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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내년 대선 최대 변수? ‘제3지대론’의 실체 

“친박·친문 장악한 여야, ‘이종교배’ 가능성 커졌다” 

차세현·안효성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4·13 총선에서 신생 국민의당 돌풍은 기존 양당체제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나타낸 것… 인위적 이합집산보다 국민 열망 모아지고 ‘중심인물’ 마음 비운다면 성공할 가능성 점쳐져

▎대선이 1년 이상 남았지만 때이른 제3지대론이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제3후보는 늘 고개를 숙였지만 내년 대선에선 청와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사진·중앙포토
19대 대통령 선거를 1년 3개월여 앞두고 ‘제3지대론’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역대 대선 때마다 제3후보는 늘 존재했지만 이번만큼 빨리 제3지대론이 부상한 적은 없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많은 잠룡과 책사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한 적도 없었다. 제3지대론은 여야의 주요 대선 후보들이 기존 소속당을 탈당해 중간지대로 이동한 뒤 경선을 통해 제3후보를 만들자는 그림이다.


때 이른 제3지대론은 우선 ‘야권 통합=승리, 야권분열=필패’라는 선거공식을 깬 지난 4·13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야권의 대표적 책사로 꼽히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정치를 하면서 이렇게 예상이 크게 어긋난 적이 없었다”고 인정할 정도로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호남 석권, 비례대표 득표율 2위, 의석수 38석’이라는 후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만큼 기존 양당 체제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크다는 방증이었다.

4·13 총선 민심에 터잡은 제3지대론은 지난 8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여야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과 ‘친문(친문재인)’ 진영이 미는 이정현·추미애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내년 대통령 선거 경선을 관리할 신임 당대표로 주류 측 후보가 잇따라 당선되면서 여야 비주류 잠룡들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들을 견인할 책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주류 측 당대표가 과연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느냐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여기에 여야를 통틀어 어떤 대권주자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해 아직까지 대선 판도를 점치기 어려운 현실도 제3지대론을 키웠다.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새한국의 비전’ 박형준 원장은 “4·13 총선 결과 ‘87년 체제’가 낳은 현 정치구조를 뛰어넘어 다당제에 기반한 연합과 협치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 열망이 확인됐다”며 “이번 제1, 2당의 전당대회 결과 여야 정치인들이 제3지대에서 ‘이종교배’하는 정치실험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양당 전당대회를 전후해 제3지대의 선두주자인 국민의당은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제시했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완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4년 재보선 패배 후 2년 넘게 전남 강진에 칩거해온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의 정계복귀도 임박했다.

‘킹메이커’ 김종인의 지지후보 선택 큰 관심사


▎92년 13대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의 유세 모습, 오른쪽은 김동길 의원.
4·13 총선에서 수도권 대승으로 더민주를 원내 1당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김종인 비대위 전 대표는 여야 잠룡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민주화와 개헌을 실현시킬 후보를 물색 중이다. 김종인식 ‘천하삼분지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까지 제3지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빌 인물로 김종인 전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꼽힌다. 김 전 대표는 지난 8월 대표직 사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3지대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그는 “양대 정당(새누리당과 더민주)이 어느 한 계파(친박, 친문)로 쏠려 그 계파가 전체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박도, 친문도 국민 15% 정도의 지지 기반밖에 없는데 그것만 가지고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올해 76세의 노정객은 대표직 사임 후 그의 정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내년 대선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김 전 대표 측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내년 대선 승리로 가는 열차의 ‘플랫폼’을 만들어놓고 이 열차에 탈 사람을 물색 중이라고 한다. 이른바 ‘플랫폼론’이다. 이 측근은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내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격차 해소다. 여야 상관없이 대선 승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플랫폼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김 전 대표는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강호를 주유(周遊)하면서 천하의 인재를 두루 만나고 있다. 더민주 소속의 손학규 전 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 시장, 새누리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그가 8~9월에 만난 여야 잠룡들이다. 그렇다면 김 전 대표는 누구에게 열차표를 끊어줄까?

김 전 대표는 대표 시절, 출입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어떤 후보를 찾고 있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내용은 이렇다. “지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을 보면 준비나 지식 없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만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안 된다. 대통령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되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 상황이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어려운데 경제민주화나 동북아 국제정세를 제대로 알고 헤쳐나갈 능력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이 된 후 국가경영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의미다.


