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집중분석] 진통 속 출범 앞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향방 

1호 수사 대상 누가 되나? 윤석열 아닌 사법부 가능성 

김진욱 후보자 자질 의견 분분… 與 “제2의 尹 될라” 불안감도
정치적 중립성·공정성 담보 못하면 ‘정권의 시녀’ 전락할 수도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에 지명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 사진:연합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한 일도 그렇다.” (문재인 자서전 [운명])

검찰개혁을 그토록 바랐던 두 사람에게 진한 회한을 남겼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0일,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55·사법연수원 21기)을 지명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다 끝내 무산됐던 공수처 출범이 17년 만에 코앞으로 다가오게 됐다.

‘공수처장’이라는 큰 산을 넘어 공수처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수사 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 공수처장이 고위공직자 비리를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냐는 우려를 시작으로 공수처 검사 인선 과정에서 야당과 또 한 번의 힘겨루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통해 야당을 탄압할 것이라는 깊은 불신도 깔려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순한 사람이 공수처장에? 상상도 못해”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6차 회의가 열렸다.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이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지명되자 법조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판사와 변호사, 특검 파견 수사관,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등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갖고 있지만, 공수처의 초대 수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터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후보자에 대해 거의 들어본 적 없다. 법조계에서 잘 안 알려진 분”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대형로펌의 변호사 A의 얘기다. “굉장히 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사람이 공수처장과 같은 부담되는 자리에 가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김 후보자의 자질을 놓고도 여러 얘기가 나온다. 김 후보자는 서울지법 북부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1995년 3월~1998년 2월 서울지법에서 근무했다. 이후 1998년 3월부터 2010년 1월까지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2010년부터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일했으며, 헌법재판소장 비서실장, 헌재 선임헌법연구관, 국제 심의관 등을 지냈다. 김 후보자의 수사 경험은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했던 2개월이 전부다. 법조계에서 그의 수사능력에 의문부호를 제기하는 이유다. 지난달 17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야당 측 위원직을 내려놓은 임정혁 변호사(전 대검 차장검사)는 사퇴 당시 “축구 감독을 뽑는데 야구 선수 출신을 뽑으면 어떻게 하느냐. 저는 조사와 수사 업무 경험이 있는 능력 있는 후보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개진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공수처장은 수사를 컨트롤하는 사람이지 직접 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형사사법 시스템 개혁이 개악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김 후보자는 헌법재판연구관이던 2017년 8월 학술지인 [저스티스]에 ‘탄핵요건으로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의 중대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은 바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 “탄핵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봤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에 대해서는 “법적인 판단보다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 영역으로 볼 수 있다”라고도 썼다. 2019년 ‘대통령 탄핵 사유에 대한 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의 탄핵사유를 중심으로 한 판례 평석’이라는 글에서는 “헌재가 박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점에서 대의민주제 위반이고 법치주의 정신 훼손이라는 것인지 아무런 논증이나 설명을 제공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2017년 논문을 공개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사유였는지와, 논문에서 주장한 반대 세력 탄압 등이 탄핵 사유인지 따져 물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 사안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반응이 미묘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검찰개혁을 잘 수행할 것이라 믿고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악몽이 재현되리라는 우려가 일부 있다”면서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되레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걱정하는 기류가 읽히는 대목이다.

