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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취재] 잠이 부족한 현대인 덕에 기지개 켜는 ‘수면경제’ 

 

김벼리 인턴기자 kimstar1215@hanmail.net
일과 공부 위해 ‘덜’ 자려는 사람, 불면증·수면장애에 시달려 ‘더’ 자려는 사람, 같은 시간을 자도 ‘잘’ 자려는 사람… 미국(20조원), 일본(6조원)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지만 지난해 수면 관련시장 규모 2조원 넘어 상승세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늘 잠이 부족하다. 그 덕분인지 최근 들어 ‘수면 관련 산업’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1. 부산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길(18) 군은 아침잠이 많아서 걱정이다. 학기 중이면 그의 집은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7시 50분 등교 시간에 맞추려면 6시4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김군은 미적거리다 아침밥도 못 먹고 등교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 들어 김군은 잠을 줄이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이제 고3, 수능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아예 5시30분에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밤 12시에 잠자리에 든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게 김군은 두 달 전부터 5시 간 30분의 수면습관을 지켜오고 있다.

그만큼 피로도는 배가됐다.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볼을 꼬집는 건 기본이고, 요새는 녹차를 자주 마신다. “그래도 졸린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올해 수능까지만 꾹 참고 버텨야죠.”

#2. 4~5년 전부터 불면증을 앓아온 송하늘(여·가명·24)씨. 지난해 말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증세가 더 악화됐다. 새벽 4시에 잠들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도 송씨는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 의사와 상담하기를 주저했다. 그 대신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다. 저녁에 동네를 한 바퀴 돈다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운 우유나 메밀차를 마셔보았다.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맡에 양파를 놓고 잠을 청한다거나 불경을 읽으면서 명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의 불면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수면시간, OECD 국가 중 ‘최하위’


▎허브차 시장은 다양한 재료와 허브를 혼합한 ‘블렌딩 허브차’를 내세우며 매출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 커피시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족할 만큼 잠을 자지 않거나, 자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의 수면시간은 유독 짧은 것으로 악명 높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국가별 일평균 수면시간 조사’에서 한국은 7시간 49분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1위인 프랑스(8시간 50분)와는 한 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같은 수면부족이라도 두 갈래의 유형이 존재한다. 우선 김 군과 같이 잠을 덜 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시생, 스케줄 근무자 등 잠을 쫓으면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쪽은 송씨처럼 잠을 더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불면증 혹은 수면장애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주로 전자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한국은 국가 주도로 유례없는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과정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의 의식에 뿌리내렸다.

그 여파는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OECD에 따르면 2000년 당시 한국에서 노동자 1명당 1년간 평균 노동시간은 2512시간이었다. 일수로 따져보면 365일 중에 노동으로만 약 105일을 보낸 셈이다. 2311시간으로 2위에 오른 멕시코인들과는 200시간이나 차이가 났다.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의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심지어는 삼당사락(三當四落)까지도 등장했다. 하지만 경제적 결핍에서 벗어난 뒤로 삶의 질과 가치를 중시하는 풍토 또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노동시간의 감소가 이를 방증한다. 2014년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15년 만에 300시간, 그러니까 13일 정도 감소했다.

하지만 당장 수면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실시한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1999년 당시 7시간 47분이었던 ‘10대 이상 인구’의 평균 수면시간이 2014년에는 7시간 59분으로 늘었다. 15년 새에 불과 12분의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경향과 더불어 최근엔 잠과 관련된 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잠(sleep)과 경제(economics)를 합친 ‘슬리포노믹스(수면경제, sleeponomics)’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불면증이 수면장애라는 엄연한 질환으로 자리 잡으면서 웰 슬리핑(Well Sleeping) 상품을 파는 시장도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미국(20조원)과 일본(6조원)에 비하면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든 수준이지만 업계에선 2014년도 수면 관련 시장이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수면 상품을 출시하면서 지난해에는 2조원을 넘긴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1 라운드 - 릴렉션드링크, 허브티 VS 커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잠을 쫓는 대명사 격인 에너지드링크 시장은 순풍에 돛 단 듯이 급성장했다. 2012년 당시 한 편의점에선 에너지드링크의 매출이 전년 대비 456.3% 성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에너지드링크 시장의 기세는 한풀 꺾인 지 오래다. 에너지드링크에 중독되거나 과다섭취로 사망한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자 카페인과 나트륨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해 초에는 같은 편의점에서 에너지드링크 제품의 매출이 9.4%까지 하락했다.

