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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제왕의 심금 울린 암수 꾀꼬리 노랫소리 

겉모습이 아름다운 데다 울음소리까지 맑아 시가(詩歌)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정겨운 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알에서 깨어난 새끼에게 먹이를 잡아 나르는 암수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80년대 유행했던 가수 조용필의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의 노랫말이다. 꾀꼬리는 예부터 목소리가 고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으며, 국민가수께서도 꾀꼬리 음성으로 숨이 넘어가듯 멋지게 불러 젖힌다. 수탉이 24가지 소리를 종횡무진 낸다는데, 꾀꼬리는 그보다도 많은 32가지의 소리 굴림이 있다고 한다.

꾀꼬리는 참새목, 꾀꼬리과의 중형 새로 지구상에는 28종이 알려져 있고, 유라시아대륙에는 2종만이 서식하는데, 한국에는 한 종이 있다. 꾀꼬리(Oriolus chinensis)는 날렵하게 생긴 멋쟁이 새로 청아한 울림이 있는 울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모양새도 날씬하고 샛노란 것이 매우 아름답다.

몸길이는 25㎝로 우리나라에는 흔한 여름철새로(여름철새는 대부분이 숲새이고 겨울철새는 하나같이 물새이다) 서양에서 부르는 보통 이름은 ‘black-naped oriole’인데 이는 ‘목 뒤쪽(naped)이 검은(black) 꾀꼬리(oriole)’란 뜻이다. 한국·시베리아·우수리지역·중국동북부·북베트남 등지에서 새끼를 치고, 태국·미얀마·인도북부에서 월동하며, 동남아 일부에서 텃새로도 생활한다. 동남아에서는 꾀꼬리를 잡아 사고팔며, 관상용으로 기르기도 한다.

이 새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강하고 붉은 부리는 길이가 2.8~3.4㎝이며, 온 몸이 선명한 노란색(golden) 깃털로 덮였으며, 검은 눈선(눈을 감싸는 띠, eye-stripe)이 뒷머리까지 이어져 마치 머리에 띠를 두른 듯한 모양이다. 날개 끝에는 검은 줄무늬가 있으며, 꼬리는 검은 색으로 끝은 노랗고, 다리는 검은 회색이다. 암컷은 수컷에 비해 체색이 좀 흐리고, 눈선이 좁으며, 새끼는 암컷과 비슷하다.

개미산 문질러 몸의 기생충을 잡는 습성

잡식성으로 봄철에는 매미·메뚜기·잠자리·거미와 몸에 털이 부숭부숭 많이 난 나방이의 애벌레인 송충(松蟲)이 같은 모충(毛蟲)을 주로 잡아먹으며, 가을철에는 식물의 열매를 두루 먹는다. 한편 까마귀, 물까마귀들이 둥지를 공격하여 알을 꺼내 먹으며, 매들이 주된 천적이다.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한 꾀꼬리는 심산오지에서부터 농촌과 도시의 공원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진을 치고 산다. 번식기는 5월에서 7월 사이로 활엽수와 침엽수의 수평으로 뻗은 나뭇가지 사이에 둥우리를 틀며, 풀잎이나 나무껍질·풀뿌리 등을 엮어서 밥공기 모양의 둥지를 튼다. 알자리에는 가는 풀뿌리나 잎사귀, 깃털 같은 것을 깐 후에 연어알 같은 반점과 검은 얼룩이 있는 네댓 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어미가 품는데, 그때면 수컷은 무척 바쁘게 설치면서 먹이를 물어 나르며, 포란한 지 14~16일이면 부화하고, 새끼 기르기(육추, 育雛) 2주 후에 새끼는 집을 떠난다.

