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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인터뷰] 뮤지컬 '외쳐, 조선!' 주연 맡은 루키 양희준 

“주체 못 할 끼 뜨겁고 화려한게 좋아요 ” 

서울예대 학생들 작품, 코로나19 사태에도 예상 밖 흥행
데뷔작으로 뮤지컬어워즈 신인상… “심장 때리는 연기 꿈”


▎올해 제 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양희준은 주연급 남자배우가 부족한 뮤지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수퍼 루키다.
초연 6개월만에 앙코르 무대에 오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이상한 작품이다. 스타 배우도, 유명 창작진도 없다. 첨단 장비를 동원한 세트도, 귀에 착착 감기는 아름다운 선율도 없다. 그런데 인기 절정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객석엔 마스크를 챙겨 쓴 관객들의 응원 열기로 가득하다. 서울예대 재학생들의 ‘학사 뮤지컬’로 개발되어 완성도나 예술성보다 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돋보이는 무대지만, 올해 초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남녀 신인상을 모두 수상하며 뮤지컬 시장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그뿐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우수크리에이터 발굴 지원사업’에도 선정됐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 산실-올해의 레퍼토리 뮤지컬 부문’에도 뽑혔다. 창작 산실 지원으로 프로모션 비디오까지 촬영했고, 팬들 요청으로 창작 뮤지컬로선 이례적인 뮤지컬 넘버 OST까지 발매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단 얘기다.

낯선 얼굴의 주연 배우 양희준(30)은 이 작품과 동의어다. 데뷔작이라 믿기지 않는 실력의 연기와 노래·춤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그가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에 관객도 덩달아 힘을 얻는다. 서울예대 학생들의 졸업작품에 홀딱 반해 상업 프로덕션 제작에 나선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도 “희준씨가 뿜는 에너지가 이 작품과 하나로 보였다”고 했다. “저희 회사는 배우 매니지먼트를 주로 해 왔는데, 서울예대 학생들 공연을 구경 갔다가 필이 확 꽂혔어요. 창의적인 무대를 직접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희준씨 에너지가 너무 좋았어요. 희준씨 때문에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양희준은 “나 혼자의 에너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저를 비롯해 학교 때부터 같이한 배우도 있고, 모든 배우와 스탭이 한땀한땀 만들어내는 에너지 같아요. 학생들이 각자 전공을 살려 극작과에서 대본 쓰고, 무용과에서 안무하고, 실용음악과에서 음악을 만들었죠. 하지만 처음부터 졸업작품에 그치지 않고 학교 밖으로 가져가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5000고 이상 수정과정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보완을 거듭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이게 완성이 아니라 계속 좋아져 가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인 거죠.”


▎1, 2.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서울예대 학사 뮤지컬로 개발되어 상업화에 성공, 뮤지컬 시장의 뜨거운 이슈가 됐다.
뮤지컬 데뷔작부터 운 좋게 주연을 맡았네요.

“학교에 좋은 선배들이 워낙 많아서,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연출도 가장 가까운 선배이자 형이거든요. 자취방 위아래층에 살면서 가깝게 소통하던 형이죠. 제 방에 있으면 형 방에서 나는 말소리도 들리거든요. 위에서 바닥 쿵쿵 찍으면서 ‘술 먹으러 오라’고 부르곤 했죠. 술만 먹은 건 아니고, 연기 얘기, 작품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웃음)”

코로나 사태로 배우들 공연 환경도 힘들어졌을 텐데요.

“제가 힘든 건 없어요. 더 많은 분과 놀지 못해 아쉽죠. 공연 자체가 잔치 분위기라 더 잔치답게 즐길 수 있는데, 상황이 아쉬워요. 이런 시기에도 매일같이 보러 오시는 팬들이 저를 지켜주신다 생각하거든요. 힘든 발걸음에 확실한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책임이 무거워졌죠.”

“한국인의 한과 흥에 딱 맞는 작품”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주인공 ‘단이’역을 맡은 양희준은 시조와 힙합, 봉산탈춤과 스트릿댄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 사진:PL엔터테인먼트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시조’가 국가 이념이었던 가상의 조선에서 역모 사건으로 시조 활동이 금지됐던 백성들이 15년 만에 열리는 조선 시조자랑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이야기다. 양희준은 극 전체를 이끄는 ‘단’ 역을 맡았다. 허름한 한복 의상을 걸치고 시조를 읊는 무대가 전혀 예스럽지 않다. 국악과 힙합이 뒤섞이고, 봉산탈춤과 스트릿 댄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시대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이랄까.

창작 뮤지컬에 신인이 캐릭터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본래 제 모습이 많은 역할이에요. 학교에서 처음에 다른 선배가 잠시 맡았을 때부터 많은 선후배가 ‘이 역할은 네가 해야 한다, 그냥 너다. 기회가 되면 꼭 네가 하라’고 했었죠. 그만큼 저와 닮았어요. 행동, 똘끼, 지향하는 춤선까지 비슷하죠. 사실 저는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지만, 저만의 냄새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이도 단이 만의 춤 색깔이 있어야 하죠. 안무 감독, 음악 감독이 원래 친하던 분들이라 저에게 잘 맞게 만들어주셔서 싱크로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완성도가 높은 공연은 아닌데, 눈높이가 높은 우리 관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은 건가요?