이렇게 에너지드링크 시장이 주춤한 틈을 타 지난해 말에 ‘안티-에너지드링크’를 내세운 S제품이 출시됐다. 이른바 ‘릴렉션드링크’, ‘긴장완화’라는 기능을 내세워 에너지드링크와 차별화를 뒀다. 하지만 그 부분만 제외하면 기존 에너지드링크 제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대중에게 잘 안 알려진 특정 성분을 강조하는 것도 그랬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이 제품에 대중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S제품이 경쟁제품의 틈새를 노려 마케팅에 성공했다면 허브차는 점진적으로 시장을 넓혀가는 경우다. 스피아민트·캐모마일·루이보스 등 허브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안정감을 줘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근래에는 과일, 우유 등 다양한 재료를 허브와 혼합한 ‘블렌딩 허브차’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허브차 브랜드로 유명한 S회사는 최근 5년 새 매출액이 30%가량 증가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익숙한 향을 더해, 차를 즐기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겨냥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앞에는 커피 시장이 버티고 있다. ‘201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커피 섭취 빈도는 주당 약 12회로 가장 높았다. 밥이나 김치보다 오히려 커피를 더 많이 찾는 현실이다.

행정고시를 2년째 준비하는 문승환(26) 씨는 잠을 쫓기 위해서는 오로지 커피를 마신다. 쓴맛밖에 안 나지만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래 8~9시간씩 잤던 그는 행시를 준비하면서부터 하루 5시간도 채 못 잔다. “공부하는 게 힘든 건지, 졸음 참는 게 힘든 건지 가늠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커피에 기대게 된다”고 문씨는 말했다. 요즘은 하루 평균 석 잔을 마신다. 그는 “저렴한 곳을 찾아 다니지만 커피를 마시는 데 드는 비용만 한 달에 20만~30만 원은 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 라운드 - 아로마테라피 VS 오디오


▎아로마 테라피는 공기 중에 퍼지는 향으로 잠에 들게 하고, 오디오는 공기 중에 전파되는 소리로 잠을 깨운다.
평소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이루던 김원삼(26) 씨는 전형적인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그는 “매일 밤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털어놓았다.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아도 잠을 이루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눈이 지속적으로 빛에 노출되면 수면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감소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김씨와 같은 사례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즐비하다. 실제로 ‘NBT파트너스’가 1107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중독 자가 테스트’에서 응답자의 80.3%가 ‘중독이 의심된다’고 답했다.

김씨는 올해 초부터 스마트폰을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2월 말로 예정된 변리사 1차 시험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탓에 생체리듬을 맞추기가 어려워 아예 스마트폰을 해지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이른 어둠과 텅 빈 느낌’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공허감과 결핍을 채워준 것이 향초였다”고 김 씨가 말했다. “방 안 가득한 향과 은은한 빛에 저절로 잠들더라고요.”

최근 김씨처럼 향초나 디퓨저 등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향기를 맡으며 잠을 청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이른바 아로마테라피 시장의 성장이다. ‘향기요법’이라고 번역되는 아로마테라피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식물의 향과 약효를 이용하는 자연요법이다. 향초나 디퓨저 등 향기를 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로마 오일처럼 피부와 접촉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지난해 한 인터넷쇼핑몰에 따르면 아로마 관련 상품 매출이 전년보다 86% 신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국내 향기 제품 시장규모는 2조5000억원이었으며 매년 10%가량의 성장세를 보인다.

이와는 달리 공중을 통해 전파되는 소리를 이용해 잠을 쫓으려는 이들도 있다. 이재준(가명·55) 씨는 1년 정도 일했던 일반택시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 전부터 고급택시를 몰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는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시 간씩 근무했지만 요즘은 근무와 휴무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월·수·금에는 종일 일하고 화·목·토는 쉬는 방식이다. “온종일 쉰다”는 장점도 있지만 24시간 동안 근무할 때는 졸음을 쫓느라 애를 먹는다.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는 택시회사인지라 챙겨야 할 것도 많아졌다. 깔끔한 외모와 복장은 기본이다. “한 번은 저한테 냄새가 난다고 회사에 불만전화를 걸었던 손님이 있어 당황했어요.” 손님을 맞을 때 먼저 나가 문까지 열어줘야 하고 운행 중에도 손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만큼 피로도가 증가한다.

이씨는 졸릴 때는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쐬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잠을 쫓는다. 평소에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이씨였지만, 택시 일을 시작한 뒤로는 USB에 음악 파일을 유형별로 정리해서 갖고 다니기까지 한다.

3 라운드 - 껌 VS 수면컨설팅


▎지난 5년 동안 껌 시장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반면에 수면컨설팅은 최근 ‘잠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각광받는다.
직접 몸을 움직이거나 부딪치며 잠과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이 분야의 ‘강자’는 껌이었다. 껌을 씹으면, 턱관절을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당분이 나와 뇌를 활성화한다. 잠을 깨는 데 껌이 안성맞춤인 까닭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껌 시장은 하락세를 면치 못한다.

