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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존폐 기로에 선 ‘청년몰(청년 상인들 위해 조성한 상가)’ 상인들 

지자체 관심 떨어지니 청년 상인 버티지 못하고 떠나 

중소기업청 개별 지원으로 시작, 생존률 높이려 몰(mall) 조성
성과 거두지 못하고 폐업 늘어나자 “혈세 낭비” 지적 잇달아


▎서울 서대문구 이화52번가는 2017년 10월 청년몰 조성 사업에 선정됐다. 평일 낮 이화여대 중심 도로에는 행인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이곳은 한산한 편이다.
2019년 청년몰 사업자에 선정된 정대석(32·가명)씨는 전통시장 내에 작은 음식점을 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는 높은 보증금과 월세 탓에 가게를 개업할 엄두를 못 냈던 게 사실. 그러나 정부가 조성한 청년몰은 임차료부터 인테리어까지 비용을 지원해준 덕분에 자금이 여의치 않았던 정씨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개장 초기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제법 손님이 있었다. 청년몰을 유치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마케팅 영향이 컸다. 그런데 두세 달 지나자 손님 수가 줄어들더니 ‘조기퇴근’ 하는 날이 늘어났다. 설상가상 지난해 2월 이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개점휴업인 날이 잦아졌다. 음식 재료비 등 기본 운영비용을 제하고 나면 정씨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월평균 100만원 남짓. 여기에 월세, 교통비, 휴대폰 요금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옆 점포의 동갑내기 사장 이모씨는 이미 가게를 정리한 상황. 정씨는 “파리 날리는 게 다반사이다 보니 하루에 10만원 벌기도 힘들다. 어쩌면 몇 달 후 나도 이씨 같은 신세가 될지 모른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청년몰 사업이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처음 시작은 2013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이하 중기부)에서 청년 상인을 개별 지원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개별 창업 생존율(창업 후 2년 기준)이 40%에도 미치지 못하자, 중기부는 2016년부터 청년몰(mall)을 조성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뜻있는 청년 상인을 모아 쇼핑, 지역 문화, 젊은 감각 등이 융합된 지역의 랜드마크로 육성한다는 것이 청년몰 조성의 골자였다. 중기부는 청년몰 조성을 통해 전통시장·상가 내 빈 점포 감소 및 청년 창업,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불황과 코로나19가 닥치자 정씨와 같은 입점 상인들이 하나둘 손을 들고 떠나면서 상당수 청년몰이 개장 1~2년 만에 사실상 폐허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 기자가 서울·경기에 위치한 청년몰 서너 곳을 주말·평일, 점심·저녁시간 등 요일과 시간대를 달리해 찾아가봤지만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적으로 청년몰 조성에 소요된 비용은 총 759억원. 당초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 기간 종료로 지원 중단, 폐업 잇달아


▎인천 강화군에 자리한 청년몰 ‘개벽 2333’과 인천 중구의 ‘눈꽃마을’(오른쪽). ‘개벽 2333’과 ‘눈꽃마을’은 청년몰 신규 입점자를 통해 전통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청년몰 내 점포들의 휴·폐업이 속출하는 이유에 대해 상인들은 지자체의 사후관리 부족을 가장 먼저 꼽았다. 청년몰 조성 사업 관련 예산 대부분이 기반시설 확충 등에 쓰이다 보니 개장 후 마케팅, 점포 임차료 지원 등 사후관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소상공인진흥공단(이하 소진공)에서 받은 ‘청년상인 영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청년몰에 입점한 전국 256개 점포 가운데 105개(41%)만 2년 후인 2019년에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중기부가 최대 24개월까지 임차료를 지원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점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임차료 지원 종료와 동시에 폐점하는 셈이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52번가에서 20년 이상 의류 수선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모(60·여)씨는 기자를 보자 대뜸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투자를 했으면 관리를 해야 하는데 안 해줬어. 내 생각만이 아니라 주변 상인 모두가 그래. (지자체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내팽개쳐버리면 청년들이 어떻게 잘하겠어? 그나마 우리는 단골이라도 있어서 버틸 수 있지 청년들은 다 죽어 나간다니까.” 정씨 가게 인근에서 가죽 공방을 운영했던 이모(32)씨는 “2017년 처음 입점했을 당시 중기부에서 1년간만 임차료를 지원해줬다. 이후 추가 지원이 없어서 곧바로 가게를 접었다”고 털어놨다.

청년몰 입점 상인들은 임차료 지원과 함께 지자체의 지속적인 홍보·마케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휴·폐업 속출을 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대석씨는 “퓨전 음식점에게 전통시장은 한마디로 험지이자 오지”라며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손님을 구경하기 어려운 곳에서 장사를 하는 셈”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청년몰 입점 상인들의 하소연이 잇따르자 중기부와 소진공은 청년 상인을 대상으로 컨설팅·마케팅 등 역량 강화 교육에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점포를 꾸려가는 청년 상인들로서는 장사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별도의 홍보·마케팅은 언감생심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연지(37·여)씨는 “요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홍보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모든 점포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인 스무 살 때부터 음식 만드는 데 청춘을 바친 나에게 별도의 홍보·마케팅이라는 건 생소하기 그지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청년몰 입점 상인들이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첫째 조건으로 홍보·마케팅을 꼽는 이유는 점포의 입지 때문이다. 중기부 규정상 청년몰 조성 사업 지원 대상이 되려면 전통시장·상점가 내에서 500㎡의 유휴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사실상 이미 죽어버린 상권에 청년몰을 조성하는 셈이다.

