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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산후조리 미역국 제사 탕국의 터줏대감 ‘홍합’ 

말만 해도 군침 도는,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아미노산의 맛!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홍합은 껍질과 살이 붉다.
집사람이 동네시장에서 자금자금한 검푸른 색의 조개를 거짓말 좀 섞어 한 자루를 사와서, 설거지통에 쏟아 부어 그 해물(海物)을 힘이 부치게 싹싹 씻어내고는 큰 솥에 푹 삶는다. 솥뚜껑 한 귀퉁이에서 증기기관차를 굴릴 만한 김을 푹푹 내 뿜으면서, 고소한 냄새가 군입을 다시게 만든다. 가까이 다가가 거드는 척하면서, “여보, 이 조개가 이름이 뭐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뭐긴 뭐예요, 홍합이지.”하도 싸길래 홍합탕을 해 먹을라고 샀단다. 실은 집사람도 내한테서 귀가 닳도록 들어 뻔히 조개 본명(진짜 이름)을 알면서 에둘러 치며 되레 나를 놀려먹는다. 울어난 짭짤하고 뿌연 국물에 갓 까낸 탱글탱글한 건더기 조갯살과 썬 부추, 다진 마늘을 그득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후룩후룩 속이 확 풀린다!

그리고 즙액이 줄줄 흐르는 조개를 삶아 싸리꼬챙이에 줄줄이 꿰어 햇볕에 바싹 말린 것이 합자(蛤子)요, 그것은 산후조리 미역국에 꼭 넣고, 제사 탕국에도 넣는 제물(祭物)의 하나다. 겨울이면 요새도 필자는 꼬치에 꿴 합자를 곶감 빼먹듯이 하나하나 뽑아먹는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아미노산의 맛이라니! 말만 해도 군침이 돈다.

가끔 포장마차에서도 만나기도 하지만 해물칼국수 집에서는 어김없이 그 조개를 먹게 된다. 거기에는 바지락·동죽·구슬조개도 들었지만 하나같이 몸집에 비해 작은 씨알(살점)을 빼물고 있는, 입을 헤벌쭉 벌린 녹청색 조가비(조개껍데기)가 한가득이라, 살은 까서 먹고 빈 그릇에 딸그락딸그락 버리기 바쁘다. 그런데 개중에 아가리를 딱 다물고 있는 것은 미련 두지 말고 버릴 것이다. 백에 백은 죽어 개흙을 한가득 품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등장한 조개의 이름은 무엇일까? 홍합이라고? 언감생심, 홍합은 하도 비싸 보통사람들은 맛도 못 본다. 이는 홍합이 아니고 ‘진주담치’다. 조개도 제 이름을 틀리게 불러주면 뿔낸다.

탕·찜·밥으로 해먹는 홍합(Mytilus coruscus)은 홍합과의 연체동물(軟體動物)로 발이 도끼를 닮았다하여 부족류(斧足類), 껍데기가 두 장이라 이매패(二枚貝)라 부른다. 그리고 ‘홍합’은 보통 큰 종류를 일컫고 작은 무리는 ‘담치’라 부른다. 그런데 홍합은 총중에서 백합(白蛤)과 함께 내로라할 만한 조개로 다들 알아준다. 껍데기 안쪽은 진주광택이 나고, 높이 140㎜, 길이 80㎜, 폭 55㎜쯤 되는 대형종이다.

계절에 따른 성장속도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나이테(연치,年齒)나 생장선이 거칠게 차례로 나며, 수심 10m 근방의 암초(暗礁)에 떼 지어 서식한다. 또한 우리나라 동서남해 어디에나 다 살고,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조가비가 아주 두껍고, 껍질과 살이 붉어 홍합(紅蛤)이라고 한다. 홍합을 달리 참담치·합자·열합·섭·동해부인(東海夫人)으로도 부른다.

