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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29)] ‘예능왕’ 넘보는 ‘농구 대통령’ 허재 

한 번에 1000개 하던 이단줄넘기 지금은 한 개도 헉헉대는 ‘허당’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년 대표팀 감독 사퇴 후 방송 입문, 3년 만에 예능 대세
잠자리서 500개 슈팅 연습… 스타 안 나오는 농구판 안타까워


▎자신이 사는 아파트 북카페에서 포즈를 취한 허재 감독은 “전쟁터 같은 농구판을 떠나 예능을 하면서 표정이 훨씬 편해졌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웃었다.
농구 대통령 허재가 예능 왕좌까지 넘보고 있다. “TV만 켜면 허재가 나온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났던 농구 스타, 압도적인 경기력과 카리스마로 농구판을 평정했던 허재(56)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망가진 ‘허당’의 모습으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2018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 허재는 스포츠 레전드들의 조기축구 도전기 ‘뭉쳐야 찬다’(JTBC)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진 농구 예능 ‘뭉쳐야 쏜다’에서는 ‘상암 불낙스’ 감독을 맡고 있다. 프로농구 팀에서 뛰고 있는 두 아들 허웅(28·DB)과 허훈(26·KT)도 아버지와 함께 예능판 접수에 가세했다. 이들은 ‘코삼부자’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현역 은퇴 후 10년간 프로농구 전주 KCC 감독을 맡았던 허재는 지금도 ‘허 감독’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남산자락의 아파트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50대 중반에 졸지에 ‘예능 꿈나무’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농구판을 그리워하고 한국농구를 걱정하는 농구 레전드였다.

가장 신경 쓰이는 프로는 역시 뭉쏜(뭉쳐야 쏜다)인가요?

“그렇죠. 제일 신경 쓰이죠. 농구인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지면 나 때문에 떨어지는 것 같고. 부담감이 있죠. 찬다(뭉쳐야 찬다)에서 쏜다(뭉쳐야 쏜다)로 편성이 연결됐을 때 사실 부담감도 많이 가졌고요.”

본인이 “이런 거 해 보자”며 아이디어 낸 게 있나요?

“농구에 대해서는 작가보다는 우리가 많이 알잖아요. 쏜다의 컨셉트가 현재 프로농구인 KBL이 아니고 옛날 농구대잔치 시절 얘기니까 향수를 살리는 쪽으로 가면 좋겠다는 얘기는 했죠. 연세대-고려대 맞수 대결, 기아 허·동·택(허재·강동희·김유택) 트리오,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전 같은 그런 분위기를 살렸으면 좋겠다는 식이죠. 당시 팬들이 농구를 너무나 좋아하고 체육관이 터져나갈 정도로 왔잖아요.”

감독님의 본격 예능 입문 프로인 뭉찬에서 “그거슨(그것은) 아니지”라는 유행어를 히트시켰는데요.

“평소에 술 먹으면서 자주 했던 얘기라서 무심코 나왔는데 그게 유행어가 됐네요. 내가 예능 하면서 ‘어떻게 해 보겠다’ 이런 건 없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있는 자체로 나를 표현하면 되는 거고, 출연자들이 착착 맞장구를 쳐 주니까 편하기도 하고요. 이게 뭐 드라마나 대사가 있는 게 아니고 연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상대 말이나 행동에 대해 자연스럽고 리얼하게 리액션을 하다 보면 괜찮은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술자리 농담 “그거슨 아니지” 유행어로 떠


▎용산고 시절 ‘도저히 막을 선수가 없다’는 평을 들은 허재.
그러고 보니 상대 말을 받아치는 센스나 순발력이 보통 아니던데요?

“모르겠어요. 어휘력도 모자라고 센스라기보다는 워낙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거기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겠죠. 큰 틀에서 대본은 있지만 자연스러운 애드립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조금 는 거 같기는 하네요. 하하.”

‘역시 난 예능은 안 돼’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뭉찬 처음 했을 때 축구 룰도 몰랐고, 골키퍼를 하면서 백패스를 손으로 잡아서 원망도 많이 들었어요. 워낙 허당 짓을 하니까 다른 프로에서도 섭외가 막 들어오는데 그때 잠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메이크업도 안 하고, 맨얼굴에 머리가 새집이 되든 말든 다녔거든요.”