‘호호, 휘오, 휘호.’ 부드러운 휘파람소리를 내는데, 일단 둥지를 틀면 제 영역에 접근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니, 사람이나 개, 고양이 등이 가까이 다가가면 단박에 발끈하여 ‘까앗까-’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살기등등하게 드센 공격을 퍼붓는다. 휙휙 머리 정수리를 죽기 살기로 쪼려고 드니 섬뜩한 느낌에 주눅이 들고, 얼이 빠질 지경이다. 이게 홈(그라운드)의 이점(home advantage)? “똥개도 제 집 앞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고 꾀꼬리 텃세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그런데 꾀꼬리 녀석은 가끔 숲 속의 개미집에 천연덕스럽게 덥석 내려앉아 날개를 활짝 펴고 기어오르는 개미를 깃털 속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개미를 부리에 물고 깃털이나 살갗에 문지르고 있으니 이를 소위 ‘개미목욕(anting, 의욕, 蟻浴)’이라고 한다. 개미가 분비하는 강한 산성인 개미산(의산, 蟻酸, formic acid)을 문질러 몸의 기생충을 죽여 없애는 행동인데, 몇몇 조류에서 볼 수 있는 해괴한 습성이다. 이는 전신에 모래나 흙을 뒤집어쓰는 ‘모래목욕(사욕, 砂浴)’, ‘흙 목욕(토욕, 土浴, dust bathing)’이나 물에서 하는 ‘물 목욕(수욕, 水浴)’도 다르지 않다.

개미산은 곤충이나 진드기·곰팡이·세균 따위를 죽일뿐더러 잡은 곤충에 문질러 벌레를 맛나게 하여 잡아먹고, 또 깃털을 맵시 나게 치장할 때 바르는 기름(preen oil) 대신으로 쓰는데, 새 중에는 개미 말고 지네를 잡아 독을 분비하게 하는 ‘지네목욕’도 한다.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까지도 뭇 기생충이 달려드는 모양이다.

닭을 바깥에 쳐두면 풀잎도 따먹고, 검불 바닥을 싹싹 헤집어 지렁이 등의 벌레를 맘껏 잡아먹는다. 이제 밥통(모이주머니)이 좀 찼다 싶으면 흙구덩이를 파고는 벌러덩 드러누워, 연신 다리도 뻗대고, 신명 나게 날개로 모래나 흙을 전신에 퍼덕퍼덕 퍼부어대니 그것이 사욕, 토욕으로 모래흙을 속 깃털 사이사이에 묻혀 살에 붙어 있는 기생충들을 떨어낸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황조가(黃鳥歌)’의 주인공

어디 그뿐인가. 우리 시골의 뒷산 중턱에 보면, 움퍽 들어간 구덩이에 누런 진흙탕물이 고인 곳이 있으니 거기가 바로 산돼지목욕탕이다. 놈들이 떼지어 나뒹구니 역시 몸에 붙은 진드기들을 떨쳐내자고 그런다. 그리고 바로 구덩이 옆 참나무 둥치가 껍질이 베껴진 채로 반들반들하니 모가지나 몸통의 가죽을 쓱쓱 비빈 자리다. 게다가 웅덩이에서 산새들이, 조롱(鳥籠)의 물통에 새들이 목욕을 하지 않던가.

영어사전을 들쳐보면 꾀꼬리를 나이팅게일(nightingale)로 써 놓아 혼란을 일으키는 수가 더러 있다. 나이팅게일(Luscinia megarhynchos)도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데, 참새목-딱새과-방울새속의 이 새는 깃털 색도 옅은 갈색으로 곱지 않고, 꾀꼬리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새이며, 유럽이나 서아시아에 살면서 겨울나기를 서아프리카에서 하고 우리나라에는 오지 않는다.

꾀꼬리를 한자어로 황조(黃鳥)라 한다. 모습이 아름다운데다가 울음소리까지 맑아 예부터 시가(詩歌)의 소재로 많이 쓰였는데 그중에서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黃鳥歌)’가 유명하다. 왕은 왕비가 죽자 화희(禾姬)와 치희(雉姬) 두 여인을 계실(繼室)로 맞았는데, 이들은 늘 서로 싸움질하였다. 왕이 사냥을 가 궁궐을 비운 틈에 화희가 치희를 모욕하여 한(漢)나라로 쫓아버렸다.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뒤를 쫓았으나 화가 난 치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탄식하며 나무 밑에서 쉬는데, 짝을 지어 날아가는 황조를 보고 황조가를 지었으니, “펄펄 나는 황조는 암수가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아무튼 꾀꼬리는 고구려시대부터 오래오래 우리와 역사를 함께한 탓에 한국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는 새렷다!

201409호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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