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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교황 방북 가능성과 선결 조건 

바보야, 문제는 날씨가 아니라 얼어붙은 북한 체제라고! 

남·북·미 관계 개선 마지막 승부수 ‘교황 방북’ 띄운 문재인 정부
정치·종교적 변수 많고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 보여야 성사 가능


▎10월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잘라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임기 내 교황의 방북을 추진 중이다. / 사진:연합뉴스
종전선언으로 부족했는지 2탄 교황 방북이 공론화됐다. 과연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언제 방북할 것인가? 아니 방북할 수 있을까? 방북한다면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미사를 보고 신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교황 방북은 북한 체제와 동북아 갈등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등 화두는 무궁무진하다. 예상과 달리 당장 임박한 현안은 아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일 브리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시기와 관련 “교황님이 아르헨티나(라는)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올겨울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교황 방북이 어렵다는 이유가 날씨 때문이라는 박 대변인의 해명에 대해 즉각 반론이 튀어나왔다. [미국의소리(VOA)]는 11월 3일 “(박 대변인은) 아르헨티나에 스키장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그레그 스커를러토이우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반문했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의 관광도시 바릴로체에는 파타고니아 스키 리조트가 있고 2017년 7월에 이 지역은 영하 25.4도를 기록했다. 박 대변인이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교황 고향의 기후를 꼽은 게 사안의 본질을 왜곡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필자는 2012년 6월 민주평통 사무처장 재임 시절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교민들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되는 평통 자문위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000㎞ 이상 멀리서 20시간 운전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르헨티나 국토가 상상 이상이라고 느꼈다. 6월인데도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추웠다. 한여름 서울에서 출발하느라 겉옷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교민들이 이튿날 야외 공원에서 개최된 기념식수 행사를 위해 두툼한 외투를 가져다준 기억이 난다.

‘교황 방북’ 띄운 청와대, 정작 실현 가능성은 거리 두기


▎북한의 종교 활동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북한의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에서 2015년 12월 3일 방북주교단이 조선가톨릭교협회 관계자 및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교황의 해외 순방은 개별 국가 정상과 그 나라 주교단이 초청하고 교황이 수락해야 가능하다. 북한은 주교회의가 없으니 일단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이 필요하다. 우선 ‘Y(교황 방북)=f(X1, X2, X3, X4…)’라는 방정식에서 Y(교황 방북)라는 종속변수는 외부 독립변수, X1…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독립변수를 분석해 교황 방북이라는 메가톤급 주제를 해부해보자.

우선 X1의 독립변수는 북한의 초청이다. 아무리 청와대에서 군불을 때고 분위기를 조성해도 평양이 불허하면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종교를 아편으로 간주하는 북한으로선 세계 14억 신자가 믿는 가톨릭 수장인 교황의 방북은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이슈다. 자칫 후폭풍이 평양에 몰아닥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책 중 하나인 교황직을 맡고 있는 그리스도 대리자(Vicarius Christ)의 방북은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수립 이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1970년대 주체사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데올로기와 종교이념을 탄압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계기로 북한은 종교 탄압이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조선천주교협회를 결성하고 평양에 장충성당을 건립했다. 1988년 평양시 선교구역에 건립된 장충성당은 북한의 유일한 성당이다. 부지 2000㎡에 건평 1852㎡ 규모로 지어진 장충성당은 총 수용인원이 200여 명으로 평양시 주변 신자들이 매주 일요일 이곳에 모여 미사를 올린다고 홍보한다. 장충성당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한 상주 신부가 없어 신자 대표 2명이 돌아가며 매주 일요일 3차례 미사를 개최한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역시 미지수다.

