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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낭만적 음식기행 - 태양과 그릴이 구워낸 한 덩어리 유혹, 갈색의 행복 

스테이크 

박찬일
철판 또는 숯불, 어디에 구워야 맛있는 스테이크 될까? 마블링 촘촘한 고베의 와규가 최상의 맛을 낼까? 스테이크 먹으며 꼭 화제에 올려야 하는 스테이크 미니 담론, 그 행복하고 맛있는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음식 에세이도 많이 썼다. 스테이크를 다룬 글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는 아주 심플하다. 질 좋고 맛있는 고기를 노련하게 구워서 육즙이 흐르지 않도록 바깥쪽만 익힌, 더할 나위 없이 심플한 스테이크다. 간은 가볍게 소금과 후추만 뿌려 맞춘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고베규는 일본이 자랑하는 맛있는 소의 대명사로 마블링이 잘 배합돼 지방의 맛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키는 고베 출신이다. 일본에서 쇠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고베의 소를 뜻하는 ‘고베규’는 깜짝 놀랄 정도의 값이다. 언젠가 그 지역에서 정육점에 갔는데, 가격표가 5000~1만 엔 선이었다. 당시 우리 돈으로 6만~12만원 정도에 해당되어서 “흠, 좀 비싼 걸? 하지만 뭐 못 사먹을 값은 아니네”라고 했었다. 동행한 친구가 그 말을 듣더니 킬킬 웃었다. 가격표를 다시 보라고. 알고 보니 1㎏이 아니라 100g 가격이 그랬다.

고베규는 거의 분홍색이었다. 지방이 특별히 많은, 그러니까 마블링이 잘 배합된 등심의 색깔이 그랬다. 흰색의 지방이 너무 많이 섞여 있으니 분홍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 물감 배합을 해봐서 알겠지만, 빨간 물감에 흰색을 섞으면 분홍색이 된다. 딱 그 짝이다. 고베규의 신화는 어지간히 고기 좋아하는 분들은 들어봤을 것이다. 모차르트를 틀어주고, 마사지를 해주며, 맥주를 먹이기도 한다.

등심 부위의 값이 그 정도로 비싸다면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럼 과연 맛도 그렇게 좋을까? 개인적으로는 별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너무 기름져서 고기를 먹는다기보다 기름을 마시는 것 같았다. 입에서 팍팍 터지는 맛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고기의 고소한 맛이 아니라 기름이 불에 녹아서 생기는 맛이라고나 할까. 자,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스테이크에 대한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한 20여 년 전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연인>의 주인공이기도 한 배우 양가휘가 내한 기자회견을 했다. 임청하·견자단 같이 공연한 양가휘는 당시 인기 절정의 배우였다. <신용문객잔>의 배급을 맡은 영화사에서는 모인 손님에게 뭘 대접할까 고민했던 모양이다.

자그마치 안심 스테이크가 나온 것이었다. 에이, 무슨 기자회견을 스테이크까지 먹이면서 한담? 하실 분도 있겠지만 당시엔 매체 수도 적었고, 취재진도 단출한 데다가 기자 대접이 나쁘지 않던 때였다. 당시 여성지에서 영화담당 기자를 하던 내 앞에도 스테이크가 하나 올라왔다.

그런데 생전 이런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겉은 시커먼데 칼로 자르니 붉은 살이 보이고 핏물(?)이 줄줄 흘렀다. 결국 나는 포크를 놓고 커피나 한 잔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고기를 좀 먹게 되면서, 그때 남긴 스테이크가 어찌도 아쉽던지.

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의 황당한 추억

당시엔 귀한 모임이나 큰 대접을 한다면, 호텔에 ‘썰러 간다’는 말을 했다. 당연히 스테이크다. 일제 이후에 여전히 살아 있던 일본식 발음인 ‘스테-끼’를 썰어보자는 말도 자연스럽게 회자됐다. 당시엔 무슨 품종의 소인지, 어떤 부위인지, 어떻게 굽는지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고 그저 스테이크라는 낱말이 숭배되던 때였다.