▎정몽준 국민통합 21 대선후보가 2002년 11월 24일 부인 김영명 씨와 함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군밤을 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 전 대표 자신은 이미 두 번의 배신(?)의 추억을 갖고 있다. 한 번은 2012년 대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다른 한번은 2016년 4월 총선을 전후해 문재인 전 대표로부터다. 이 측근은 “김 전 대표에게는 2017년 12월 20일 오후 6시 대선 출구 조사 결과 발표 직후 그를 배신하지 않을 후보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집권 이후에도 임기를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 전 대표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유지해온 대통령제 70년을 이제 바꿀 때가 됐다”며 “책임 있는 대선후보라면 경선 과정에서 개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하고 실제 집권할 경우 임기 중 실행에 옮길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1992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 탄생)과 1997년 DJP연합(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97년 김대중 후보 대선 승리)을 통해 의원내각제 개헌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꿈을 본인이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김 전 대표는 내년 대선후보로 구체적인 인물을 거론하지 않았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민주화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로 새누리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와 유승민 의원 등에게 호감을 보인 적은 있지만 선택지는 열려 있다. 정치컨설팅회사인 ‘시대정신’ 엄경영 대표는 “김 전 대표는 당분간 제3지대를 넓히기 위한 광폭 행보를 한 뒤 내년 초쯤 특정 정당의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거나 제3지대로 특정 후보를 끌고 나올 수 있다”며 “현실감각이 뛰어난 김 전 대표는 결국 자신이 힘을 보탤 경우 대선에서 승리할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당 중심의 제3지대, 박지원은 성공할까?


▎이인제 경기지사가 97년 3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4·13 총선에서 제3당으로 우뚝 선 국민의당은 현재 제3지대의 맹주다. 4·13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했던 국민의당은 지난 6월 ‘김수민 의원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으로 당 지지도와 당의 얼굴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지지도가 반토막나면서 천당과 지옥을 함께 경험했다. 그런 국민의당이 최근 ‘도로 친박’, ‘도로 친문’ 지도부를 선출한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틈새에서 외연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야권의 또 다른 책사 박지원 위원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박 위원장은 최근 공개적으로 손학규 전 고문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 영입을 선언했다. 2010년 안철수 전 대표의 양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된 더민주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도 거론했다. 박 위원장은 말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더민주 전당대회가 열린 8월 27일에는 전남 강진 백련사를 찾아가 손 전 고문을 직접 만났다. 그는 손 위원장에게 국민의당에 들어와 안 전 대표와 ‘강한 경선’을 하자고 제안했다. 박 위원장은 안 전 대표에게도 손 전 고문 방문을 요청했고, 다음날인 28일에 안 전 대표가 손 전 고문을 찾아갔다.

국민의당이 손 전 고문 영입에 적극적인 까닭은 ‘압도적인 3위’인 국민의당의 당세만으로는 제3지대론을 주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하면 더민주의 ‘야권통합론’에 끌려가거나, 향후 제3지대가 만들어지더라도 N분의 1로 참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3지대론은 지금 국민의당을 소멸시키려는 것”이라는 박 위원장의 발언이나 “다음 대선은 양극단 대 합리적 개혁세력 간의 대결이 될 것이며, 국민의당은 당의 문호를 활짝 개방하겠다”는 안전 대표의 발언도 이 같은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의도와 달리 당 안팎에서는 여야의 일부 잠룡이 탈당해 제3지대에 합류하면 국민의당이 N분이 1로 참여하는 ‘넓은 운동장(playground)론’ 또는 ‘빅 텐트론’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 위원장 등 당 지도부 역시 이 같은 현실론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시기적으로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손 전 고문 등의 영입이 일정 기간 표류할 경우 국민의당은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손학규의 선택지는? 김무성의 히든카드는?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012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정치컨설팅회사인 아젠다센타 이상일 대표는 “‘더민주당=문재인당’처럼 ‘국민의당=안철수당’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며 “국민의당이 아무리 공정 경선을 보장하겠다고 해도 여야 잠룡들의 국민의당 입당은 쉽지 않을 것이며, 결국 국민의당이 당 밖에서 제3지대에 합류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내다보았다. ‘천하삼분지계’를 실현시키려는 ‘책사’ 박지원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상당수 정치평론가는 제3지대론의 파괴력을 결정할 변수로 손학규 전 고문과 새누리당 비주류 대표인 김무성 전 대표를 꼽는다. 여야 잠룡 중에서 더민주 소속의 김부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는 8·27 전당대회 직후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당내 경선을 선택했다.

