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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인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최고의 소리는 몸과 악기가 하나될 때 나와요”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약관 나이로 지난해 54회 파가니니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유학 중 1월 금호아트홀 리사이틀 ‘호평’

▎1월 14일 금호아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그의 연주는 ‘손이 악기에 붙은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인모는 지난해 3월에 열린 제 54회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1월 14일 금호아트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1)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그는 모차르트 소나타 K378, 슈만 소나타 3번, 베토벤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연주했다. 무심한 듯 자연스러웠다. 외유내강의 절도가 있었다. 때로는 손이 악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7년 전에도 이 무대에 섰어요. 하지만 호흡, 시선, 움직임 등이 그때와 많이 달라졌어요. 금호아트 홀이라는 환경이 기억 속에서 예전의 모습을 상기 시켜주었죠. 최근에는 연주가 끝나고 ‘연주할 때 몸과 악기가 자연스럽다’, ‘악기가 몸의 연장선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음악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제 갈망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리사이틀에서 접한 그의 파가니니 연주는 비범했다. 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1번은 명불허전이었다. 귀재 이브리 기틀리스처럼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파가니니를 연주할 때 제일 부담이 없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죠. 기교적으로야 어렵지만, 화려하게 꾸미는 음악의 특징이 저랑 잘 맞아요.”

양인모는 지난해 3월 파가니니의 고향 제노바에서 열린 제54회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1996년 우승자 김수빈은 미국 국적이었다). 1956년 시작돼 31세 미만 연주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파가니니 콩쿠르는 2002년부터 격년제로 운영돼왔다. 지난해 콩쿠르는 기간이 더 늘어나 2010년 이후 5년 만에 열렸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기돈 크레머, 이사벨 파우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등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우승자로 배출했다. 양인모의 스승 미리엄 프리드(68)도 1968년 우승자였다. 한국인 입상자로는 양성식(1983년, 3위), 백주영(1996년, 3위), 신현수(2004년, 3위), 이유라(2006년, 2위), 김다미(2010년, 1위 없는 2위) 등이 있다.

7세 때에 반한 파가니니의 기교


▎양인모는 “음악은 실체가 없는 예술”이라며 “보이지 않는 음악의 형태가 인간의 여러 행위로 상징될 수 있는 게 연주 철학”이라고 말했다.
양인모는 파가니니 음악에 자신이 있었다. 7세 때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를 처음 듣고 반했다. 파가니니의 화려한 기교가 궁금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의 곡을 연습하고 싶었다. 이후 수없이 즐겨 연습했다. 그런 작곡가의 작품이었던 만큼 부담 없이 콩쿠르에 임했다.

“제노바의 공기는 상쾌했어요. 공항에서 몇 명의 참가자와 같이 호텔로 돌아왔죠. 다들 서로를 반갑게 맞이했어요. 거의 모두가 같은 호텔에 묵었는데 방에서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연습 소리가 들렸죠. 그건 스트레스였습니다. 어떤 참가자들은 새벽 한두 시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았어요. 몇몇 참가자는 호텔 프런트에 시끄럽다고 컴플레인을 하기도 했죠.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바이올린 소리는 점차 줄어들었어요. 마지막 시상식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사방이 고요하더군요. 그토록 짜증 냈던 그 소리들이 왜 그리 그립던지요.”

파가니니 콩쿠르 1라운드 때 양인모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세 곡과 바흐 ‘무반주 소나타 3번’ 1악장과 2악장을 연주했다. 2라운드에서는 브람스 소나타 1번, 파가니니 ‘카프리스’ 두 곡, 현대곡 한 곡, 밀스타인 ‘파가니니아나’로 경연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시벨리우스 협주곡과 파가니니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1차 때가 가장 떨렸어요. 뭔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죠. 어느 궁전의 작은 방에서 경연이 열렸어요. 분위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벽 곳곳에는 중세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소리도 잘 울렸죠. 2차와 파이널은 카를로 펠리체 극장에서 열렸죠. 연주회 분위기였습니다.”