청년몰 인근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기존 상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장모(50)씨는 “몇 년 전부터 이대 상권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청년몰 같은 사업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대전 동구에 위치한 청년몰 ‘청년구단’에 다녀왔다는 박영우(23)씨는 “청년몰 가는 길을 알려주는 팻말이나 지도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길이 헷갈리다 보니 도중에 발걸음을 돌리거나 청년몰 주위만 맴도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일자리 창출 지표에서 점수 받기 위한 요식행위?


▎코로나19로 청년몰을 찾던 손님들이 줄면서 휴·폐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부산 중구에 위치한 청년몰은 개장 후 1년도 안 돼 입점 점포가 모두 폐업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부산 중구 관계자는 “국제시장 내에도 상대적으로 상권이 덜 활성화된 곳이 있다. 이런 곳에 청년몰이 들어서기 때문에 청년 상인들이 점포 운영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청년몰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의 사후관리 부족에 따른 휴·폐업 점포 증가 ▷점포 수 감소에 따른 손님 수 감소 ▷매출 감소로 인한 휴·폐업 속출과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개장한 청년몰은 물론이고 개장을 앞둔 청년몰도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경기도 강화군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이경화(35)씨는 “청년몰 조성은 중기부와 소진공이, 사후관리는 지자체가 하는 이원화 구조”라며 “청년몰 생존이 지속 가능하려면 중앙정부 주도하에 일관성 있게 사업이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진공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에 조성된 청년몰 39곳에는 총 672개 점포가 등록돼 있다. 그중 휴·폐업 중인 점포는 175개로 4곳 중 1곳가량이 문을 닫은 셈이다. 하지만 소진공이 밝힌 수치가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소진공 자료에 따르면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청년몰 ‘개벽 2333’의 경우 ‘1곳이 영업 중’이었지만, 취재 결과 현재 이곳에서 영업하는 가게는 단 한 곳도 없다. 이 지역 주민인 신신애·김수경(이상 21·여)씨는 “오픈 후 1년 정도까지는 학생들이 더러 다녀갔던 것 갔다. 그런데 지금은 점포가 다 닫혀 있어서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인천 등 다른 지역 청년몰의 경우도 사정은 ‘개벽 2333’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청년몰 등 청년 창업 지원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 사업에 759억원을 썼고, 올해도 약 10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처럼 정부가 청년 창업 지원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청년 고용시장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기 때문이다. 청년들 또한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취업보다는 창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대학생과 직장인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창업 의향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창업을 희망하는 비율은 각각 80%가 넘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제과점을 연 주현미(31·여)씨도 “코로나19로 다니던 여행 회사가 많이 어려워져 고민 끝에 창업을 결심했다. 아직은 매출이 높진 않지만 그래도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년몰 조성 사업이 한시적으로 일자리 창출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이른바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청년몰에서 2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35)씨는 기자에게 “보다시피 손님이 거의 없다. 손님이 없기는 평일이나 주말이나 마찬가지”라며 “처음에는 기대를 갖고 청년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청년 일자리 창출 지표에서 점수를 받기 위한 요식행위 아닌가 싶다. 임차료 지원이 종료되면 운영을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사후 지원 꾸준히 뒷받침되면 생존 가능


▎디저트 카페 ‘강화까까’를 운영하는 이경화씨는 강화도 특산물인 사자발 쑥과 인삼을 재료로 만든 ‘타르트’를 판매하고 있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중기부의 청년몰 사업은 당초 기대와 달리 대체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가 만나본 몇몇 청년 상인은 “임차료 등 정부 지원이 끝나면 가게를 닫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청년몰에서 비명만 들리는 건 아니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미로예술중앙시장’, 충남 천안의 ‘흥흥발전소’, 경남 진주의 ‘황금상점’은 2017년에 개장했지만 모두 생존율 90% 이상을 자랑한다. 코로나19로 방문객 수는 다소 줄었지만, 온라인 판로 개척과 주변 상권과의 연계·홍보 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이들 청년몰의 성공 원인에 대해 소진공 관계자는 “‘미로예술중앙시장’ 등의 경우 관할 지자체에서 청년 상인들의 연대의식을 높이기 위해 협동조합 운영 지원과 함께 공동 이벤트 추진 등 다양한 부가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과 별개로 지자체에서도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사업을 적극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청년몰에서 시작해 기반을 다진 뒤 자신의 가게를 연 이경화씨는 대표적인 청년몰 출신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씨는 “청년몰에 입점한 청년 상인치고 독하게 마음먹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청년몰 사업의 성공 여부는 지자체의 실질적이고 꾸준한 사후지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호선 부산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청년몰이 활성화되려면 방문자 확보, 재방문 유도, 수익성 확보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한 자생력 배가가 필수”라며 “예산 지원 종료 후에도 정책의 실수요자인 청년몰 창업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글·사진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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