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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_(1)] 경쟁의 작용과 반작용 

경영 컨설턴트가 보는 ‘유행과 소멸’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새로운 경제·기술 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해 순식간에 커지는 기업은 늘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상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발전하는 기업도 있지만, 한순간에 파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영에서 싸움은 더 치열해졌고, 유행은 더 가멸차게 옥죈다. 강한 기업보다 변화하는 기업이 살아남는 이유다.

‘경영’(manage)은 라틴어로 손을 의미하는 ‘마누스’(manus)를 어원으로 하는 13세기 이탈리아어다. ‘말고삐로 말을 다루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파생된 ‘마네기아레’(maneggiare)에서도 유래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영의 의미는 국가 정책, 개인 재무관리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됐다. 말을 기업에, 말고삐를 경영이라고 본다면 현재 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의사결정과 실행 역량을 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업은 시장에 존재한다. 다양한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을 매개로 시장에서 모든 참여자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물건을 파는 것도 경쟁이고 사는 것도 경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유통·가격 등 시장의 전제조건이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긴장도 늦출 수 없다. 시장은 균형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경쟁과 변화로 인해 끊임없이 불균형이 생기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런 불안과 불균형이 작용·반작용을 거치면서 진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부단히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끊임없이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변혁하는 산업의 돌연변이, 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자본가의 업적은 여왕들에게 더 많은 비단스타킹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들이 점점 더 노력을 적게 기울여도 그 대가로 비단스타킹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조지프 슘페터 (1883~1950)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던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슘페터가 한 말이다. 그가 통찰한 혁신의 에너지는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구체화한다. 시장과 고객,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수용하고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 시대변화를 따라간다. 혁신적 경영기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명멸하는 유기체와 같이 생성과 확산, 유행과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 산업이 생기면 시장이 커지면서 혁신적 접근이 성과를 거두며 주변으로 퍼져간다.

그래도 가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시장에 파는 경영 활동의 본질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표면적 양상은 변한다. 1만여 년 전 농경이 처음 시작됐던 4대 문명 지역의 농경기술은 당시에는 최첨단이었다. 특히 땅이 비옥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생산성과 생산량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지금도 두 지역은 농토가 많은 편이지만, 더는 첨단 농경기술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고 세계 최대 곡창지대도 아니다.

100년 전 과학적 경영기법, 이제 4차 산업혁명으로

물론 이곳에서 출발한 농경기술은 다른 지역으로 전파돼 더 경쟁력 있는 농업지역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공업도 마찬가지다. 18세기 중반만 해도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은 철강·기계·철도·조선·해운 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독일과 미국, 일본이 따라붙기 시작했고, 20세기 후반부터는 한국과 중국 등 신흥국까지 본격적으로 산업화에 들어섰다. 변화의 원동력은 기술 혁신이지만, 20세기 들어서 체계적인 경영혁신 기법이 자리 잡은 건 새로운 트렌드 덕분이었다.

근대 경영혁신의 효시로 거슬러 가보자. 100여 년 전 과학적 관리기법으로 프레드릭 테일러가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철강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과정을 최소단위로 분해해 요소별 동작의 형태·순서·시간 등을 표준화해 경영합리화와 생산성 향상 방식을 체계화했다. 동시대의 헨리 포드도 컨베이어 시스템을 개발해 자동차 제조의 생산성과 비용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와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만나자 제조업의 표준모델로 발전했고, 서비스도 영향을 받았다. 작은 햄버거 체인이었던 맥도널드를 인수한 레이 크록은 1955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매·조리·판매에서 매장 디자인에 이르는 표준화의 개념을 도입했고, 서비스 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이런 방식으로 테마가 새로 형성되고 파급되는 과정에서 유행이 생겨났다. 시간이 더 흐르면 또 다른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새로운 유행으로 바뀌는 과정이 반복됐다.

20세기 후반 혁신 키워드로는 전략·글로벌·정보화가 유행했다. 전략은 1950년대부터 기업의 경영정책으로 도입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경기침체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시장상황, 경쟁구조, 기술변화와 정책환경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효과적으로 자원을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어떤가. 1989년 소련 붕괴로 냉전 시대가 끝나고 세계시장이 통합되면서 글로벌 확장이 기업들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기에 정보혁명까지 가세해 컴퓨터 기술이 경영관리와 접목되면서 BPR·ERP·SCm·CRm·ISP 등 각종 혁신경영기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진기업의 장점을 배우는 벤치마킹 기법도 널리 퍼져 GE의 식스 시그마, 도요타 웨이 등 특정 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기법도 유행했다.

디지털 시대의 유행에 접근하는 관점

이처럼 기업경영은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격변을 헤쳐가려면 새로 유행하는 첨단 혁신기법을 재빠르게 접목해 시장에서 앞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새 유행을 자신에게 맞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혁신기법은 저마다 강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허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혁신기법도 생성-발전-소멸 과정을 거치면서 시대적 트렌드로 주목받는 경우도 있지만, 찰나의 유행으로 그치거나 과대 포장되는 경우도 많다. 유행 기법 모두가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또 전부 하찮은 것도 아니다. 기업이 스스로 꼭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골라 흡수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가속적 변화와 불확실성의 증폭의 연속이다. 구질서인 아날로그가 퇴장하고 신질서인 디지털이 등장하는 변곡점에서 인공지능·빅데이터·플랫폼 등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연생태계학적 진화에서 보는 ‘불변의 본질’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생태계는 특정 공간을 지배하는 강한 종이 있고, 이에 대응하는 약한 종이 먹이·몸집·활동공간 등을 바꾸는 변종(Variety)으로서 생존을 모색한다. 기업의 생리도 비슷하다. 약자는 강자와 정면 승부하기 어렵다. 고객·기술·디자인 등을 바꾸는 차별화한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위험도 있다. 생태계는 환경에 최적화됐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종을 퇴출시킨다. 14세기 유럽에선 흑사병으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했다. 16세기 라틴아메리카로 유입된 천연두도 현지인 90%를 죽음으로 몰았고 문명 자체를 무너뜨렸다. 오랫동안 분리된 세계에 최적화됐던 신대륙 인류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기업도 똑같다. 현재 시장에만 최적화돼 덩치만 키울 경우 변화적응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다양성과 유연성을 잃게 된다.

진화론 얘기를 다시 꺼내면 진화는 미생물에서 고등 생물로, 단순계에서 복잡계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기업도 물건을 만들어서 사고파는 행위에서 시작해 글로벌 차원에서 공급망 관리(SCm), 전사적 자원관리(ERP), 위험관리(Rm) 등을 고려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단순계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복잡계의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는 시점, 이 변화를 관리하는 역량이 오늘날 기업의 생존 비결이다.

※ 김경준은… 서울대 농경제학과 출신으로 딜로이트컨설팅에서 전략오퍼레이션부문 대표를 지냈다.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국내외 유수 기업들의 경영자문 및 진단 등 기업혁신전략 업무를 주로 맡았다. 인문학에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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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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