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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대학총장 열전] 바이오메디컬 특성화 명장 이훈규 차의과학대 총장 

11개 학부 모두 의과학 명품 전공, 미래 맞춤 차·차·차(CHAllenge:도전) (CHAnce:기회) (CHAnge:변화) 인재 키운다 

몸집 작지만 빠르고(Speedy) 특별하고(Special) 강력한(Strong) ‘3S’ 혁신
차병원그룹과 연계, 국내 유일 ‘産學硏病’ 토대로 경기 북부 교육 맹주 될 것


▎이훈규 총장은 “차의과학대는 의학·생명과학·사회과학을 융합해 ‘의과학’을 특성화한 전국 유일의 대학”이라며 “전국 최초의 학생행복 대학 실현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차의과학대학교로 가는 길은 의외로 편리했다.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와 포천~구리 고속도로를 달리다 선단IC를 빠져나오니 어느새 대학 길목이다. 주위가 논밭으로 둘러싸인 마을 풍경을 감상하던 중 길가에 걸린 현수막이 연이어 눈에 들어온다. “경축, 2020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선정.” 마을 주민과 지역 단체가 내건 것이다. ‘대학총장 열전’을 취재하러 여러 대학을 다녔지만, 주민의 ‘경축’ 현수막을 본 적은 없었다.

경기도 포천시 동교동 해룡로에 있는 차의과학대 정문을 들어서니 아담한 캠퍼스가 나타났다. 6월 3일 낮 12시 30분.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이라 캠퍼스는 조용했는데 유독 과학관은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일반생물학 과목 실험을 하러 온 의생명과학과 20학번 새내기들이었다. 모두 밝고 행복해 보였다. 신입생 홍승아씨는 “대학생이 되고도 학교에 오지 못해 같은 과 친구 얼굴도 몰랐는데 너무 반갑고 즐겁다”며 “오전 10시 30분부터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질 검정 실험을 했다”며 웃었다. 2020학년도 의생명과학과는 신입생이 44명이다. 그 청춘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이훈규(67) 총장은 과학관 앞 잔디밭에서 학생들과 즉석 기념촬영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모두 마스크를 썼어도 함박웃음이 요란했다. 이 총장은 “차의과학대는 학생·교수·직원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따뜻한 배움의 공간”이라며 신입생들을 격려했다. 기자는 도서관·과학관·홍보관을 둘러보고 이 총장과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학교에 오다가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우리 대학은 1996년 학교법인 성광학원이 설립한 대학으로 차병원그룹이 모체입니다. 1997년 개교 때 의대생 40명으로 출발했는데 당시엔 주민들과 친근하지 못했어요. 급하게 인가를 받다 보니 처음엔 학교명이 ‘포천중문의과대학’이었어요. 제주도에 중문의대를 설립할 계획이었거든요. 중문은 제주도 중문(中文)입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멀고 경기 북부가 취약하니 포천에 학교를 세우는 게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제안이 나왔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서류를 바꿨는데 앞에 ‘포천’만 붙여 포천중문의대가 된 것이지요. 포천 분들이 처음에 학교명을 이상하게 생각한 배경입니다. 당시엔 대학이 지역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현수막처럼 확 달라졌죠. 대학과 지역이 상생하는 거죠. 우리의 목표는 경기 북부의 맹주가 되는 겁니다. 지역과 함께 호흡해야죠. 포천·양주·남양주의 기업인을 모셔 교육과정을 여는 등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포천시가 우리 대학에 도로 교통시설도 내줬고요.”

지역사회와의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인 서울’ 대학도 아닌데 규제는 다 받고 혜택은 없어요. 그러니 포천·의정부·남양주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활성화와 특성화로 중무장하는 거지요. 서울 대학들과 경쟁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는데 우린 몸집이 작아요. 규모의 경제 측면에선 단점이죠. 하지만 작은 몸집은 민첩합니다. 우린 그걸 장점으로 바꾸고 있어요.”

