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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27)] 한국 테니스 전설 이형택 

“즐기면서 운동? 힘든 훈련 견뎌야 이기는 기쁨 누려” 

남자 테니스 최초 메이저 대회 16강, ATP 투어 우승
축구·농구 예능서 재능 발휘, 유튜브로 테니스 알려


▎서울 강남구 선릉 인근에 있는 중앙UCN 강남스튜디오 테라스에서 이형택이 포즈를 취했다. 모처럼 하늘이 맑고 파랬다.
이형택(45)은 대한민국 남자 테니스에서 ‘최초’ 기록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레전드다. 오른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이형택은 2000년 US오픈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 당대 최강 피트 샘프라스(미국)와 멋진 승부를 펼쳤지만 아쉽게 패했다.

2003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디다스 인터내셔널에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를 꺾고 대한민국 남자 테니스 사상 첫 ATP 투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벨라루스의 블라디미르 볼치코프와 조를 이뤄 ATP 투어 복식 우승도 기록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세계랭킹 36위까지 올랐다.

은퇴 후 이형택은 강원도 춘천에서 테니스아카데미를 운영하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던 이형택을 다시 불러낸 것은 JT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였다. 2002 한일 월드컵 스타 안정환이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각 종목 레전드가 모인 축구팀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다. 이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이형택은 매주 미국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정성을 쏟았다. 뛰어난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주장으로서 듬직한 리더십을 보여줘 돋보인 이형택은 ‘뭉쳐야 찬다’ 종방 후 이어진 농구 예능 ‘뭉쳐야 쏜다’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형택은 테니스 라켓과 공으로 갖가지 묘기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기부 프로그램 ‘슛포러브’에서 태권도 스타 이대훈과 함께 홈플러스 매장에서 펼친 묘기 대결은 흥미진진했다. 또 자신의 별명을 딴 ‘머드리TV’ 유튜브방송을 진행하면서 ‘대학 테니스팀 도장깨기’ ‘여자 실업 선수와 대결’ 등 다양한 활동으로 테니스를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이형택 가족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에서 돌아와 지금은 경기도 시흥시에 산다. 이형택을 중앙일보S와 (주)월드유니코어가 합작해 만든 유튜브 방송사 중앙UCN의 강남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형택은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 약속장소에 왔고, 테니스 라켓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즘 하시는 일이 정말 많죠?

“시흥에 살다 보니 시흥시 정책기획단과 홍보대사를 맡겨 주시더라고요. 경기도 교육청 홍보대사도 맡고 있고요.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에 ATP(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 투어 유치위원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3~4년 뒤에 국내에서 ATP 투어 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대한항공이 후원하는 KAL컵 대회가 있었는데 관중 부족으로 ATP로부터 개최권을 박탈당했어요. 지금은 국내 팬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왔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은 욕구도 있으니 충분히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테니스 묘기 촬영하다 손바닥 물집 잡혀


▎2003년 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우승 트로피를 안은 이형택.
‘뭉쳐야 찬다’ 녹화를 위해 매주 태평양을 왕복하셨다면서요?

“은퇴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 가던 중이었는데 ‘뭉찬’이 저를 다시 소환해줬잖아요. 각 종목의 내로라하는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운동하는 것도 좋았고요. 주 1회 녹화에 맞춰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타고 다니는 건 워낙 습관이 돼서 편했어요. 충분히 자고 일어나면 도착할 때가 됐고, 옛날 선수 때 느낌이 나서 마음도 새로웠죠. 짐 싸고 공항 도착해 수속하고, 이런 거 말이죠. 뭉찬을 통해 테니스를 몰랐던 사람들도 이형택을 알게 되니까 전 좋았죠.”

