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글로벌 포커스] ‘시황제’의 도래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인독재 가속화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집권 직후 ‘21세기판 문화대혁명’으로 불리는 부패척결로 정적 제거··· 신설 기구마다 수장에 올라 측근들 대거 요직에 기용하면서 유임 의욕 드러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인 체제를 구축하며 권력을 집중시킨다.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정치국 상무위원들. 왼쪽부터 왕치산 기율위 서기(서열 6위), 위정성 정협주석(서열 4위), 시 국가주석(서열 1위), 리커창 총리(서열 2위), 류윈산 위원(서열 5위), 장가오리 부총리(서열 7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총서기는 최근 들어 ‘핵심(核心)’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사전적 의미로 핵심은 사물의 중심을 가리킨다. 중국 정치에서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을 말한다. 말 그대로 어떤 사안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를 지칭한다.

중국 정치에서 핵심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톈안먼 사태’ 발생 직전이었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 등 수십만 명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 광장의 시위 사태를 강경 진압할 것인지 아니면 온건하게 대응할 것인지를 놓고 대립했다. 이때 공산당 원로들의 모임인 중앙고문위원회의 천윈 주임은 “우리가 지금 물러선다면 사회주의 공화국이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변하고 말 것”이라면서 “덩샤오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을 굳건하게 지키자”고 주장했다.

이후 덩샤오핑은 강경 진압을 결정했다. 톈안먼 사태를 평정한 덩샤오핑은 같은 해 6월 16일 자신의 집에서 장쩌민, 리펑, 차오스 등 제3세대 지도자들을 불러 회의를 개최했다. 덩은 이 자리에서 “어떤 영도집단도 하나의 핵심을 가진다. 제1세대 영도집단의 핵심은 마오쩌둥 주석이었고, 2세대 핵심은 나다. 3세대 영도집단도 핵심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장쩌민 동지다”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6월 24일 공산당 제13기 중앙 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온건파인 자오쯔양 총서기를 모든 직책에서 해임하고, 무력 진압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강경파인 장쩌민 당시 상하이 당서기를 총서기로 선출했다. 장쩌민 총서기는 같은 해 11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차지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때부터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문구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장 국가주석을 지칭하던 핵심이란 용어가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집권기에는 사라졌다. 장 전 주석 재임시절 당의 공식 문건에는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표현이 관용구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후 전 주석 재임시절엔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란 표현이 사용됐을 뿐이다. 후 전 주석에게 핵심이란 호칭을 쓰지 않은 것은 후전 주석이 장 전 주석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 전 주석은 2002년과 2003년 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에서 물러났지만 군의 최고지위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앉아 후진타오 체제에서도 섭정을 했다. 장 전 주석은 2004년에야 군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내놓았지만 자신의 인맥을 통해 당과 정부,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후 전 주석은 중대한 정책을 결정하기 전 장 전 주석과 의논할 정도로 권한이 약했다. 이 때문에 후 전 주석은 정치국 상임위원들 중 한 명이란 말까지 들어야 했다. 특히 후 전 주석은 군부에 대한 통제나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만큼 권력이 취약했다는 뜻이다.

장쩌민 이후 ‘핵심’ 재등장


▎마오쩌둥은 10년간 지속된 문화대혁명으로 자신을 따르지 않는 간부와 지식인들을 제거했다. 1966년 8월, 문화대혁명 행동조직인 홍위병들이 천안문광장에 모여 낡은 관습을 철폐하자고 외치고 있다.
시 주석을 핵심이라고 맨 처음 호칭한 사람은 황싱궈 톈진시 당서기다. 황 서기는 지난 1월 8일 시 당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라는 핵심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한마디로 지난해 8월 톈진항 폭발사고로 해임될 뻔 했던 황 서기가 다시 살아났다. 당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화공 약품이 폭발해 시안화나트륨 등 유독 물질이 유출되면서 161명이 사망하고 가옥 9000여 채가 파괴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당연히 이 폭발사고에 책임지고 숙청돼야 했던 황 서기는 시 주석에 대한 충성의 발언 때문에 자리를 보전했다. 이후 대부분의 성 및 직할시 당 서기가 이구동성으로 시 주적을 향해 핵심을 외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분출된 핵심이란 호칭을 중앙에서 수렴한 사람은 시 주석의 최측근인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격)이다. 리 주임은 1월 27일 열린 중앙 직속기관 공작회의에서 “핵심의식을 증강하자”면서 시 주석에게 모든 권력 기관이 충성할 것을 강조했다.

