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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16)] 칼럼집 펴낸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 

“자유롭고 콤플렉스 없는 이준석 세대에 희망” 

문재인 정부 민주주의 진화 기대했는데 독재 어른거려
내로남불식 자기기만 세력 퇴장, 세대 교체 전조 보여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문단의 열린 보수주의자로 통한다. 진보의 움직임에도 줄곧 우호적이었다. 현 정부에 긍정적이었으나 조국 사태 이후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83)씨는 현실에 발붙인 문학주의자, 균형감 있는 보수주의자로 통한다. 문학만이 최고라고 강변하지 않고, 생각이 다르다고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1974년 그는 등 떠밀려 한국기자협회장을 맡았다가 기관에 연행된 후 다니던 신문사에서 해직됐다. 이듬해 김현 등 이른바 ‘문지 4K’와 함께 문학과지성사를 차려 지금의 문학전문 출판사로 키웠다. 문학지상주의를 추구하면서도, 70~80년대 창비 진영의 참여문학에 우호적이었다. MB 정부 시절 진보 문학단체인 작가회의가 불법시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확인서 제출을 거부해 정부 지원금 3400만원을 못받게 되자 같은 금액의 개인 돈을 작가회의에 내놓기도 했다.

그는 2016년 말 세상의 움직임에 매우 큰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연재 칼럼을 묶어 최근 펴낸 [생각의 저편](문학과지성사)의 ‘서문’에 따르면 그렇다. 2017년 4월 신문에 게재됐던 ‘인간의 얼굴을 한 거버넌스’라는 글에서는 “행복의 정치경제학을 약속하는 인물에게 내 귀중한 한 표를 드릴 참”이라고 쓰기도 했다. 당연히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는 뜻이었다.

그랬던 칼럼의 기조가 어느 순간 바뀐다. 대략 2019년 중반, 조국 사태 즈음부터다. 올초 글에서는 “다수의 횡포를 넘어 독재로의 후퇴가 어른거릴 정도”라고까지 할 정도로 현 정부에 대한 거센 비판자로 돌아섰다.

이런 반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역시 보수주의자의 한계인 걸까. 아니면 그의 균형감각을 대치 정국을 바라보는 하나의 가늠자로 삼을 수 있을까. 지난달 1일 서울 서교동 문지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부끄러움 아는 것, 사회활동 하는 사람의 기본


▎2021년 칼럼집 [생각의 저편]
신문 게재 순으로 책에 실린 칼럼들을 보면 처음에는 정부에 우호적이었다가 갈수록 비판적이 된다.

“세상에 대한 기대를 얘기한 글은 2016년 말 촛불혁명 때 쓴 건데, 촛불시위의 정치적 의미보다 정서적 의미가 내게는 따듯하게 다가왔다. 현장에 가지는 않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의 폭력시위와 달리,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차분하게 내면의 빛을 밖으로 발산하는 촛불이 참 아름다웠고, 새롭게 나타날 정치적·사회적 양상에 대해 기대를 품게 했다.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일상화에 크게 기여했다면 이 정권에서는 사생활화까지로 발전하겠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내면화돼서 내가 젊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인·동성애자·소수자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일 말이다. 그런데 내가 실망한 건 조국 사태 이후다.”

어떤 점에선가?

“그렇게 오만하고 자기성찰이 없는 유형을 별로 보지 못했다. 일제시대나 혼란스러운 6·25 전쟁통에서도 그런 오만은 없었다. 조국만이 아니다. 대법원장은 자기가 거짓말했다고 고백하면서도 꿈쩍을 하지 않는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같은 분은 정말 꼿꼿하게 법대로 하면서 자기 내면과 사회현실 사이에 갈등이 없도록 하셨는데. 그래서 86세대가 갖고 있는 집권층의 뻔뻔함이랄까, 그게 참 실망을 줬다. 자기성찰이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지식인이나 사회활동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인데, 그런 점에 대한 의식 없이 그렇게 한다는 건 나로서는 참 상상하기 힘든, 그런 인간 타입이다.”

86세대는 변하고, 젊은 세대 밑에서 올라와야


▎1980년대생 저자 6명이 함께 쓴 [추월의 시대].
86세대 전체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명수 대법원장은 같은 세대도 아니다.

“정치적 야심이 있거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어느 세대에나 있다. 86세대 가운데 권력지향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집권층 속에 들어가 있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가장 아름답게 쓴 사람은 시인 윤동주였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기독교 원죄의식을 가진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윤동주는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준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분들이 그 세대를 주도하고 있다고 할까. 그게 문제고 그 세대가 바뀌었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86세대가 변해야 한다는 건가,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건가?

