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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취재] 파열음 부르는 두 공공기관의 잘못된 만남 

광물자원공사-광해관리공단 통합설에 강원 지역 민심 부글부글 

정부여당 21대 국회서 ‘한국광업공단법’ 발의
통합과 동시 자본잠식 불가피… 폐광지역 주민들 “절대 안 돼”


▎한국광해관리공단 우리노조 등이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한국광물자원공사를 ‘한국광업공단’으로 통합하려는 법안에 대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한국광해관리공단 우리노조
"좀비처럼 되살아난 ‘물귀신법’은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21대 국회에서 가칭 ‘한국광업공단법’이 발의됐다는 소식에 폐광지역 주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에서는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의 통합을 추진 중이다.

국회가 본격적인 심의에 착수한 것도 아닌데 광해관리공단 노조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광산 개발에 따른 피해를 복구하고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2006년 설립된 준정부기관이다. 그래서 공단 명칭에 광해(鑛害)가 들어간다. 폐광지역이 몰려있는 강원도, 경상북도 일대의 민심이 술렁이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을 합칠 경우 두 기관의 동반 부실을 낳게 된다는 우려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또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건실한 광해관리공단이 진행해온 폐광지역 지원 사업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반대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여당의 통합 구상은 우량기관인 광해관리공단 자산을 끌어다 해외자원 개발 실패로 인한 광물자원공사의 부실을 메워보려는 꼼수로까지 격하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2015년 6906.73%. 2016년부터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부채비율 산출이 불가능한 상태다. 반면 광해관리공단은 2019년 말 기준 자산이 1조6829억원, 부채가 3884억원으로 부채비율은 30.0%에 그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공개된 2019년도 공공기관 주요 경영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340개 공공기관의 평균 부채비율(자산 대비)은 156.3%였다. 광해관리공단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기관의 통합 논의는 20대 국회부터 시작됐다. 당시 광해관리공단과 광물자원공사를 ‘한국광업공단’으로 통합하는 법안을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대 국회 회기 만료와 함께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그러나 21대 국회 들어 같은 당의 이장섭 의원이 재발의하면서 논란이 다시 촉발되고 있다.

논의 시작 120일 만에 통합 결정


정부여당은 왜 두 기관의 통합에 박차를 가하려는 걸까?

먼저 두 기관의 통합 논의가 시작된 경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금 2조원인 광물자원공사는 2016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2018년 광물자원공사가 상환해야할 금융부채가 7403억원에 달했다. 광물자원공사는 관련법에 따라 자본금의 2배인 4조원까지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2017년 당시 광물자원공사가 발행한 채권은 3조원을 훌쩍 넘긴 상태라 그해 상환해야 할 금융부채(7403억원)을 감당할 여력이 못됐다. 당시 남은 채권 발행한도는 2720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당인 송기헌 민주당(강원 원주을) 의원이 나섰다. 2017년 8월 광물자원공사 자본금을 2조원에서 4조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한국광물자원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것이다. 자본금을 키워 채권 발행한도를 높여주자는 취지다. 결국 증자해서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의미였다. 해당 법안은 심사를 통해 출자금액이 3조원으로 수정돼 상임위까지는 통과했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7년 12월 29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원내대표)이 반대토론에 나서 불가론을 폈기 때문이다. 당시 홍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광물자원공사를 다시 살리더라도 왜 이렇게 부실이 심해졌는지, 앞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고 나서 법정 자본금을 증액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 저는 공기업도 실력이 없거나 무능하거나 부패해서 잘못 경영됐다면 문을 닫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실패한 기업에 돈을 퍼줄 수 없다는 반박인 셈이다.

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같은 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반대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광물자원공사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찬성 44표, 반대 102표, 기권 51표로 부결됐다.

당시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광물자원공사의 거취 문제를 놓고 다양한 모색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1월 29일, 과거 해외자원개발의 객관적 실태를 파악하고 부실 원인 및 책임규명과 근본적 대책을 마련한다며 ‘해외자원개발 혁신 TF’를 구성한 것이다. 이듬해 3월 5일, 산업부 TF는 ‘자본잠식 확대, 채무불이행 위험이 제기됨에 따라 광물자원공사를 현 체제로 존속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유관기관과 통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유관기관’은 바로 광해관리공단이다.

