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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터뷰] 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기본주택은 ‘부동산 유통 혁명’이다” 

거품 빼고 서비스 높여 저소득층부터 중산층까지 실거주 수요 겨냥
3기 신도시 핵심 요지에 시세의 반값 장기 임대 아파트 공급 정부에 제안


▎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경기도 기본주택 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기본주택 정책이 관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정책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자 그 대안으로 기본주택이 주목을 받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가격 인상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기본주택은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권의 반응도 좋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 지사의 제안에 “대찬성”이라며 “이 지사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에 박수를 보내며, 문 정부도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8월 10일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 대책’을 부동산 종합대책의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기본주택은 아직 개념조차 낯선 게 사실이다. 관련 법규를 정비해야 하는 등 가야 할 길도 멀다. 경기도 기본주택은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맡고 있다. 경기도시공사의 주택 정책 기능을 강화해 최근 사명을 바꿨다. 8월 5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GH 본사에서 만난 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은 기본주택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다.

기본주택의 개념이 다소 낯설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생각했나?

“제가 사장이 되고서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무조건 많이 지어 분양하면 해결될까. 아니다. 공사 입장에선 비싸게 팔면 주변 시세를 끌어올린다고 욕을 먹는다. 지금까지 공공임대주택은 사회적 수용성이 떨어졌다. 총론은 찬성하면서도 내 집 앞은 싫다고 한다. 그 자체가 기피 시설화하니 변두리에 짓고, 게토(ghetto, 빈민가)처럼 가난한 사람을 모아놓는 방식으로 공급됐다. 그래서 사회적 수용성이 높은 공공임대주택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특정 계층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거다. 빚내서 집 사는 정책이 아니라 빚을 안 지고도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지를 만들어주는 게 공공의 역할이자 분양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봤다.”

임대료 부담을 낮추고, 장기적인 주거 안정을 보장한다?

“그렇다. 지속가능한 임대주택 모델을 새로 만든 거다. 무주택자가 빚내서 집을 사거나 전세살이 하는 것보다 이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들도록 하는 거다. 시세의 50% 수준의 임대료만 내고 평생 살 수 있다면 매력적이지 않나? 게다가 소형부터 중형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변두리가 아닌 신도시 요지에 말이다. 지속 가능성과 부담 가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이 바로 경기도 기본주택이다.”

취향과 소득 수준 따라 선택지 다양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까?

“기존 공공임대주택처럼 저소득층을 모아놓는 모델로는 편견을 극복하기가 불가능하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섞여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핵심 요지에 제공하고, 서비스 질도 높아야 한다. 또 취향과 소득 수준에 맞게 선택지를 다양화해야 한다.”

시중 금리에 비하면 기본주택 임대료가 그리 싼 편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기존 공공임대주택만큼 저렴하진 않다. 최소한의 원가는 보전해야 하니까. 집을 계속 유지하려면 수선유지비가 증가한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 원가를 보전하는 수준에 맞춘 것이니 현재 금리와 비교하면 비싸다고 느낄 수는 있다. 다만, 우린 기본주택으로 수익을 내지 않고 남으면 임차인에게 다 돌려준다. 부담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저렴하다.”

전 국민이 월세살이 하라는 말이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 대출받아 집을 사면 월세를 은행에 내는 것 아닌가? 전세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은행에 내는 이자를 월세로 내고 30년간 집 걱정 없이 사는 게 부당한가? 더구나 보증금도 저렴해서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의 부담도 없다.”

예상 월 임대료는 주변에 비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

“주변 시세의 60% 정도로 산출했다. 최대 43%까지 낮아지더라. 같은 지역에서 20~30년 된 아파트도 이보다 두 배다. 신축 아파트의 반값도 안 되는 수준이면, 충분히 매력이 있지 않나?”

관리는 GH가 맡나?