차의과학대의 차(CHA)는 설립자인 차광렬 차병원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이 강조한 기독교적 이웃사랑의 정신(Christianity), 인간 존중의 정신(Humanism), 연구와 탐구 정신(Academia)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C.H.A를 통해 인류에게 건강과 희망을 주겠다는 게 설립 정신이다. 차 소장은 초대 총장을 맡아 신입생들과 생활관에서 함께 숙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의대생 40명으로 출발, 23년간 100배 성장


▎이훈규 총장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들은 뒤 실험을 하러 온 의생명과학과 신입생들과 과학관 앞 잔디광장에서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개교 당시 전원 장학금, 전원 기숙사 생활이 화제였습니다.

“신입생이 40명이어서 파격이 가능했지요. 지금은 신입생 정원이 11개 전공에 504명, 전체 재학생은 3854명(학부생 2212명, 9개 대학원생 1642명)입니다. 40명에서 출발해 100배나 성장한 셈이죠. 그래서 개교 당시처럼은 못 합니다. 그래도 화젯거리가 많아요. 전액 등록금 장학수혜율이 30%, 재학생 장학금 수혜율이 91%에 이릅니다. 1인당 교육비는 3460만원으로 포스텍과 서울대에 이어 전국 3위(2017년)고요. 전임교원 확보율은 189.1%로 전국 4년제 대학 중 1위,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8.8명으로 역시 1위입니다. 간호사 국가고시 18년 연속 100% 합격, 약사 국가고시 5년 연속 100% 합격도 자랑입니다. 그 결과 2017년 일부 특수목적 대학이나 종교대학을 제외하고 전국 4년제 대학 중 취업률 1위(81.4%)로 도약했습니다. 기숙사는 700명 수용 규모인데 신입생 희망자는 100%, 학부 재학생은 25%에게 제공합니다. 2022년 약대가 학부로 전환되는 것을 계기로 내년에 200명 규모 기숙사도 신축합니다.”

전국의 4년제 대학들은 전공이 비슷비슷하다. 수십 가지 전공을 전시해놓고 학생을 기다린다. 전공 특색이 없으면 학생도 불행하고 경쟁력도 없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는 데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은 사회가 특화된 정예 인재를 원하는 까닭이다. 차의과학대는 이런 시대 흐름을 앞서가는 역동적인 특성화 대학이다. 약학과·간호학과·의생명과학과·바이오공학과·데이터경영학과 등 11개 학부 전공과 의학전문대학원·스포츠의학대학원 등 9개 대학원은 일반 대학과는 차별화된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학부와 대학원이 의과학 융합교육으로 연결돼 있다.

특성화 전공 하나하나가 새롭네요.

“국내 대형 대학은 60개 이상의 전공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들 대학과 경쟁하려면 백화점식 전공으론 어림없어요. 똘똘한 전공으로 경쟁해야지요. 하나의 전공에도 여러 세부 영역이 있어요. 경영학을 볼까요? 경영관리·재무·회계·마케팅·경영정보시스템·로지스틱스·국제경영 등 다양하잖아요. SKY 대학은 경영학 한 분야가 우리 대학 전체 규모와 비슷한 단일 단과대잖아요. 우리 같은 다윗이 골리앗과 경쟁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 경영대는 ‘데이터’ 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학과 이름이 데이터경영학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보다 먼저 코로나19 확산을 예견했던 곳이 의사들이 창업한 캐나다의 빅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블루닷’이었어요. 그만큼 데이터가 중요하죠. 지금은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지만, 우리가 데이터경영학을 특화한 4년 전만 해도 미국 유펜(UPenn)의 와튼스쿨(Wharton School) 정도가 관심을 갖고 있었을 정도였어요. 올해 고려대가 데이터경영 교육을 발표한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4년 앞서 교육을 시작했어요.”

데이터경영처럼 다른 전공도 프런티어 마인드가 있었던 거지요?

