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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 피어나는 집 |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의 포천시 신북면 자택 - “책을 품은 숲에서 나무 되어 살겠소” 

출판사업 30년 외길 끝에 내촌면에 20만 평 수목원도 조성… 문인들 위한 휴식처, 명사들의 묘역 만들어 보답하고 싶어! 

글 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사진 김현동 기자

▎‘ㄱ’자형으로 길게 늘어선 살림집은 출판사 연수원으로도 쓸 요량으로 지어졌다. 내부 공간배치가 단순하면서도 시원해 여느 가정집과 다른 모습이다.
“들판에 이름없는 꽃은 없어요. 우리가 모를 뿐이죠.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자연의 친구들과 더 친해지려면 지금부터라도 그들의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지. 가을 한복판에서 벌판을 누비는 이 친구는 벌개미취, 이렇게 꽃필 때면 줄기가 아홉 마디가 되는 이 녀석은 구절초, 이건 꽃송이가 1~2㎝로 작은 노란색 산국, 꽃필 무렵이면 이렇게 약간 쓰러지는 요 녀석은 쑥부쟁이….”


▎가을이 깊어가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산촌마을에 자리한 자택에서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과 부인 황옥순 씨가 외손자 강민 군과 함께 휴일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산골, 그의 거처에 당도했을 때 더러는 연보라빛으로, 또 한켠에는 하얗고 노란빛으로 지천에 만개한 들국화 군락들을 보며 “오호 들국화!”를 연발하는 일행에게 그가 들국화 식구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그는 나무와 들풀에 심취해 나머지 생을 이들과 ‘동무’하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삶의 터를 닦은 조상호 (64) 나남출판 회장이다. 평생을 출판인으로 2천여 권의 책을 출간하며 외길 인생을 달려온 그는 이제 자연 속에서 한 그루의 나무처럼 새로운 삶을 소망하고 있다.

“달리는 자전거를 멈추면 쓰러지죠. 가는 길이 힘들더라도 절대 멈추지 말고 천천히라도 가야 하는 게 숙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가끔은 정말 그대로 멈춰선 채 쉬고 싶었어요. 하지만 쉬는 방법도 몰랐고 미지에 대한 정체 모를 불안감이 있었던 겁니다.” 결국 그가 쉼터로 택한 곳이 이 산골. 나만이 숨쉴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마음으로 나무 가꾸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온갖 세파와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출구’였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됐다.

‘책쟁이’ 외길 접고 숲에서 새 인생을 심다


▎부인 황씨가 직접 키워 수확한 김장용 고추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 만든 종이를 매개로 세상에 책을 쏟아냈으니 나무에 대한 원죄의식이 나무 사랑으로 바뀐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지만, 그가 미친 듯이 나무 심는 일에 빠져든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파주시 금촌에 나남출판의 책 창고를 신축할 때 은행 대출을 받으면서 우연히 은행이 부실채권으로 갖고 있던 파주시 적성면의 임야 1만 5천 평을 떠안게 됐다. 이 땅을 그냥 내팽개쳐두기도 뭐해 3년 동안 느티나무·꽃사과·메타세콰이어 등의 묘목을 번갈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생 ‘책쟁이’로만 살았던 그의 어설픈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무들은 심는 족족 말라 죽었다. 물이 너무 많은 토양인 줄 몰랐던 백면서생의 교만한 도전은 번번이 애꿎은 생명만 빼앗는 꼴이 됐다.

“그 찬란하고 소중한 생명을 죽인 죄책감이 컸어요. 곧 산림조합원이 되어 조합의 지도도 받고 독학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집사람과 아이들까지 데려와 나무 심기를 여러 해 동안 반복했지요.” 그의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어 산림조합의 가르침을 받아 심은 자작나무 1천 그루가 벌써 20년생의 쓸 만한 재목으로 성장해 숲을 이루었다.

듣고 보니 그의 나무 사랑은 꽤 오래전에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은 장성해서 어느덧 36세가 된 아들 (조지훈·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박사과정)의 초등학교 입학기념으로 옛집 아파트 입구에 큰돈을 들여 커다란 느티나무를 심었을 정도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나무도 이제 거목으로 자라 그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나무를 심는 일은 세월에 대한 정직한 보상이고 생명에 대한 애착입니다. 만약 지금 30년생 거목을 비싼 값에 산다면 그건 기실 나뭇값이 아니고, 그 세월에 대한 값을 지불한 것으로 봐야지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돈 주고 살 수는 없기에 더욱 값진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무를 보면 비록 제자리에 붙박이로 서 있지만 마치 크게 소리치며 기쁘게 뛰어다니듯 환호작약하는 느낌을 건네받아요.” 그렇게 나무와의 열애는 갈수록 깊어갔다.