새누리당의 사정도 비슷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 카드’가 변수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남경필 경기지사와 유승민 의원은 당 개혁을 외치고 있다. ‘시대정신’의 엄 대표는 “여야 잠룡들은 차차기까지 염두에 두면서 1차적으로 당 개혁을 주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이번 대선이 마지막 기회인 손 전 고문과 김 전 대표의 선택이 제3지대론의 크기와 파괴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 전 고문은 9월 2일 광주에서 사실상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바탕을 이루기 위해 저를 죽일 각오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의 고민은 정계 복귀를 하더라도 당장 몸을 의탁할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일단 대선후보 지지도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에 비해 열세다. 손 전 고문의 최근 대선 지지도는 8월 29~31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 문 전 대표(17.8%)와 안 전 대표(11.0%)에게 뒤진 4.3%였다. 한국갤럽 조사(8월 9일~11일)에서도 문재인 16%, 안철수 8%, 손학규 4%로 유사한 흐름이었다. 야권 심장부인 호남지역에서도 손 전 고문은 문·안 전 대표에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8·27 전당대회로 사실상 ‘문재인당’이 된 더민주나 안철수 중심으로 총선을 치러낸 국민의당은 손 전 고문에게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 자칫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

손 전 고문 측의 핵심 관계자는 “더민주 전당대회 결과 ‘도로 친노(친문)’이 되면서 손 전 고문의 활동 공간이 열렸고 정계 개편의 가능성이 깊어졌다“며 “더민주에 얽매이지도, 당장 국민의당으로도 가지 않고 당분간 광폭 행보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복귀 후 상당기간 제3지대에 머물며 제 3지대론의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인 ‘손학규+국민의당+알파’로 구성되는 제3지대론의 중심이 되는 길을 모색할 거라는 설명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손 전 고문은 당장은 아니겠지만 연말쯤 더민주를 떠나 국민의당과 함께 제3지대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며 “문제는 국민의당 안에서냐, 밖에서냐”라고 전망했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대표 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현재 남경필 경기지사나 유승민 의원과 마찬가지로 당 잔류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대표의 제3지대 이동 가능성에 대해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1997년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와 손학규 후보가 어떻게 실패했는지와 2007년 경선 패배 후 끝까지 당을 지킨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다들 기억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시나리오 ‘영호남 연대론


▎손을 맞잡고 있는 서청원(왼쪽)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정치 9단’으로 통하는 두 사람이 향후 대선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 사진·김현동
그러나 여의도 정가에서는 제3지대론의 또 다른 시나리오로 ‘영호남 연대론’이 회자된다. 영호남 정치세력이 동서화합을 명분으로 손을 잡고 내년 대선을 치르는 그림이다. 이 시나리오의 중심에는 그간 영호남 화합을 계속 강조해온 김무성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계가 있으며, 이들이 새누리당을 이탈해 국민의당 등 호남 세력과 뭉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가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내년 초 귀국 이후 상당기간 제3지대에 머물면서 정계 개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친박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거나 친박의 지원을 받아 새누리당 후보가 되더라도 내년 대선에서 승산이 낮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반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친박계가 미는 새누리당 후보가 되는 것에 반총장이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일 아젠다센타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도 격차가 좁혀졌는데 응답자들이 ‘무소속 반기문’이라고 물어도 새누리당 친박 후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만약 충청 출신 반 총장이 제3지대 세력을 규합해 ‘반기문당’을 만든다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의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결심한다면 1차적으로 ‘반기문의 새누리당’을 만들 수 있을지를 저울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성공의 열쇠는 ‘기득권 포기’와 ‘정치 비전