“우선은 그렇다. 장기적으로는 관리를 전담할 회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관리 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공공분양 아파트는 지어서 분양하면 그 수익으로 다른 아파트를 또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주택은 현금화할 수 없으니 자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맞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서 민간에 팔아버리면 기본주택을 하려는 의미가 없다. 이걸 민간에 팔면 로또 아파트가 된다. 우리는 엄청난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비축리츠에 넘기려 한다. 비축리츠란 중앙정부, 지방정부,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출자하는 공공리츠를 말한다. 공사가 지게 될 자산 보유 부담과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서 비축리츠에 저렴하게 매각하면 공공성도 유지되고 자금 유동성도 확보된다. 이 방식으로 임대료 부담이 어느 정도 떨어지는지 분석해봤더니 기존 분양 방식보다 56% 수준까지 떨어진다. 주거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비책 아닌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공성을 앞세워 장기전세(시프트)를 공급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 사례도 참고했다. 시프트는 전세다 보니 운영하면서 적자가 계속 누적된다. 우리가 기본주택을 월세로 만든 건 원가를 보전해 적자가 누적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전세로는 원가를 보전하는 모델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지난해 수원 광교신도시에 중산층 임대주택을 선보였다. 기본주택과 어떻게 다른가?

“중산층 임대주택은 임대지만 분양한 것만큼 수익이 나는 모델이었다. GH 사장으로 와서 보니 지금까지는 분양해야 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신화가 있더라. 그래서 임대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분양만큼 수익성 나는 모델을 만든 게 중산층 임대주택이었다. 기본주택은 거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거품을 쫙 뺀 거다.”

기본주택이 성공하려면 약속한 대로 30년간 주거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바뀌거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염려는 안 한다. 계약할 때 30년 거주를 보장하니까 계약상 권리는 다 보장된다. 아파트의 내구연한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30년 단위로 갱신하고, 계속 거주할 기회를 드릴 거다.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다는 게 기본주택의 철학이다.”

“분양해야 돈 번다는 신화 깨야”


▎오는 2023년 분양 전환하는 수원 광교신도시 공공임대아파트에 LH의 분양 이익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행 규정상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으면 그게 공사의 채무로 잡힌다. 채무가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지 않나.

“그건 맞다. 보증금이 채무로 잡히면 부채비율이 누적돼 사업 지속성에 문제가 생긴다. 공기업의 회계기준을 바꿔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또 주택을 지은 뒤 비축리츠가 바로 넘겨받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칭 ‘장기임대비축공사’와 같은 전문 공기업을 설립해 공사가 기본주택을 계속 매입하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본주택은 법적으로 인정받는 개념이 아니다. 정책을 시행하려면 바꿀 게 한둘이 아니다.

“비축리츠는 현재 제도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기본주택의 첫 단추는 임대주택의 유형을 만드는 일이다. 공공주택법 시행령만 고치면 일단 시작은 할 수 있다. 또 핵심 요지에 지으려면 땅값이 비싸니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 정부에선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 하자는 입장이다. 지금 분위기가 잘 조성되고 있으니 조만간 진행될 거로 기대한다.”

기본주택의 밑바탕에 부동산은 더는 투자나 투기와 같은 수익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재라는 인식이 깔린 것 같다. 이런 개념 변화를 우리 사회가 저항 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모든 토지에서 그렇게 하자는 게 아니라, 공공택지에서 하자는 거다. 공공택지는 주거 안정을 위해 수용 개발하지 않나. 적어도 공공택지만큼은 사적 이익을 위한 투기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그게 공공택지개발의 정신과도 맞다. 민간이 보유한 것까지 사고팔지 말고 이익 얻지 말라는 게 아니다. 기본주택은 공공택지의 이용 방법에 관한 얘기다.”

공급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나?

“기본주택은 무주택자에게 보편적인 주거 안정을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무주택자의 불안이 수그러들면 무리해서 빚을 내 집 사는 수요도 줄지 않을까? 그래도 굳이 빚내서 집 사겠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 주거 안정을 보장하긴 어렵다고 본다. 거꾸로 주거 안정을 보편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분양 정책으로 과연 주거 안정을 보장할 수 있을까? 수십 년간 분양 주택을 쏟아냈는데 주거 안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해봐야 한다. 분양하면 자꾸 시세차익을 바라고 팔아버리니 다주택자에게 다 가버린다. 공공에서 조성한 택지에서 아파트를 지으면, 그건 무주택자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임대주택인데도 서비스와 품질이 좋다면 많은 국민이 선택할 거라 믿는다.”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을 텐데, 외국의 경우 어떤가?

