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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 ESSAY 2025] 이종우 제우스 대표 

결심이자 직감이었던 나의 한 수 


‘나의 한 수’라면 내 인생에 운명적 순간을 말할 것이다. 강한 직감도 포함된다면 나의 한 수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도시바 워크맨을 갖고 싶었는데 내가 받은 건 대우전자의 요요 미니 카세트였다. 투박한 디자인에 크기도 너무 컸다. 뽑으면 길어지는 은색 안테나가 달렸고, 스피커까지 있었다. 가지고 다니기 싫었다. 아버지에게 워크맨과 카세트가 어떻게 다른지 한참 설명한 끝에 워크맨을 손에 넣었고 그날부터 카세트는 아버지의 어학 학습용으로 쓰였다. 한두 해 지나 여름이 시작되던 고3 어느 늦은 밤.

독서실에서 돌아온 나는 다들 자고 있을 시간에 집 안 불이 켜져 있어 의아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단다. 뒤따라간 병원에서 아버지가 응급실에 누운 채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아프지 않을 줄만 알았다. 여름방학 자율학습을 마치고 간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를 기다렸다.

‘이동악 환자의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간호사는 내가 미성년이란 걸 알고 있을까?’ 사회에서 성인 대접을 받아 본 적 없던 내가 ‘보호자’ 자격으로 아버지를 만나다니, 하늘에서 갑작스레 벽돌이 떨어져 머리를 가격한 느낌이었다.

중환자실 환자들은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비슷한 침대에 누워 있어 한눈에 아버지를 찾기 힘들었다. 여러 침대 사이에 빨간 카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돌아누운 아버지는 내가 버린 카세트의 라디오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파수를 맞추고 계셨다. 딱 지금의 내 나이였건만 아버지의 뒷모습은 왜소한 초로의 아저씨였다. 라디오에서는 DJ와 게스트가 주고받는 우스개 사연이 지직거림과 섞여 나왔다.

왠지 우리 둘 다 눈물이 났다. 뜬금없이 ‘제우스’는 어찌 될지,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어떻게 먹고살지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허락하진 않았다. 돌이켜 보면 결심일 수도 있고 직감일 수도 있다. 내 꿈을 담기엔 작다 하찮게 여긴 제우스와 함께할 운명이란 걸, 그 순간 마주했다.

202501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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