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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연구 | ‘최면술’까지 동원… 몽타주 요원들의 세계 - ‘ 과학수사’의 최일선 CCTV 사각지대를 비춘다 

 

글 윤재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지문도, 족적도 없이 사라진 범인을 쫓는다. 피해자·목격자의 기억만이 유일한 단서일 때 더 빛을 발한다. 첨단 수사기법의 발달로 해가 갈수록 비중은 줄어들지만 성폭행 사건 등의 수사에선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한다. ‘잡고 보니 범인과 똑같더라’는 평가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몽타주 제작의 신비로운 세계.

1995년 컴퓨터 몽타주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는 초상화 기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서울경찰청의 이창호 형사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맨손으로 범인을 때려잡았다는 강력계 형사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무래도 생소한 모습이다. 대전서부경찰서의 정창길 형사(52)는 국내 유일의 미대 출신 몽타주 수사관으로 불린다. 목원대 미대를 나온 그는 1992년 강력계 형사로 경찰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험하다는 강력계 형사 시절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는 그다. 같이 일하는 수사관들이 “그림을 잘 그리니 몽타주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말이 인연이 됐을까? 2007년부터 몽타주 수사 요원으로 처음 발탁됐다. 현재는 순환근무로 몽타주 수사 업무를 하지만,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몽타주 실력은 경찰 내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 형사의 뛰어난 몽타주 실력을 증명한 사례가 있다. 2008년 대전 연쇄방화범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방화사건은 CCTV 화면이나 용의자를 둘러싼 어떤 신상정보도 없어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유일한 단서는 단 한 명의 목격자의 증언. 정씨는 7시간이 넘도록 목격자를 붙들고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듣고 나서 몽타주를 완성했다. 그가 손으로 그린 몽타주 전단지가 전국에 뿌려지고 나서 사흘 만에 신고가 들어왔고 실제 연쇄방화범을 검거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경찰 내부에서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이유다.

현재 경찰이 운용하고 있는 전국의 몽타주 수사관들은 20명 선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요원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만 정 형사는 아직도 손 작업을 한다. 컴퓨터 시스템만으로는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범인의 얼굴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한 강도 피해자에게 출장 몽타주를 갔을 때 생긴 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노트북을 이용해 컴퓨터 작업한 몽타주 DB를 돌렸는데 그중에 닮은 얼굴이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피해자가 ‘형사님이 직접 그려달라’고 요청해 그 자리에서 진술을 토대로 스케치를 해서 보여줬다. 손으로 그린 몽타주를 보고 나서야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 사람이 맞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가 손으로 그린 몽타주를 더욱 신뢰하게 된 이유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린 몽타주가 범인을 검거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까? 서울지방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몽타주를 작성한 사건의 검거율은 통상 14~20% 에 이른다(2012년부터 2014년 9월 현재까지).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경찰에 몽타주 수사가 도입된 것은 1975년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최초의 몽타주는 초상화를 그리듯 주로 스케치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그 후 사진 필름을 스크린 상에 투영하여 합성하는 ‘투영식 합성법’이 이용되다 1995년부터는 컴퓨터 몽타주 시스템이 도입됐다. 초창기 컴퓨터 몽타주는 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 이용됐다. 하지만 얼굴 DB가 서양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한국인의 얼굴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이를 국내 개발 프로그램으로 교체한 계기가 있었다. 2000년에 전국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은 부산 연쇄살인범 정두영 사건이었다.