“바로 그겁니다. 스포츠의학과·미술치료학과·의료홍보미디어학과·(임상)상담심리학과 등을 예로 들죠. 스포츠의학과와 미술치료학과는 이미 국내 최고 특성화 학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료홍보미디어학과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선 유일하게 의료·헬스케어로 특성화했는데 가상현실(VR) 교육도 접목했어요. 이런 특성화를 인정받아 올해 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힐링 VR 콘텐츠 제작·교육 ‘캠퍼스 원 프로젝트’를 수주했죠. 내친김에 상담심리학과도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는 차병원과 연계해 임상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상담심리학과지만 임상 분야에 초점을 둔 전국 유일한 전공입니다. 올해는 보건의료산업학과와 보건복지행정학과를 통합한 ‘AI 보건의료학부’를 만들어 AI와 헬스케어를 접목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백화점식 전공 나열은 쓸모가 없어요. 전국 취업률 1위의 비결입니다.”

학부 전공이 특성화·전문화되어 있어 세상 흐름을 빨리 흡수할 수 있겠네요?

“의학·생명과학·사회과학을 융합해 ‘의과학’을 특성화한 전국 유일의 대학이지만, 몸집이 작아 ‘속도’를 낼 수 있어요. 매 학기 끝날 때 모든 학과의 발전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해 성과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합니다. 대부분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를 다루는 전공으로 짜여 있으니 학계와 업계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해야지요. 학과의 전략과 커리큘럼을 6개월마다 수정·보완합니다. 3S가 중요해요.”

11개 학과(부) 9개 대학원, 의과학 융합 전공으로 연결


▎이훈규 총장은 매주 수요일 아침에 기숙사 학생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계란후라이를 하며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 / 사진:차의과학대학교
3S가 뭔가요? 창학정신인 C.H.A와는 다른 개념이네요?

“소규모 대학들은 ‘SBS(Small But Strong)’를 내세우지만 저는 달라요. SBS 대신 3S(Speedy, Special, Strong)를 강조합니다. 새로운 대학 발전 방안을 빠르게 결정하고(Speedy), 또 그 내용을 경쟁력 있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Special), 그것을 강력하게(Strong) 추진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S는 속도입니다. 작다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됩니다. 매 학기 직후에 다음 학기 전략을 수립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두 번째 S는 특성화입니다. 백화점식으로 전공을 나열하지 않고 똘똘한 특성화 전공에 집중합니다. 모든 학과가 특성화·전문화되어 있습니다. 경쟁력 없는 전공은 안 만들죠. 세 번째 S는 강한 추진력입니다. 역사가 짧다는 것은 오히려 기득권층이 없는 장점도 되기 때문에 대학 혁신을 위한 강력한 추진 동력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않고 빠르게 결정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거죠.”

이 총장은 현장 소통형이다. 직접 의견을 듣고 혁신을 진두지휘한다. 2012년 취임하자마자 규정을 정비하고 행정조직을 재편하는 한편 재정 확충에 나섰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의료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사회과학계열인 융합과학대도 신설했다. 학생이 늘자 연면적 6524㎡ 규모의 과학관과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미래관 등 강의와 연구 시설을 확충했다. 특히 판교 테크노밸리에 교육·연구·임상·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차의과학대 종합연구원(CHA Bio Complex)을 세워 기초의학과 임상 분야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차의과학대는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가 발표한 ‘2018년 세계대학 학술순위(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 바이오의공학(Biomedical Engineering) 분야에서 세계 1500여 개 대학 중 100위권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13위)·고려대(26위) 등에 이어 10위다.

바이오의공학 세계 100위권 진입


▎이훈규 총장은 학생행복 대학을 주창하고 강조하는 행복교육 전도사다. 이 총장이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행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모습. / 사진:차의과학대학교
3S가 대단합니다. 차의과학대가 내세우는 ‘차차차(CHA CHA CHA)’ 인재상도 궁금하네요.

“차차차는 도전(CHAllenge)·기회(CHAnce)·변화(CHAnge) 정신을 압축한 말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끊임없이 도전하면 반드시 기회를 얻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혁신을 이끌자는 우리의 글로벌 인재상입니다. (웃으며) 혹시 술을 드시다 주변에서 ‘차차차’를 외치며 건배하는 이들이 있으면, 아마 우리 대학이나 차병원 사람들일 겁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문명사적 전환기입니다. 실사구시 학풍이 더 요구됩니다.

