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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의 뮤지컬 오디세이(10)] 디즈니 뮤지컬 시대를 연 '라이온 킹' 

불교 윤회관 연상시키고 공자님 가르침과도 비슷 

자연과 인간, 생명의 순환으로 묶어 동일시하는 세계관 바탕에
동양 것이건, 서양 것이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결과인 듯


▎[라이온 킹]은 디즈니 뮤지컬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혔다. 예술가들의 영감 대신 투자자의 의견이 중시되고, 철저한 기획과 시장조사에 바탕을 둔 디즈니 뮤지컬은 1980년대의 뮤지컬 빅 4와는 또 다른 기업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라이온 킹]을 떠올리면 귀여운 아기 사자 심바(Simba)의 얼굴이 생각난다. 주술사 원숭이 라피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심바를 절벽에서 번쩍 들고 미래의 지도자임을 선포하는 순간은 수많은 오마주와 패러디를 낳은 명장면이다. 이 심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디즈니 애니매이션 [라이온 킹]은 1994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아기 사자가 뮤지컬에서 되살아났다. 1997년 뉴욕 뉴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라이온 킹]이 그 무대였다. [라이온 킹]은 1998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6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디즈니 뮤지컬의 시대를 선포했다.

[라이온 킹]은 2006년 민스코프 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장기 공연을 이어갔으며, 이어 영국 웨스트엔드는 물론 캐나다와 독일·일본·네덜란드 등 수많은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샤롯데씨어터에서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라이선스 작품 [라이온 킹]이 1년간 공연된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내리막길을 걷던 디즈니는 1989년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세계적으로 빅 히트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넘어 ‘진짜’ 무대 뮤지컬 시장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첫 결과는 1994년 무대에 올린 [미녀와 야수]였다. [미녀와 야수]가 기대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자 디즈니는 야심작 [라이온 킹]을 내놓으며 세계 뮤지컬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디즈니는 주로 자신들이 만들어 성공시킨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제작해왔는데, [라이온 킹]도 그중의 하나였다.

사실 디즈니의 뮤지컬 전통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즈니는 1930년대 제작한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부터 [피노키오], [곰돌이 푸] 시리즈 등 무수한 만화영화에 뮤지컬 기법을 가미해왔다. 2014년 겨울 개봉해 세계를 휩쓴 [겨울왕국(Frozen)]은 디즈니의 축적된 뮤지컬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엘사가 마법으로 얼음 성을 지으며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르는 장면은 판타지의 정점이 아닐 수 없다. 디즈니의 오랜 뮤지컬 경험과 연륜이 곳곳에 녹아있는 화려한 스펙터클이다.

디즈니 뮤지컬은 ‘기업 뮤지컬(Corporate Musical)’로 불린다. 그전까지 소수의 몇몇 인재들이 힘을 모아 만들던 뮤지컬 비즈니스에 할리우드 영화처럼 대기업이 진출한 것이다. 대기업 디즈니는 든든한 자본을 배경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 등 뮤지컬 ‘빅 4’가 주도한 블록버스터의 혁명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디즈니의 전략을 요약하면 해피엔딩의 드라마, 귀에 쏙 들어오는 팝 스타일의 음악,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환상적인 스펙터클이었다. 드라마와 음악·춤·볼거리 등 뮤지컬의 주요 요소를 디즈니의 색깔로 펼쳐 놓았다. 디즈니 블록버스터의 탄생이었다.

대기업답게 디즈니의 지향점은 단 하나였다. 더 많은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뮤지컬이 아니라 서커스 같다”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뮤지컬 빅 4의 등장 이후 변화된 소비자들의 입맛과 시장 환경을 겨냥한 디즈니식 마케팅 전략이었다. 디즈니 뮤지컬은 1990년대 세계 뮤지컬 시장에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즐기는 가족뮤지컬 붐을 일으키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했다.