‘머드리TV’ 유튜브가 인기인데, 직접 뵈니까 머드(진흙)는커녕 피부가 아주 좋은데요?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우승 축하 자리에서 어머니 최춘자씨와 함께한 이형택.
“제가 원래 하얀 사람이었어요(웃음). 테니스 선수와 코치로 햇빛 아래 하도 오래 지내다 보니 까맣게 됐죠. 뭉찬에서 축구 하면서 더 까매졌는데 뭉찬 끝나고 실내에서 농구(뭉쳐야 쏜다) 하니까 다시 하얘진 것 같아요. 원래의 머드리로 돌아가야죠. 머드리TV에서 농협 여자 선수들과 시합을 한 게 대박이 났어요. 테니스를 좋아하는 분들과 편안하게 소통하고 테니스를 알릴 기회로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어요. 한국 테니스의 별들인 유진선·김봉수·노갑택·전영대·윤용일(이상 남자), 이덕희·전미라·박성희·조윤정·김일순(이상 여자) 등을 초대해서 이분들을 알리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 같습니다.”

슛포러브에서 놀라운 묘기를 보여 주셨는데요.

“이대훈 선수와 함께한 홈플러스 편은 촬영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루 종일 촬영했는데 좀 부족해서 한 번 더 만났습니다. 저조차도 ‘이게 돼?’ 싶을 정도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설정이 여러 개 있었거든요. 하나 성공하는 데 몇 시간씩 걸렸어요. 프라이팬으로 공을 쳐서 걸어가는 사람 머리 위 컵에 집어넣는 장면은 하도 공을 많이 쳐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으니까요. 기부 차원에서 하는 거라 힘들다고 말도 못 했지만 옆에서 스태프들이 같이 파이팅 외쳐 주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그런지 정말 보람 있는 촬영이었습니다.”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출연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죠?

“맞습니다. 좋은 자극과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들어 레전드가 됐지만 다른 종목 가면 금방 잘하지는 못하잖아요. 하지만 집중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실력이 느는 속도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빨라요. 시청자에게 그런 재미를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다 보여주진 못하지만 모두 승부욕이 있다 보니 지고 나면 정말 화가 나거든요. 말도 안 하고 씩씩거리는 게 짜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모습이 더 리얼하고 재밌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카리스마의 화신’ 허재 감독이 망가지는 모습도 의외였습니다.

“그 형은 망가져서는 안 되는 영원한 카리스마, 농구대통령 아닙니까. 그런데 세상 흐름이 바뀌면서 스포츠 스타가 친근하게 대중 곁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허재 형이 허당끼를 보이는 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거더라고요. 본인도 그걸 받아들이니 훨씬 편안하고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이형택은 뭉찬, 뭉쏜, 머드리TV 등에서 ‘깐족거리며 상대방 약을 올리는’ 캐릭터로 나온다. 원래 그런 스타일인지 방송에서 설정한 캐릭터인지 물었다. 그는 “그런 얘기를 평상시에도 많이 하긴 해요. 하지만 방송에서 상대한테 그렇게 하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좀 망설였는데 정형돈(개그맨)이 콘셉트를 잘 잡아줬어요. 툭툭 던지는 농담을 잘 받아주면서 제 캐릭터를 살려줬죠. 형돈이는 짧은 시간에 사람의 특성을 파악해서 캐릭터 만드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더라고요”라고 소개했다.

식당 일 하는 어머니 생각하며 한밤 개인훈련


▎이형택을 넘어 메이저대회(호주오픈) 4강에 오른 정현(왼쪽)과 함께한 이형택.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골프 등 다양한 종목에서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강원도 횡성 출신인데도 스키와 스케이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다치면 크게 다치는 종목이라 겁이 나서 안 한 겁니다. 구기 종목은 건국대 다닐 때 다른 종목 선수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주 접했지요. 축구·농구 등은 타 종목 팀과 내기도 많이 했어요. 테니스라는 종목이 의사결정이 많은 데다 축구와 스텝이 비슷합니다. 또 야구·골프 등과 공치는 메커니즘도 굉장히 비슷하고요. 그런데 테니스는 개인 종목이라서 단체 종목의 전술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 건 안정환 감독이나 허재 형님이 잘 가르쳐 주셨죠.”