“우리는 기초학문을 교육·연구하는 대학,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기술을 임상에 적용하는 병원(차병원 계열), 산업화를 담당하는 기업(차바이오텍·CMG제약 등) 등 네 가지 핵심 연계 기관을 갖춘 전국 유일의 대학입니다. 이런 네트워크를 ‘산학연병(産學硏病)’이라 하는데 저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해 ‘학연병산(學硏病産)’이라고 불러요.”

차의과학대는 학연병산 네트워크를 토대로 보건·의료와의·생명 융합 전공을 특화한 ‘바이오메디컬 융·복합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줄기세포와 인간 유전체, 불임 생식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한 게 상징이다. 간호학과·건강과학대·생명과학대를 차례로 세워 학연병산 시너지를 낸 효과다.

캠퍼스를 둘러보니 행복이란 단어가 특이합니다.

“행복교육은 대학 본연의 전문교육과 더불어 우리 대학이 운영하는 교육의 양대 축입니다. 피상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지식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교육’, 삶의 근본 목적을 찾아가는 ‘전인교육’, 졸업 후에도 열어 놓은 ‘평생교육’을 통한 행복입니다. 고등교육 패러다임을 뒤집는 혁신이라고 자부합니다. 행복교육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대학은 제도적인 정비와 프로그램 개발을 동시에 추진해왔습니다. 제도적으로는 학생 행복정책을 의결하는 ‘학생행복위원회’, 그 정책을 실천하는 ‘학생행복본부’를 설치하고, 본부 산하에 ‘행복교육원’과 ‘학생행복센터’, ‘사회공헌센터’ 등을 두어 행복교육시스템을 정비하였습니다. 학생행복위원회는 총장인 저와 부총장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생대표 5명이 참여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안건을 제안하고 의사결정의 중심에 섭니다.”

이 총장이 소개한 3단계 행복교육 프로그램은 행복 배움→행복 채움→행복 나눔이다. 1단계에서는 올해 신입생부터 교양필수(2학점)로 행복 이론을 교육하고, 2단계에서는 행복의 주요 개념을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비교과 활동을 제공한다. 3단계에서는 학생 행복을 타인과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쌓은 경험을 리포트로 내면 심사를 거쳐 행복교육인증을 해주는 게 특징이다.

학생이 행복한 대학… 행복교육도 대표 브랜드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차의과학대 캠퍼스 전경. 왼쪽 10층 건물이 대학 본관이 있는 미래관이며 잔디광장 바로 뒤쪽 건물이 과학관 건물이다. 23년 간 학생 수가 약 100배 증가했다. 조그만 사진은 1997년 개교 당시 전경. / 사진:차의과학대학교
학생이 행복한 대학의 더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학생행복센터가 진로·상담은 물론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행복의 기본은 건강이죠. 차병원을 통해 전교생에게 재학 중 2회 무료 종합건강검진을 제공합니다. 동아리 활동도 적극 지원하고요. 동아리 활동을 동아리육성위원회가 평가해, 한 학기에 최고 400만~500만원까지 활동비를 지원하죠. 캠퍼스는 학생의 참여 공간, 노는 공간, 성장 공간, 행복 체험 공간이어야 합니다. 도서관 책상과 의자를 없애고 자는 공간, 떠들고 노는 공간, 영상을 만들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바꾼 이유입니다. 이름도 행복도서관입니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실내암벽등반장, 드론축구장 등을 만들었어요.”

학생 행복을 실천하려 학생 식당에서 계란후라이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잘 먹는 즐거움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식당에 아무리 메뉴를 잘 만들라고 해도 그때뿐입니다. 총장이 직접 가서 먹어보면 달라집니다. 매주 일주일 치 식단표를 미리 받아 검토합니다. 맛이 없거나 조합이 이상하면 빼라고 해요. 그래서 매주 수요일 아침 생활관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학생들에게 직접 후라이를 만들어 줍니다. 갓 부친 계란을 식판에 얹어주면서 잠은 잘 잤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메뉴로 함께 식사합니다. (웃음) 잠에서 막 깬 학생들과 얘기하는 건 즐거워요. 일종의 밥상머리 교육이랄까요? 잘 먹이고 편히 재우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이 총장이 반드시 챙겨야 할 덕목이며 학생 행복의 출발점입니다.”

