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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 북유럽 다녀온 여야 초선 5인의 복지론 

“복지국가는 정치가 만드는 것… 타협·협치 절실하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위로부터 시작된 엘리트 혁명’이 출발점… 대한민국도 변화 필요한 때
사회운동과 정치권은 거리 둬야… 정치 스펙트럼 좁을수록 타협 쉬워져


▎20대 국회의 첫 해외순방단으로 북유럽을 다녀온 여야 초선들의 복지 해법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다. / 사진·김현동
“복지국가는 혁명이나 운동으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정치로 이룩하는 거죠. 복지국가를 만들어내는 핵심은 타협의 정치예요.”

7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간 일정으로 스웨덴과 덴마크를 다녀온 국회 ‘따뜻한 미래를 위한 정치기획 모임’(이하 ‘따뜻한 미래’) 소속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약자에게 따뜻한, 현존하는 국가모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모델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들의 고민이 시작된 지점이다. 그래서 향한 곳이 선진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꼽히는 스웨덴과 덴마크였다. 이번 방문에는 새누리당 이양수 의원과 더민주 강병원·금태섭·기동민·박용진 의원이 동행했다.

이들의 북유럽 탐방은 20대 국회의원의 첫 공식 해외 탐방이자 초선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정치의 밑그림을 그리는 첫 출발점이라는 데서 주목받았다.

8월 31일 국회 의원회관 금태섭 의원실에서 북유럽 방문단의 좌담이 이뤄졌다.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 기동민 의원을 제외하고 5명이 모였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은 이상적인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필요조건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결국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눈에 비친 북유럽의 첫 인상은 놀라움과 부러움 그 자체였다. 북유럽을 다녀온 소감을 묻자 새누리당 이양수 의원의 첫마디는 “너무 부러웠다”였다. “스웨덴은 러시아워(rush hour: 교통량이 가장 많은 시간)가 오후 4~5시더라고요. 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 거죠. 그런데 스웨덴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5만 달러가 넘어요. 우리가 갔을 때 도심이 텅텅 비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다 휴가를 떠난 거죠. 1년에 휴가가 6주인데 봄에 일주일, 크리스마스 때 일주일이고 여름엔 한 달을 쉰대요. 우리(1인당 GDP 2만5000달러)보다 절반만 일하고 돈은 두 배로 번다는 거지. 아 그걸 보니 또 부럽고….”

“절반 일하고 갑절로 버는 비결은 사회갈등 해결능력”


▎주 덴마크 한국 대사관이 주최한 방문단 환영만찬에 참석한 이철희 의원이 ‘따뜻한 미래’를 대표해 방명록에 남긴 글. / 사진제공·금태섭 의원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얘기나 장면은 무엇이었나?

이양수_ “우리보다 절반 일하고 두 배의 돈을 버는 원천이 어디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엔 자원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스웨덴은 자원이 없다고 하더라. 모두 수출주도 지식집약형 산업이더라. 우리랑 비슷한 산업구조다. 다만 스웨덴은 사회갈등 비용이 없다. 우리가 세월호 특위를 가동하듯이 스웨덴도 국가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특위를 만든다. 특위 제도는 우리랑 똑같다. 의원만 참여하기도 하고, 전문가들이 함께하기도 하고 1년 정도 진행하다가 기간이 부족하면 연장하기도 하고. 그런데 특위가 결과를 내면 국민은 그 결과를 수긍한다. 국회는 그렇게 의결만 해주면 된다. 국민이 국가와 의회를 신뢰한다는 거다. 모든 문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쉽게 풀린다. 우린 사회갈등이 심각하지 않나. 그렇게 쉽게 풀리는 걸 보고 신기했다.”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언급한 것은 1938년 노사 대타협으로 만들어낸 스웨덴의 컨센서스 모델인 ‘살트셰바덴(Saltsjobaden) 조약’이었다. 38년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살트셰바덴의 한 호텔에서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과 스웨덴경영자연맹(SAF) 사이에 합의된 이 조약은 노조와 고용주 단체 모두 ‘윈-윈(win-win)’한 것으로,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원들 간에 살트셰바덴 조약이 성사된 배경을 둘러싸고 토론이 이어졌다.