그래서인지 유난히 얼굴이 벌겋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죠.

“내가 워낙 술을 좋아하니까 주위에서 ‘야, 방송하는데 술 좀 먹지 말고 나가지’ 그래요. 난 진짜 안 먹었는데 믿지를 않는 거라. 그래서 (안)정환이가 메이크업 숍도 소개해 주더라고요. 옛날 감독하면서 프로필 찍을 때도 맨얼굴로 했는데…. 매일 야외에서 선크림도 안 바르고 촬영하다 보니 얼굴이 익더라고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재미는 있는데 체력이 달리니 너무 힘들었죠.”

농구 체력과 축구 체력은 다른가요?

“뭉찬 초반 한두 달은 장마철이었어요. 비가 오고 바람도 불고 해서 촬영을 하겠나 싶었는데 그냥 하더라고요. 우리는 체육관에서 비·바람·눈을 맞고 운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프로그램 오프닝을 위해서 땡볕 운동장에서 두 시간 정도 서 있으니 어질어질하고 몸이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두세 달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나중에는 적응이 됐죠. 술을 줄이고 몸 관리도 좀 하고요.”

예능을 한 뒤부터 표정이 밝아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죠?

“싸울 일이 없으니까. 예능에서 출연자랑 싸우겠어요? 농구는 승패를 결정내야 하니까 나와의 싸움, 상대와 싸움, 매일 전쟁이고 전투죠. 6개월 시즌 끝나면 팀을 재정비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용병 구하러 다녀야 하고. 한 마디로 전쟁 끝나면 바로 다음 전쟁 준비하는 거죠. 프로농구 전주 KCC에서 10년을 보냈는데 2~3년 정도 지난 것 같았어요. 그러잖아도 욱하고 성격 급한 놈이 매일 전쟁하고, 끝나면 속상하니까 소주 먹고, 그러다 보니 인상도 변하고 성격도 변하는 겁니다. 얼굴이 시커멓고 매일 찌든 생활 하니까 바깥에서는 ‘저러다 허재 죽을 것 같다’고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예능을 시작했을 땐 다른 세상을 본 것 같았겠습니다.

“그렇죠. 물론 그 안에서도 내가 MC가 되고 스타가 되고 연말에 상을 받아야 하고 등등 경쟁이 있겠죠. 그러나 나야 프로로 따지면 갓 들어온 신입인데 그런 거 신경 쓸 필요가 없었죠. 마침 최고의 MC들인 (이)휘재, (신)동엽이, (강)호동이, (서)장훈이 등이 다 어렸을 때부터 알던 동생들이니까 방송국 가도 큰 불편이 없었어요. 내가 못하더라도 최고의 MC들이, (유)재석이나 이런 애들이 해 주니까 그냥 어려움 없이 즐기면서 할 수 있었죠. 농구 감독 때는 잠자는 시간 빼고 농구 얘기만 합니다. ‘저 XX 죽여 살려?’ ‘용병 저 XX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코치들과 모이면 그런 얘기만 하니까. 연패에라도 빠지면 사람 미칠 정도가 됩니다. 이젠 친구들 만나도 농구 얘기 안 하고 살아가는 얘기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본인은 마음이 편했지만 “농구 대통령이 이 정도로 망가져도 되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을 터다. 허 감독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얘기 들으면 한편으로 이해는 돼요. 그런데 내가 허당이 되고 싶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운동을 진짜 못해요. 축구도 마찬가지지만 내 나이 오십 중반인데 몸이 따라가지도 못하고 근육도 없고…. 심지어 줄넘기도 못해요. 옛날에는 이단 줄넘기를 한 번에 500개, 1000개씩 했는데 지금은 하나 하기도 힘들어요. 예능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고는 싶은데 안 된다니까요.”

시청자들은 감독 시절 선수들한테 레이저 쏘던 허재가 그렇게 망가지는 걸 재미있어 하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명색이 농구선수 출신인데 3점 슛 넣고 싶지 않아서 안 넣겠어요? 여기(어깨)가 아파서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는데, 제작진들은 내가 못하는 부분이 재밌거든. 내가 음식을 해봤겠어요. 지금처럼 손님이 오면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야 커피나 4잔 갖고 와라’ 시키기만 했지. 쉰 넘도록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주민센터나 은행에 가서 필요한 서류 떼 오는 것도 웅이엄마한테 시키기만 했죠. 핸드폰 스마트뱅킹도 이번에 처음 배웠어요.”