이틀 뒤 열린 정치국회의에서는 “영도 핵심인 시 주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다짐이 나왔다. 현재 정치국원인 리 주임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허베이성 우지현 당서기로 근무하면서 당시 이웃 지역 정딩현 서기이던 시 주석과 친교를 맺었다. 시 주석의 비서실장이자 경호실장 역할을 맡으면서 시 주석의 지시와 명령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이후 중국 지도부를 구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들도 시 주석을 핵심으로 호칭하면서 충성을 다짐했다.

2012년 11월 당 총서기로 취임한 시 주석이 그동안 1인 체제를 구축하면서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반부패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총서기 취임 직후 “호랑이(고위 관리와 간부)부터 파리(하급 관리와 간부)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깡그리 척결하겠다”면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특히 시 주석은 반부패 운동을 활용해 자신의 정적과 거물급 경쟁자들을 제거해왔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전임 상무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비롯해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후 전 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 통일전선부장(장관급) 등을 제거했다. 이들은 모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지난 3년간 반부패운동으로 낙마하거나 사법처리된 장·차관급 고위 관리와 당 간부를 살펴보면 2013년 22명, 2014년 59명, 2015년 57명 등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징계 대상에 오른 고위공직자가 장·차관급 고위 관료 41명과 중앙기관 국장급 1100여 명, 중앙기관 처장급 7300여 명에 이른다.

인민해방군 부참모장인 왕젠핑 상장(우리나라의 대장격)은 군부대를 시찰하는 도중에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왕 상장은 시 주석 체제에서 반부패 운동으로 낙마한 최고위급 현역장성이 됐다. 왕 상장은 저우 전 상무의원의 측근이란 말을 들어왔다. 사정감찰기구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규정 위반 정도가 심각해 당기율과 법규에 따라 징계 처리한 공무원 수가 2만159명에 달한다. 중국 역사를 보면 마오 전 주석은 1966년부터 10년간 문화대혁명을 통해 대중을 선동해 자신을 따르지 않는 간부들과 자신에게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제거한 바 있다. 시 주석의 반부패 운동은 일종의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져왔다.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으로 군부까지 장악


시 주석의 권력 강화의 또 다른 비결은 군부를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 전 주석의 말처럼 중국에서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절대조건이다. 중국은 공산당과 중앙정부에 각각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조직상 당과 정부의 2개 위원회로 돼 있지만 멤버 구성은 양쪽이 똑같고 두 곳 모두 시 주석이 주석직을 맡고 있다. 덩샤오핑은 국가주석은 물론이고 총서기를 맡은 적도 없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연임 제한이 없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된다는 것은 공산당을 힘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군 최고통수권은 국가주석이나 당 총서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명령을 받는다. 중국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군대가 아니고 당의 명령을 받는 공산당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총서기로 취임할 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도 선출됐다. 시 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쉽게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던 부친 시중쉰의 측근 겅뱌오(耿飆)가 당 중앙군사위 비서장을 맡을 때 그의 비서로 3년간 근무하며 다양한 군부 인사들과 접촉하며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이후에도 다양한 군부의 직책을 겸직했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까지 역임했다.

시 주석은 그동안 군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반부패 운동을 벌여왔다. 이에 군부를 좌지우지했던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원로와 장성들이 대거 낙마했다. 쉬 부주석은 부패혐의 조사 중이던 지난해 3월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시 주석은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군부의 조직과 기능을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이에 따라 중앙군사위는 과거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개 총부 체제였는데 지난해 말 판공청, 연합참모부, 정치공작부 등 7개 부청에 기율검사위원회, 과학기술위원회 등 3개 위원회, 개혁편제판공실, 전략계획판공실, 국제군사협력판공실 등 5개 직속기구를 포함해 15개 직능 조직으로 개편됐다. 인민해방군의 7대 군구 체제를 동·남·서·북·중부 5개 전구(戰區)와 육·해·공·로켓트 군·전략지원부대 등 5개 군종 체제로 바꿨다. 각 전구와 각 군종의 사령원(사령관)들은 시 주석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특히 총참모부가 연합참모부로 개편된 것은 연합작전 지휘시스템에 대한 개혁 조치가 반영된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20일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기구인 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했다.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은 군복 차림의 시 주석이 각반을 차고 군화까지 신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 주석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군사위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라고 소개했다. 총지휘는 총사령관을 말한다. 연합작전 지휘센터는 인민해방군의 육·해·공군과 5개 전구의 전투와 훈련을 총괄하는 곳이다. 시 주석이 연합작전지휘센터의 총지휘를 맡았다는 것은 인민해방군의 모든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권한을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시 주석이 군부에 공개 훈시까지 했다.