갈등이 그렇게 쉽게 풀린다면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이양수_ “살트셰바덴 조약은 누구의 책임을 묻기보다 자기 욕심을 줄이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투쟁이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놀라웠던 건 당시 노조 지도부다. 조합원들만의 권익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권익을 위해 협약을 맺은 거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기로 약속한 셈이다. 고임금 노동자들은 임금을 동결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급여를 올리는 일을 쭉 해온 거다. 그 과정에서 정부 개입이 있었느냐고 물어봤더니 공통적인 대답이 ‘정부는 개입하면 안 된다. 노사 자율로 해야 된다’는 거였다. 그 협약이 나에겐 충격이었고, 노사갈등이나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그 전엔 스웨덴도 혼란스러웠다는데, 그 협약을 기점으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이철희_ “정부가 기업과 노조 양쪽 모두를 압박한 거다. 좋게 말하면 협상을 유도한 거고, 강하게 말하면 양측을 압박해서 타협하도록 이끌어낸 거다. 우리는 노사 간에 이미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당사자에게 맡기면 힘의 불균형이 심해 일방적으로 승부가 나니까 정부가 개입해서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 3자 협약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 부분을 공부하려고 보니까 스웨덴과 덴마크 모두 그렇게 협약을 해서 사회문제를 풀어왔더라. 사민당이 더디게 가더라도 야당, 보수정당들이 동의할 수 있게끔 복지 컨센서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44년 동안(1932~1976년) 집권한 거다. 그런 힘과 함께 합의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복지 체제가 견고하다. 우리와는 달리, 집권 세력이 약자들에게 이니셔티브를 쥐어주는 거다. 다수파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해 소수파랑 협의해서 가야 한다.”

강병원_ “그 합의가 ‘위로부터 시작된 엘리트의 혁명’이라고 표현되더라. 극심한 대립 속에서도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 혁명을 만들어내고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한 거다. 노동과 자본의 극심한 대결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이 노조에는 파업금지법, 기업에는 직장폐쇄금지법을 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두 집단이 대화를 안 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 뒤에 나온 총리(타게 에를란데르, Tage Erlander)가 재계 대표, 노동자 대표를 매주 목요일마다 불러서 저녁 먹고 토론했다. 그렇게 소통을 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 수 있는 단초를 만든 거다. 그 ‘엘리트 혁명’이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런 변화가 대한민국에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말뫼의 눈물을 닦아준 건 정부의 결단


▎스웨덴 의회 전경. 의원들은 1938년 스웨덴이 노사 대타협으로 만들어낸 ‘살트셰바덴(Saltsjobaden) 조약’을 주목하면서 타협의 정치를 다짐했다.
박용진 의원은 스웨덴 말뫼를 가장 인상적인 방문지로 꼽으면서 구조조정 문제를 언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말뫼는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를 거론하며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면서 골리앗 크레인이라 불리던 핵심 설비를 단돈 1달러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말뫼의 ‘눈물’보다는 말뫼의 ‘희망’을 만들어낸 과정에 주목했다. 특히 “말뫼가 눈물을 극복한 비결은 바로 정부의 결단이었다”고 강조했다.

말뫼는 언론에서도 여러 번 언급해 우리에게 많이 익숙해진 도시다. 어떤 점이 눈에 띄었나?

박용진_ “말뫼도 준비되지 못한 채로 위기를 맞았다. 제일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사민당 정부가 코쿰스 조선소를 인수해 4조원을 투입했는데 안 되니까 4년 만에 과감하게 정리했다는 거다. 지금은 친환경 에너지 등 이른바 창조경제 산업지역으로 부각돼 있지만 말뫼는 스웨덴에서 국적이나 인종구성이 가장 복잡하다. 난민도 많고 범죄가 심각했다. 말뫼는 노조가 강력하고 시민들이 거의 사민당 당원이었는데 사민당이 결단해버리니 사회적 아픔이 상당했다. 일단 중앙정부가 그런 결단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두 번째 결단은 말뫼 시장(일마 리팔루, Ilmar Reepalu)이 했다. 이미 황폐해진 말뫼를 새롭게 디자인하자고 한 거다. 두 단계의 결단이 이뤄진 거다.”

