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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 ‘엽기적 그녀’들의 개인과외 잔혹사 

인천 십대 과외제자 상해치사 사건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성폭행범 될 뻔한 피해자, 검찰 추가수사로 억울한 죽음 밝혀져…교생실습 교육과정의 허점도 드러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과외교사와 제자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2013년 한여름, 눈 앞에서 벌어진 현실은 영화의 엔딩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김경형 감독의 2003년 작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과외교사 수완(김하늘 분)은 싸움꾼에다 고등학교를 5년째 다니며 공부보다는 놀기만 하는 지훈(권상우 분)을 만나 사사건건 티격태격한다. 이 영화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제자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과외교사의 힘겨운 처지를 리얼하게 보여줬다.

2007년 속편으로 제작된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Ⅱ>는 아예 ‘사람잡는 과외질이 시작된다’는 자극적인 광고 문구를 들이대며 과외교사의 고충을 과장해서 풍자한다. 두 영화는 그래도 과외교사와 제자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2013년 한여름, 눈 앞에서 벌어진 현실은 영화의 엔딩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인천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검사 이헌상)는 8월 7일, 과외지도를 위해 한집에서 생활해온 고교 자퇴생 권성우(16·가명) 군의 얼굴과 온 몸에 끓는 물을 붓고 골프채로 때린 뒤 방치해 패혈증으로 숨지게 한 교사지망생 이주연(29·여·가명)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같은 교사지망생이자 주연 씨의 친구인 이윤희(28·여·가명) 씨, 그리고 윤희 씨의 남자친구인 안상현(29·가명)씨도 상해치사 공범으로 함께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3명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권성우 군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등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 않자 번갈아가며 폭행해 사망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범죄의 등장인물과 수법 자체도 엽기적이었지만 사건 초기에 용의자들이 조작한 증거에 경찰이 말려들면서 수사 결론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10대 제자의 성폭행에 따른 교사지망생의 정당방위 사건으로 발표했다가 나중에 교사지망생이 질투심에 벌인 단독범행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다시 검찰이 나서서 사건을 지휘하면서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잔혹한 범죄의 전모가 드러났다.

‘엽기적인 그녀들’이 벌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5월, 강원도에 소재한 K대학교 사범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주연 씨와 이윤희 씨는 강릉에 있는 J고에서 나란히 교생 실습을 받게 됐다. 내성적인 성격의 주연 씨는 고등학교 동창 윤희 씨와는 단짝친구였다.

윤희 씨가 강릉 K대학교로 진학하자 자신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K대에 재입학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외톨이 성향인 주연 씨가 외향적이고 친구가 많은 윤희 씨를 따르고 의지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J고의 교생실습 평가에서 지나치게 학생들과 사적으로 어울리는 두 사람에게 최하점의 점수를 줄 정도로 이들은 당시 K대학교 10명의 교생들 중에서도 ‘튀는’ 존재들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인천 과외제자 살인사건은 교사지망생이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잔혹한 범죄로 밝혀졌다.(오른쪽부터)KBS 캡처, SBS 캡처, TV조선 캡처
피해자는 100㎏ 몸집의 건장한 체격

두 사람은 J고에서 교생실습을 하는 동안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성우 군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특히 윤희 씨의 적극적인 지도에 힘입어 반에서 꼴찌에 가까웠던 권 군은 10등 안에 들 만큼 성적이 올랐다고 한다. 윤희 씨와 성우 군은 교생 실습이 끝난 7월부터 깊은 사이로 관계가 진전된다.

성우 군은 1학년이었지만 몸이 100㎏가 넘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중학교 때부터 격투기를 배워 학교를 벗어나면 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체격이 건장했다. 두 사람은 열두 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호감을 느껴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설명이다.