JTBC 예능 ‘해방타운’에서 그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오십 넘도록 내 손으로 직접 한 건 라면 하나 끓인 것밖에 없는데 전기밥솥을 열어 봤겠어요. 집에 있으면 웅이엄마가 밥 차려주면 밥이나 먹고. 내 또래나 내 위에는 다 똑같아요. 우리 아버님 시대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거시기 떨어진다고 하던 때니까. 드럼 세탁기 쓰는 법도 몰라요. 대학 2학년부터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했는데 그때야 세탁기에 빨랫감하고 하이타이 넣고 돌린 뒤에 짤순이로 탈수시키면 됐잖아요. 요즘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이나 초성놀이 같은 것도 전혀 몰라요.”

농구 빼고는 쉰 살 넘도록 해본 게 없어


▎전주 KCC 감독 시절 허재는 불같은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예능 선배로서 서장훈은 어떻게 보세요?

“글쎄, 예능인으로서 장훈이를 판단해 본 적은 없고요. 선수 때도 데리고 있어 봤지만 워낙 언변이 좋고 차분하게 정리정돈 잘하고, 이야기도 논리정연하게 잘하던 친구였죠. 스포츠인으로서 예능 하는 건 100점을 줘도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장훈이가 부럽거나 그렇지 않아요. 각자 인생이 있으니까요. 내가 어려서부터 예능을 했다면 주병진같이 되겠다, 이덕화같이 되겠다, 연기대상도 받겠다, 이런 목표를 세웠을 텐데 나이 먹어서 들어갔는데 롤 모델을 만들고 하기엔 좀 그렇죠.”

요즘 스포테이너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분들의 공통적인 특징 같은 게 있다고 보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한 방송인이 더 낫지 않겠나 싶어요. 농구도 고등학교부터 시작한 애와 초등학교 때 시작한 애가 차이 나듯이, 방송도 어렸을 때 시작해 단역·조역 다 거친 사람과 은퇴하고 어쩌다 예능을 하게 된 사람과는 차이가 있지 않겠어요? 순발력이나 표현 방법 등이 많이 다르겠죠. 그럼에도 스포테이너를 좋아하시는 건 허재처럼 엄청나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망가져서 허당이 되는, 그런 새로운 면을 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요즘 스타급 예능인이 너무 오래 정상을 지키다 보니 신선한 느낌을 시청자들이 찾는 것도 같아요. 몇 년 갈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당대 레전드들이 TV와 예능으로 몰려가 버리면 농구판 소는 누가 키웁니까?

“사실 장훈이도 농구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어릴 때부터 한 게 농구니까 농구에 정이 더 가는 거죠. 나나 장훈이나 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 가는 겁니다. 지금 프로농구 10개 구단 감독 중 (전)창진이 형, (유)재학이 형 빼고는 다 후배들인데 그 자리 뺏을 수는 없죠. 구단들 입장에선 나나 장훈이 같이 머리 큰 사람이 껄끄러울 수도 있고요. 농구 신경 안 쓰고 예능 하는 지금이 너무 편안하니까 농구판을 굳이 안 들여다보는 것도 있어요.”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스타도 안 나온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팀마다 스타성을 갖춘 선수가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엔트리 12명 실력이 고만고만해요. 스타 선수들이 있어야 언론에서도 라이벌 구도를 만들고 스토리를 엮어서 보도도 할 수 있는데 해주고 싶어도 못하는 거죠. 어쩌다 프로농구 경기 가면 막판 10점 이상 이기고 있던 팀이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건 아닌데’ 싶은 플레이가 너무 자주 나오니까 농구가 재미가 없고 쫀득쫀득한 맛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팬층이 자꾸만 줄어들고,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국내 스타 선수가 안 나오는 이유로 외국인 용병을 꼽지 않을 수 없는데요.

