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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 

ICT 강국 비결은 ‘개방과 허용’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한반도 5분의 1 면적, 인구 125만 명 소국(小國)의 대통령은 당당했다. 기술의 개방·허용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며 ‘북유럽 디지털 강국’이 된 에스토니아의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방한했다. 포브스코리아가 단독 인터뷰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작은 나라가 성장하기 위해선 다른 나라의 기술과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디지털 혁신에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영주권(e-residency)·전자서명 등 파격적인 디지털 혁신으로 ‘북유럽 디지털 강국’으로 불린다. 이 나라의 케르스티 칼률라이드(49)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위해 2월 6일 방한했다.

1991년 독립 후 한국과 수교를 맺었지만 에스토니아 정상이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공항으로 입국 당시 그의 캐주얼 차림이 화제가 됐다. 입국 당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곧장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오드(ODE) 메종’을 찾았다. 자국의 럭셔리 오디오 브랜드 에스텔론 매장을 둘러보고 국내 전문가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다. 그는 “에스토니아는 굉장히 작은 국가이지만 현재 ICT(정보통신기술)를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며 “오디오 에스텔론도 그 높은 기술력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에 맞는 법체계 구축, 규제 최소화, 민·관의 상호 협력 등을 에스토니아 디지털 혁신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에스토니아는 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동유럽의 숨은 보석으로 불린다. 1918년 2월 28일 건국했지만 옛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8월 20일 독립했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이고, 인구는 경기도 수원시와 비슷한 125만 명 수준이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국을 소개할 때 주로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만든 국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법적으로 기술 친화적”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수수하고 소탈한 행보가 화제였다. 2월 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당시 그는 에스토니아 국가대표팀 재킷 차림이었다. 이어 9일엔 평창에서 크로스컨트리로 몸을 풀고 한복체험관을 찾아 옷맵시를 뽐내기도 했다. /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작은 나라지만 4차 산업혁명이나 사이버 보안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이 에스토니아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보다 디지털 아이디(ID)를 먼저 부여하고, 외국인들도 누구나 100유로만 내면 2~3주 만에 전자영주권을 받아 에스토니아에 방문하지 않고도 현지법인을 세울 수 있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전 세계 창업 밀도 3위의 스타트업 강국을 만들었다. 이 덕분에 최근 블록체인·가상화폐 논쟁이 뜨거운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만의 혁신 DNA가 있느냐’는 질문에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난 유전공학 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과학적으로 그런 DNA는 없다. 모든 인류의 DNA는 대부분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혁신 원동력은?

기술적인 측면을 보면 우리는 주요 기술 개발 국가가 아닙니다. 다만 기술을 스마트하게 이용하는 국가죠. 에스토니아의 민·관은 독립 후 사회의 모든 부분을 디지털화했습니다. 거의 20년이 되다 보니 디지털화에 적응하며 자라난 세대가 생겼죠. 이는 에스토니아가 법적으로 기술 친화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술 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이것이 에스토니아의 특징입니다.

‘법적으로 기술 친화적’의 의미는?

1999년부터 디지털화를 위한 입법을 해왔고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에 좋은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엔 인공지능을 법제화하려 노력하는 중이죠. 예를 들면 로봇과 자동차 간에 사고가 날 경우 책임 소재의 문제가 있는데, 지난해 일어난 사고에서 차주 측이 유죄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법과 제도가 기술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중진국인 에스토니아로선 이런 방향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블록체인·가상화폐 논쟁이 뜨겁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주는 피해에 대해 늘 논의합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죠. 블록체인이 어떻게 에스토니아의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을지 검토 중입니다. 중요한 건 정부와 국민이 이런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있느냐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조력자’라고 말했는데.

정부는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 정책이라면 국민으로 하여금 그들의 데이터가 보호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하죠.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경우 알림이 오도록 하는 법을 마련했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과 논의할 때 익명으로 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디지털 여권을 이용해 서로를 확인할 수 있죠. 사람과 기업이 서로 안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디지털 혁신의 최대 장점은?

경제적 효율성과 그 효과입니다. 전자서명 도입만으로 GDP 2% 정도의 비용을 아꼈는데 시민들이 정부기관을 방문하는 횟수가 획기적으로 줄었기 때문이죠. 디지털화의 원칙은 간소화이지 규제가 아닙니다.

칼률라이드는 2016년 10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에스토니아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 여성 대통령이다. 에스토니아는 총리 중심 정치체계라 대통령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임기 5년 동안 군통수권과 의회입법 거부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당시 에스토니아 의회가 수차례 표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자를 내지 못하자 원로회의가 그를 대통령 잠재 후보로 적극 지지했고, 결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대학(원)에서 생물학, MBA를 전공한 그는 국무총리실 경제자문관, 유럽회계감사원 에스토니아 대표 등을 거쳤다.

그는 방한 기간 중 경기 판교에 위치한 경기혁신센터와 스타트업 두 곳을 방문했다. 그는 현장에서 “물리적 거리는 이제 더는 장애물이 아니다. 에스토니아의 기업 육성 시설과 공유할 것이 적지 않아 보인다”며 “우선 민간 합동 벤처 설립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에서도 신청할 수 있는 에스토니아 전자영주권을 발급받아 현지에 회사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자국 오디오 ‘에스텔론’ 홍보 나선 대통령


▎하이엔드 오디오 매장 오드 메종의 주인인 박원호 DI(디아이) 코퍼레이션 회장이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사말을 하고 있다.
2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하이엔드 오디오 매장 ‘오드(ODE) 메종’. 에스토니아 대통령 방문은 4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미 30분 전부터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드의 주인인 박원호 DI(디아이) 코퍼레이션 회장과 김영진 한독 회장, 최윤정 파라다이스 그룹디자인총괄 사장, 김정수 JS&F 회장, 조남준 PJ 회장 부부, 이인섭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부사장, 최정화 CICI(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 조희경 가온소사이어티 대표 등이 눈에 띄었다.

행사는 에스토니아 국가(나의 조국, 나의 행복과 기쁨) 연주에 이어 박원호 DI 코퍼레이션 회장의 환영사와 대통령 인사말, 에스텔론 설립자의 시연회로 이어졌다. 모든 음악은 에스텔론 오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박원호 회장은 “한국에서 에스텔론 오디오를 취급하면서 에스토니아 대통령까지 뵙게 되어 영광”이라며 “에스토니아는 노래하는 민족, 합창의 나라로 불린다. ‘세 사람이 모이면 서로 화음을 넣어 합창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에스토니아 인에게 음악은 문화와 정체성을 상징한다. 150년간 지속된 합창제를 통해 외세의 침략과 수탈을 버티고 이겨냈기 때문”이라며 “에스토니아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음악이 에스토니아인이 만든 스피커를 통해 한국에서 울려 퍼지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이 자랑스러워한다”며 자국 브랜드인 에스텔론을 확실하게 홍보했다.

이어 에스텔론 설립자인 알프레드 바실코브는 “에스텔론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해 시각과 청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아한 예술품”이라며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고의 사운드를 재생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3곡의 에스토니아 음악을 틀었다. 특히 구소련 치하에서 직접 고통을 겪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Estonian Lullaby(에스토니안 자장가)’가 울려 퍼지자 참석자들은 감동하는 눈치였다. 바실코브는 “아르보 패르트가 지향하는 자유와 순수의 음악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위로와 안식을 준다”고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에스토니아 음악과 함께 피렌체 출신 셰프가 마련한 핑거 푸드와 샴페인을 즐겼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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