하지만 윤희 씨와 성우 군의 ‘부적절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윤희 씨와 주연 씨가 4학년 기말고사를 마친 뒤 고향인 인천으로 와버렸기 때문이다. 권 군은 윤희 씨가 인천으로 떠나자 다시 공부에 의욕을 잃었다. 권 군은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급기야 12월에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성우 군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교사 임용고시 준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윤희 씨는 성우 군을 강릉에 혼자 두면 자신과의 교제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고, 뒤이어 교사 임용에 결격사유가 될까 염려했다고 한다. 윤희 씨는 고민 끝에 단짝 주연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성우 군을 인천으로 불러와서 과외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부모와 함께 있는 윤희 씨와 달리 주연 씨는 인천 연수동에서 따로 원룸생활을 하며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성우 군은 부모에게 교생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검정고시를 치르겠다며 올해 2월 초 인천으로 오게 된다. 속사정을 모르는 성우 군의 부모는 매달 60만~70만원씩의 생활비를 보내 아들의 유학생활을 도왔다.

주연 씨와 성우 군의 불편한 동거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비극을 불러왔다. 세상 물정 모르던 온달을 지극정성으로 지도해 나라의 동량으로 키워 낸 평강공주의 성공담은 애초부터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강공주는 온 힘을 다해 온달을 애정으로 가르쳤지만 주연 씨에게 성우 군은 그저 하루빨리 내보내고 싶은 귀찮은 동거인이었기 때문이다.

성우 군 역시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성우 군은 여전히 윤희 씨에게 빠져있었지만 윤희 씨는 이미 성우 군에게 흥미를 잃은 뒤였다. 더구나 윤희 씨 마음속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 온 ‘남친’ 안상현 씨(대학생)가 자리잡고 있었다.

임용고시 준비에 바쁜 주연 씨는 성우 군과의 원룸생활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친구인 윤희 씨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우 군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주연 씨는 성우 군이 다니던 학교까지 자퇴하고 인천까지 왔기에 강릉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성우 군을 빨리 집에서 내보내고 싶었던 주연 씨는 “성적이 올라야 윤희도 만날 수 있다”며 성우 군을 달래도 봤지만 성적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8월로 예정된 검정고시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자 주연 씨는 마음이 급해져 성우 군을 체벌하며 공부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성우 군이 말을 듣지 않으면 친구인 윤희 씨와 상현 씨에게 SOS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자신때문에 학교를 자퇴하고 인천까지 따라온 성우 군 때문에 부담을 느낀 윤희 씨는 성우 군이 검정고시에라도 합격해야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성우 군을 체벌하는 데 가세했다. 윤희 씨의 남자친구 상현 씨도 자신이 좋아하는 윤희씨를 위해 성우 군을 체벌하는 데 동조했다.

경찰수사 오판, 반전, 또 반전

이렇게 해서 한여름, 인천 연수동의 원룸에서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Ⅱ>의 광고 문구처럼 ‘사람 잡는 과외질’이 시작되었다. 성우 군의 공부 문제에 관한 한 세 사람은 공동운명체였다. 검찰에 따르면, 세 사람은 올해 5월부터 주연 씨 원룸에서 벨트와 골프채 등으로 번갈아가며 성우 군을 체벌했다. 권 군의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주연 씨와 윤희 씨는 권 군에게 “네가 잘되라고 때렸다”며 폭행을 정당화했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6월 26일 오후 3시, 성적이 엉망인데도 태평하게 누워있는 성우 군에 격분한 주연 씨는 냄비 두 개에 물 4ℓ를 끓이고는 누워있던 성우 군의 얼굴과 온 몸에 쏟아부었다. 성우 군을 꼼짝 못하게 제압한 주연 씨는 골프채로 마구 두들겨 팼다. 체벌을 넘어선 끔찍한 ‘학대’이자 폭행이었다. 성우 군이 자신이 가르치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은 알아주지 않은 채 윤희 씨에게 빠져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배경 설명이다.