시 주석 군부 장악 마오쩌둥 버금가


▎1. 시 주석은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속 기구인 연합작전지휘센터의 총지휘(총사령관)를 맡으며 군권까지 확실히 장악했다. 4월 20일, 시 주석은 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했다. / 2. 시 주석의 관시(關係·연줄)는 근무지였던 푸젠성을 비롯해 칭화대, 저장성 등 다양한 곳에 포진해 있다. 1989년 푸젠성 닝더시 서기 시절 곡괭이를 들고 농촌 활동에 나선 시 주석(오른쪽).
중국 역대 지도자 중 군부에 공개적으로 훈시한 인물은 지금까지 마오쩌둥 전 주석밖에 없었다. 마오 전 주석은 1952년과 53년 국방·군대건설에 관해 5차례의 공개훈시를 했었다. 시 주석의 군부 장악은 마오쩌둥 전 초대 주석에 버금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지난 8월 29일 전략지원부대를 시찰하기도 했다. 전략지원부대는 우주전 및 전자전과 사이버전을 담당한다. 시 주석은 “전략지원부대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부대로서 연합작전체계의 중요한 축”이라며 “전투력 개발을 혁신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전략지원부대 시찰은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작전지휘 총사령관으로서 군 장악력을 과시하고 군 개혁을 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시찰에는 판창룽 부주석과 쉬치량 부주석을 비롯해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8명 전원이 동행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이 앞으로 마오 전 주석을 뛰어넘는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추진하고 있을까. 시 주석이 1인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면 경쟁 세력을 견제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공산당에는 크게 3개의 파벌이 있다.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혁명 원로들의 자제그룹인 태자당과장 전 주석의 출신 지역인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 그리고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이 있다. 이들 3개 세력이 지금까지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 주석의 1인 체제에 가장 위협이 되고 있는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공산당의 인재양성소라는 말을 들어온 핵심 기구다. 14~28세 청년이 가입할 수 있는 공청단은 단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8700만 명이다. 공청단은 규약에서 스스로를 ‘공산당의 조수’, ‘공산당의 예비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청단 단원들은 젊을 때부터 사실상 공산당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엘리트로 자라왔다. 이 때문에 공산당과 정부의 고위 간부들 중에는 공청단 출신, 이른바 ‘단파(团派, 퇀파이)’가 많이 포진해 있다. 단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후 전 주석이 있다. 단파는 후 전 주석 재임 시절에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대거 차지했다. 현재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도 단파이다.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단파는 12명이나 된다. 시 주석은 그동안 단파가 요직을 대거 차지하고 있는 것에 상당한 위협을 느껴왔다. 시 주석이 공청단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 주석은 “공청단의 관료화가 지나쳐 성시(省市)위원회 이하 조직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지마비 상태”라며 “중국 청년층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 제거 1순위