어릴 적 이형택은 어떤 아이였나요?


▎이형택이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졌다”고 칭찬한 테니스 유망주 권순우.
“굉장히 활동적이고 뛰어노는 걸 좋아했어요. 강원도 횡성 시골에서 살았으니까 아침에 나가면 저녁까지 뛰어놀고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했지요. 테니스를 하게 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운명 같아요. 저희 초등학교에 선생님이 새로 오시기로 했는데 시골이라 안 오려고 하다가 ‘테니스장 하나 만들어 주면 가겠다’고 하셨나 봐요. 그분이 오셔서 테니스장에 테니스부까지 만들었죠. 노란 공을 잔뜩 깔아놓고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구경을 갔어요. 제가 3학년 때인가 3~6학년 남자아이들을 전부 모아 축구를 시켜서 잘하는 아이를 테니스부로 뽑아갔거든요. 제가 축구를 곧잘해서 뽑히게 된 거죠. 그 선생님이 안 오셨으면 제게 테니스는 없었겠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된 남다른 훈련법이 있었나요?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 여자 선수한테도 졌어요. 운동능력은 있는데 공 치는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는 주니어 때 운동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연습량을 늘려 공만 잘 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면 공 많이 친 걸로는 안 됩니다. 얼마나 오래 범실 없이 랠리를 할 수 있느냐,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고급 기술을 쓰느냐로 실력이 드러납니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서울로 돈 벌러 가시고 할머니 밑에서 컸거든요. 고된 훈련이 끝나고 누워서 쉬려고 하면 ‘지금 이 시각에도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밤중에 라켓 들고 나가서 스윙 연습하고 했는데 그때 실력이 확 는 것 같아요. 게다가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노력하면 그만큼 결과가 좋아지는 걸 체험했어요.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된 거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국가대표가 되고 해외 투어에도 진출하게 된 거죠?

“국가대표가 되고 난 뒤 외국 나가서 보니까 나한테 졌던 선수가 세계랭킹 100위권이더라고요. 우리는 200~300위권인데요. 이게 뭔가 해서 걔네들 스케줄을 체크해 봤죠. 우리는 우승할 수 있는 대회만 나간 반면 그 친구들은 상위 클래스에 갈 수 있는 대회에 도전하는 거였습니다. 그 이후 미국 쪽으로 방향을 틀어 퓨쳐스 대회보다 한 단계 높은 챌린지 대회에 나갔죠. 퓨쳐스에서는 조금 놀다 나가도 우승하는데 챌린지에서는 상대 선수 공 파워나 스피드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한 경기 뛰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근육통이 오는 겁니다. 내가 쓸 수 있는 힘보다 더 쓰다 보니 알이 배는 거죠. 힘을 길러야겠다 싶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하니까 체력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성적 나고, 랭킹도 올라가는 선순환이 만들어졌죠.”

영어 인터뷰 걱정에 역전패한 적도 많아


▎뭉쳐야 찬다’ 멤버. 왼쪽부터 양준혁· 진종오·이형택· 김요한·이봉주· 여홍철·김동현· 이만기·허재.
세계적인 선수들과 부닥쳐보니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물었다. 이형택은 “해볼 만하긴 했어요. 문제는 경험이죠. 저는 주니어 때 외국 대회에 많이 못 나갔고, 유럽 선수들은 차 타고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언어 문제도 들었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경기 끝난 뒤 바로 마이크 들고 들어와 승리한 선수와 인터뷰를 합니다. 경기 막판 이기고 있으면 ‘끝나고 영어로 인터뷰해야 하는데’하는 걱정에 집중력을 잃고 역전패한 경우가 꽤 많아요. 그것만 아니었어도 세계랭킹 36위를 넘어 올라갔을 겁니다.”