컴퓨터 몽타주로 진화


최면수사는 명확한 기억을 끌어내 몽타주 작성을 돕기도 한다. 박주호 전북경찰청 형사의 최면수사로 작성된 몽타주. 이 몽타주 덕분에 한 여성은 27년 전에 헤어진 할머니를 찾았다.
정두영은 1999년부터 1년간 무려 17명의 인명을 살상한 연쇄살인범. 그는 특히 9명의 시민을 둔기로 내려쳐 목숨을 빼앗아 국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당시 수사에 활용한 미국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몽타주를 그렸는데 목격자가 용의자와 닮지 않았다며 고개를 계속 내젓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국내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1997년 ‘건아정보기전’이 개발한 몽타주 프로그램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몽타주 기법도 진화한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은 3D 몽타주 프로그램을 개발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뒤로 목격자로부터 “상당히 닮았다”는 반응이 나오자 곧바로 용의자 몽타주 전단이 전국에 뿌려졌다. 경기도 평택에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힌 잡범을 잡고 보니 담당형사는 그가 정두영의 몽타주와 닮았다고 생각해 끈질기게 심문했고,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 몽타주 프로그램의 공동개발자로 알려진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우리 프로그램 기술력이 당시 미국 것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했지만 처음에는 경찰이 긴가민가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부산 연쇄살인범을 붙잡고 나서부터 국내 몽타주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골상학 전문가인 최 교수는 당시 한국인의 얼굴을 동북형·서북형·서남형·남방형 4개로 분류한 뒤 세분화한 1287종의 ‘한국형 얼굴’을 DB화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먼저 가장 비슷한 얼굴형을 고른 후 목격자나 피해자의 설명에 따라 닮은 눈·코 ·입을 조합해서 몽타주를 작성하게 된다.

최근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도 새로운 3D 몽타주 프로그램을 개발해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몽타주 프로그램보다 정확성과 편의성을 높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3차원으로 용의자의 골격, 머리의 두상 등을 표현한다. 기존 프로그램은 목격자에게 “이 중에서 어느 눈을 닮았느냐”고 물어가며 눈 ·코 ·입을 하나씩 지정해서 조립하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얼굴을 완성하고 나면 목격자가 머릿속에 담고 있던 이미지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얼굴 부위를 하나하나 따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의 총 책임자인 김익재 KIST 박사는 “기존 프로그램은 범인의 얼굴을 잠시 본 목격자에게 큰 눈인지 작은 눈인지를 보기 중에서 고르게하면 어려움이 있었다”며 “새로운 3D 몽타주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눈·코·입이 조합된 얼굴 중에서 느낌이 비슷한 얼굴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몽타주 작성 시간도 크게 단축된다는 설명이다. 눈·코·입을 따로 골라가며 짜깁기하던 방식의 몽타주 작업은 보통 서너 시간이 걸렸지만 3D 프로그램으로는 20~30분이면 목격자가 원하는 얼굴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서 당장 3D 프로그램을 수사 현장에 적용할 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올해부터 각 지방경찰청에 보급할 계획이었지만 CCTV 보급 확대로 몽타주 작성 건수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사용처 수에 비해 프로그램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몽타주 요원들의 선발 조건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5년까지는 초상화 전문가 중 특채로 몽타주 요원을 뽑았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이 보편화되면서 그림 실력은 배제된다. 각 지방경찰청에 한두 명씩 있는 몽타주 요원들은 대부분 순환보직으로 발탁하고 있다. 피해자 면담 방법과 컴퓨터 몽타주 작성 프로그램 활용법을 배우지만 스케치 교육은 따로 받지 않는다.