“둘 다다. 86세대가 반성도 해야 하지만 밑에서 올라오는 세대가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고, 또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선배 세대를 지난 세대로 밀어붙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게 2020년대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 전조가 지금 30대 이준석으로 비치는 게 아닐까. 섣부른 정치 얘기 같지만 정치 얘기라기보다는 세대적인 감각이라고 해야겠다.”

이준석 세대에서는 어떤 희망을 보나?

“새로운 것은 항상 새로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라든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내로남불식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지금 집권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이준석 세대는 별로 싸운 세대가 아니다. 고용주와 싸우지도 않았다. 디지털 세대로 우리 같은 활자 세대보다 의식이 훨씬 자유롭고, 풍요 속에서 살아온 세대다. 콤플렉스가 없다. 우리 같은 경우는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 부자 나라에 대한 콤플렉스, 계급에 대한 콤플렉스, 콤플렉스 덩어리였는데 말이다. 물론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헤매는 젊은이도 많지만 세대 전체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의 어느 세대 못지않게 풍요롭고 자유롭고 콤플렉스가 없다. 그런 세대가 우리 지도층이 된다면 편협하거나 오만하거나 고집부리는 그런 풍조는 좀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거는 거다.”

지나치게 좋게 보는 것 아닌가. 최근 2030 남성의 보수화는 우려도 자아낸다.

“취업을 못 하거나 집이 없어 고통받는 젊은 사람들 숫자가 우리 세대보다 많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더 심각하기는 할 텐데 그들의 시련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거다. 책의 마지막 글에서 소개한 [추월의 시대]의 30대 저자들은 한국사회가 객관적으로 ‘추격의 시대’를 지나 ‘추월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썼던데, 젊은 세대의 그런 자신감이 그렇게 환하고 좋더라. 일본 사람들도 갖지 못한 자신감이 아닐까 싶고, 그런 세대의 출현이 참 고맙고. 우리 세대는 모든 게 뒤떨어져 있다는 자학의 시대로부터 일본·미국에 뒤떨어질 게 없다는 자신감의 시대까지, 80년의 변화를 살아온 셈이다. 스스로 행운의 세대였다는 생각을 한다.”

맹목적인 이분법과 거리를 두려 했던 김씨의 행보는, 문학에서는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출된다.

“현실-문화-문학의 복잡한 연결 회로는, 특히 오늘날과 같은 착잡한 사회에서는, 직선적이며 단선적인 순진한 시각으로는 정확히 포착되지 않으며, 올바로 해명될 수도 없다. 다양성이나 다원주의적 관점이 아니고서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1991년 책 [두 열림을 향하여]에 실린 글이다. 이번 책에서도 김씨는 ‘역사에의 관용’이라는 글에서, 한국사회를 지금까지 발전시킨 힘이 어쩌면 투기나 부정 같은 부도덕·불의였을 수 있다는 ‘반전의 해석’을 제시한다. 절대선 위에서 지금의 풍요를 쌓아 올린 게 아니라는 얘기다. 때문에 역사의 전개를 보다 관대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시각에서 현 정부의 타협 없는 적폐 청산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평했다.

“한 세대의 강점과 약점, 아름다움과 추악스러운 점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새롭게 하면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당 시절이나 박정희 시절에서 얻을 점도 많지만 잘못된 점도 많다. 역사의 변증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걸 느끼는데, 지금 정권이 내세우는 적폐라는 게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 정권에도 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잘못이나 무능력, 이런 것들을 고쳐나가면 되는 거지 굳이 적폐라는 말을 써야 하는지, 반드시 개혁이나 혁명, 적폐청산, 이런 거창한 말로 또 하나의 적폐를 만들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 갈등하다 자기 고집에 갇힌 듯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은 나라를 두 개로 갈랐다.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각각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 주장으로 갈린 시민들. / 사진:뉴시스
결국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문재인씨를 참 좋아했다. 지금은 많이 불신하게 됐지만. 최근에도 검찰총장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그냥 임명하지 않았나. 그렇게 무례할 사람으로 안 보였는데 자기 고집에 갇힌 건지 더 많은 무리를 저지른다. 그분의 겸손함, 인정스러움, 관용적인 태도를 희망적으로 봤는데 조국이나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으로 쓰면서 내면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그대로 잡고 싶으면서도 추미애를 내세워 검찰개혁을 하고 싶은 갈등 아니었나 싶은데, 이제는 오히려 일방적으로 자기 고집으로 선회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신문으로 보는 것으로는 그렇더라.”