[라이온 킹]의 최대 매력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온갖 동물로 변신한 배우들과 광활한 아프리카의 밀림을 재현한 무대다. 극장 안에 들어서면 아프리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애니메이션 화면을 그대로 무대에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무려 12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됐다.

무대에 되살린 애니메이션의 상상력


▎세계적인 뮤지컬 작사가 팀 라이스. [라이온 킹]에서 엘튼 존과 호흡을 맞췄다.
[라이온 킹]의 볼거리는 뮤지컬 ‘빅 4’의 스펙터클과는 차이가 있다. 빅 4의 스펙터클은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단번에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라이온 킹]의 볼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로 채색된 깜찍한 것들이 많다.

[라이온 킹]을 빛낸 아이디어의 중심에는 연출과 무대의상, 가면 제작의 1인 3역을 맡은 여성 연출가 줄리 테이머가 있다. 인형극 전문가였던 줄리 테이머는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과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의 기법을 접목해 새로운 무대를 창조했다. 가면을 얼굴에 쓰지 않고 머리에 쓰는 참신한 아이디어도 이렇게 해서 나왔다.

줄리 테이머는 코끼리와 기린·표범·사슴부터 생쥐와 형형색색의 새들에 이르기까지 200여 종의 동물을 인형과 가면·소품을 이용해 만들었다. 무엇보다 동물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놓은 게 인상적이다. 거대한 코끼리는 배우 네 명이 들어가 다리 한쪽씩을 만들어 크기를 구현했나 하면, 목이 긴 기린은 대나무를 이용해 위엄 있는 걸음걸이를 뽐내게 했다.

여배우의 부드러운 손동작에 맞춰 우아하게 움직이는 치타에서는 은근히 관능미가 풍기고, 나무 끝에 매달린 새들은 지지배배 흥겹게 날아다닌다. 배우들의 머리에 뗏장을 얹어 한순간에 아프리카 초원을 만드는가 하면, 수많은 들소 떼가 질주하는 가운데 심바가 하이에나의 추격을 피하는 명장면은 화면을 만화경처럼 돌려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상상력이 자본을 만나 [라이온 킹]이라는 아이를 낳은 셈이다.

이렇게 ‘동물 친구’들이 우르르 등장하니 아이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봐도 전혀 유치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즐기는 뮤지컬로 이미지 메이킹이 이뤄졌다. 이미 [미녀와 야수]를 통해 가족 뮤지컬의 개념을 제시한 디즈니는 [라이온 킹]에서도 이 방법을 활용해 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기존 뮤지컬들이 간과했던 어린이 관객을 대거 유입해 관객층을 확장한 것이다. 수십 년간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100% 활용했다.

엘튼 존 & 팀 라이스 콤비의 힘


▎뮤지컬 [라이온 킹]의 성공을 위해 디즈니가 영입한 팝스타 엘튼 존.
디즈니는 [라이온 킹]을 위해 새로운 작곡가와 작사가 콤비를 탄생시켰다. 팝스타 엘튼 존과 작사가 팀 라이스의 조합이었다. 엘튼 존은 1970년대에 발표한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부터 다이애나비를 추모해 만든 ‘캔들 인 더 윈드(Candle in the wind)’에 이르기까지 숱한 히트곡을 남긴, 20세기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다.

팀 라이스는 또 누구인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힘을 모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을 만들어낸 전설의 거장이다. 당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업계의 두 거물을 모셔와 최강의 듀엣을 구성했다.

디즈니가 키운 콤비는 원래 작곡가 알란 멘켄과 작사가 하워드 애쉬맨이었다. 디즈니는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제작하면서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화제를 모은 뮤지컬 [리틀 숍 오브 호러]의 콤비 멘켄과애쉬맨을 영입했다. 이 콤비는 초대형 히트곡 ‘저 바다 밑(Under the sea)’을 만들어 디즈니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멘켄과애쉬맨은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1991)도 성공시켰고, 여세를 몰아 1992년 [알라딘]까지 작업했으나 그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작사가 애쉬맨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때 ‘대타’로 투입된 인물이 팀 라이스였다. 라이스는 [알라딘]을 끝낸 뒤 [라이온 킹] 작업을 앞두고서 작곡가로 멘켄 대신 같은 영국인인 엘튼 존을 추천했다. 디즈니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로써 엘튼존-팀 라이스 콤비가 탄생하게 됐다.