주연 씨는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성우 군의 애원도 무시하고 쓰러진 성우 군을 욕실에 방치했다. 주연 씨는 이후 성우 군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윤희 씨와 상현 씨를 호출했다. 놀라 달려온 윤희 씨는 “기왕 이렇게 됐으니 네가 성우에게 성폭행당한 것처럼 옷을 벗고 동영상을 찍자”고 제안했다. 주연 씨가 동의하자 윤희 씨의 친구 상현 씨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했다. 성우 군은 이틀 동안 욕실에 방치됐다가 결국 ‘화상에 따른 전신감염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권성우 군이 숨진 6월 29일 새벽, 이주연 씨가 119구급대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경찰에서 “동거를 하며 공부를 가르치던 학생이 나를 성폭행하려고 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때렸는데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성적이 오르지않아 홧김에 성우에게 끓는 물을 부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내 가슴을 만지고 속옷을 벗겨 골프채로 때렸다”며 울먹였다. 참고인으로 불려온 윤희 씨와 상현 씨도 경찰에서 입을 맞춘 듯 같은 주장을 했다.

상현 씨가 촬영해 경찰에 제출한 동영상에는 속옷만 입은 주연 씨가 겁에 질려 울고 있는 모습과 맞은편 욕실 문 앞에서 속옷만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우 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정황상으로는 주연 씨의 주장처럼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였다. 경찰은 ‘성폭행을 피하려다 일어난 정당방위’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주연 씨를 상해치사죄로 구속했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오판이었다.

경찰은 숨진 성우 군의 부모가 죽은 아들이 성폭행범으로 몰린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철저한 재수사를 요구하자 주연 씨를 집중 추궁하기 시작했다. 성우 군에게 뜨거운 물을 퍼부은 주연 씨의 심리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프로파일링을 실시해 주연 씨를 압박했다.

경찰은 주연 씨의 전화 통화 내역을 검색하다가 애초 주연 씨가 성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한 6월 27일보다 하루 앞선 6월 26일 오후에 성우 군을 때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의 강도 높은 추궁에 주연 씨는 “성우가 성폭행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주연 씨는 자신이 성우 군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 화가나 뜨거운 물을 붓고 폭행했다고 자백했지만, 이때까지도 공범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했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이에 따라 성우 군이 윤희 씨만 좋아하는 것에 강한 질투심을 느껴 주연 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이번 사건이 질투심에 빠진 교사지망생 주연 씨의 단독범행으로 언론에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경찰의 오판이었다.

숨진 성우 군이 왜 주연 씨의 말은 듣지 않고 윤희 씨만 따랐는지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잠정 결론은 며칠 뒤 검찰의 추가수사로 다시 뒤집어졌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주연 씨의 단독범행만으로 보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사망자의 사체 상태가 의문을 품게 했다.

인천지검 형사부 서정화 검사는 숨진 성우 군의 몸이 끔찍한 상처투성이라는 점에 놀랐다. 성우 군이 당장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중한데도 원룸에 다녀간 윤희 씨와 상현 씨가 성우 군을 방치한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 검사는 경찰 수사팀에 추가 수사를 지시했다.


▎삭제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복원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검찰이 과학수사로 공범 2명 밝혀내

수사팀은 윤희 씨와 상현 씨의 압수된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문자메시지와 음성녹음 내용을 복원해 재분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컴퓨터 법의학’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나 인터넷 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과학적 수사기법이다. 인천경찰청 디지털포렌식 팀이 두 사람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을 복사한 내용만 A4 용지로 200매가 넘는다.

삭제된 문자메시지를 복원하자 숨겨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올해 5~6월에 주연 씨뿐만 아니라 공범인 윤희 씨와 상현 씨도 성우 군을 수차례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시로 성우 군의 공부 상황을 체크한 윤희 씨는 친구 상현 씨까지 동원해 성우 군을 감시했다. 윤희 씨는 주연 씨에게 “(성우를) 더 때려야 한다. 그렇게밖에 못 때리냐” 등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장막에 가려져있던 사건의 ‘원인 제공자’ 윤희 씨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피해자 성우 군이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하고, 과외교사 주연 씨의 기괴한 단독범행으로 묻힐 수 있었던 이번 사건은 이처럼 검찰의 과학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현재 공범 이윤희 씨는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복원된 문자메시지와 주변 참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공소 유지를 자신하는 눈치다. 어찌 보면 구겨진 경찰의 자존심을 상급 수사기관인 검찰이 살려준 셈이 됐다.

