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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상화를 위한 고언] 조기숙 전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의 진단 

“계파싸움하다 해체한 열린우리당 전철 피해야” 

“대의원제 폐지는 이재명 대표 친권 강화 위한 포퓰리즘과 일맥상통”
“다수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 견제해줄 새 정당 탄생 기대해”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민주당에 혁신(?)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6월 5일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 혁신기구 수장에 임명됐으나 SNS상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임명된 지 하루도 안 돼 사퇴했다. 이 때문에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다시 혁신 과업을 맡게 됐다. 세간의 주목은 덜 받았지만 향후 민주당 혁신의 종착지를 보여주는 건 6월 4일 출범한 더민주전국혁신회의(더혁신회의)다. 과거 혁신위원회가 위원장과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10여 명의 전문가 조직이었다면, 이번 혁신기구의 특징은 전국 대중조직이란 점이다. 더혁신회의는 100여 명의 상임위원을 위촉했고 ‘20만 혁신당원 모집’ 운동 등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혁신을 평가하기 위해선 2000년대 ‘노무현의 혁신’과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당시도 지금처럼 정치와 정당 혁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았다.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여론이 무려 50%가 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4년 차에 접어들 무렵에는 정치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족도가 대단히 낮아졌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과거에 벌인 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그는 2006 년 1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갤럽인터내셔널의 밀레니엄 서베이에 참여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을 대상으로 정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정치 만족도가 제일 낮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2006년 자체 조사 결과 정치 만족도는 75%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매일경제에서 김상협 전 기자가 주도한 ‘정치 개혁 어젠다’에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임기 말,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우리가 제안한 개혁 어젠다 10개 중에서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실행했다며 놀라워했다. 국민의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이뤄진 셈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언급하는 ‘노무현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됐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당 후보의 대선 패배 원인으로는 열리우리당의 해체가 지목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은 불안정한 거버넌스(governance)에 있었다. 2등 최고위원이 대표를 계승하는 제도라서 몇 년 새 8명의 대표가 탄생했다. 탈지역주의 외에 뚜렷한 이념적 지향을 갖지 못한 터라 선진화재단의 우파이념 운동으로 뭉친 한나라당과 좌파 민노당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도 겪었다. 특히 당내 다수의 일반당원을 이끌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당권파와 권리당원을 가졌던 유시민의 개혁파는 끝내 화합하지 못했다.

애당초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거에서 미국식 개방 경선을 도입해 초선의원 108명을 탄생시키며 성공했다. 그런데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유럽식 권리당원을 강화하면서 당내 계파싸움으로 간판을 내린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았다. 당시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0%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통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가 2020년 총선에서 20년, 50년 가능 정당을 만들겠다며 다시 권리당원 공천권을 강화한 것이다. 총선 기간 지도부는 ‘조국 선거’가 되지 않도록 관리했고, 권리당원도 숨죽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의 관리능력이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자유한국당이 자책골을 넣은 덕분에 공천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권리당원들의 갑질이 시작됐다. 의원들은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 탈락이 두려워 눈치를 보고 침묵했다. 권리당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복수를 위한다며 검찰·언론 개혁만을 요구했고 다른 목소리는 억압했다. 민생은 뒷전이고 과도한 개혁 법안은 민심의 역풍을 가져왔다. 그 결과, 민주당은 2021년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 참패를 시작으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라는 3연패를 겪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원인 진단 보고서조차 발간하지 않더니, 느닷없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현역 의원과 국회에 돌리고 있다. 이는 최근 민주당 패배 원인을 분석한 필자의 서적인 [어떻게 민주당은 무너지는가]의 진단과 정반대다. 잇따른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민주당이 포퓰리즘 정당으로 전락한 데 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이재명 대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후퇴시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108명의 초선의원을 탄생시키며 성공했지만, 일반당원을 이끈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당권파와 권리당원을 다수 가진 유시민의 개혁파 간 갈등 끝에 해체된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는 20년 전 권리당원을 반대한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권리당원 지상주의자가 됐다. 그 사이 우리나라 정당이 유럽만큼 발전했기 때문일까? 일반당원은 물론 권리당원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이성적인 집단이라 생각되는 공무원 노조와 교사의 정당 참여는 OECD 국가 중 우리만 여전히 불법이다. 어려서부터 정당에서 생활하고 교육받는 유럽식 사회화 과정 또한 없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의 지역구 득표율은 지방선거 지역구(호남 제외) 투표율과 반비례한 바,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전적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현재 총선과는 무관한 대의원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대의원제는 당권과 관련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당권 싸움을 하겠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 자신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것에 대비해 친명이 당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가 어떤 혁신을 추구하는지는 더혁신회의 출범 선언문에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당은 바뀌어야 한다. 먼저, 현역의원들의 통렬한 반성과 혁신을 강력히 촉구한다.”, “180석을 갖고도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촛불개혁의 적기를 놓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하고 성찰해야 한다.”, “20년 전 고비용·저효율 정치를 극복하고자 원내정당을 표방했다면, 이제는 저비용·고효율 정치를 위해 비민주적 의원집중제를 해소하고, 120만 권리당원 중심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중정당으로 과감히 탈바꿈해야 한다.”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위해 홍위병을 동원했듯이, ‘20만 혁신당원’을 동원해 자신의 친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중이다. 혁신위원장도 누가 되건 의미는 없다. 기준을 만들고 현역의원에게 공천 배제의 칼을 휘두르는 데 정치를 잘 모르는 원칙주의자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사모 같은 비판적인 시민의 지지를 받고 국가 미래를 위해 제도 개혁을 이룬 혁신가였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포퓰리스트 지지자를 동원해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후퇴시키고 친권을 강화하는 포퓰리스트에 가깝다.

중도층은 혁신으로 둔갑한 포퓰리즘에 속지 않아

대의원제는 정당법 29조 1항이 규정한다. 정당의 지역·연령·성별 편중을 해소하고 대표성을 높이는 중요한 제도다. 더혁신회의가 직접민주주의를 외치며 대의원제 폐지를 들고나온 건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이 친권 강화를 위해 지지자를 동원하는 포퓰리즘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중도층이 과연 혁신으로 둔갑한 포퓰리즘에 속아줄까? 중도층을 두 분류로 정의하면 적극적 중도층과 소극적 중도층이 있다. 적극적 중도층은 매번 양당을 오가며 선거결과를 결정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다. 소극적 중도층은 정치적 관심이나 지식이 적어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없으면 기권하는 사람들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는 정치 무관심층이었다. 작금의 민주당 문제는 소극적 중도층을 권리당원으로 영입하면서 적극적 중도층을 밀어내는 데 있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에 기대하는 건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을 견제하고 책임 있고 전문성을 갖춘 정책으로 나라를 견인하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을 악마화하면서 구호와 선동이 난무했던 포퓰리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행히도 민주당은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다. 권리당원을 동원해 생각이 다른 사람을 숙청함으로써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 다수 국민이 윤석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해줄 새로운 정당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유다.

-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think@joongang.co.kr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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