“10개 프로팀이 용병 두 명을 얼마만큼 잘 뽑느냐가 그해 성적을 좌우하고, 국내 선수가 용병 서포터 역할로 전락한 건 오래됐습니다. 처음에 용병을 영입한 동기가 국내 선수와 콤비 플레이하면서 관중들 눈을 즐겁게 하려는 거였는데, 국내 선수들이 용병 리듬으로 가다 보니까 의존하게 되고 그만큼 기술적으로 안 되는 거죠. 용병도 국내 선수 믿고 같이 플레이해야 하는데 안 맞으니까 혼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결국 국내 선수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죠.”

허재가 농구천재라는 건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남다른 노력이 있었겠지요?

“학생이 절에 들어가 촛불 켜놓고 고시 공부 하는 것과 같아요. 단체운동 끝나고 개인운동 하면서 얼마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느냐가 스타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합니다. 개인운동을 몰래 숨어서 한다고들 얘기하는데 남들이 잘 때 하니까 숨어서 한다고 보는 거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집 근처를 한 바퀴 뛴다든지, 집에 농구 골대 있으니까 아침에 슛 연습한다든지…. 줄넘기는 요만한 공간만 있으면 되니까 하루 1000개를 목표로 몇 달 동안 매일 해서 근육을 만들면 점프가 높아지고 체공 시간이 길어집니다. 밤에는 누워서 천장 보고 슈팅 500개 한다든지, 남들의 두 배 노력해야 스타가 됩니다. 똑같이 운동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남들보다 두 배 노력해야 스타 될 수 있어


▎기아 시절 무적의 허·동·택 트리오였던 허재-김유택-강동희.
그런 개인연습을 언제까지 하셨나요?

“대학 가서까지 했죠. 중앙대 농구부는 안성에 있었는데 야간에 캠퍼스를 뛰거나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체육관에 혼자 들어가 슛 연습도 많이 했어요. 태릉선수촌에서는 단체훈련이 하루 네 번이니까 개인운동은 할 시간이 없었고요. 실업팀 기아 입단하고부터는 개인연습보다는 술을 더 많이 먹었죠. 크하하.”

허재 하면 술 관련한 전설이 참 많죠. ‘상대팀 선수가 술 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서 수비를 제대로 못했다’ 같은 얘기 말이죠.


▎2008년 프로농구 KCC 선수와 감독으로 만난 서장훈과 허재.
“가끔 그런 적도 있었겠지만 매일 새벽 네다섯 시까지 술 먹고 어떻게 시합했겠어요. 워낙 내가 술 좋아하니까 상대편에서 오버해서 얘기하는 부분이지. 태릉에서는 기라성 같은 (이)문규 형, (박)인규 형 같은 선배들이 계신데 어떻게 술을 먹어요. 주말에 외박 나가면 그 형들 따라서 가기는 했죠. 기아 들어가서 전력이 좀 떨어지는 은행 팀과 경기하기 전날에 좀 먹은 적은 있죠. 내일 현대랑 챔프전 하는데 술을 먹는 건 말이 안 되죠. 내가 술을 워낙 좋아하니까 그런 얘기들이 도는데 ‘네가 (냄새) 맡아봤어?’라고 싸울 수도 없고. 그게 뭐 죽을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구 못한 것도 아니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죠.”

허재가 전주 KCC 감독으로 있던 2014년 KBL 신인 선수 드래프트. 허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허재의 장남 허웅은 연세대 3학년을 마치고 프로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다. 1~3번으로 지명된 선수들이 팀을 찾아갈 동안 허웅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다. 3순위 안에는 당연히 들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4순위 지명권을 얻은 팀이 KCC. 운명의 장난이었다. 천천히 마이크 앞으로 다가선 허재 감독의 입에서 “연세대 허웅”이 아니라 “고려대 김지후”라는 이름이 호명됐다. 장내에는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돌같이 굳은 웅이엄마 이미수 여사의 얼굴을 TV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인기 높은 영상이다.