당시 산업부는 광물자원공사의 통합 파트너로 광해관리공단을 지목하면서 광업 유관기관 가운데 재무적·기능 효율화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해관리공단은 자본 1조2000억원에 금융부채(3000억원)가 미미하며, 배당수익에 따른 현금흐름도 안정적이므로 통합 시중기적 유동성 위험 완화 효과가 기대되며, 광업 유관기능 통합으로 전(全) 주기 광업 프로세스 구축을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의 잇따른 발의 왜?


▎2015년 1월 당시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영민 위원장(가운데)과 여야 간사인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왼쪽),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인사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보고됐다. 이후 그해 3월에만 4차례 정책자문단 회의, 3차례 기능개선소위, 해외자원개발 토론회 등 단 8차례 회의를 거쳐 통합안을 확정했다.

같은 해인 2018년 11월 13일, 두 기관의 통합방안이 담긴 ‘한국광업공단법(가칭)’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대표발의자는 공교롭게도 홍영표 의원이었다. 광물자원공사를 청산하자는 취지로 반대토론을 하던 그가 약 1년 만에 광물자원공사를 살리는 법안을 낸 격이었다. 홍 의원은 발의 전 산업부와 이 문제를 협의했고 정부 입법 대신 국회가 법안을 발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20대 국회 산자위 소속이었던 이철규 미래통합당 의원(동해·태백·삼척·정선)은 “언어도단이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고 꼬집는다. 이 의원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상임위에서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이 의원은 “통합에 문제가 있다는 걸 공감하는 분위기라 법안소위의 여당 의원들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했다”고 돌이켰다. 결국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그런데 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올 6월, 이장섭 민주당 의원이 두 기관 통합을 담은 ‘한국광업공단법’을 발의했다. ‘홍영표 안’과 차이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홍영표 안’과 ‘이장섭 안’ 발의안의 ‘제안이유’는 거의 동일하다.

이장섭 의원은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17~19대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이 의원이 노 실장에 대해 “정치적 스승이자 동지다. 어떤 정책이나 사안이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굳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아는 관계”라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깝다.

그런가 하면 홍영표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을 만큼 친문 핵심이다. 홍 의원은 2015년 19대 국회 ‘해외자원개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야당 간사를 맡기도 했다. 당시 국조특위 위원장이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다. 정권 실세라 할 수 있는 인사들이 광물자원공사-광해관리공단 통합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산업 구조나 시대 변화에 따라 공공기관 통폐합은 이뤄질 수 있다. 관건은 통폐합을 통한 시너지효과 여부다. 국회 법안검토보고서는 두 기관의 통합은 이에 온전히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통합기관의 부실 우려다. 광물자원공사의 계획대로 해외자산 매각이 진행된다고 해도 2024년 광물자원공사의 잔존부채는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부채에 대한 이자비용 약 1000억원을 매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통합으로 증액된 자본금 1조원을 정부가 전액 출자해도 부채 청산을 위해서는 2조3000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광물자원공사의 6조4000억원 부채 규모가 줄어들 뿐 통합기관은 신설되자마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다는 의미다.

예상 잔존부채에 대해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있다. 홍기표 광해관리공단 우리노조 위원장은 “이마저도 광물자원공사가 만든 전망 자료에만 의존한 수치”라며 “자산 매각 불발 등 부정적 변수는 전망 자료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통합 이후 부채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광해관리공단 우리노조에 따르면 광물자원공사는 2019년 1조5000억원의 부채를 줄이는 쪽으로 재무 목표를 잡았으나 실제로는 부채가 약 5000억원이 증가했다. 자산 매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차입금·사채·운영비 및 이자비용 등으로 부채가 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금리 해외채권 등으로 향후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리라는 전망도 있다.