“한과 흥이라는 한국인의 정서에 너무 맞는 작품이라 공감이 쉬운 것도 있지만, 배우들이 관객과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같이 노는 기분으로 공연해서 그런 것 같아요. 관객들을 가리키며 ‘많은 백성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무대와 객석을 동화시켜서 다 같이 공연하는 느낌인 거죠. ‘싱어롱 데이’ ‘스페셜 커튼콜 데이’ 등 이벤트도 많고, 정말 같이 잔치하는 기분이에요. ‘싱어롱’ 하시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죠. 제가 부르는 어려운 랩까지 소화하시던데요. (웃음)”

양희준은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의 인기를 최근의 트롯 열풍에 비유했다. 자칫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전통을 현대적인 연출로 세련되게 재해석해냈다는 것이다. “사실 ‘트롯’하면 아버지·할아버지 세대가 좋아하는 장르로 받아들였는데 지금 가장 핫한 장르가 됐잖아요. 저희도 한국적인 요소가 옛것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재밌고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지게 연출한 것이죠. 한국 고유의 정서와 현대적인 것을 잘 융합하면 충분히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것 같아요.”


▎군대를 다녀와 배우의 길에 들어선 양희준은 “가장 뜨거운 무대”를 찾아 뮤지컬을 택했다.
객석엔 유난히 ‘덕후’들이 많다. 매일같이 ‘회전문을 도는’ 관객들이 사소한 개그에도 빵빵 터진다. 공연 전 연습실 공개 행사에 취재 온 기자들이 응원의 마음을 담아 피자 배달을 보냈을 정도다. “연출의 캐스팅 기준이 좀 달랐어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같이 했을 때 좋은 사람들과 만들고 싶다는 마인드가 가장 크다고 들었어요. 그래선지 배우와 스태프 한 명 한 명이 너무 착하고 순수한, 때 묻지 않은 시골 사람 같은 면들이 있거든요. 그런 면을 기자분들도 좋아해 주신 것 아닐까요.”

[외쳐, 조선!]으로 데뷔한 신인인지라 뮤지컬 배우들에게 일상적인 ‘퇴근길’ 팬미팅도 처음엔 당황했다고. “공연이 끝나면 가발 벗고 옷 갈아입는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정리하고 나갔더니 놀이동산 줄처럼 기다리고 있는거예요. 인지도가 있는 다른 선배를 기다리는 줄 알고 피해서 얼른 지나가려는데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예요. 매일 오시는 분도 있는데, 얼굴도 이름도 다 외우고 있어요. 사실 공연을 보는 사람도 힘들고 피곤할 텐데, 매번 와주시고 기다려주셨다가 인사하고 가시는 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고, 더 책임감이 들어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요즘 퇴근길은 단체 인사만 하고 가셔야 하니 아쉽죠. 전처럼 가까이서 한 분 한 분 사진도 찍고 싸인도 해드리지 못하니까요.”

데뷔작부터 주연을 맡아 신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본투비 배우’ 같지만,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무대에 대한 로망을 묻고 진로가 무난한 경영학과에 들어간 것이다. “한 학기를 다니고 이 길이 아닌 걸 확실히 깨달았죠. 바로 자퇴부터 한 다음, 그럼 뭘 해야 되나 고민했어요. 사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무대를 보면 뜨거워지는 게 있었거든요. 학교 축제만 해도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무대 아래 있는 사람이 있쟎아요. 저는 무대 위에 있고 싶었어요. 무작정 무대를 동경해 밴드부에 들기도 했죠. 그때 느낀 뜨거움이 자꾸 생각나더군요.”

군대에서 찾은 배우의 길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길을 찾은 건 군대에서다. “배우하려면 무조건 대학로 극단 찾아가 벽보부터 붙여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군대에서 크게 배웠어요. 제가 조교라 애들 신상을 보니 예대를 나온 애들이 있길래 앞으로 불러놓고 ‘너 뱀 해봐, 3초 준다’‘사과 해봐, 3초 준다’고 했죠. 정말 기가 막히게 하는데, ‘이건 사과다’ 싶더군요.(웃음) 그 당당함도 멋있었구요. 애들은 웃지만 저는 충격이었죠. 예대를 가야겠다는 목표를 그렇게 세웠어요.”

기왕 가장 뜨거운 무대를 찾아 뮤지컬을 택했단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에너지를 주체 못 해 온몸으로 연기하듯 대답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뮤지컬의 과장된 에너지가 딱이다 싶다. “노래만 하거나 춤만 추거나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걸 역동적으로 다 하면서 뜨겁고 화려한 걸 만들어 보고 싶은데, 그게 뮤지컬이더군요.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는 것도 멋있고요. 난데없이 몇십 명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그 에너지도 너무 좋았어요.”

신인으로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건 ‘가창력 본좌’로 통하는 홍광호 배우다. 그런데 닮고 싶은 건 가창력이 아니라 에너지와 카리스마란다. “얼마 전 형이 출연한 [스위니 토드]를 보는데, 등장하는 장면부터 벅차올라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형에겐 심장을 때리는 무언가가 있더군요. 가창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벅차게 하고, 숨도 못 쉬게 하는 그 무엇을 저도 찾고 싶습니다.”

- 글 유주현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 / 사진 전 민 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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