지난 2005년 필자는 평양 방문 당시 일요일을 맞아 동행한 목사들과 함께 북한의 2대 교회인 칠골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보았다. 아무래도 교회의 분위기는 남한과 달랐다. 조선기독교협회 소속 북한 목사가 예배를 집전했으나 내용은 상당히 형식적이었다. 담임목사의 강론은 없었으며 간단한 성경 낭독과 찬송가를 부른 후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형식이었다. 예배 시간 동안 북한 목사의 행태와 일부 멀리 떨어져 앉은 북한 신자 10여 명의 모습을 힐끔힐끔 살피느라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평양이 교황의 초청에 고심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에 득이 될지 여부 때문이다. 북한의 정책 결정을 SWOT 분석으로 접근해보자. 우선 장점(strong point)이나 기회(opp ortunity) 요인은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이다.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5건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로 숨이 막혀 질식 수준인 평양으로서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긴박한 상태에 있다. 3차례에 걸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회동도 동상이몽으로 끝나 제재 완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수령 지위에 등극한 김정은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 카드를 들고 뉴욕과 로마로 뛰어다니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쉽게 결단을 내릴 것 같지는 않다. 무리한 워싱턴 설득 전략으로 인해 한·미 간 이견만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3의 카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교황이 방북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세계 천주교인을 상대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의 불가피성을 선언한다면 평양으로서는 난국 돌파에 매우 긍정적일 것이다. 로마 교황청과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의 사전 협상에서 교황 방북 시 연출할 환상적인 그림을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장점 2번은 북한 체제의 정당성 확보다. 최근 미국 CNN 보도는 교황 방북의 양면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10월 18일 바티칸을 방문해 전달한 김정은의 교황 방북 요청 메시지를 두고 미국 뉴스 채널 CNN은 리드를 이렇게 뽑았다. “오늘 찬란한 바티칸 교황청에서, 악랄한 독재자가 뻔뻔한 제안을 했다(In the exalted halls of Vatican today, an audacious gesture made by brutal dictator).” 앞서 CNN은 2018년 10월 18일 자 방송에서도 ‘김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뻔뻔한 제안을 하다(Kim JongUn’s audacious gesture to Pope Francis)’란 제목으로 브라이언 토드(Brain Todd) 기자의 방송을 내보냈다. 산천과 인걸은 변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3년 만에 문 대통령이 교황 방북 카드를 재점화시킨 것이다. CNN은 “김정은의 의도는 명확하다”며 “(교황을) 정권 홍보에 활용할 것(More Good PR for the Regime)”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김정은의 교황 초대는 또 다른 형태의 북한 ‘평화 공세(charm offence)’이며, 그동안 연속으로 개최된 북한과 한·미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황 방북 시 국제적 파급효과 상당해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종교 지도자를 활용하곤 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2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평양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맞이하고 있다.
CNN은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도 1990년대에 두 번 방북했으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북한은 과거부터 교황의 방북을 통해 ‘정상국가의 정상 지도자’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비핵화 의지를 과시할 기회를 모색했다. 김일성·김정일 시절에도 교황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태영호 전 공사는 그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1991년 한국과 소련, 중국의 외교관계가 개선되자 “김일성은 김영남에게 관련 조치를 지시했고, 1991년 외무성 내에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기 위한 상무조(TF)가 편성됐다”고 했다. 초청 시도 배경에 대해선 “(김일성은) 교황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뉴스를 보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북한에 오게 한다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교황 초청 의사를 밝혔지만, 두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교황청과 주석궁 양측의 복안이 동상이몽이었기 때문에 총론에서는 합의가 이뤄지지만, 각론에서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정은도 같은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교황 방북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북한


▎코로나19 영향으로 북한은 국경을 폐쇄하는 등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교황 방북이 성사되더라도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대규모 군중 동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7월 북한의 러시아 근로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둘째로, 외부 독립변수는 방북에 대한 교황의 의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 수장이 되기 전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빈민을 위한 목회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취임 초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해외 방문은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명분에 있어서도 전 세계 가톨릭 신자의 묵시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교황의 권위와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보는 기획할 수도, 실제 추진할 수도 없다.

청와대는 이번 교황청 방문 전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8년 김정은과 트럼프 간 정상회담 중개처럼 중매쟁이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당시는 김정은이 트럼프와 1차 싱가포르 회담(2018년 6월) 이후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데 골몰하던 시기였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 오신다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했다. 다음 달인 2018년 10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냐”고 묻자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며 “(북한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즉시 평양 통일전선부에 교황의 발언을 전달하고 사업 추진을 제안했다. 북한 통전부와 외무성은 호락호락하게 움직이지 않는 트럼프를 공략하기 위해 교황 방북 카드를 검토했다. 하지만 교황의 방북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득보다 체제 유지에 실이 많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 교황의 방북을 두고 이라크 방문 카드를 대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교황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021년 3월 사상 첫 이라크를 방문한 것과 북한 방문은 결이 다르다. 교황이 이라크 땅을 밟은 것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다. 교황은 이슬람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알시스타니와 만나 종교 간 공존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왔고, 이라크 내 치안 불안과 코로나 확산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이라크 방문을 강행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찾아 종교 분쟁을 교황이 중재하겠다는 종교적 통합(New World Religion Order)의 소명이 깔렸다. 하지만 북한은 통합해야 할 종교 자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황의 방북이 사진 찍기용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도모하기 위해 교황의 방북을 추진한다. 하지만 교황은 평양에 가서 무엇을 하고 이후에 어떤 것을 끌어낼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어 청와대와 교황청 간 생각의 괴리가 작지 않다. 북한과 교황청의 동상이몽 못지않다. 교황청은 단순히 북한에 가는 것보다 종교적으로 가장 ‘음지’인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2010년대 이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공식 확인된 한국 국민은 김정욱 등 선교사 3명과 탈북민 3명 등 총 6명이다. 교황 방북에도 이들이 풀려나지 못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평양이 교황 방북 시 이들을 석방하고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은 무엇인가? 이들이 서울에 귀환한 후 북한 실상을 폭로할 경우 자칫하면 인권 유린 국가의 이미지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2019년 2월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공동행사에 참석한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가 만찬장에서 강지영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희중 대주교는 “올해 교황께서 11월에 일본 방문 일정이 예정돼 있다”며 “북한도 방문하셔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과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교황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성사됐지만, 방북은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교황의 행보는 국제정치와 종교적 함의가 갖는 복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오다가다 들르는 행보는 말처럼 가능하지 않다.

