를 오류나 부족함은 없는지, 문제점을 찾기 위해 미리 시험 가동하는 과정이 있다. 그래야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치구는 좋은 정책 실험 장소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바로바로 정책을 수정하는 등 방향 전환이 용이하다.

2018년 7월 임기를 시작한 오 구청장은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고충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직원들의 협조를 요청하는 낮은 자세를 이어가는 단체장이라는 게 오 구청장에 대한 대체적인 평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 청장의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가 아닌 ‘우리 함께 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국회의원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서울 시의원을 거치며 일관되게 마음에 새겨온 ‘진정성’과 ‘한 걸음 한 걸음’의 자세다.

무슨 일이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 있지만 그럴수록 정도를 걷고, 이왕 하려거든 주도면밀하게 살펴 제대로 하자는 그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구청장이 된 뒤로도 그런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직원들에게 진솔하게 부탁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평소 생각 때문이다. 오 구청장은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며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보고 원칙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본 것을 본대로, 들은 것을 들은 대로 말해야 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은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대로 보고하라.” 오 구청장이 늘 마음에 새기는 경구(警句)라고 한다.

또 오 구청장은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새로 창조되거나 소멸할 수 없고 단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될 뿐’이라는 물리학 이론을 믿는다. 그는 이 법칙을 사람에게 적용해 본다고 한다. 불교 [법화경]의 생명철학인 ‘본성 불변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성질은 오랫동안 길들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 구청장은 “이 세상은 같은 크기의 벽돌로 된 벽돌담이 아닌 큰 돌과 작은 돌, 모난 돌과 둥근 돌 등 세상에 하나뿐인 돌들이 조화를 이루는 돌담의 사회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저마다 가진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적 사고”라고 힘줘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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