차의과학대도 이번 1학기에 온라인 강의를 했다. 전공 특성상 실습이 많은데 이를 온라인과 집중대면 실습으로 분리해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여타 대학의 모델이 될 것 같았다.

이번 1학기는 코로나19 여파로 학사운영이 어려웠습니다.

“지난해부터 미래대학 환경 투자를 한 덕분에 온라인 교육이 잘 진행됐어요. 학습관리시스템(LMS)과 스마트 강의실, 이러닝(e-learning) 스튜디오를 만들고, 온라인 콘텐츠 제작 교육을 해왔던 게 효과를 봤어요. 이 기회에 교육시설과 기자재 교체 작업도 끝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비대면 교육을 통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학생들보다 오히려 교수들의 교수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시대에 적합한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교수를 전문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교수님들에게 온라인 교수법에 대한 특별연수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우리 대학은 작은 게 단점이 아니듯 코로나19도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의학·보건 계열은 실험 실습이 중요한데 대면 교육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실험·실습·실기 교과목은 철저한 방역망을 갖추고 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담당 교과 교수가 건의하면 교육과정위원회가 심의해 안전하게 실습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죠. 보건실엔 의료진도 상주해요. 신입생의 상실감을 덜어주려 희망자를 초청해 비전 세미나도 열었어요. 집중대면 교육 기간 동안 학생 전원의 안전을 위해 1인 1실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고등교육 방향을 어떻게 보나요?

“대학이 100년 이상 대면 강의만 해왔는데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전격 시행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학습 방법을 확 바꿔야 합니다. 온라인과 대면 강의의 융합이죠. 핵심 내용은 온라인으로 교육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하고 실습하며 체험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플립러닝·액티브러닝·브랜디드러닝 등 다양한 교수법으로 살아있는 교육, 행복한 교육, 산학 협동 교육 현장을 만들어야죠. 이번 학기 운영 결과를 분석해 성공·실패 사례를 공유하며 개선해 나갈 겁니다.”

1990년대 중반 시행된 대학설립준칙주의로 탄생한 차의과학대는 이처럼 정예 특성화 성공 모델이 되고 있다. 글로벌화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 이 총장은 LA 기숙사를 예로 들었다. LA의 건물을 매입해 글로벌 교류센터이자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LA 지역 헐리우드 장로병원(세칭 LA 차병원)과 인근 대학에 연수나 실습에 참여할 때 기숙사로 활용해요. 의전원생들은 3학년 때 LA 차병원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임상 실습과 학생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이 교육과정을 통해 선진 미국의 병원 시스템과 환경, 문화를 체험하며 글로벌 의료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거죠. 모두 무료로 개방합니다. 약대·간호대생도 임상실습 교육 시 무료로 활용하고요.”

자율개선대학 지정, 대학인증평가 전 부문 ‘최고’ 받아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학생들이 병원에서 MRI 촬영과정과 영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3년 전 의대로 출발한 차의과학대는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 사진:차의과학대학교
글로벌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군요. 정부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죠?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최고등급, 2019년 대학기관평가인증 전 분야 최우수 등급을 받았습니다. 앞서 3S 전략을 통해 설명했듯 모든 학과를 특성화하고 행복교육을 정착시킨 결과입니다. 교직원과 동문, 재단이 함께 이뤄낸 성과죠. 제2의 도약 발판을 마련했으니 한강 이북의 명품 대학으로 거듭날 겁니다.”

이훈규 총장은 검사 출신이다. 연세대 법학과 출신으로 1978년 제20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80년 사법연수원(10기)을 수료하고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의 첫발을 뗀 뒤 검찰 요직인 중앙수사부 제1과장, 법무부 검찰 1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1997년에는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 아들(고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을 역사상 최초로 구속한 강직한 검사였다. 그때 사회지도층 떡값을 조세포탈로 구속해 신(新) 판례를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이 판례는 유지되고 있다.

유전적으로 30대 후반부터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그는 온화한 미소를 잘 짓는다. 그러나 “검사실에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간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단호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불린다. 2008년 공직을 떠나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2012년 돌연 차의과학대 총장으로 취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검사생활을 하다가 대학 총장이 되셨습니다.