▎한국 정치사에서 제3후보는 늘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최근의 제3지대론에는 큰 관심이 쏠린다. 2012년 대선 당시 한 후보의 유세장에 모인 청중들. / 사진·중앙포토
현재까지 주요 정치인들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국민의당, 손학규 전 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 중도개혁 성향의 늘푸른한국당 창당에 나선 새누리당 이재오 전 의원 등이 제3지대에 서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비박, 더민주의 비노, 김종인 전 대표, 반기문 총장 중 일부가 가세한다면 제3지대론은 태풍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역대 대선에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 제3지대론이 내년 대선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정치권 인사들은 한결같이 제3지대에 참여한 잠룡들이 ‘백의종군’의 자세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역대 대선에서 분명히 국민의 열망이 있었음에도 제3후보가 실패한 것은 늘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안철수 전 대표, 손학규 전 고문 등 제3후보들이 성공을 원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거꾸로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전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제3지대 성공에 두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했다. 제3지대론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열망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아져야 한다(필요조건)는 것이다. 그리고 제3지대의 중심 인물은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충분조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3지대가 여야 주류 후보에 밀린 비주류 후보들이 대선을 앞두고 급조한 집합체가 될 경우 실패할 것이며, 집권 이후 국정운영의 분명한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최근 강연에서 “내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제발 그 자리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이 나라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새한국의 비전’ 박형준 원장은 “제3지대에 모인 잠룡들이 개헌, 경제민주화, 격차 해소, 삶의 질과 복지 등 내년 대선 핵심 이슈에 대한 공통 강령을 만들어내는 일이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 차세현·안효성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박스기사] 현대가(家) 정주영-몽준 부자도 쓴잔 피하지 못했다

역대 대선을 통해 본 제3후보의 실패의 역사, 돌풍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의 그쳐


제3지대 논의는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새누리당 계열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3정당이 창당되고 대권에 도전하는 현상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됐다. 그러나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제3지대를 개척한 첫 케이스는 1992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이다. 정 전 회장은 1992년 1월 시무식에서 “앞으로 기업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창당작업을 시작했다. ‘반값 아파트’, ‘은행 자율화’, ‘농어촌 활성화’ 등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해 그해 총선에서 31석을 얻으며 원내 제3당이 됐다. 부산과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골고루 당선자를 내 전국 정당의 외연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해 14대 대선에서 정 전 회장은 388만167표(16.1%)를 얻으며 낙선했다. 당시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확보한 당원 수만 해도 1200만 명이었다. 정 전 회장은 개표 결과를 보고 “우리 당원들은 도대체 누구를 찍은 것이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5년 후 15대 대선에서도 제3지대를 표방한 정당이 나왔다.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독자출마를 선언한 후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만든 국민신당이다. 이 지사는 10월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보스 중심의 정당·권력 정당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정치시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지사의 지지율은 27.2%로, 김대중(35.8%) 후보에 이어 2위였다.(1997년 10월11일 중앙일보 여론조사)

그렇지만 이 지사가 대선에서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김대중-김종필 연합(DJP 연합), 이회창-조순 전 서울시장의 연합으로 창당된 한나라당 등 거대 양당으로 지지세가 결집했다. 이 후보는 15대 대선에서 19.2%(492만5591표)를 얻어 3위에 그쳤다. 2위인 이회창 후보의 38.7%(993만5718표)의 절반이었다. 그러나 이 지사가 받은 표는 지금까지 제3지대 후보를 표방한 대선주자 중 가장 많은 득표로 남아 있다.

다음 대선에서도 제3지대에서 유력 대선후보가 나왔다. 이번에는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이었다. 정몽준 후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열풍을 타고 지지율이 크게 오르자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을 100일 앞둔 시점까지 지지율이 30%에 근접해 여당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압도할 정도였다. 정 의원은 그해 11월 ‘국민통합 21’을 창당하는 등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후 출마를 접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집권여당(열린우리당)이 흔들리고, 반대로 야당(한나라당)에 유력한 대선주자(이명박 전 대통령)가 자리잡으면서 제3지대 신당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후보와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이 논의의 중심이 됐다.

2007년 8월 5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80명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세력이 힘을 합쳐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잔류파, 민주당과 합쳐 2007년 11월 통합민주당으로 또다시 간판을 바꿔달았다. 손 전 지사는 대선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해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했다.

또 다른 제3지대를 표방했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도 대선에서는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온 문 후보는 5.8%(137만5498표)의 지지를 받아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 이어 4위에 그쳤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제 3지대’의 대선후보였다. 안 전 대표는 2011년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를 전격 양보한 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앞서며 1위를 달리는 등 제3지대의 성공 가능성0을0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11월 문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한 후 대권 도전을 포기했다.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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