청와대, 교황청, 북한의 동상이몽 좁히기 쉽지 않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7월 5일 전남 목포시 산정동 성당에서 열린 준대성전 지정 감사 미사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 평양 방문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7월 5일 전남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열린 준(準)대성당 지정 감사미사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미사엔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주한교황대사인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참석했다. 축사 형식이기는 했지만, 국가정보기관장이 천주교 미사에 참석해 ‘교황 방북 추진’이란 화두를 꺼냈다. 이후 7월 9일에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다시 ‘교황 방북’ 이야기를 꺼냈다.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청 이인자인 파롤린 국무원장을 만난 자리였다.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 방북과 관련해 “북한의 초청장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로마 가톨릭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대주교는 교황 방북과 관련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한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제가 직접 접한 적은 없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만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이뤄졌다”고 답했다. 유 대주교는 “북한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어렵다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교황의 방북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고 여건이 조성돼야 가능하다는 원론적이고 우회적인 답변이다. 아무리 지략가 정보기관장이 나서도 사실상 7월 이후 새롭게 진전된 사항은 없다는 분석이다.

방북의 마지막 변수는 교황의 건강이다. 이탈리아 일간신문 [라 레푸블리카]는 2021년 7월 8일 교황이 수술 후 회복 중에도 방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7월 4일 로마 가톨릭 게멜리 종합병원에서 결장협착증 수술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 절제 수술 후 입원 중 실제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 투표)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예수회가 발간하는 가톨릭 매거진 [라 치빌타카톨리카(La CiviltaCattolica)]는 7월 12일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자리를 함께한 교황과 예수회 신부 53명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가톨릭교회를 ‘가십’의 대상으로 삼거나 합당한 이유 없이 공격하는 교계 내 전통·보수주의자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1936년생으로 85세인 교황은 퇴원 이후 순조롭게 회복했으나 최근 대중 행사에서 다소 약해진 목소리에 수척한 얼굴이 공개되며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고령에 장거리 비행은 모든 정치적 여건을 떠나 여전히 큰 장애물이다. 첩첩산중에 마지막 걸림돌이다.

사실 교황 방북이 논의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멀리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진보와 보수 정부는 각기 다른 목적으로 교황의 방북 카드를 검토했다. 진보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 협력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다. 보수 정부는 평양의 개혁 개방이 목적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은 당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교황 방북 카드를 검토했다.

북한이 먼저 문 열어야 교황 방북 가능


▎2015년 9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났다. 당시 만남은 쿠바가 1961년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에 적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나서면서 이뤄졌다.
교황은 2015년 9월 평양을 방문한 미겔 베르무데스 쿠바 국가이사회 제1부위원장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김정은은 쿠바 대표단에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교황의 방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중재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 교황을 언급했다. 당시 이병호 원장(2015. 3~2017. 6)의 국정원은 교황의 방북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거부로 서류상 프로젝트는 추진되지 않았다. 특히 201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교황 방북 논의가 더는 진전되지 못했다.

3년 만에 재점화한 교황의 방북은 ‘아르헨티나 날씨 문제’로 일단 막을 내리고 있다.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북한 이슈는 2019년 하노이 노딜에서 보듯이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귀결된다. 특히 교황은 트럼프가 아니다. 하늘의 사도인 그의 해외 방문은 전 세계 천주교인의 관심이며 언론의 관심이다.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피델 카스트로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초청으로 처음 방문했다. 2013년 3월 베네딕토 16세가 두 번째로 방문한 데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9월 세 번째로 쿠바를 방문했다. 교황의 방북 의전은 최소한 쿠바 방문 수준이 돼야 교황청도 초청에 응할 수 있다. 평양이 쿠바 아바나 수준의 열린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문을 열기 위해 교황이 방북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개방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교황이 방문한다. 교황은 하늘의 대리인이기는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God)이 아니다. 교황청을 방문해 방북을 채근하고, 평양에는 교황이 방북하면 큰 선물을 줄 거라고 오도하는 정직하지 못한 거간꾼 역할은 한계가 있다. 때가 되면 서울에서 교황의 방북을 제안하지 않아도 교황청이 직접 북한과 협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평양의 하늘이 가톨릭 전체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의 방문을 맞이할 준비가 부족하다. 교황과 북한체제에 대한 독특한 입장과 전후 관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양은 물론 교황청까지 포함된 메가톤급 이슈가 고작 아르헨티나 날씨 탓으로 끝나 국제적인 가십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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