그런데 스테이크란 어떤 고기를 어떻게 굽는 걸 말하는 걸까. 두산백과를 보면 “두꺼운 육류조각을 구운 서양요리”라고 되어 있다. 이어서 “보통은 쇠고기, 송아지고기, 양고기의 연한 부분을 구운 것…. 일반적으로 소고기를 구운 비프스테이크를 스테이크라고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영국과 미국에선 보통 쇠고기를 뜻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돼지, 소(송아지), 양고기, 말고기 등을 모두 스테이크라고 부르지만 점차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쇠고기 스테이크를 의미하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던 때가 1999년 이후였는데 그때 마침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쇠고기 판매를 완전 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먹는 이들이 크게 줄었다. 마트에선 말고기를 팔았고, 맥도날드에서도 돼지고기 버거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쇠고기 스테이크에 대한 갈망은 이내 원래 위치로 그 고기에 대한 인기를 돌려놓았다.

이탈리아는 돼지나 닭, 오리, 말, 양 등을 고루 잘 먹는데 스테이크는 역시 쇠고기가 인기였다. 이탈리아는 쇠고기를 먹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 나라다. 바로 유명한 스테이크인 ‘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의 나라다. 미국의 포터하우스 스테이크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다.

티본 또는 포터하우스라는 고기는 소의 등뼈를 사이에 두고 안심과 등심 부위를 한꺼번에 썬 것이다. 뼈가 티자 형으로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이 고기는 주위의 특성상 중량이 많이 나간다. 아주 얇게 썰면 모를까. 어느 정도 두께로 썰면 1㎏ 이상 나가고 2㎏도 흔하다. 이탈리아에서도 토스카나, 피렌체 쪽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 고기를 반드시 먹어보는 게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나는 운 좋게도 몇 번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혼자 가서 생긴 해프닝을 잊지 못하겠다.

여행하다가 배가 고파서 식당에 들렀다. 토스카나 심장부 쪽, 키안티에 가까운 곳이었다. 메뉴에 유명한 피렌체식 스테이크(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bisteca alla Fiorentina)가 보였다. 웨이터가 손가락 하나를 가리키길래,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했다.

그가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재차 물었다. 정말이야? 하고 말이다. 그럼, 당연하지,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그런데 막상 고기를 들고 오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등심짝 같은 게 아닌가. 가운데 뼈가 티(T)자로 뻗어 있고 좌우로 붉은 고기가 붙어 있는데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러니까, 이런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웨이터가 내민 손가락 하나는 ‘1㎏’을 의미했고, 나는 그걸 ‘1인분’으로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고기 대장이라고 하더라도 1㎏을 어떻게 먹나. 게다가 버섯 파스타도 시킨 상황에서 말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지역에서는 고기를 주문받으면 구워서 바로 내오는게 아니라, 고기의 상태를 구경시켜주려고 접시에 담아서 손님에게 가져온다. 오케이, 사인이 나면 비로소 굽기 시작하는 것이다. 굽는데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맛있는 비계를 바른 빵을 먹고, 파스타도 시켜 먹게 된다.

이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는 숯불로 굽는 게 정석이다. 겨울에는 수확이 끝난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뭇가지를 섞은 참나무 장작으로 굽는다. 현대식 그릴이 아니라 ‘포르노(forno)’라고 부르는, 이글거리는 장작 앞에서 손으로 돌리는 무쇠 원판에 얹어 굽는 게 정석이다.

장작은 오픈되어 있어서 한여름에 요리사는 거의 죽는다. 활활 타는 장작에 대충 자기 몸도 태워가며 고기를 굽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구운 고기는 대개 미디엄 레어 정도의 굽기로 내온다. 소스 같은 건 없다. 레몬 정도나 가져다주고, 신선한 올리브유를 뿌리는 게 고작이다. 1㎏ 정도에서 시작하고, 보통은 2㎏ 짜리가 정석이다.

이 고기는 보통 소에서 나오지 않는다. 키아니나(Chianina)라고 부르는 토스카나의 토종 소인데, 흰색의 커다란 덩치가 별로 먹음직스럽게 생기지는 않았다. 이 소는 곡물 비육을 하는 게 아니어서 고기에 마블링이 거의 없다. 그저 붉은 살코기가 보인다. 씹으면 육즙이 입안에 꽉 차고 꽤 오래 씹어야 넘어간다. 부드럽고 고소한 고기만 먹어온 입맛에는 처음에 약간 거부감이 있지만, 이내 ‘씹는맛’의 원시성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드라이에이징된 쇠고기의 모습. 고기의 표면이 마르면서 ‘갈변’되는데 이것을 ‘마이아르’ 반응과 유사한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육즙의 보존이냐, 마이아르 반응이냐