박 의원은 이 대목에서 “지금 우리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같은 조선업 문제에 어떤 결단을 하고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정부는 결단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우니까 연명하려고만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 말뫼의 눈물을 이야기했으면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런 비전은 없이 고통만 감내하라고 하죠. 그 고통의 대부분은 노동자가 지는 겁니다.”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자 방문단에서 유일하게 새누리당 소속인 이양수 의원은 농담조로 “다음엔 여야 3대 3 맞춰서 가야겠다. 난 김종인·문재인 전 대표 이야기도 안 하는데 자꾸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를 해~”라며 웃었다.

어느 국가, 어느 정부든 대규모 파업은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다. 정치 입문 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박용진 의원은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처가 잘못됐다는 점을 스웨덴에서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노조의 가장 강한 무기는 파업이다. 이들 복지국가에서는 노조 파업을 어떻게 다루던가?

박용진_ “내가 학생운동·노동운동 할 때 가장 악법이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제도다. 노조가 파업할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긴급중재 결정을 내리게 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불법파업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병원, 철도, 지하철, 항공기, 상하수도 모두 노조가 조직돼 있으니까 정부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걸핏하면 강제조정 결정을 해서 받으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지지를 듣고 싶어서 스웨덴의 산별노조에 가서 물어봤다. ‘여기도 그런 제도가 있느냐’고 했더니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다만 스웨덴도 강제조정으로 이행을 촉구하긴 하지만 우리처럼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이양수_ “스웨덴도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제도가 있으니까 ‘파업해서 처벌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노조 국장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공익사업인데 왜 파업을 하느냐’고 되묻더라. 노조 전임자 제도도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또 ‘사장한테 월급 받으면 사장 편이지. 노조 전임자는 없다’고 하더라.”

박용진_ “스웨덴에서 이 제도가 가동된 게 81년도부터다. 1928년이 ‘뜨거운 겨울’이라고 명명되는데 그때 건설노조가 어마어마한 파업을 했다고 한다. 그곳의 겨울이 워낙 길어서 건설사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데, 건설노조가 파업을 하면 그게 사업주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때 발포해서 노동자 몇 명이 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스웨덴은 이미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고, 정부가 노조 편향적이다. 사회적으로 일정한 합의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다. 파업이 많지는 않다.”

해고 막기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으로 재취업 장려


▎말뫼 창업지원센터로 개조한 코쿰스 조선소. 말뫼시는 1960년대의 코쿰스 조선소의 일부를 보존해오다 2004년 창업지원센터로 개조했다. /. 사진·중앙포토
‘친노(친노동자) 국가’에 대한 박용진 의원의 기대는 덴마크에서도 흔들렸다고 한다. 덴마크 로스킬데대학 복지센터에서 만난 헤닝 살링 올레센(Henning Salling Olesen) 교수와의 면담에선 노동유연성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고 했다.

덴마크에서는 노동문제와 관련해 어떤 토론이 이뤄졌나?

이양수_ “노동문제의 핵심이 뭐냐고 물었더니 교수님이 ‘노동 유연성’이라고 대답했다. 해고를 못하게 할 게 아니라 해고된 사람을 빨리 취업시키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박용진 의원이 당황해서 ‘이 교수님, 새누리당 아니냐’라고 농담도 했다.”

금태섭_ “그 교수님은 정부 입장에서도 실업자들에게 본급여의 80%를 실업급여로 줘야 하니까 취직을 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게 정부가 잘하는 건지, 기업이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 군데가 죽으면 새로운 걸 만들어서 구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거다. 우리도 재교육과 훈련만으로는 안 되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용진_ “우린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있지 않나.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런데 덴마크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8번 정도 직장을 바꾼다. 실업급여도 너무 많다고 해서 지급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완벽한 노동시장 구조라고 했던 덴마크 모델이 무너지나 했는데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우리보다는 3~4배 길다.”