일례로 L제품의 매출은 2004년 1800억원대에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해왔다. 지난해에는 10%가량 반등세를 보이긴 했지만 지난 5년간 매년 10%에 가까운 하락세를 보여 왔다. 2014년에는 매출액이 1040억원까지 떨어져 10년 새 매출이 800억원이나 줄어들었다.

껌시장의 사양세와는 정반대로 최근 들어 수면 시장에 새 강자로 떠오른 아이템은 ‘잘 자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다.

올해부터 금융회사에 취직한 성윤창(26) 씨 역시 잠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그는 대학 시절 하루에 8시간 넘게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친구들보다 한두 시간은 더 잤던 것 같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낮 시간에 친구들보다 더 쌩쌩하게 생활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졸음을 참지 못해 정신이 몽롱할 때가 많았단다.

지난해 말에는 수면의 질을 알아볼 수 있다는 M밴드의 광고를 보고 물건을 구입해 자신의 수면습관을 체크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8시간 수면 중에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이 불과 30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제는 올해 들어 회사에 출근하면서부터 나쁜 수면 습관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1월에 본사에 발령이 난 뒤, 성씨는 매일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한다. 결국 하루 5시간 30분의 부족한 수면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에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씨는 고민 끝에 얼마 전 E사의 수면전문매장에서 ‘수면 컨설팅’을 받았다. 수면 관련 설문지를 작성한 뒤, 그걸 토대로 ‘슬립 코디네이터’와 면담했다. 코디네이터는 “베개 하나만 바꿔도 수면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며 성씨에게 맞는 베개를 추천해줬다. 수면실에서 다양한 침구류를 경험해본 끝에 결정했다. “베개라고 다 똑같지 않더라고요. 재질, 높이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었어요.”

E사의 수면전문매장은 현재까지 75호점까지 개점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얼마나 자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적정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더 쾌적하고 편안한 수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번외경기 - ASMR VS 나폴레옹 수면법


▎작은 소리로 잠을 재우는 ASMR, 고행을 방불케 하는 나폴레옹수면법은 독특한 전략으로 승부한다.
4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박다함(여·22) 씨도 불규칙한 수면 패턴으로 고생했다. 잠이 안 올 때마다 유튜브에서 ‘잠이 오는 노래’ 등을 찾아 듣던 그는 우연히 ‘ASMR’이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을 처음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박씨가 말했다.

ASMR이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번역하면 ‘자율감각쾌감반응’이다. 청각적 자극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발하는 것으로 일종의 대안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ASMR 영상은 ‘이어폰을 꼭 착용해주세요’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후 본 영상에선 업로더가 마이크에 입을 밀착한 채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그렇다고 ASMR 영상들이 전부 말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음식을 먹는 소리나 특정 사물의 소리를 강조하는 영상 등 천차만별이다.

현재 박씨는 ASMR 업로더로도 활약한다. ‘Dana ASMR’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을 올린 지 2년이 넘었다. 구독자가 17만 명에 이른다. “한창 ASMR에 빠져 있을 때 한국어 ASMR 영상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직접 영상을 찍어보기 시작했죠. 영상을 처음으로 올렸던 건 2013년 10월이었는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박씨가 영상을 올려온 2년 동안 ASMR의 외연은 더욱 넓어졌다. “예전에는 누가 무슨 영상을 올렸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낯선 제작자나 영상이 많아 졌다”고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ASMR 분야는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박씨는 예상한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가상현실(VR) 관련 시장을 ASMR과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VR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이 둘의 연계가 잘 이뤄진다면 ASMR 또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을 쫓으려는 사람들 쪽에서도 독특한 전략이 눈에 띈다. ‘1일에는 8시간, 2일에는 0시간, 3~5일까지는 6시간, 6~8일까지는 4시간, 9일은 0시간, 10~14일까지 다시 4시간’. 얼핏 공부 계획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수면 계획이다. 이른바 ‘나폴레옹 수면법’이다. 나폴레옹이 하루에 4시간만 잤다는 기록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나폴레옹 수면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4시간의 수면을 실천하기보다는 체질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나폴레옹 수면법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4일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어선 안 된다. 자칫 리듬을 잃고, 계획된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게 되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육체적으로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수면법에는 날짜별로 겪을 수 있는 증상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에 따르면 3일째가 ‘가장 괴롭다’. ‘다리·허리나 관절이 은근히 아프고, 눈이 따끔따끔하다’. 12일째에는 ‘두통, 어지러움, 토할 듯한 매스꺼움, 빈혈, 미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

김자현(가명·30) 씨는 1년 전 나폴레옹 수면법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김씨도 성공하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총 다섯 번 시도했는데, 네 번 실패했어요. 심지어는 성공을 이틀 앞두고 잠깐 졸아서 실패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한 번 성공한 이후로 그는 지금까지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김씨는 “아무리 늦게 자도 4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며 “잠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로 나한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활짝 웃었다.

- 김벼리 인턴기자 kimstar1215@hanmail.net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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