앞에서 하루키가 한 말 중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 ‘육즙이 흐르지 않도록 바깥쪽만 익힌’이라는 대목이다. 우리는 대개 그렇게 알고 있다. 스테이크 좀 먹어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렇게 이해한다. 고기 겉면을 지지면, 고기 안의 맛있는 육즙이 흘러나가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육즙이 흘러나가지 않아서 맛있는 게 아니라 ‘마이아르 반응’ 때문이다. 모든 자연 산물과 현상은 과학적 해석이 동반되어야 진실이 된다. 고기도 그렇다. 고기는 불에 지지면 표면에 마이아르 반응이 생성된다. 이것이 고기 맛을 좋게 하는 진짜 비결이다. 불에 그을려 지져지면서 고기의 단백질이 갈변되는 현상을 말한다. 숙련된 서양 요리사들은 팬에 고기를 굽고 그것에 눌어붙은 갈색의 물질을 버리지 않는다. 여기에 채소 우린 물과 육수, 포도주 등을 넣어 졸이면 맛있는 소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릴이나 석쇠에 고기를 구우면 마이아르 반응을 반감시키지만 지방이 불에 떨어진 후 그 연기가 고기에 다시 쐬어 생기는 훈연효과가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꼭 철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야 맛있는 스테이크가 되는가. 아직도 논란이 많다. 혹자는 석쇠에 직화로 구워야 맛있다고 한다. 참나무 장작 등에 구워야 진짜라고도 한다. 어떤 경우든 마이아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릴이나 석쇠는 그 효과가 반감된다. 철판이 아니므로 성긴 그물망에 고기의 표면이 닿는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화에 의해 고기에 포함된 지방이 불에 떨어진 후 그 연기가 고기에 다시 쐬어서 생기는 훈연 효과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숯불구이의 미덕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그런데 한국식 고기 굽는 법은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툼한 스테이크는 아니지만, 고기를 얇게 잘라서 먹는 방식의 이점이 있다.

같은 무게의 고기라 하더라도 얇게 여러 번 자르니 표면이 넓어진다. 즉, 불에 지져지는 면적이 늘어난다. 이는 곧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킬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훈연이 되더라도 그 면적이 많아진다.

여기에다 비장의 방법이 추가된다. 간장 양념의 고기가 그것이다. 간장은 감칠맛의 화신(化身)이다. 고기의 감칠맛에 간장의 감칠맛을 더하므로 ‘더블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고기를 간장에 재워 먹는 한국식 굽기는 일본에서도 성행하면서 이미 국제적 명성을 타고 있다. 간장을 고기에 쓰기 시작한 이런 방법은 정말 놀라운 요리법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한 가지 숙성 방법이 인기를 끌고 화제를 모은다. 바로 드라이에이징(dry aging)이다. 강남에서 4∼5년 전부터 혁신적인 유행을 몰고 온 스테이크 처리법이다. 드라이에이징은 고기를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이때 고기는 표면이 마르면서 ‘갈변’되는데 이것이 마이아르 반응과 유사하다고들 한다. 고기 표면에 효소 작용이 일어나 고기의 풍미를 좋게 한다.

잘 에이징된 스테이크감에서는 마치 소시지 같은 입맛 당기는 냄새가 난다. 구우면 생고기인데도 소시지 맛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요새는 워낙 흔해져서 고기를 공급하는 도매상에서 아예 드라이 에이징을 해서 가져다주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드라이에이징에서 숯불이나 철판에 구워서 마이아르 반응과 훈연효과를 일으킨다면 최상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런 전문점에서 스테이크를 맛보고 새로운 경지를 느꼈다고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서울 한 유명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의 숙성실. 드라이에이징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이다.
‘오늘 소 잡는 날’은 ‘반갑지 않은 날’

에이징이란 숙성이다. 즉 시간이 흘러서 더 맛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고기는 잡고 나서 바로 먹으면 맛이 덜하다. 사후경직이 되어서 고기가 질기고, 효소에 의한 숙성 효과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성에 대한 수많은 논란은 끝도 없다. 드라이에이징이냐, 웨트에이징(wet aging)이냐부터 논란을 일으킨다. 드라이에이징은 맛이 좋기는 하지만, 잡균의 오염이 올 수도 있고 갈변된 표면을 잘라내고 구워야 하므로 고기 무게의 손해도 있다(크게 보면 지구 식량의 감소다). 그래서 진공 내지는 표면이 마르지 않게 저온 숙성하는 것을 웨트에이징이라고 하는데, 이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요리사들의 경우도 이런 경우에 “상황에 따라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웨트에이징은 매번 정확한 숙성을 기대할 수 있고, 고기 중량의 감소도 매우 적다. 효소 활동으로 고기의 감칠맛이 더 올라오고, 부드러워진다. 적어도, 스테이크에 있어서는 ‘오늘 소 잡는 날’이라는 광고 문구는 별로 좋지 않다는 뜻이다.

