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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커피, 이토록 철학적인 음료라니! 

식사 후 커피를 찾는 이 불가해한 습관의 뿌리는? 만인을 위한 지식으로서의 커피 열전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 스콧 F. 파커 외 지음 / 김병순 옮김 / 따비 / 2만2,000원
커피는 매년 전 세계에서 5천억 잔 넘게 소비되는 글로벌 기호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이 음료가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한국 사회는 이미 커피의 난장(亂場)이다. 동네 뒷골목까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침투했다. 시장은 포화상태이며, 커피 비즈니스는 잔혹한 레드 오션을 형성했다.

식사 후 커피를 찾는 이 불가해한 습관은 도대체 우주의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한번 궁리해볼 소재다. 궁리를 위해선 다소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커피의 생산과 유통, 맛과 향기와 질감에 대한, 그리고 역사와 전통과 유래에 대한 몇몇 지식 말이다. 전문 저술가, 철학자, 커피산업 종사자, 커피 마니아 17인이 쓴 이 에세이집에는 시시콜콜한 커피 이야기가 아주 콤팩트하게 집대성돼 있다.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이란 제목은 그래서 ‘커피, 만인을 위한 지식’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커피에 대한 지식이 쏠쏠하게 축적된다. 그 되새김질, 즉 철학적 사색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지금 해도 되고, 아주 나중에 생각날 때 해도 된다. 이런 자유분방한 기운이 이 책의 매력인데, 그것은 또한 커피의 매력이기도 하다. 재즈 음악이나 흡연을 향한 강한 욕구를 느끼며 때로는 말로만 들었던 환각의 상태를 연상하기도 하고, 새벽에 마시며 일할 때의 놀라운 집중과 각성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커피는 일할 때와 쉴 때 다 필요한 존재다. 사업상의 경쟁자와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도,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나눌 때도 커피를 찾는다. 이성과 감성에 모두 호소하는 커피의 너른 스펙트럼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의 저자이기도 한 마크 팬더그러스트는 커피를 둘러싼 오랜 유·무해성 논쟁, 즉 커피의 의학사를 재치 있게 정리했다. 핵심은 카페인이다. 결론은 카페인 섭취가 건강에 유해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카페인 10g을 마시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데, 실제로 한 시간 안에 1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 10g의 카페인을 섭취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마크 팬더그러스트는 최상급의 커피를 하루에 딱 한 잔 마시는 커피 마니아로 당연히 커피를 예찬한다.

그는 카페인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ADHD) 아이들에게 매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고 역설한다. “아이들에게 커피를 마시게 하라, 그러면 차분해질 것이다.”

커피와 철학에 심하게 중독돼 있는 미 아이오와 대학의 철학 교수 크리스토퍼 필립스. 그는 “커피는 음미되어야 하는 존재”란 철학을 개진한다.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며 “커피는 살고 죽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믿고 높이 평가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음미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맛을 음미하는 행위 속에는 깊은 도덕적 성찰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커피(또는 커피의 음미)는 생사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궤변이 성립한다.

스타벅스와 커피 공정무역의 관계를 쓴 존 하트먼의 에세이도 좋다. 스타벅스란 브랜드는 왜 성공했는가. 소비자로 하여금 커피를 마시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한다는 기분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을 옹호하는 스타벅스,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다는데…. 과연 그럴까. 커피에 관한 가장 핫한 논쟁의 소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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