기본 데생 실력 필요하다 목소리도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 몽타주 작성 프로그램에는 1287종의 얼굴이 내장되어 있다. 목격자의 설명에 따라 범인과 닮은 눈·코·입을 하나씩 지정해서 몽타주를 만든다.
그렇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몽타주 수사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부산경찰청에서 2년째 몽타주 요원으로 활동하는 이현선 경위는 개인적으로 미술학원에서 스케치를 배우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만으로는 종종 목격자가 기억하는 범인의 ‘이미지’를 표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고 그가 말했다. 이 경위는 “예를 들어 목격자가 ‘범인의 눈매가 더 사나웠다’고 하면 명암을 덧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럴 때 데생을 배워놓으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덧 붙였다. 정창길 수사관은 “몽타주 요원들에게 기본적인 스케치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DB에 목격자가 생각하는 얼굴이 없는 경우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면 누가 경찰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아직도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들을 몽타주 수사 업무에 투입한다고 한다. 캐리커처 형식으로 인물의 특징을 잡아 그리기 때문에 눈 ·코 ·입을 조합하는 컴퓨터 몽타주보다는 이미지를 표현하기가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우리 경찰은 왜 예전처럼 화가 중 특채로 몽타주 요원을 뽑지 않는 걸까? 경찰 관계자들은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몽타주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고 설명한다. 초상화는 대상을 보고 사실에 기인해서 얼굴을 그리지만, 몽타주는 설명만 듣고도 특징을 축출·조합해 대상자의 얼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몽타주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그리기 실력뿐만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술을 듣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특별한 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필수 요소는 수사관으로서 갖게 되는 오랜 경험이다. 정창길 형사는 “형사로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용의자의 인상이나 특징 등을 듣다 보면 상대방이 설명하는 범인의 이미지가 비교적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수사 경력이 없고 그림만 그리는 이보다는 감이 좀 더 빠르다”고 덧붙였다.

사건에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이 나온다면 그나마 몽타주를 활용한 수사가 힘을 받는다. 그러면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둘러싼 기억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어떨까?

2011년, 전북 C시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범인은 지나가던 한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인적이 드문 비닐하우스로 끌고 갔다. 얼굴 부위를 수차례 얻어맞은 피해자는 충격을 받아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에 전북경찰청의 법최면 전문 수사관 박주호(40) 형사가 최면 수사를 진행했다. 박 형사의 최면을 통해 피해자는 쌍꺼풀, 두꺼운 입술, 검정 비닐모자와 패딩잠바 등 범인의 인상착의뿐만 아니라 “K교도소에서 나왔고 7년 만에 네가 첫 여자다”라고 그가 내뱉은 말까지 기억해냈다. 이 최면 수사로 작성된 몽타주에 기반하여 K교도소 출소자 299명 중 용의자를 3명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집중적인 심문 끝에 결국 범인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현재 국내에 법최면 전문가는 10명 남짓 된다. 전북경찰청의 박주호 형사는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프로파일러 출신인 그는 2004년 국립과학수사원에서 법 최면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전북청이 전국 최고의 실적과 검거율을 자랑하는 데는 박 형사의 공로가 크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전북청에서 작성되는 몽타주는 모두 그의 최면 수사를 거친 것들이다.

법최면이 ‘일등공신’ 역할


법최면은 피해자가 충격으로 사건 당시를 잘 기억해내지 못할 때 사용된다. 최면을 통해 억압된 기억을 끌어내고 정확한 몽타주가 작성되도록 돕는다. 법최면 전문수사관 박주호 형사가 최면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 형사는 전북 B시에서 무려 23명의 청소년을 강간한 연쇄 성폭행범을 검거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검거된 범인이 나중에 “나와 똑같이 생긴 몽타주가 편의점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파마를 하고 안경테 색깔도 바꿨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의 법최면 실력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최근에는 몽타주 기법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CTV의 보급이 증가하고 해상도도 좋아짐에 따라 몽타주 작성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몽타주는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도 이유다. 몽타주가 수배에 사용될 수 있을 만큼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사용되는 기법이 바로 법최면이다.