결과는 양인모의 우승. 9년 만에 나온 1위였다. 그는 청중상, 현대작품연주상, 그리고 최연소 결선 진출자에게 주어지는 엔리코 코스타 박사 기념 특별상까지 함께 수상했다. 시상식 후 개인 자택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여러 콩쿠르 관계자와 심사위원, 매니저들이 참석해 그의 수상을 축하해주었다.

양인모는 1995년 클래식 음악애호가인 아버지와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취미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골라준 악기였다. “부모님은 저의 길을 존중하고 지지해주셨습니다. 음악 하는 저를 인내심으로 지켜봐 주셨죠. 연습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 없어요. 어머니와는 예술 전반에 대한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잘 됐던 건 아니다. 바이올린 소리가 생각대로 잘 안 났다. 조바심에 짜증도 부렸다. 1년 뒤 7세 때 소년한국일보 콩쿠르에서 동상을 받았다. 양인모는 이때 자신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가 바이올린에 빠진 계기는 또 있었다. 레슨을 받던 대학생 누나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누나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보통 레슨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는데, 어느 날은 레슨이 다 끝나갈 무렵 누나가 가는 게 아쉬웠죠. 그래서 일부러 틀리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어요. 비록 지적은 당했지만 누나와 조금이나마 더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클래식 애호가인 아버지 덕분에 양인모의 어린 시절 집에는 클래식 음반이 많았다. 음반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싹 텄다. 음악이 어떻게 악보로 기록되는지 알고 싶었다. 집 근처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바이올린 악보들을 구입해 들여다보았다.

따분하던 브람스 곡에 귀 열려

일곱 살 때부터 악보를 보며 오선지에 음표를 적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 곡을 작곡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1주일간 고뇌하며 작곡했던 적도 있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기 위해 낮은음자리표를 혼자 공부하다 지쳐 포기하기도 했다. 양인모는 요즘도 예전의 빛 바랜 악보들을 펼쳐보면 어렸을 때 악보를 그리며 신이 났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엔 브람스의 음악을 싫어했다. 따분하고 길고 베토벤처럼 톡 쏘는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때 화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브람스의 음악에 귀가 열렸다. 그동안 몰랐던 진가를 발견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브람스 교향곡 전집 악보를 샀다. 지금은 브람스의 악보를 상당히 많이 모았고, 브람스 연주를 즐긴다고 했다. “당장 어떤 곡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언젠간 흥미로운 음악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가능성, 브람스가 제게 깨우쳐 준 교훈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2008년, 양인모는 금호아트홀에서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베토벤 ‘소나타 1번’,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차이코프스키의 소품들을 연주했다. “더 어릴 적부터 금호아트홀에서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직접 들었죠. 그 무대에서 저만의 독주회를 갖는다는 게 설렜습니다. 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보람도 있었어요. 객석에 있는 가족과 선생님들, 친구들을 보면서 ‘앞으로 더 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양인모는 음악영재로 한국예술 종합학교에서 김남윤 교수에게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더 이상 자신을 발전시킬 동력을 잃어버린 듯 연주의 한계를 절감했다. 고민하던 그는 2013년 9월,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로 유학을 떠났다. 2010년에 미리엄 프리드에게 받았던 레슨도 유학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프리드 선생님은 제 연주가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을 명확히 알려주셨죠.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보스턴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미리엄 프리드는 양인모의 단점을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생긴 안 좋은 연주습관을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내고 싶은 소리와 자신의 소리, 그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게 공부였다. 선생님의 솔직한 지적과 반복된 녹음 작업이 그의 귀를 열어주었다. 칠순을 앞둔 스승 미리엄 프리드는 최근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양인모는 늘 연구에 매진하는 스승의 모습이 그 자체로 귀감이 된다며 스승이 사람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도 많은 것을 느낀다고 했다.