화제를 좀 바꿔보자.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를 차린 지 50년이 다 돼간다. 하나의 일가를 이뤘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처음 출판사를 차렸을 때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분명 시·소설을 덜 읽을 것 같다. 디지털·영상에 밀린 결과일 텐데, 대세인가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운명이라고 본다. 운명이라는 말이 지나칠지 모르겠는데 중세에는 신학이 가장 중심 학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학이었고, 20세기는 과학이었다. 그렇게 시대에 따라 의식이나 지적인 중심축이 바뀐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가 인류사의 커다란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맨 처음 언어를 만들어낸 게 100만 년 전인지 15만 년 전인지 어디에도 정확한 연대가 안 나온다. 인류가 언어를 만들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지칭하는 게 가능해지고 의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다음 혁명이 5000년 전쯤 이뤄진 문자의 발명, 그다음이 인쇄술, 그리고 지금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인데, 이건 단순히 매체, 기기의 변화가 아니라 실재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비약을 가능케 한 것이다. 기술에서는 디지털로 나타나고 생물학에서는 DNA 발굴이 큰 변화다. 어쨌든 디지털로의 변혁이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학 작품은 잘 안 보나?

“별로 안 본다.”

재미가 없어졌나?

“실재하는 게 훨씬 풍요롭고 역동적이고 재미있다.”

문학도 어쨌든 실재의 반영 아닌가. 평생 문학 출판을 해왔는데.

“문학의 의미라든가, 그것이 갖는 정신사적 기여를 다 인정하면서도 요즘의 내면적 편향은 실제 사건에 대한 다큐가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이게 취향의 변화라기보다는 나이의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의 정신사적 기여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

“인간의 두뇌로 과학적인 사유도 가능하고, 또 허무맹랑한 상상도 한다. 그런 여러 활동 중에 하나가 문학이다. 문학은 물론 가장 중요한 활동 영역의 한 부분이다. 문학의 기여·의미·효과는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이 나이가 되니까 앞서 얘기했지만 오히려 논픽션, 비허구의 세계에서 더 실감을 찾을 수 있겠다는 그런 정서적인 변화랄까 그런 걸 느낀다.”

글쓰기는 나와 사람과 세계를 잇는 작업


▎평론가 김병익씨는 누구 못지않은 다작의 평론가라고 할 만하다. 그의 본향이라고 해야 할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책만도 평론과 산문집 합쳐 18권이나 된다. 그의 세계는 ‘절제된 균형감각’으로 얘기된다.
책에서 대학의 위기, 학문 성과주의의 폐해도 언급했는데.

“대학 문제는 잘 모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첨예한 문제다. 사실 한국의 대학이 한 시대의 필요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한편으로는 투자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 방법으로 설립했는데, 그 당시에는 언젠가 인구가 어떻게 달라지리라는 것까지 예상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수 없었다. 사회 전체적인 변화로부터 교수 임용에 이르는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들이 대학 속에 들어가 있다. 다른 문제들도 그럴 테지만 그래서 대학 문제가 어떻다 한마디로 얘기하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도 그렇고. 앞을 보며 뒤에 그늘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자꾸 저편을 보게 되니까.”

건강 관리는?

“게으르게 한다. 운동을 일절 하지 않는데, 집에서 150m 정도 걸어가면 있는 커피숍에 가는 게 내게는 유일한 운동이고 휴식이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집안 체질이 좋은지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훌쩍 떠나는 사람도 있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는데 늙음이라는 자체에서 오는 거니까 피하려 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정신적 건강은 어떻게?

“책 보는 거 외에는 별로 없다. 책 보고 뉴스 보고 야구 중계 보고 게으르게 지낸다.”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계속 쓰시는데, 힘들지 않나?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두 달에 한 번 나오는데, 한 달 전쯤에 구체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두 달 동안 한편 글을 향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게 유일한 지적 활동이다.”

김씨는 글쓰기의 의미를 다음 두 가지로 간추렸다. 글 쓰는 목적이라고 봐도 좋은 얘기였다. “하나는, 내 인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나와 당신, 나와 세계 사이를 잇기 위해서.”

김씨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잇조각을 꺼냈다. 앞으로 한국사회가 이뤘으면 하는 ‘형용모순의 변증’이라며 네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성장 없는 발전. 경쟁하는 공존. 인공의 자연화. 마지막으로 겸손한 자신감이다. 가령 ‘성장 없는 발전’의 경우 지구 자원의 고갈이나 인간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기후변화 없는, 그러니까 양적인 성장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뜻한다. ‘겸손한 자신감’은 역시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진 것 같은 86세대 집권층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

김씨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런 점을 부끄러워하거나 자랑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내 성격이 그렇다 정도로 여겨왔다”고 했다. 대척점에 있는 창비에 대해서는 “마포 신수동에 출판사 사무실이 나란히 있을 때부터 창비 출판사 쪽을 바라보며 이쪽 아닌 저쪽 편 처지를 생각해 버릇 해왔던 것 같다”고 했다. 상대 처지를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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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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