검찰의 수사결론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점은 남는다. 격투기를 익히고 100㎏가 넘는 거구의 성우 군이 키가 160㎝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의 주연 씨가 휘두르는 무지막지한 체벌을 순순히 받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은 “성우 군이 정말 좋아한 윤희 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얻어맞으면서까지 주연 씨로부터 과외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엽기적인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일부 네티즌은 이번 사건의 등장인물 4명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얽히고 설킨 무슨 말 못할 애정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이것 역시 추정에 불과하다. 주연 씨가 성우 군의 과외지도를 맡아달라는 윤희 씨의 부탁을 왜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의문거리다. 검찰도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다만 두 사람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특별한’ 친구관계로 추정된다고 했다.

윤희 씨와 상현 씨는 주연 씨에게 성우 군의 과외지도를 요구하면서 “성우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원이(가공인물)’의 가족이 다친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연 씨가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해져서 성우 군에게 끓는 물까지 퍼붓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이’는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다. 윤희 씨가 2009년에 주연 씨에게 소개해 준, 문자메시지로만 교제하는 주연 씨의 남자친구다.

윤희 씨는 자신이 가진 휴대전화의 다른 번호를 이용해 주연 씨에게 지난 4년 동안 ‘원이’인 것처럼 행세하며 다수의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주연 씨는 ‘원이’가 실재하는 인물로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윤희 씨가 친구가 없고, 외톨이인 주연 씨를 위해 가공의 남자친구 행세를 해왔다는 설명이다.

검찰이 주연 씨를 추궁하고 설득하면서 “원이는 윤희씨가 만든 가공인물이다”고 알려주자 주연 씨는 “4년 동안 윤희에게 속았다”며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주연 씨가 공범인 두 사람의 범죄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현재 윤희 씨는 ‘원이’라는 인물로 행세한 데 대해 경찰에 “그냥 장난으로 주연이에게 보낸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교사지망생 2명 모두 성격이상 판단”

한편의 오싹한 납량특집 드라마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엽기적인 이번 사건은 후폭풍도 거셌다. 숨진 성우 군의 아버지(46) 등 가족들은 “교생 이씨를 믿고 자식을 인천으로 유학 보냈는데 끔찍하게 배반당했다. 자식이 억울하게 성폭행범이 될 뻔했다”며 관련자들의 엄벌을 요구하고 있어 가해자 3명은 재판에서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의 교생 실습이 이뤄졌던 강릉 J고의 교장과 교감도 바뀌었다. 성인과의 교제도 서슴지 않게 된 10대들 성문제의 심각성은 물론 일선 학교의 학생지도에 구멍이 뚫린 데 대한 문책인사로 알려진다. J고 당국도 계면쩍었는지 지난 7월 18일 “성폭력은 학생이 소속된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건강한 학교생활을 저해하게 된다”며 특별히 성폭력 예방에 힘써달라는 안내문을 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학부모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현행 교생실습 시스템의 허점도 드러냈다. 인천경찰청이 주연 씨와 윤희 씨에 대한 프로파일링(범죄심리분석)을 실시한 결과 “보통사람들과 다른 ‘성격적 장애’ 증상이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다. 검찰은 이 의견서를 토대로 주연 씨와 윤희 씨의 교우관계가 성장이 멈춰진 채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졸업한 K대학 사범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고 있고, 지금까지 5400명 졸업생을 배출해 전국 각지에서 교사로 활약하고 있다”는 소갯글이 버젓이 실려있다. K대학은 특히 강원도를 대표하는 미션계 학교로 알려져 있어 학부모들의 충격이 더 크다.

201309호 (201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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