잘 드는 칼을 버긋이 갈라진 조개의 입 틈새에 넣고 까 제쳐 놓았다. 보드라운 미색의 외투막(대음순)이 한가운데 뾰족하니 솟은 발(음핵)을 감싸고, 한쪽에는 새카만 털 뭉치(거웃)가 똘똘 뭉쳐 숲을 이룬다. 누가 봐도 속절없이 그 모습이 천생 섭(음부)이로다! 그래서 여성 외부 성기를 비유하여 ‘섭(聶)’, ‘합자’ 또는 ‘조개’라 한다.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

우리가 주로 먹는 홍합이라는 것이 실은 진주담치(Mytilus edilus)다. 진주담치는 지중해가 고향이라 ‘지중해담치’라고도 하는데, 이들의 유생이 외국을 왕래하는 화물선의 평형수(ballast)에 실려 우리나라에도 묻어 들어왔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고, 지금은 이것들이 넘칠 정도로 번식력과 생존력이 강해서 우점종(優占種)이 되었다. 물류(物流)따라 오가는 진주담치! 이젠 놈들을 키워 먹으니 바다에다 기다랗고 굵은 밧줄(rope)을 내려놓으면(수하식, 垂下式) 거기에 다닥다닥 부착한다.

진주담치는 홍합에 비해 껍데기(shell)가 아주 얇고 몸통(패각, 貝殼)이 볼록한 편이다. 껍질(각피, 殼皮)은 청록색이고 껍질 안쪽(진주층)이 눈부시게 다채롭고 영롱한 진주빛을 내기에 ‘진주담치’란 이름이 붙은 것. 한데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고 한다. 천성이 선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악습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바닷가에 가보면 갯바위에 고만고만한 것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홍합과 녀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홍합과 조개들은 죄다 실꼴의 족사(足絲)라는 억세고 질긴 ‘섬유조직’으로 몸을 돌바닥이나 해초에 찰싹 달라붙인다. 그런데 한번 어디에 고착하면 평생을 그 자리에 붙어 있을 것 같은데 환경이 좋지 않다 싶으면 족사를 녹여 떼내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죽음이 찾아오는데도 한사코 거기에 미련을 부릴 리가 있나.

과학은 자연을 모방한 것. 그래서 홍합의 족사로 물속에서도 잘 붙는 강력접착제를 만들겠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홍합의 족사 섬유는 사람의 힘줄보다 5배나 질기고, 16배나 잘 늘어나는, 맞수가 없는 멋들어진 자연 신소재다. 물속에서도 쓱쓱 문지르면 척척 달라붙는 순간접착제를 만들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만만한 것이 있어야지. 손색없는 멋진 접착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실험실 사람들이 실랑이하느라 피와 땀을 더 흘려야 할 모양이다.

빛이 있으면 언제나 그늘이 있는 법. 보통은 4월 말에 시작하여 6월 말까지 계속되는 연례적인 일로, 이때 비브리오 패혈증(vibrio sepsis)이 퍼진다. 비브리오 불니피쿠스(Vibrio vulnificus ) 세균이 일으키는 병으로, 발열·오한·전신 쇠약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구토와 설사가 따르며, 결국엔 피부에 심한 염증을 일으킨다. 또 삭시토닌(saxitoxin)이란 독소가 호흡곤란, 신경마비를 유발한다. 조개들이 플랑크톤을 아가미로 걸러먹는 여과섭식(濾過攝食, filter feeding)을 할 때 들어온 유독성 편모조류(鞭毛藻類)에 무서운 독이 들어있는 탓이다. 아무튼 산란기에는 패류를 날로 먹지 말뿐더러 숫제 삼가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홍합과 진주담치를 간단히 비교해본다. 둘 중에 주머니칼 닮은 훨씬 큰 조개인 홍합은 우둘투둘 거친 껍데기가 길고, 흐린 색에 매우 두꺼우며, 해초나 따개비 무리가 지저분하게 달라붙는다. 이에 비해 진주담치는 껍데기가 검푸르고 얇은 것이 곱상하고 매끈하며, 속은 아주 진한 진주빛이 난다. 그리고 홍합은 껍데기가 납작한 것이 끝 부분(태각,胎殼)이 조금 휘움하게 구부러져 톡 비어져 나오는데, 진주담치는 삼각형에 가깝고, 배가 불룩하면서 태각 부위가 쪽 곧은 편이다. 이들의 천적은 바다 밑의 무법자인 불가사리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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