2000년 피트 샘프라스와의 US오픈 16강전 영상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ATP 투어를 시작했다면…. 그때가 만 24세였는데 21~22살 때 투어를 뛰기 시작했다면 경험이 쌓인 상태에서 더 좋은 경기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날 밤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샘프라스는 TV나 잡지에서나 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주위에 샘프라스와 붙어본 사람이 있어야 간접 비교라도 할 것 아닙니까. 한 게임도 못 따면 어떡하지? 세계에서 제일 큰 테니스 구장인 US오픈 경기장에서, 전 세계 중계 나가는데 6-0, 6-0, 6-0으로 지면? 이런 생각에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막상 붙어보니 어떻던가요?

“최대한 긴장 안 했다는 티를 내려고, 담담하려고 노력했지요. 첫 공을 받았는데 무슨 돌덩이가 날아오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첫 게임을 내가 따고 나니 ‘됐다. 육빵(6-0)은 면했다’는 생각에 편해지더라고요. 첫 세트 타이브레이크(게임스코어 6-6에서 7점을 먼저 따야 하는 연장전)에서 상대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린 뒤 스매싱을 성공했는데 발이 네트를 살짝 건드렸어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네트 터치였죠. 상대가 샘프라스니까 다 받아낼 것 같아서 서두르다 생긴 일이죠. 아차 싶어서 주심을 쳐다봤더니 심판이 반칙을 지적했어요. 태연하게 돌아섰다면 점수 따고 그 세트를 이길 수도 있었죠.”

주니어 시절부터 세계 무대에서 뛴 정현(26)이나 권순우(24) 같은 선수가 부럽진 않았나요?

“현이는 주니어 대회도 많이 다녔고, 조금 더 일찍 큰 무대를 경험했죠. 순우를 보면 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운동능력은 좋은데 그 또래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빛을 늦게 본 거죠. 순우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공 치는 건 좀 떨어지는데 운동능력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괜찮겠다 싶었어요. 본인도 남들보다 뒤처진 시기가 있었으니까 어떤 배고픔이 있는 것 같아요.”

헝거리 정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요즘 젊은 선수들은 자기 라이프를 즐기면서 운동하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금메달을 못 따도 행복하냐, 억울해하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주말 데이트도 하고 가족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면서 올림픽 금메달 딸 것 같냐고 말입니다. 유럽 선수들은 배고픔을 알아요. 이거 아니면 성공 못 한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박혀 있어요. 그런 애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요. ‘즐기면서 하라’는 걸 잘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힘든 훈련을 하면서도 ‘내가 실력이 느는 과정이구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구나’ 이런 식으로 즐겁게 생각하라는 거지 놀면서 하라는 건 아니죠.”

테니스는 해 보면 참 어려운 운동이다. 그런데 테니스를 즐기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른 종목이나 취미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테니스에 푹 빠져 있다.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건지 물었다. 이형택은 명쾌하게 정리해줬다. “테니스는 다양한 운동능력이 필요하고, 의사결정이 많아 판단도 빨라야 합니다. 몸싸움은 없는데 격렬하고,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이거 봐라. 될 거 같은데 안 되네’ 하면서 자꾸 하다 보면 매력에 빠지는 거죠. 프로는 하나의 미스를 줄이기 위해 연습하고, 동호인은 하나의 멋있는 샷을 위해 연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멋진 샷을 성공했을 때 그 쾌감이 너무 좋은 겁니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 안에 테니스 코트가 다 있었는데 점점 없어지는 추세죠.

“전에는 일정 규모 이상 아파트 단지 안에는 테니스장을 설치하도록 의무 규정이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땅도 모자라고 땅값도 워낙 비싸서 테니스장 넣을 여유가 없죠. 면적 대비 활용성이 많이 떨어져서 테니스장이 도심에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울 서초동 꽃동네, 잠실 롯데 등이 테니스장이었잖아요. 요즘은 대규모 테니스장이 지방으로 내려가고, 도심에서는 상가를 빌려서 젊은 친구들이 테니스를 가르치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어요. 천장이 낮아 높게 칠 수는 없지만 스트로크 위주로 초심자나 여성들이 하기에는 큰 불편이 없어요. 날씨 구애 안 받고 에어컨·히터, 샤워 시설 등이 잘 갖춰져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휴지통에 공 집어넣기 퍼포먼스 보여줘


▎중앙UCN 강남스튜디오에서 조명과 테니스 라켓을 이용해 독특한 앵글을 잡았다.
앞으로 테니스는 어떻게 발전할 것 같습니까?