20년 전 시작된 나무와 열애


▎조 회장이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꾸민 지하서재로 내려가는 계단. 서재는 집 앞쪽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뒤뜰이 내다보이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는 20여 년 전 친구의 시골집이 있던 포천시 내촌면 광릉수목원 뒤편에 사두었던 포도밭과 천수답, 임대받은 일부 국유림에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곳에 거처를 겸해서 출판사 연수원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70평 남짓한 집을 짓고 주말이면 농부가 됐다. 당시 서초동에 있던 출판사 사옥 앞에서 아스팔트 공해에 찌들어가던 나무들도 안쓰러운 마음에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 나무가 침묵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쯤이었다. 주말이면 이곳으로 달려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지면 피곤함에 지쳐 잠에 곯아떨어졌다. 주중에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때론 가뭄과 추위를 견디고 있을 나무가 걱정돼 만사를 제쳐두고 자동차 머리를 그쪽으로 돌리곤 했다.

아내가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몸을 혹사했지만 온통 푸르름 속에 묻힌 무념무상의 시간들은 오히려 치유의 손길을 건넸다. 그는 “살면서 고민했고 자학했던 시간들도 왜곡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돼 편안하고 늠름해졌다”며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너털 웃음을 쏟아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잘 자란 50여 그루의 매실나무·앵두나무·밤나무·감나무 등의 열매가 무르익을 때면 친구들도 이곳을 찾는다. 40년 지기인 아내 황 옥순(60) 씨가 가꾸는 집 뒤편 텃밭에는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김장용 배추와 무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자녀들의 안녕과 성장을 기원해 심은 30~40년생 반송두그루는 이제 제법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다. 아내가 좋아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를 침실 창밖에 심어놓아 침대에 누워서도 언제나 눈맞춤을 할 수 있게 했다.

“나무들이 햇볕을 놓고 다투지 말라고 옮겨 심다 보면 흙 속에 지렁이가 잔뜩 진을 치고 있어요. 나무는 햇볕과 물, 바람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렁이가 표층 밑에서 잔뿌리와 노닐며 나무를 키우고 있었던 거죠. 생명의 신비에 숙연해져요. 세상 역시 보이지 않는 모든 이의 노력과 도움에 힘입어 살아가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그의 집 주변 숲 속에는 그처럼 자연의 신비에 심취한 친구들이 은퇴 후 한두 명씩 모여들어 이제 9명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대부분 학교(고려대 법학과) 동문이거나 출판사업을 하다 연을 맺은 교수 출신들이다. 각자 개성이 넘치는 이들은 숲 속에 안겨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이따금 만나 ‘함께 사는 유쾌함’을 누리기도 한다.

나무에 대한 애정이 수목원 사업으로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아 편히 쉬면서 담소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인 넓은 거실.
“이제 예순이 넘은 내게 준비된 일은 나무 가꾸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 그는 요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좌우명에 기대어 더 큰 도전에 나설 생각이다. 도전의 시작은 오래전 떠안았던 파주 적성의 나무농장을 반분하는 도로신설계획서가 날아들면서부터다. 졸지에 10년 넘게 가꾼 나무들이 갈 곳을 잃게 되자 그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깊숙한 산중의 땅이 필요했다. 2년여를 정신 없이 가평·연천·포천·파주 등 경기 북부의 산들을 찾아 헤맸다. 지천에 산인데도 적합한 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찾으면 바위산을 끼어 토양이 척박하거나 진입도로가 없고, 군부대의 통제를 받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헤맨 끝에 어렵사리 2008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포천시 신북면에 20만 평의 임야를 마련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의 도움을 받았고 가진 것을 몽땅 쓸어 담았다. 너무 큰 땅이어서 벅찼지만 가파르지 않은 포근한 산림에 땅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1㎞정도의 맑은 실개천이 마음에 들었다. 또 수령이 100년 가까운 산뽕나무·팥배나무·산벚나무, 북방한계선에 선 동백나무는 ‘태고의 음향을 간직한 듯’해 그는 이 산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때마침 그의 땅이 포천시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장으로 선정돼 공공산림 가꾸기 사업을 통해 간벌과 가지치기도 마쳤다. 그는 산림경영계획허가를 받은 뒤 수종 교체를 위해 참나무가 대부분인 잡목을 벌채했다. 파주 적성에 버려진 나무들을 이식하고 전국 여기저기에 땅을 임대해 심어뒀던 모과나무 등도 제 살 곳을 찾게 되었다.

도전은 본격화됐다. 한때 대학에서 강의할 때 만난 조경업을 하는 제자 등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나무 공부에 돌입했다. 거제도 외도에서부터 용인 한택식물원, 연천의 허브빌리지, 오대산 자생식물원 등 전국의 수목원을 돌면서 배우고 또 배웠다. 회사 일로 외국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본업인 출판업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시간과 재원을 모두 산림경영에 투입하겠다는 각오로 얼마 전에는 출판사 운영마저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사색의 숲’ 향한 대장정의 첫 걸음


▎서재는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듯한 분위기다. 조 회장은 이곳에서 책과 함께 사색하고 글을 쓴다.
나무와 숲을 향한 그의 대장정은 이제 본궤도에 진입한 듯하다. 소요산의 한 줄기에 자리 잡은 그곳을 ‘나남 수목원’이라 이름지었다. “‘나’와 ‘남’이 함께 어울리는 지식의 저수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나남출판에서 이름을 따왔다.