엘튼 존-팀 라이스 콤비는 [라이온 킹]에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젊은 날의 거친 혈기는 좀 사라졌지만 한층 원숙해진 팀 라이스의 깊이 있는 노랫말과 엘튼 존 특유의 대중적인 팝 감성이 잘 어울렸다.

어린 심바와 멧돼지 품바, 미어캣 타이몬이 부르는 흥겨운 리듬의 ‘하쿠나마타타(Hakunamatata)’는 이들 콤비의 역량이 100% 발휘된 곡이다. ‘하쿠나마타타’는 스와힐리어로 ‘걱정할 것 없어’라는 뜻이다. ‘모든 게 잘 될 거야’라는 긍정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유행어가 됐다.

[라이온 킹]에는 이들 콤비의 곡 외에 레보 M, 한스짐머 등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있다. 이 가운데 남아프리카 출신의 솔로몬 린다가 1930년대에 만든 ‘더 라이온 슬립 투나잇(The lion sleeps tonight)’도 작품의 인기를 등에 업고 히트 대열에 동참했다.

아프리카풍의 흥겨운 토속 리듬이 인상적이다.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푸르게 펼쳐진 아프리카 세렝게티 대초원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기분이 조금씩 흥겨워진다.

디즈니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만들어서인지 만화영화건 뮤지컬이건 드라마는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원작이 비극으로 끝나면 해피엔딩으로 바꾼다. [라이온 킹]도 비슷하다.

원시의 생명력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아프리카의 평야 지대 프라이드 랜드. 영험한 주술사 원숭이 라피키가 미래의 왕이 될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주문을 토하면 얼룩말과 코끼리, 새로 분장한 배우들이 우르르 등장하면서 뮤지컬은 시작된다.

라피키는 이어 이 작품의 주제를 담은 테마곡 ‘생명의 순환’을 부른다. 영원히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거쳐,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자리(our place)를 찾을 때까지 생명의 순환은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 한다’는 내용이다. 장엄한 철학적 메타포(은유)를 담고 있지만,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내용에 귀 기울이기 쉽지 않다. 화려한 볼거리가 벌써 시선을 빼앗기 때문이다.

심바는 아빠 무파사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아빠의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악한 삼촌 스카가 있다. 스카는 하이에나들과 결탁해 형 무파사를 없앨 음모를 꾸미고, 어린 조카 심바를 꼬여 물소 떼가 지나는 계곡으로 유인한다. 아들을 구하려던 무파사는스카의 덫에 걸려 죽임을 당하고, 스카는 심바에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죄를 뒤집어씌운다. 충격을 받은 심바는 고향을 떠나고, 사막을 지나던 중 미어캣 타이몬과 멧돼지 품바를 만나 세상을 잊고 살게 된다.

디즈니가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라이온 킹]의 모태는 흥미롭게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으로 알려져 있다. 언뜻 생각하면 [라이온 킹]과 [햄릿]이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심바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되짚어보면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디즈니만의 ‘해피엔딩’ 법칙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뮤지컬 [라이온 킹]의 한 장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삼촌 클로디어스의 음모로 부친이 억울하게 독살됐다는 것이다. 충격에 빠진 햄릿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삼촌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한다. ‘숙부의 음모로 선왕이 살해돼 복수를 꿈꾸는 왕자’라는 설정이 바로 햄릿과 심바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뒷부분은 완전히 다르다.