“싱가포르의 경우 토지임대부 분양 모델을 참고했다. 싱가포르의 HDB하우스(우리의 LH 임대주택)는 99년이 지나면 집을 반환하게 돼 있다. 그리고 무주택자로 등록해야만 그 집을 살 수 있다. 투기할 수 없게끔 한 거다. 실질적으로는 분양하지만, 우리가 설계한 기본주택과 별 차이가 없다. 유럽의 오스트리아 빈은 장기공공임대 정책이 100년이나 됐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부터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분양 모델은 문제가 계속 누적된다. 수십 년간 천만 채는 넘게 공급했을 거다. 분양 모델이 주거 안정을 해결하는 모델이라면 벌써 해결됐어야지, 왜 반복해서 난리가 나나? 이제 분양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제 주택은 소유에서 거주로 가야 하고, 대신 거품을 뺀 좋은 임대주택을 수돗물처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분양에 목매겠나? 주거 안정을 본격적으로 보장해야 부동산 투기하는 분들 조심하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민간 분양은 어쩔 수 없더라도 공공택지 분양은 3기 신도시부터 그만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가 나설 테니 LH와 정부도 동참해주길 바란다.”

3기 신도시 85% 공공임대로 공급해야

3기 신도시에 공급할 예상 물량은 어느 정도나 되나?

“정부와 더 협의해봐야 알지만, 우리가 제안한 건 3기 신도시 전체 물량의 50%는 기본주택으로 공급하는 방법이다. 반드시 해야 하는 기존 공공임대주택 35%에 기본주택 50%를 더하면 전체 공급 물량의 85%가 공공임대로 공급된다. 기본주택은 신도시 핵심 요지에 중산층까지 들어올 수 있게 다양한 면적으로 지을 생각이다. GH 입장에선 그냥 분양하는 것보다 훨씬 손해지만 국민경제, 주거 안정을 위해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는 택지개발 해서 돈 벌지 말자는 결단이다. 이런 결단을 정부와 LH도 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공기업이 영속하려면 일정한 수익이 지속해서 발생해야 할 것 아닌가. 혹여 경영환경이 악화하면 어떻게 하나.

“공기업은 사회적·공익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 물론 적자를 보면 안 된다. 최소한 원가는 보전하고 약간의 적정 수익을 가져가는 정도여야지, 땅 장사나 집 장사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토지는 국민의 삶의 터전이다. 모두의 삶을 보전하기 위해 공정하게 사용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특정 소수가 떼돈 버는 걸 막아야 할 책임이 공기업에 있다.”

기본주택의 부동산 안정 효과가 나타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사실 이건 우리 후손을 위해서 하자는 거다. 집값이 아무리 비싸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 하면 살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에게 너무 큰 고통을 떠넘기는 것 아닌가? 보편적 주거 인프라를 깔아놓으면 우리 아들, 손자, 증손자 대에는 주거비용이 아무것도 아닐 거다. 미래도시가 유토피아가 될 건지, 디스토피아가 될 건지는 시스템을 어떻게 짜느냐에 달려 있다. 열 평도 안 되는 방에 자기 소득의 절반을 갖다 바치는 사회를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잖은가. 소득의 10% 안에서 집값으로 내면 되는 사회,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중산층 중에는 집을 소유할 생각은 없어도 여유롭게 살고 싶은 이들이 있을 거다. 그들을 끌어들일 매력 요인은 뭐가 있을까?

“우선 백 년 가는 주택으로 좀 더 튼튼하게 짓고, 층간소음 없는 집을 지을 거다. 오래 살다 보면 유행이나 생활 방식이 바뀔 테니 구조도 쉽게 바꿀 수 있게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식 구조로 만들려 한다. 또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호텔식 서비스도 도입하려 한다. 식당도 운영하고, 돌봄 서비스나 청소, 세탁, 가사 도우미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발굴할 수 있다. 단지 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쾌적한 서비스 공간, 이웃끼리 문화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키울 생각이다.”

2012년에 제윤경 전 의원과 [약탈적 금융사회]라는 책을 썼다.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사람들이 빚의 늪에 빠지는 원인으로 지목한 게 인상적이었다. 기본주택 아이디어도 과거의 고민을 기초로 했나?

“그렇다. 사실 주택 문제를 지나치게 민간에 맡겨둔 면이 있다. 현재 분양 시스템은 최초 분양 시 분양이익에다 거래가 이뤄질수록 시세차익이 얹히면서 최종 수요자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다. 결국 실수요자는 은행에 빚을 잔뜩 지고 이자 갚느라 인생을 다 바치게 되고, 이익은 건설시행사와 임대 이익을 얻는 다주택자,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만 가져간다. 기본주택은 그런 거품이 다 빠진다. 국민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거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인가? 이건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동산 유통 혁명’이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202009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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