법최면은 피해자나 목격자가 범죄 관련 내용을 회상하도록 도와 사건 해결에 필요한 단서를 확보하는 수사기법으로, 국내에서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 피해자나 목격자가 심리적인 외상 또는 시간의 경과로 인해 사건 내용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최면을 통해 사건 당시의 긴장·불안 등 트라우마를 제거시킨 후 범죄를 재구성하면서 수사에 단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법최면은 강간 등의 성범죄에 주로 활용되는데, 대개 성범죄가 한밤중에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데다 목격자가 충격으로 기억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불안한 심리상태에서는 범인의 얼굴을 실제보다 더 험악하게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런 경우 법최면은 목격자의 명확한 기억을 끌어내 실제에 가까운 몽타주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내담자가 시각적인 사람인지 청각적인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사고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청각 정보를 가장 잘 처리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시각 정보에 민감하다. 내담자가 시각적인 사람인 경우 거기 맞춰 “주변에 뭐가 보이느냐” 등 주로 시각적인 질문을 하고, 청각적인 사람에겐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를 묻는 식이다. 다음으로 ‘맥락단서’를 하나하나 제시해 가며 기억을 이끌어낸다. 이현선 부산경찰청 경위는 “최면수사를 한다고 목격자가 처음부터 모든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아니다”라며 “그때의 기분, 날씨, 범인을 봤을 때의 느낌 등 맥락단서를 주면 실제 이미지를 좀 더 또렷하게 떠올리게 된다” 고 설명했다.

몽타주 수사관들은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나 목격자와 면담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성범죄가 CCTV가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폭행 피해자는 충격이 큰 상태여서 막무가내로 진술을 받아내기보단 일단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숙 서울 경찰청 행정관은 “피해자들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 몽타주는 치료를 받고 며칠 후에 그렸다. 몽타주는 빠른 시간 내에 만드는 게 좋지만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안정시킨 뒤 그리는 게 효용성이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국내 경찰 수사에서 몽타주 작성 건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2012년 151건이 지난해는 89건으로 줄었다. 4~5년 전만 해도 매년 300건 넘게 작성되던 것이 최근에는 두 자리대 로 줄었다. 블랙 박스나 CCTV의 보급이 확대되고 해상도도 좋아져서 몽타주 수요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CCTV 사각지대 비춘다는 사명감

그러나 인구가 집중된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여전히 몽타주가 위력을 제공한다. 이상숙 행정관은 “미국처럼 땅이 너무 넓은 나라에서는 몽타주가 아직도 많이 쓰이듯, 우리나라도 제주도나 벽지 같은 경우 몽타주 수사 의존도가 높다”며 “구간이 넓고 인적이 드문 곳에 예산을 들여 CCTV를 많이 설치해놓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몽타주 수사가 필요한 것은 단지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몽타주는 매년 2만 건 이상 발생하는 성범죄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사건은 주로 깜깜한 밤에 CCTV가 없는 곳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CCTV 화면으로 범인의 얼굴을 판독하기 어렵거나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몽타주는 이런 사건에서 초동 수사의 기본이자 과학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서울경찰청의 이창호 형사는 처음 그린 몽타주로 범인을 검거했을 때를 떠올렸다. 총 6회의 강도강간을 저지른 연쇄 찻집 강도사건이었다. 범인은 여자가 혼자 운영하는 찻집을 골라 들어가 커피에 수면제를 탄 후, 의식을 잃은 직원을 성폭행하고 물건을 훔쳤다. 범인은 다음 범행을 위해 찾은 한 찻집에서 가게 주인의 신고로 붙잡혔다. 찻집 주인이 이 형사가 그린 몽타주를 보고 범인을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몽타주로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훈훈한 사연도 있다. 5세 때 미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성장한 홍모(32) 씨는 결혼 후 자신의 가족을 찾겠다며 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왔다. 박주호 형사가 법최면을 진행한 결과 홍씨는 놀랍게도 27년 전에 함께 살았던 할머니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냈다. 박 형사는 “그때 법최면을 하고 할머니의 몽타주를 그렸는데, 몽타주가 방송이 나간지 3일 만에 가족들과 재회가 이뤄졌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정창길 수사관은 터미널이나 전봇대에 붙여 놓은 자신의 몽타주 그림을 보고 시민들의 신고가 들어올 때 큰 보람을 느 낀다고 말했다. 그는 “몽타주 요원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내 그림으로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맛본다”며 웃었다. 해가 갈수록 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지지만, 몽타주 수사관들은 CCTV가 비추지 않는 사각 지대를 사명감 하나로 밝히고 있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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