당시 웅이를 안 뽑아서 이혼당할 뻔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맞아요. 그 정도로 심각했죠. 와이프는 웅이·훈이를 자기 인생과 바꾼 사람이잖아요. 웅이는 드래프트 3순위 안에 들 수 있었는데 정효근이라는 선수를 높이 평가한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이 3번으로 그 선수를 뽑는 바람에 4번째로 밀렸죠. 사실 뽑고 싶었어요. 우리 팀 리스트에 당연히 들어가 있었고. 그런데 팀워크를 생각하면 뽑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만약 웅이를 뽑았다면 허재 아들이라서 뽑혔다느니, 실력도 안 되는데 경기에 뛴다느니 별 얘기가 다 나왔을 겁니다. 감독 없을 때 선수들끼리 모여서 ‘허감독 왜 그렇게 운동 많이 시켜’ ‘하루 쉬자고 그러자’ 이렇게 뒷담화도 깔 수 있는데 웅이가 있으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웅이가 왕따처럼 될 수도 있는 거고. 마침 KCC 뒤 순번이 원주 동부(현 DB)였는데 중앙대 후배인 김영만 감독이 ‘형님, 어려우실 것 같으면 제가 뽑겠습니다’ 하더라고요. 동부 입장에서도 필요한 선수였고.”

아들 둘 모두 대표팀 뽑은 뒤 곤욕 치러


▎허웅-허훈 형제가 용산고에 다니던 2011년 찍은 가족사진.
웅이엄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드래프트를 앞두고 ‘이번이 웅이한테 좋은 기회’라고 엄마를 설득해서 어렵게 연세대 들어간 걸 졸업도 못 하고 나오게 한 거잖아요. 나한테 전화를 20통 넘게 걸었고, ‘너는 사람도 아니야’는 말까지 했어요. 웅이도 몇 순위로 뽑혔는지가 평생 따라다니는 기록이고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었죠. ‘아빠, 나 이제 농구 안 할래’ 라고 말할 정도로 상처를 크게 입었던 것 같아요. 아들 보기도, 와이프 보기도 미안하지만 그걸 표현할 수도 없었어요.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동부에서 잘 성장해서 좋은 선수가 됐으니 해피 엔딩이 된 거죠.”

그런 흑역사 때문인가요. 2018년 대표팀 감독 시절에 웅이· 훈이를 다 대표팀에 뽑아서 홍역을 치렀는데요.

“그건 좀 다른 차원이었죠.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선수 예비엔트리 24명을 대한 농구협회에서 우리한테 줬고, 감독이 그중에서 12명을 추리는 겁니다. 왜 그 선수들을 뽑았는지 기술위원들과 난상토론을 거쳐서 최종 엔트리를 결정합니다. 저는 웅이가 결정적일 때 해줘서 이긴 경기가 많고, 훈이도 잘해준 경기가 많아 둘 다 뽑아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골밑 요원들이 줄부상을 당해 3위 안에만 들면 성공이라고 했거든요. 둘 중 하나만 데려가면 안 되냐고 해서 ‘뭐 제비뽑기하냐.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면 될 것 아니냐’고 뜻을 굽히지 않았죠.”

결국 3위를 했고, 귀국하자마자 사표를 냈죠.

“필리핀을 이겨야 준결승전에 나가는데 그 팀에 NBA에서 뛰는 선수가 있었어요. 필리핀 이긴 것도 다행이었는데 준결승에서 이란에 큰 점수 차로 지고 나니 대만 꺾고 3위 했는데도 패장 취급을 하더라고요. 새벽에 귀국해서 한숨 자고 나왔는데 그새 기술위원 전원이 사표를 냈다는 겁니다. ‘누구 엿 먹이는 거냐’ 하면서 나도 바로 사표를 냈죠.”

아들 둘 보면 누가 더 마음이 짠한가요?

“둘째는 대시하는 게 좋고, 큰애는 확률 높은 농구를 합니다. 훈이는 확률보다는 과감하게 시도를 하고, 웅이는 안전한 플레이를 한다는 뜻이죠. 둘의 장점이 잘 섞여서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플레이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짠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레전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그는 “남들이 인정하는 레전드가 진정한 레전드”라고 했다.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과 승부욕도 필요하지만 주위 사람의 도움과 인정이 없으면 크게 될 수 없어요. 자기관리와 더불어 주위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하겠죠.”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자가 “중앙대 후배입니다” 하니까 허 감독은 바로 말을 놓으며 편안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일행은 근처 냉면집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수육을 앞에 놓고 우리는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허 감독의 소주 비우는 속도는 역시 빨랐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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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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