“사실 저는 검사직을 떠나 변호사를 하면서 차의과학대 학교법인 이사를 했어요. 2012년 당시 7대 박명재 총장이 물러나면서 김한중 연세대 전 총장을 모시기로 했었는데, 그분이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며 고사했죠. 김한중 전 총장이랑 저는 학교법인 이사였지요. 김한중 전 총장이 저를 총장 후보로 추천했어요. 깜짝 놀랐죠. 제가 이사직을 맡고 있었던 게 총장직 제안의 직접적인 이유였긴 했어도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김현철 구속한 검사, 백발동안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지난해 과학관 실습실에서 식품생명공학과 학생들이 식물체세포 확인 실습을 하고 있다. / 사진:차의과학대학교
그런데 어떻게 수락하셨나요? 생소한 분야인데….

“개인적으론 검사 생활에 만족했는데 변호사 대표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검사 시절 최선을 다했고 보람도 느꼈지만, 변호사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전관예우도 있던 시절이라 서민을 위해 일할 기회도 적었고요. 큰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하다 보니 돈은 벌지언정 항상 정신적으로 부담이 됐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총장직 제안이 왔을 때 1주일을 고민했어요. 로펌 직원이 100명이 넘어 끌고 뻗어 나가야 할 시기였거든요. 주위에서 반대도 했죠. ‘대학은 육영사업이고 인재 키우는 일’이라며 힘들 거라고 하더군요. 변호사보다는 제 재능을 더 발휘하고 사회에 기여할 바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웃으며) 지금도 젊지만, 그 당시는 젊을 때여서 새로운 도전에 의미를 부여했죠. 좀 더 보람 있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자고 결심한 거죠.”

이 총장은 법무법인 구성원들에게 양해를 구해고 3년 안에 컴백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총장직 2년 차까지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사무실을 열어놨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총장으로서의 그의 제2 인생은 9년째로 접어들었고, 차의과학대를 의과학 특성화 성공 모델을 키워냈다.

대학 총장으로의 변신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던 제가 2012년 진로를 바꿔 대학 총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어요. 바로 차병원의 줄기세포 연구성과 때문이었죠. 아내가 암 투병을 할 때 항암치료 과정에서 차병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차병원은 1986년 민간병원 최초의 시험관 아기 출산을 시작으로 난임 치료와 생식의학 연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 최초 미성숙 난자의 체외수정을 통한 출산, 세계 최초 난자 유리화 동결 보존법 개발 등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이루어 냈죠. 지금은 아내가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제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였습니다. 검찰에서 오랫동안 조직을 관리한 경험을 살려 대학을 효율적으로 이끌고, 줄기세포 연구 기반을 탄탄하게 지원해 준다면 인류의 고통을 덜고 건강과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긴 겁니다.”

이 총장은 교수들과의 모임에서 건배할 때 ‘차차차’를 외친다. 말 그대로 도전(challenge)해서 기회(chance)를 잡았고 학교를 변화(change)시켰다. 재임 9년 동안 학교 규정을 정비하고, 캠퍼스를 완전히 탈바꿈시켰으며, 모든 학과를 특성화시켰고, 학생 수를 늘려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이 총장은 “실패가 두려워 복지부동하면 발전이 없다. 도전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명예와 가치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두라고 강조하는 행복교육전도사다. 총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법조계로 돌아갈 생각이냐고 묻자 “제가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웃었다.


※ 이훈규 차의과학대 총장 약력

■ 1953년 충남 아산 출생
■ 1971년 동성고 졸업
■ 1975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 1990년 연세대 행정학 석사

[주요 활동]
■ 제20회 사법시험 합격(1978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원장, 중앙수사부 제3과장·제1과장, 법무부 검찰1과장, 서울남부지검 검사장, 대검찰청 형사부장, 대전지검 검사장, 인천지검 검사장
■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 차의과학대 제8대 총장(2012년 2월)
■ 차의과학대 제9대 총장(2015년)
■ 차의과학대 제10대 총장(2018년~)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 [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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