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설립 초기 마리오상사는 일본 의류회사에 니트 제품을 공급했다. 1980년대 국내 의류업체 대부분이 외국 유명 브랜드 제품을 OEM으로 생산했던 시절,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의 한 수’를 던졌다. 국내 업체가 90% 이상 아크릴 소재를 사용했지만 나는 이례적으로 레이온, 코튼 등 다양한 신소재를 적용했다. 디자인 연구개발(R&D)에도 과감히 투자, 다양하고 친환경적인 니트 개발에 성공해 1984년엔 여성 패션 브랜드 ‘까르뜨니트’를 출시했다.우수한 품질과 아름다운 디자인은 고객이 먼저 알아봤다. ‘겨울에 입는 옷’이라는 통념을 깨고 사계절용 니트를 선보인 덕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일본 등지에서 수입할 정도였다. 1980년대 후반엔 국내 25개 매장을 오픈했고, 1999년엔 자기상표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까르뜨니트의 성공은 두 번째 ‘나의 한 수’의 발판이 됐다. 당시 해외 출장이 잦았는데, 국내에는 없는 아울렛이 눈에 띄었고, 그 가능성을 보았다. 직접 만든 질 좋은 상품을 유통마진을 줄여 저렴하게 판매한다면 분명 고객들이 반응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1990년대 말, 신림동 5층짜리 사옥이 비좁았던 내게 낮은 가격에 매물이 쏟아지는 구로공단은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다. 당시 구로공단은 공장이 문을 닫거나, 저임금 국가인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하여 한낮에도 거리가 휑할 정도로 황폐해지고 있었다.‘이 시국에, 더구나 구로공단에 무슨 백화점이냐’는 주변 지인들의 핀잔이 부러움과 탄성의 목소리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1년 7월 5일 구로공단 중심에 정통 패션아울렛 마리오아울렛을 오픈하자마자 고객이 무섭게 몰려들었다. 2004년 8월 2관을 열었고, 2012년 9월에 3관을 개점하면서 마리오 패션타운을 완성했다. 이후 주변에 군소 아울렛이 문을 열면서 우리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을 대표하는 패션 성지로 자리 잡았다.도전의 연속이었던 44년 세월이 흐르고 나도 어느덧 70세가 됐다. 은퇴를 고려할 나이지만 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K-패션을 세계에 알리고자 2024년 글로벌 패션 브랜드 ‘실러캔스(COELACANTH)’를 론칭한 것이다.최고의 소재에 감각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색감을 더한 브랜드로, 지난 세월의 노하우와 안목을 담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누가 입어도 멋스럽고 분위기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세 번째 ‘나의 한 수’ 덕분에 여전히 글로벌 진출의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