해외자산 계정 따로 둔다지만… 의구심 팽배


▎광물자원공사는 최근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생산사업 매각 자문사 선임에 나섰다. 암마토비 플랜트 전경. / 사진:광물자원공사
홍기표 노조위원장은 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산 매각 가능성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광물 자원은 분야별로 매수자가 한정돼 있다. 광물자원공사의 해외 사업장은 덩치가 워낙 큰 데다 이미 광물자원공사가 처한 상황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적정가격을 받기도 여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구리광산인 코브레파나마를 매각하는 본 입찰을 진행했으나 해외 업체들의 ‘가격 후려치기’로 유찰됐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홍 위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혁신 TF에 참여했던 경제 민주주의21 대표 김경율 회계사(전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단순히 부채 규모를 줄이기 위해 건실한 광해관리공단을 끌어들일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헐값 매각이라도 시도해야 하며, 그게 아니라면 해외자산을 그냥 버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광산을 폐쇄하고 직원을 철수시키는 등 유지 고정비용을 줄이는 자구책부터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장섭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해외자원개발에 따른 자산 및 부채 등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공단의 고유 계정과 구분되는 계정으로서 해외자산 계정을 두고 ▷다른 회계로부터 해외자산 계정으로 자금을 이체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회계로부터 자금 이체가 필요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법안검토보고서는 공단 내에 고유 계정, 해외자산 계정을 분리한다는 조항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장관의 승인을 얻으면 계정 간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해외자산 계정의 부채상환을 위한 정부의 책임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고유 계정의 재원이 해외자산 계정의 부채관리에 이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기관이 합칠 경우 광해관리공단의 자산건전성을 보다 확고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부는 통합의 근거로 두 기관 업무의 유사성을 들고 있지만 이 또한 논란을 양산한다. 정부는 광물자원공사의 광업 탐사·개발 기능과 광해관리공단의 폐광지역 지원 기능을 합쳐 ‘전 주기 광업 프로세스’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광해관리공단 우리노조 측은 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광해관리공단은 광해방지사업 및 폐광지역 개발지원 등 국내 광해문제 해결을 전담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광물자원공사는 주로 해외 자원개발 투자와 민간기업 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설립취지와 사업목적이 다른 기관을 기능조정 없이 단순히 합치고 이름을 바꾸는데 그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철규 의원 역시 “두 기관명에 ‘광’ 자만 들어간다는 것 빼고는 접점이 없다”며 “업무의 유사성만 따지면 광물자원공사와 대한석탄공사가 통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기표 위원장은 조직 통합 과정에서도 파열음을 야기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업 특성상 광물자원공사는 국내외 자원 개발이 주 업무다. 국내, 특히 폐광지역의 광해방지와 개발지원을 하는 광해관리공단은 광물자원공사보다 사업영역이 좁고 사후관리 측면이 강하다. 법안에는 통합 주체가 광해관리공단으로 나와 있지만 결국 합치면 조직의 규모가 큰 광물자원공사의 색채가 더욱 짙어지지 않겠나. 직원 수도 광물자원공사가 200명 넘게 많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광물자원공사의 직원 수는 539명, 광해관리공단은 312명이다. 홍 위원장은 “결국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통합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사례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2009년 통합 당시 주공과 토공의 부채는 각각 52조원, 34조원, 직원 수는 주공이 4385명, 토공 2982명이었다. 부채는 물론 인원도 주공이 많아 토공 내부에서 불만이 쌓였고, 합병 이후에는 출신별로 따로 노조를 결성하며 한동안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화학적인 결합이 쉽지 않았던 셈이다.

“3년 동안 반대했는데 또? 지역민 무시 말라”


▎광해관리공단은 강원랜드(사진)의 대주주로 매년 700억원 안팎의 배당금을 폐광지역 경제활성화에 쓰고 있다.
노조는 통합공단 자산에 손실이 발생해 폐광지역 진흥사업 투입예산이 부채 상환에 전용되는 경우를 가장 우려한다. 국회 법안검토보고서에도 “문언 해석상 해외자산 계정의 부채 관리 목적이 아닌 운용 등의 목적으로 폐광지역 지원 재원의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현재 광해관리공단은 강원랜드의 최대주주(36%)로 매년 700억원 안팎의 배당금을 받는다. 이 배당금은 폐광지역 경제활성화에 쓰이고 있다. 산업부 TF의 통합 결정 근거에는 “배당수익에 따른 현금흐름도 안정적이므로 통합 시 중기적 유동성 위험 완화 효과가 기대된다”는 문구가 있다. 이 배당금이 광물자원공사 운용비로 소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원학 강원연구원 탄광지역발전지원센터장은 “폐광지역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지원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 상황에서 통합이 되면 폐광지역에 쓸 재원이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한다.