공수처 검사 인선 과정서 野와 충돌 불가피


▎지난해 12월 9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손피켓을 들고 공수처법 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당장 야당에서는 김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보다는 공수처가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후 새로운 방패막이, 꼭두각시를 세우려는 것(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 “야당의 추천권을 원천 박탈하며 지명한 공수처장 후보자가 국민의 우려대로 ‘친문 청와대 사수처장’이 될 것인지 철저히 검증하고 따져 물을 것(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라며 김 후보자 지명 직후 나온 반응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야권에서는 사실상 정권을 향하는 수사를 뭉개는 역할을 공수처가 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당장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월성 원자력발전소 폐쇄 과정에 대한 수사와 울산시장 선거개입 관련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야당의 날 선 반응은 당연하다는 의견이다. 최 교수는 “검찰의 민주적 통제라는 공수처의 취지와 방향은 옳지만, 그렇다면 공수처의 민주적 통제는 누가 하나”라면서 “공수처가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는데 이를 통제할 제도적 보완이 안 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무소불위라고 불리는 검찰 권력의 근원은 기소와 수사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두 가지를 모두 쥐게 한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가 얘기하는 검찰 개혁과 모순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우려와 관련해 “공수처가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기대가 있고, 반대로 그 정반대로 운영될 거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출범하면 서서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겠냐는 지적엔 “우려를 관심으로 받아들이겠다. 지켜봐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1월 중으로 초대 공수처장에 임명될 전망이다.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전례가 26번이나 있기 때문이다. 처장이 임명되더라도 공수처가 바로 가동되기는 힘들다. 공수처 서열 2위인 차장을 포함한, 수사를 담당할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등 공수처 구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수사 실무를 책임질 공수처 차장에 누가 낙점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차장은 공수처장의 제청을 거쳐 문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김 후보자가 수사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경험이 풍부한 실무형 차장이 지명되는 것이 관건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김 후보자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를 차장으로 제청할 것”이라며 “부장검사급 이상 출신 인사를 차장으로 앉히지 않으면 처장이 공수처 검사들에게 휘둘릴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김 전 회장의 지적은 김 후보자가 조직관리 경험이 없다는 점과도 맞닿아 있다. 처장은 검사·수사관 60여 명을 관리하면서 단기간에 수사역량을 조직화하고 주요 사건을 지휘·감독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공수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수사 능력과 함께 리더십이 있는 유능한 차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후보자는 실질적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지휘하게 될 차장과 관련해서는 “염두에 둔 사람은 있다”고 했다. ‘친(親) 정부 인사가 차장으로 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런 우려도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선을 그었다.

차장이 정해지면 수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검사 인선이 남아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수처 출범의 마지막 난관으로 보고 있다. 야당이 반대하면 공수처 검사를 추천하는 인사위원회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수처법에는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8조)는 규정 뒤에 ‘인사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처장이 된다’(9조)는 말이 이어진다. 인사위원 7명 중 2명은 야당 몫이다.

처장 임명돼도 ‘나 홀로 공수처’ 가능성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야당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라면 피할 생각이 없지만,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처럼 형식적으로 들러리만 세우고 자신들끼리 담합하는 경우라면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인사위 구성이 난항을 겪을 경우 30명 이상 50명 이하 규모인 공수처 검사 인선 자체가 미뤄지기 때문에 ‘앙꼬 없는 찐빵’처럼 당분간 ‘검사 없는 공수처’ 신세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인사위는 7명이라는 게 규정이지만 재적 의원 과반 찬성으로 (검사 추천이) 의결된다”며 “앞으로 만들 공수처 운영 규칙을 통해 원활하게 공수처가 출범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말했다. 인사위 결원 발생을 대비한 보완적 규정을 운영규칙에 두면 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차후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5인 인사위’를 통해 추천된 검사에 의해 기소당한 피고인이 검사 자격 문제를 걸고넘어질 경우 절차상 하자 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오는 2월에 공수처 인사위원회와 관련해 공수처법을 재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여당 내에서 나온다”면서 “처장 후보 추천 시 야당 비토권 삭제에만 집중하느라 디테일을 놓쳤다는 비판이 있다”고 전했다.

인사위가 구성돼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기존 공수처 검사는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에, 재판·수사 실무 경험 5년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통과된 개정안은 변호사 자격을 7년 이상으로 낮추고 수사 경력 요건은 아예 삭제했다. 수사 경력은 없지만, 정권과 코드가 맞는 법조인들이 공수처 검사에 임명되리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인사 추천 과정에서 야당 추천 인사위원이 공수처 검사 후보 자격을 놓고 시비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이 없는 변호사들도 공수처 검사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을 공포함으로써 헌법 정신을 유린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모두의 관심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의 주인공이다. 공수처는 공수처법 2조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광역단체장, 판·검사 등 전반적인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다. 전·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 역시 해당한다.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염두에 둔 공수처 1호 사건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염두에 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처음 대두됐던 1호 수사 대상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출범하는 공수처인 만큼, 수개월 전부터 윤 총장 가족 및 측근 비리를 수사해야 한다는 얘기가 제기돼왔다. 법무부가 수사 의뢰한 윤 총장의 직권남용 혐의(‘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작성 지시) 사건도 현재 서울고검에 배당된 상황이다. 여권에서는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수사를 해온 데다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윤 총장의 존재를 못마땅해왔다.

김진욱의 첫 번째 칼날은 누구에게?