햄릿은 우유부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복수의 일념에 불타지만 타고난 성격 때문에 결단을 내리질 못한다. 이슥한 밤, 복수의 타깃인 숙부가 혼자 기도하고 있는 것을 햄릿이 목격하는 장면은 유명하다. 다시 오기 힘든 절호의 찬스이지만 “기도할 때 사람을 죽이면 천당에 간다고 하지…. 저 악당 놈을 천당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라며 머뭇거린다.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한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는 “햄릿의 사색은 그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언제나 끊임없이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 온다”고 지적했다. 결국, 햄릿의 이 머뭇거림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극을 맞는다. 원수 클로디어스가 죽긴 하지만 자신을 포함해 어머니, 연인 오필리어, 오필리어 오빠와 아버지가 줄초상을 당한다.

[라이온 킹]의 심바는 햄릿과 다르다. 햄릿이 ‘자신의 자리’를 못 찾고 방황한다면, 심바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형을 죽이고 조카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스카는 폭정으로 백성들을 괴롭힌다. 여기에 가뭄까지 겹쳐 프라이드 랜드는 날로 황폐해진다.

심바의 어린 시절 여자친구 날라는 스카가 결혼해달라고 괴롭히자 고향을 탈출한다. 극적으로 심바와 재회한 날라는 프라이드 랜드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전해준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죄책감 때문에 주저하는 심바 앞에 라피키가 나타난다. “아빠가 하늘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해주는 라피키, 이때 무파사의 환영이 하늘에서 “네가 진정한 왕”이라고 말해준다.

기업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시대 열어

마침내 심바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가 스카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인다. 악인답게 비열한 방법으로 심바를 죽이려고 하던 스카는 자신의 꾀에 빠져 무파사를 죽인 사실을 실토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프라이드의 새로운 왕이 된 심바는 날라와 결혼해 아기를 낳는다. 테마곡 ‘생명의 순환’이 다시 울려 퍼지며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햄릿]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다.

디즈니의 해피엔딩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장기 침체에 빠졌던 1980년대의 디즈니를 소생시켜준 흥행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각색된 해피엔딩의 대표적인 예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인어공주는 슬프게도 바다의 거품이 돼 사라져버리지만, 애니메이션에서 공주 에어리얼은 난관을 뚫고 왕자와의 사랑을 완성한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 콤비가 다시 손잡은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2000)에서도 공주 아이다와 장군 라다메스는 현대에 환생해 사랑을 완성한다. “원작의 무리한 변형”이라는 비난이 폭주함에도 디즈니는 절대 굴하지 않는다. 해피엔딩 드라마에 ‘더 많은 소비자의 더 많은 만족’이라는 마법이 숨어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온 킹]은 짜릿한 복수극이면서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심바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나는 누구인가’만큼 소설과 영화, 뮤지컬에서 수없이 되풀이돼온 주제도 없다. 그런데 [라이온 킹]에서 이 주제는 흔하게 보던 패턴과는 조금 다르게 변주된다.

[라이온 킹]은 자연과 인간을 ‘생명의 순환’으로 묶어 동일시하는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유장하게 이어지는 생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태어난 사명을, 즉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심바가 어렸을 때 아빠 무파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돌아가신 위대한 왕들이 하늘의 별이 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나도 너를 항상 지켜볼 것이다.” 별과 생명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샤머니즘을 상징하는 주술사 라피키가 ‘생명의 순환’을 부른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생명의 순환’은 불교의 윤회관을 연상시키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위계적 질서를 전제로 한 공자의 가르침과 비슷하다. 그래서 [라이온 킹]에선 묘하게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 디즈니가 전 지구적 보편성을 추구하다 보니 동양 것이건, 서양 것이건 개연성과 논리만 있으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결과인 듯하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 뮤지컬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혔다. 예술가들의 영감 대신 투자자의 의견이 중시되고, 철저한 기획과 시장조사에 바탕을 둔 디즈니 뮤지컬은 1980년대의 뮤지컬 빅 4와는 또 다른 기업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 김형중 - 공연 칼럼니스트.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무대예술의 경이로움을 글로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가 있다.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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