광해관리공단은 현재 강원랜드 이외에 ㈜문경레저타운·㈜블랙밸리C.C.·㈜동강시스타 등 6개의 출자회사를 설립, 폐광지역의 대체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차라리 광해관리공단에 있던 폐광지역개발 업무를 떼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나 새만금개발청처럼 국가 단위의 독립 조직을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면서 “통합법안에는 이러한 고민은 담겨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통합법안이 재발의되면서 지역사회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당장 전국 7개 지자체 시장·군수로 구성된 폐광지역 시장·군수행정협의회는 기관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 8월, 시장·군수협의회는 “두 기관의 통합은 또 하나의 부실기업을 만드는 것”이라며 “운영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광해관리공단의 역할이 축소될 경우 폐광지역 주민을 위한 사업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김태호 강원 정선군 고한·사북·남면·신동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홍영표 의원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을 발의했을 당시 폐광지역 주민 1000여 명이 청와대와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앞에서 집회하며 지역의 반대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3년 동안 반대 의견을 지속해서 표명해왔는데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토씨 하나 달라진 것 없이 같은 법안을 내는 것은 폐광지역이나 강원도를 무시하는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회에서 통합 논의가 진행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폐광지역이 위치한 강원도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강원도 의회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나일주 강원도의원(민주당)은 “근거가 타당하고 진정성이 있다면 폐광지역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이 통합안을 발의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며 “하지만 20대, 21대 국회 모두 타 지역에 계신 분들이 발의했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오는 9월 도의회가 개원하면 특위 구성을 포함해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전직 여당 국회의원 사장 내정설도


▎지난 2월 강원도의회는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통합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 사진:강원도의회
지역사회에는 근거없는 소문마저 나온다. 예컨대 정부가 2025년 시효가 만료되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 을 연장하는 조건과 ‘한국광업공단법’을 연계하려 든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폐특법은 침체된 강원지역과 전남 화순, 충남 보령 등 광산도시 지원을 위해 1995년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은 내국인 전용 카지노와 레저시설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강원랜드 설립 근거이자 지역경제 활성화에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이 법은 2025년 12월 31일 시효가 만료된다. 폐광지 자치단체들과 주민은 폐특법의 시효 연장을 기대하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의원과 이철규(동해·태백·삼척·정선)·유상범(홍천·횡성·영월·평창) 통합당 의원은 연장을 골자로 한 폐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관계자는 “산업부에서 폐특법을 항구화 내지 10년 연장하는 조건으로 두 기관 통합을 내걸 경우 지역사회의 의견이 엇갈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며 “폐특법 연장과 두 기관 통합 문제는 별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분위기로는 주무부처인 산업부도 광물자원공사 회생에 상당한 의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김경율 회계사는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으면 (광물자원공사를) 파산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당시 산업부는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의 통합안만 밀어붙이려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산업부는 2018년 4월 만기가 도래한 53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지급 보증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광물자원공사가 통합될 경우 법률·재정·제도적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정부지원공문(레터)을 보내기도 했다. 홍영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 7개월 전에 이미 통합 의지를 해외 시장에 밝힌 셈이다.

최근에는 광물자원공사가 사장 공모에 나서면서 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민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2018년 5월 면직됐고, 공사는 이후 사장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해왔다. 광물자원공사는 지난 8월 3일, 사장 공모를 마쳤다. 광물자원공사 임원추천위원회가 서류 및 면접 심사를 통해 사장 후보를 추천하면 주무부처인 산업부 장관이 최종 임명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20대 국회의원 출신 여권 인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에서 활동한 바 있는 박정수 이화여대(행정학) 교수는 “기관의 통합과 기능 조정은 기관의 지속가능성, 정관에 명시적으로 나타난 기관의 설립목적에 충실한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채감축이라는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사유에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광해관리공단은 광물자원공사보다는 오히려 석탄공사와 통폐합이 고려돼야 한다”며 “향후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청사진이 같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9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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