▎대전지검에서 담당하고 있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월성 1호기 전경.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현재 분위기에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이 공수처 수사대상이 될지는) 공수처가 출범해서 결정할 일”이라며 “어떻게 미리 얘기할 수 있겠냐”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윤 총장을 1호로 수사했다간 출범하자마자 중립성 논란을 자초할 수 있고, 거론되는 사안으로 기소 자체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때릴수록 덩치가 커지는 윤 총장이 관심받지 않는 것이 여권엔 낫다”고 말한다.

대전지검이 맡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를 공수처가 이어받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현재 관련 자료를 직접 삭제·지시한 혐의를 받는 산업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한 상태다.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수사 중이다.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수사에 여권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문재인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인데, 정부가 공약을 지키는 당연한 민주주의 원리를 감사원과 수사기관이 위협한다”고 반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며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

월성 원전 수사의 시작은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비롯됐다. 조기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조작 등 부당성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월성 1호기 경제성 감사를 진두지휘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윤 총장과 함께 여권의 눈엣가시 중 하나다. 이런 가운데 최 원장이 또 여권을 들쑤시는 행보를 예고했다. 감사원이 탈원전 정책 수립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기로 한 것. 이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지금 최 원장은 명백히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월성 원전 수사와 탈원전 정책 감사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역린을 건드리는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공수처에서 월성 원전 수사를 진행해 진상을 명명백백히 따져보자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반대 예상도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월성 원전의 경우 경제성 평가가 적정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청와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고, 윗선이 개입했다고 발표하면 정권의 목을 치는 꼴”이라면서 “어떤 식으로든 중립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손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수처장이 1월 중에 임명되더라도 공수처 차장을 비롯해 공수처 인사위원회 구성에 시일이 걸릴 것이고, 빨라야 2월 말이나 3월 초가 되어야 수사 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다. 그런 상황에서 윤 총장 관련 혹은 원전 수사는 공수처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의견이다. 오는 4월 재보궐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엄 소장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을 초기에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엄 소장이 말하는 고위공직자는 판사로 대변되는 사법부다. 법원을 향한 수사는 공수처 입장에서는 고위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명분에 들어맞고, 이를 토대로 청와대와 여당은 사법개혁의 추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오해 피하려 법원 타깃 삼을 것”


실제로 최근 여당 내에서는 법원에 대한 감정이 곱지 않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윤 총장이 낸 징계 집행정지 신청까지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원의 결정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SNS에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린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은 “특권 집단의 동맹으로서 형사·사법 권력을 고수하려는 법조 카르텔의 강고한 저항”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런 가운데 1월 10일 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여론조사의 내용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을 잘 추진해 왔다고 생각하나’였다. 조사 결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55.1%, ‘그렇다’는 14.7%에 그쳤다. ‘모름·기타’는 30.2%였다. 조사 의뢰자는 ‘사법 농단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민주당 의원으로, 리서치뷰가 지난해 12월 4~6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1996년 공수처의 시초인 부패방지법 입법청원 운동을 벌인 참여연대는 해당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책임이 있는 국회는 더는 법원에 미루고 맡기지 말고 결단하여 사법 농단 관여 법관 탄핵과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 의원은 새해를 전후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1월 6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그는 김 대법원장을 겨냥해 “한 일이 없다”며 “문제가 드러났으면 이런 일 다시는 안 벌어질 것이라 확신을 줘야 하는데 문제만 드러내놓고 해결을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엄 소장은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임명된 이후 문 대통령이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라며 “이와 연동해 공수처도 공수처법에 규정하고 있는 원칙적인 수사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오해의 소지를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만일 공수처의 검찰 권한 분산과 견제, 감시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공수처는 단지 하나의 사정 기관으로 추가되어 국가 권력, 구체적으로 검찰 권력의 힘을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국가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그만큼 후퇴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검찰개혁의 큰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권력기관의 권한 총량이 줄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기관 내부의 권한 배분은 권력기관 권한의 총량 감소와 함께하지 않으면 국민적 개혁 과제가 되기 어렵다.”

문 대통령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8대 대선을 한 해 앞둔 2011년 출간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숙원이었던 ‘공수처 설치’라는 과업을 이뤘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게 된 공수처가 또 하나의 사정 기관으로 변질한다면 문 대통령이 생각한 ‘검찰개혁의 큰 방향’에서 벗어나게 되는 꼴이다. “국민 앞에 공수처가 진실된 국가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김진욱 후보자의 말이 현실화될지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102호 (2021.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