“프로화로 가야죠. 탁구도 유승민 회장이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만 전국체전 중심의 실업팀 시스템인데 세계적인 추세와는 맞지 않아요, 국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거든요. 프로화가 돼야 성적을 내는 만큼 가져가는 게 많아져서 동기부여도 되고 기술 향상에도 힘쓰게 될 겁니다. 프로화가 되면 스포츠토토 종목에 들어갈 수 있고, 점점 좋은 환경에서 경기를 하게 되면 뛰어난 선수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요즘 스포츠 스타에 얽힌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혹시 맞으면서 운동하지 않았나요?

“저도 사실 맞으면서 운동했어요.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요즘과 예전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달랐죠. 그때는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분위기였잖아요. 저희 때 부모님들도 ‘우리 애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서라도 선수 만들어 주세요’ 했거든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수박서리 참외서리 같은 게 어느 정도 선에서 용인됐지만 지금은 범죄잖아요. 바뀐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 이제는 맞춰가야죠.”

운동하면서 공부를 병행할 수 있을까요?

“저는 초등학교까지는 오전 수업 다 했어요. 학생 선수들이 기본 공부는 해야 하지만 모든 선수한테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커리큘럼을 이수하도록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미국도 대학 갈 애들은 일반 학과 수업을 하지만 프로 갈 아이들은 안 하거든요. 학생 선수들에게 일률적으로 일반 학생 교과목을 이수하라고 하면 아예 학교에 안 가거나 중퇴하고 검정고시 본다고 하는 애들이 많아요. 엘리트 선수로 갈 애들은 영어·국어·수학 등 필요한 만큼만 공부할 수 있도록 맞춰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는 길이 다른데 똑같은 걸 요구하면 역차별이 될 수 있잖아요. 미국도 대학 들어가서 1년 정도 지난 뒤 프로 턴을 하고, 은퇴한 뒤 복학해서 나머지 공부를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테니스 관련된 일을 하면서 방송도 더 해보고 싶습니다. 방송하면서 새로운 걸 많이 경험하게 되거든요.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 출신으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습니다. 지금의 깐족거리는 캐릭터로 오래 갈 수는 없으니까 터닝 포인트를 찾아서 새로운 모습도 보여줘야죠.”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레전드가 되려면? 그는 “레전드가 되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한 건 아닙니다. 자신의 목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다 보니 기록이 쌓여서 오늘 이 시간까지 온 거죠”라며 몸을 낮췄다. 그는 또 “타이밍이 좋았고, 선생님과 스폰서를 잘 만났죠.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고 말했다.

이형택은 후배들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꿈나무 선수들에게 목표를 물으면 ‘세계 10위요’ ‘세계 1위요’ ‘그랜드슬램이요’ 라고 당차게 대답합니다. 꿈이 큰 건 좋은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큰 꿈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는 세세하고 디테일해야 한다는 거죠. 작은 목표를 이루게 되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겨 다음 목표를 향해 재미있게 도전할 수 있거든요. 반대로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이 못난 사람 같고 자신감도 떨어지게 됩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중앙UCN 강남 스튜디오의 야외 테라스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라켓으로 공을 쳐 크기가 각각 다른 휴지통 세 개에 집어넣는 퍼포먼스였다. 큰 통, 중간 통은 쉽게 통과했지만 작은 통에 집어넣는 건 쉽지 않았다. 이형택은 진지한 자세로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미션을 달성했다. 그는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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