단 한국식으로 먹는 고기는 크게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우선 한국식 고기는 잘게 자른다. 얇으니까 질겨서 못 먹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다. 또 고기의 풍미에서 양념의 역할이 다르다. 소금이나 참기름장, 간장을 뿌려 먹기 때문에 숙성되어 생기는 풍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맛이 줄어들지 않는다.

대신 한국식 쇠고기는 마블링을 따지게 된다. 숙성보다는 고기의 본디 부드러움에 더 집착하는 것이다. 쇠고기에서 마블링으로 품질을 규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호주산 고기도 마블링 스코어(숫자)를 매기기도 하는데, 이는 대개 수출용을 의미한다. 나도 그 고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곡물비육을 해서 마블링 스코어가 6, 7, 8을 상회하는 아주 부드러운 고기였다. 그러나 마블링 스코어가 높아서 부드러운 것이 꼭 맛있다는 건 아니다. 단지 물리적 부드러움에 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우에 대한 기호가 더 높다. 아주 고소한 맛을 내는 개체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우는 스테이크감으로 쓰기에 좋은 개체 특성이 있다고 한다. 고기 근육 안에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 소를 곡물 비육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고소하고 부드러운 한우의 맛을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마블링 중심주의가 가져다주는 문제점도 많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마블링이 잘 나오도록(부드럽게 사육하는) 하려면 곡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러나 소는 곡물보다 풀에 최적화된 몸을 가지고 있다. 되새김질은 섬유질이 많은 풀을 먹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곡물 중심의 식사를 하는 건 소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당연히 곡물은 몸에서 지방으로 바뀌고, 몸의 근육 속에는 지방이 많이 낀다. 이를 ‘마블링이 잘 잡힌다’고 표현하면서 사육의 우선순위에 둔다.

한 덩어리 스테이크는 우주 만물의 상징

과연 소에게 곡물 비육을 많이 해서 마블링을 많이 잡히게 하는 게 이로운 것일까? 여러 사정을 차치하고 의미심장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이른바 ‘슈퍼 소’를 키워 상을 받은 사육업자였다. 그는 비결을 묻는 신문기자에게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소가 커지려면 당연히 나이가 더 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 30개월을 넘기면 소가 잘 자라지 못하고 병에 걸린다. 나는 특별한 사육법이 있어서 30개월 훨씬 넘게 소를 기를 수 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곡물 중심의 사육, 즉 마블링을 높게 받기 위한 현재의 실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게 보내오는 쇠고기 등심의 가격은 마블링 등급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최고등급인 1등급 투 플러스 채끝등심이 7만원(㎏당)이라면 2등급(실제로는 4등급이 되는)은 2만원 선이다. 더 부드러운 립아이 쪽의 등심은 가격 차이가 더 심하다. 소고기 등급은 1++, 1+, 1, 2, 3 등의 순이다.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불이다. 고기를 불에 지져 먹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섬유질 많은 식물과 과실 대신 고기를 사냥해서 구워 먹게 되면, 에너지 얻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 여유 시간에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뇌가 커졌다.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더 혁신적인 진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에 주목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릴을 썼을 것이다. 불에 고기를 구우려면 나뭇가지에 고기를 꿰어 굽는 게 가장 편리하다. 당시에 팬이나 석쇠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원시적인 ‘그릴’이 지금도 거의 모양이 변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금속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무를 쓰기도 한다. 바로 ‘꼬치’라고 부르는 그 물건 말이다. 일본식 닭구이집은 물론, 요새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양뀀’이 바로 원시적 그릴에서 거의 진보하지 않은, 그러니까 호모 에렉투스 시절과 별반 차이 없는 그릴이다.

인간이 엄청난 진보를 이룬 듯 하지만, 여전히 원시시대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아테나이오스는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인간이 고기를 굽는 것은 하늘을 모방한 이래, 변하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태양이 만물을 ‘지지듯’ 우리도 태양을 닮은 화염에 고기를 지져 먹는다는 말이다. 태양-그릴-우주-스테이크. 이 인간 역사 이래 너무도 단순한 구도는 여전히 우리 식탁에서 재연된다. 오늘 저녁, 한 덩어리의 스테이크는 그래서 우주 만물의 한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309호 (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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