“처음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겨울에 나뭇잎을 떨어뜨린 채 나목으로 엄동설한을 지켜내다 봄이면 말없이 새싹을 틔우는 낙엽송에 경외심이 솟아요. 그 생명력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니까요. 지구에 잠시 소풍 나온 인생이니 그 기념으로 나무를 심고 수목원을 가꾼다고 할까요.”


▎어린 강민 군이 외할머니를 보자 반가움에 달려가고 있다.
그간의 아마추어 조경 경험을 바탕으로 헛개나무·밤나무·느티나무·자작나무의 묘목장을 튼튼하게 만들고 벌개미취와 분홍 바늘꽃이 광활하게 춤추는 야생화 동산도 마련 중이다. 삶이 허락하는 한 나무들이 골고루 햇볕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간 벌과 옮겨심기를 계속하면서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요즘 또 다른 꿈을 꾼다. ‘꿈꾸는 사람이 창조한다’는 말을 굳게 믿으면서. 그 꿈은 머지않아 현실로 이루어질 태세다. 그는 이 수목원 의 원시림 속에서 생각과 삶이 아름다운 벗들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몇 날 며칠을 밤샘하며 토론 할 수 있기를 꿈꾼다. 평생 철학과 우정을 나눴던 벗들을 위해 산간 도서관을 지어 퇴직 교수나 언론인, 문인들이 자신의 서고를 꾸며 집필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미 수목원 내 자그마한 호숫가에는 100여 평의 도서관이 지어졌고 현재 200여 평을 더 만들고 있다. 또 이곳에는 뜻이 맞는 한의사를 모셔와 약초밭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허브치료로 몸과 마음도 북돋을 계획이란다. 그들의 손자들은 개울가에서 가재잡고 물장구를 칠 것이고, 부인네들은 꽃밭과 채마밭을 가꾸며 지천으로 널린 산채를 따서 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할 것이다.

명사들 영면의 안식처 만들고 싶어


▎소요산의 자락인 포천 신북면 나남수목원 언덕배기에는 3천 그루의 반송이 무리지어 자란다. 조 회장이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수목장을 염두에 두고 수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가꾼다.
그보다 더 큰 뜻은 수목원 중턱 깊은 곳에 숨어있다. 그가 안내해 도달한 언덕바지에는 3천 그루의 아름다운 반송이 산허리를 타고 도열해 있었다. 장관이었다. 둥글고 우아한 모습으로 형태를 잡아가는 반송은 천천히 자라지만 옹골차고 위풍당당한 모습이 좋아서 지난 몇 년간 수백 그루씩 맞아들였다.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한 이들을 찾아내 영면의 자리로 모시기 위해 조성 중인 곳이다. 일행 중 누군가 “조 회장이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닮은 묘원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귀띔했다. 많은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명한 예술가들과 명사들이 잠든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 시인 샤를 보들레르,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소설가 기드 모파상 등이 잠들어 있다.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숲 속 산책코스로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는 “가까운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현장이기도 하겠지만 그분들을 함께 모시면 귀천 후라도 그분들이 덜 외로울 것 같은 일념에서” 조성하고 있노라고 덧붙였다. 그의 한 후배가 그를 지켜보며 깊은 철학이 담긴 수목원과 이를 조성하는 데 푹 빠져 사는 그를 위해 이런 시를 썼다.

“세상을 위해 종이 위에 침묵의 말 건네던 사람 언제부터인가 더 큰 침묵의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돌멩이로 모음을 쓰고 나뭇가지로 자음을 썼다. 흐르는 계곡의 물과 능선을 넘어온 바람으로 줄거리를 만들었다/ ...... / 책은 나무가 산고 끝에 잉태한 아들. 평생 책의 아들이었던 그는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 나무속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세상 가장 큰 책을 쓰고는 흙 묻은 등산화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그도 한 그루 느티나무 되어 책 속의 쉼표로 찍혔다. 겨울에도 푸른 쉼표로”(임병걸, ‘세상 가장 큰 책’)

아스라한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무리를 보며 그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책에 파묻혀 사는 30년 동안 언론인이나 문인, 학자들의 원고를 읽는 최초의 독자로서 기쁨이 컸고 그 책을 읽어준 많은 독자의 소리 없는 환호성도 느껴온 세월이니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한 셈법은 사람들의 것일 뿐 나무는 그 푸름 외에는 말이 없지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처럼 모든 나무가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음을 배울 뿐입니다.”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켜오면서 이제 얼굴까지 닮아 있는 아내 황씨도 맞장구를 친다. “평생 한 뜻을 갖고 한 우물을 판 사람이 하는 일이니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따르고 있어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아름다운 자연의 순리를 깨달으며 죽는 날까지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는 그 꿈을 위해 나아갈 테니까요. 또 우리의 일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더 이상 무얼 바라겠어요.”

이들 부부와 때마침 놀러 온 딸 완희(33)·사위 김태헌(38) 씨 부부와 외손자 강민(3) 군의 웃음소리가 가을 산촌마을에 쨍하게 울려 퍼졌다. 다들 유쾌해 보였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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