강병원_ “덴마크는 실업급여나 재교육 같은 사회안전망이 튼튼하고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보다 적지 않다. 그 정도 뒷받침되니까 노동 유연성을 다 받아들이는 거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노조 조직률은 80%에 이르는데 우리는 불과 10%밖에 안 된다. 노동유연성이 좋긴 하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동일한 처우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5년이든 10년이든 프로젝트로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환경노동위원회인데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노동유연성과 비정규직 보호, 임금인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금태섭_ “야당에서 돌 맞을 수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동유연성을 확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유연성도 안 주고 모든 비정규직을 대기업 정규직처럼 하자? 누가 안 그러고 싶겠나. 하지만 스웨덴은 임시직이 훨씬 많다. 그런 건 솔직히 말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문제는 서로가 못 믿는다는 거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노동 유연성만 내주고 비정규직 처우 문제는 개선되지 않을 거란 말이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당과 정파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있으면 좋겠다.”

직능단체는 편향성 없고 정당은 정책 유연성 발휘


▎스웨덴 말뫼의 세계해사대학에서 문성혁 교수(가운데)와 함께 선 방문단. / 사진제공·금태섭 의원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런 점에서 각종 직능단체는 국회에 대표자를 진출시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방문단은 덴마크 장애인복지협회(DPOD)를 방문하고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DPOD는 장애인을 위한 비정부기구 연합으로 33개 조직, 32만 명 이상의 회원수를 자랑하고 있다.

DPOD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어떤 점이 달랐나?

이철희_ “조직 규모나 영향력이 그쯤 되면, 우리나라 같으면 정당에 장애인 후보 공천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잖나? 그래서 ‘왜 공천 요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책을 설명하고 협약하면 되지 굳이 우리 조직 사람을 공천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책을 정치에 반영하는 영역과 방식이 절제돼 있다고나 할까. 모든 영역을 정치화시키지는 않더라. 여야가 공히 거리를 두면서 정책을 반영하는 거지, 정책적으론 야당 편에 가깝긴 하지만 그쪽 편만 들지는 않더라.”

강병원_ “장애인들이 모여 조직화돼 있지만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특정한 당에 줄을 댈 하등의 이유가 없을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었던 거다. 정책적 차이가 있더라도 각 정당이 장애인의 요구를 다 받아줄 정도의 수준이 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보통 직능단체를 만들면 정치권에 줄대고 밀어주고 거래하고 후원해주면서 자기 편 만들어서 스피커로 쓰려고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이양수_ “나도 인상 깊었던 대답이 그거다. 이철희 의원께서 ‘비례대표 달라고 하세요’ 했더니 그분 첫마디가 ‘국회의원이 되면 너무 바빠서 안 돼요’였다. 정치권의 스펙트럼이 좁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사회운동 영역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정치권에 너무 많이 진입한다. 보수운동 해야 할 사람, 진보운동 해야 할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스펙트럼이 너무 넓으면 여야 간에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 스웨덴은 집권한 사람들이 야당을 포용해주고 야당도 극렬하게 반대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희망은 전혀 없는가? 북유럽을 마냥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경쟁력을 찾아내고 최대한 발휘토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의원들은 대한민국의 역동성에서 그 희망을 찾았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다양한 해법도 내놨다.

혹시 국내에선 못 느꼈는데 그곳에서 새롭게 발견한 우리만의 경쟁력이 있었나?

강병원_ “우리나라가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인 건 확실하다. 사람들이 어울리기 좋아한다. 우리나라가 훨씬 액티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죽기 살기로 일하지만 경제적으로 보상은 잘 못 받는다. 국내 노동자가 1900만 명인데 그중 절반이 월급 200만원 이하다. 죽기 살기로 해도 안되는 구조만 바꿔준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역동적 에너지가 국가 성장동력으로 쓰일 거다.”

금태섭_ “북유럽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더라. 저도 강병원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데, 에너지 면에선 우리를 따라올 수가 없다. 스웨덴· 덴마크 대사들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발전했는지 감탄한다. 그 사람들도 우리한테 어떻게든 배우려고 한다. 우리 역시 조금이라도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장점을 배우려고 하잖나. 그런 태도를 잃지 않으면 우리의 막힌 부분도 금방 뚫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양수_ “너무 부러워할 것만도 아니다. 우린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에 시작이라고 봐야겠지만 스웨덴은 38년(살트셰바덴 조약 체결)부터 시작한 거다. 말뫼에서 만난 세계해사대학 문성혁 교수는 ‘스웨덴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자본주의’라고 하더라. 65세가 돼서야 정말 복지국가라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엔 손이 찢어지면 병원 가기가 어려운데 중병에 걸리면 국가가 다 해준다. 스웨덴 행복지수를 보면 45~55세가 제일 불행하다고 느낀다. 돈 들어갈 데는 가장 많은데 세금 부담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과세제도와 선거제 개편… 해법은 각양각색