“프리드 선생님과 오랜만에 레슨을 했죠. 제 연주 자세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선생님 자신의 문제점을 제게 털어놓으시는 거예요. 저는 몸의 움직임이 가끔 너무 고정돼 있어서 문제인데 당신은 지나칠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몸과 음악의 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관점을 주고받았습니다. 연주자와 교육자로서의 화려한 커리어를 거쳐 이제 곧 칠순을 앞두고 계신 제 선생님의 겸손함과 배움의 의지는 저를 고무시킵니다.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객지에서 지내는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음악은 물론이고 항상 현지인보다 부족함을 느낀 어학이 발목을 잡았다. 양인모는 ‘수치심과 소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외국 친구들과 대화에서 무슨 말인지 몰라 대충 수긍하며 넘어가려다 어색해질 때가 많았어요. 우체국에서 직원의 말을 못 알아들어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볼 때, 뒤에 줄 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꼈죠. 보증금을 돌려받으려 휴대폰 통신사 서비스센터 직원과 통화하다 지쳐서 그냥 끊어버리기도 했고요. 파티에서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혼자 스마트폰이나 할 때…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방인이 겪는 이 같은 어려움을 피해 한국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위안을 얻는 유학생도 있다. 하지만 양인모는 그러지 않았다. 미국까지 와서 영어 하나 때문에 자신의 생활 범위가 좁아져야 한다는 게 싫었다.

미리엄 프리드에게 배운 겸손과 배움의 의지

“이제 2년 남짓한 유학생활이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언어 실력과, 자신에게 올 기회의 수는 비례한다는 겁니다.”

양인모는 파가니니 콩쿠르 이전에도 여러 콩쿠르에 도전했다. 그 결과 2012년 하노버 콩쿠르 4위, 2013년 무네츠구 국제콩쿠르 2위 및 청중상과 오케스트라상, 2014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시니어부 2위, 보스턴 클래시컬 오케스트라 영 아티스트 콩쿠르 1위,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콩쿠르 1위 등에 입상했다. 미국에 오기 전과 후, 그가 콩쿠르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전에는 열등감을 이기고 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콩쿠르에 나갔어요. 그런 마음가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경쟁 속에서 남을 꺾고 1등을 해야만 연주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았어요. 하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음악가들끼리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고 위해주는 모습에 영감을 받았죠. 콩쿠르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양인모는 지휘자나 무용수들이 신체적인 접촉 없이도 음악을 표현하는 동작에 관심이 많다. 연주자의 몸이 음악을 가장 잘 그릴 때, 그 소리도 음악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찰리 채플린의 팬터마임, 넬손스의 지휘 등 소리와 신체적 접촉이 없는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요. 음악은 가장 실체가 없는 예술이 아닐까요? 그것이 어떻게 구체화돼 우리 안에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가가 제겐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음악의 형태가 인간의 여러 행위로 상징될 수 있음은 제 연주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죠.”

운동을 좋아하는 양인모는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축구클럽 소속으로 운동장을 누빈다. 1주일에 한 번 동료들과 밖에서 땀을 흠뻑 흘린다. 모든 것을 잊고 축구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면, 연주에도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가끔씩은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발길 닿는 대로 하루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반복적인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일들을 그는 사랑한다.

양인모는 현재 라비니아 재단의 후원으로 주세페토노니(Giuseppe Tononi 1690)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다, 악기의 특성을 그는 “밝고 어두운 음색의 표현 폭이 넓다”고 설명했다.

3월 양인모는 이탈리아에서 독주회를 갖고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덴마크 국립교향악단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한다. 20대 초반, 양인모의 경력은 이제 출발점에 섰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작품의 맥락을 살펴 익히고, 곡목을 늘리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영감을 얻고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학생”이라며 연주와 공부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했다. 콩쿠르와는 이제 작별이다. 파가니니 콩쿠르를 통해 얻은 기회들을 잘 활용해서 커리어를 이어갈 생각이다. “젊을수록 경쟁보다는 교양을 쌓고 자기계발에 힘쓰는 게 중요하다”는 양인모는 어린 바이올린 전공생들에게 “연습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인생을 즐기세요!”라고 조언했다. 그가 2016년에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바람대로 이루어지길 빈다.

-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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