▎덴마크의 연금회사인 펜션덴마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부터 덴마크 연금체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의원들. / 사진제공·금태섭 의원실
이번 북유럽 국가 방문을 계기로 국회에서 법안이나 제도로 만들어보고 싶은 게 혹시 있나?

강병원_ “과세제도는 꼭 손을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업소득은 풀어주면서 가계소득은 뜯어내기만 한다. 그러니 가계는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양극화가 심각하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면서 처방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간다. 우리가 둘러보고 온 북유럽 국가는 다 같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더 분담해서 복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철희_ “사실 법안 하나를 만들어서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순 없다. 그래도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법을 만들라고 한다면 나는 선거제도부터 바꿀 거다.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일대일로 해도 되고, 국회의원 전체를 비례대표로 선출해도 된다. 비례대표제를 해야 더 빠르게 복지국가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금태섭_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스웨덴이나 덴마크도 어려울 때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많이 갔다. 남재희 전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강연하실 때 ‘부자가 되는 길은 부자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이라고 해서 다들 웃었지만 이민자를 받는 문제도 적극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단일민족이고 한국만 먹고 살자는 폐쇄적 분위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가 저임금 구조로 가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걸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국회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강병원_ “여당에서 뭔가 하나씩 들고 나와야 된다고 본다. 결국 ‘엘리트 혁명’을 위해 우리 사회의 주류가 한 발씩이라도 양보하면서 물꼬를 터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양 극단을 빼고 논의하자’고 말했는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고집부리는 세력을 빼고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의제를 분야별로 한두 개만 타결해서 밀어보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정권을 바꿔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당장에 시간이 아깝다. 현 정부에서 먼저 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금태섭_ “야당은 의제를 던져줘야 한다. 정부가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면 우리가 반대한다. 그러면 ‘핵미사일은 뭘로 막을래?’ 물었을 때 그 대안을 내야 한다면 무조건적인 반대로는 답이 안 나온다. 정부가 악마 집단도 아니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결정했을 것 아닌가? 무상급식이 유효했던 건 무상급식 자체가 옳았다기보다는 ‘열심히 일하자’고 말하면서 복지 문제로 이어진 거다. 이 문제는 수년 간 야당이 던진 가장 중요한 의제였고 이게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말했는데 오히려 야당이 먼저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뭘 고민해야 하는지 의제를 찾아서 낼 수 있으면 된다.”

이철희_ “우리가 이번에 북유럽을 간 취지는 그곳은 어떤 정치를 했길래 그런 복지제도를 만들어냈나, 그걸 살펴보자는 거였다. 우리처럼 양 진영으로 나뉘어서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의 제로섬 게임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가 없다. 북유럽에서 얻은 교훈은 타협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한 번에 다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도 틀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두세 걸음만 가더라도 앞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정당도 마찬가지고 집권 전략을 짜거나 집권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아쉬움도 털어놨다. 금태섭 의원은 “국회의원이 외국만 나가면 그 자체만으로 비난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북유럽 방문이 20대 국회의원들의 첫 번째 공식여행이라 일정도 꽉꽉 채우고, 보고서도 120쪽 분량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현장을 보고 여야 의원이 같이 다니면서 교류하다 보면 주장을 위한 주장은 덜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벽에 대고 외치는 식이잖아요. 입법도 중요하지만 이런 탐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면 좋겠어요.”

박용진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괜히 해외에 나갔다가 욕만 먹을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우리가 해외에 나가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다들 안 가려고 했거든요.” “혼자 새누리당이라서 외로웠다”고 너스레를 떨던 이양수 의원은 “강병원 의원이랑 같이 다녀보니 하는 말이나 행동이 모두 이 시대의 지도자감이다. 내가 이번에 북유럽 다녀와서 강병원계가 됐다”고 화답했다.

-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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