공산당 중앙판공청이 최근 발표한 공청단 개혁방안에 따르면 공청단을 이끄는 중앙지도부 인원과 기구를 대폭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방안은 ‘종엄치당’(從嚴治黨: 엄격한 당 관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종엄치당은 소강사회 건설, 개혁 심화, 의법치국과 함께 시 주석이 내세운 ‘4개 전면(4個全面)’에 포함된 국정 기조다. 4개 전면은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의 지도 이념과 같은 반열로 평가받는다. 4개 전면은 내년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에서 당장(黨章·당 헌법)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공청단 조직 가운데서도 엘리트의 산실인 중앙서기처 등 중앙기구가 집중적인 개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청단 출신 고위 간부들도 앞으로 권력 핵심에서 대거 퇴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링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은 뇌물수수, 국가기밀 절취, 직권남용 등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링 전 부장은 단파의 핵심 실세였다. 링 부장 이외에 공청단 출신으로 낙마한 주요 간부들을 살펴보면 완칭량 전 광저우시 서기, 판이양 전 네이멍구 자치구 부주석, 위위안후이 전 난닝시 당 서기, 위안춘칭 전 산시성 서기, 장바오순 전 안후이성 서기, 지빙쉬안 전 헤이룽장성 서기, 뤄즈쥔 전 장쑤성 서기 등이 있다. 특히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도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상무위원들 중 일부도 낙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19대에서 이뤄질 최고지도부 인선에서는 공청단 출신이 완전히 배제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상하이방 출신들도 단계적으로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 장전 주석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한 만큼 시 주석은 상하이방 출신들을 대거 축출하지 않고 부패에 연루된 고위 간부들만 솎아 낼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후난성 부서기 겸 성장에서 서기로 승진한 두자하오는 상하이방 출신이다. 반면 랴오시룽 전 중앙군사위원 겸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 리지나이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고위급 인사담당 주임 등 장 전 주석과 가까운 군 고위인사들이 잇따라 숙청됐다. 시 주석이 장 전 주석의 생일(8월 17일)을 며칠 앞두고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대동해 장 전 주석의 거처를 방문해 생일축하연을 주재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시 주석과 장 전 주석의 관계가 원만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장 전 주석이 사망할 경우 앞으로 상하이방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시 주석의 또 다른 권력 강화 전략은 지방정부 요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배치하는 것이다. 이는 마오 전 주석의 지방을 통해서 중앙을 포섭해 들어가는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두 달간 10개 지방 지역의 서기 인사에서 시 주석의 측근이 대거 포진한 것은 이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윈난성 성장에서 서기로 승진한 천하오는 시 주석이 상하이시 서기로 있을 때 상하이시 총공회 주석을 지낸 인물이다. 리지헝 네이멍구자치구 신임 서기도 ‘시 핵심’을 선도적으로 주장해온 측근이다. 시 주석의 ‘경제책사’로 통하는 류허 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의 매제인 궁정도 산둥성장에 내정됐다.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을 겸하고 있는 류 주임은 시 주석의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있는 측근 중 측근이다.

대거 요직 포진한 시 주석의 관시들


▎시 주석은 공산당의 인재양성소로 불린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전면 개혁을 지시했다. 왼쪽부터 공청단의 핵심세력인 후진타오 전 주석, 리커창 상무부총리, 후춘화 네이멍구 당서기.
시 주석의 관시(關係·연줄)는 태자당 출신은 물론 근무지였던 푸젠성과 저장성, 부친의 고향인 산시성, 모교인 칭화대 출신 등 다양하다. 시 주석은 1985년 샤먼시 부시장으로 업무를 시작해 닝더지구 당서기(1988년), 푸저우시 당서기(1990년), 푸젠성 당부서기(1999년), 푸젠성장(2000년)을 역임하는 등 17년간 푸젠성 일대에서 근무했다. 또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성 서기를 지냈으며, 상하이시 서기(2007년)도 역임했다. 시 주석은 1979년 칭화대 공학원 공정 화학과를 졸업했고, 2002년 같은 대학 인문사회학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사상정치 교육학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런 관시에 따라 시 주석의 측근들은 푸젠방, 저장방, 산시방, 칭화방 등으로 분류된다. 특히 최근 들어 저장방 출신이 대거 지방 요직을 꿰차고 있다. 리창 장쑤성 서기, 루신서 장시성 서기, 왕궈성 칭하이성 서기, 류치 장시성 성장, 러우양성 산시성 성장, 황싱궈 톈진시 서기, 천민얼 구이저우성 서기, 황쿤밍 중앙선전부 부부장 등이 저장방 출신들이다.

시 주석이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하고 있는 것은 집권기간 연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산당의 내부 규약대로라면 시 주석은 집권 10년째인 오는 2022년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대)에서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겸하는 최고지도자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물러나면서 후임 권력자에게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한 차례 연임해 10년 씩 집권하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공산당의 내부 규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시 주석은 덩이 정한 ‘10년 집권’의 불문율을 깨고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은 최 측근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내년 19대에서 결정될 유임 여부에 달려 있다. 왕 서기의 유임 여부가 중요한 것은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게만 적용되는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공산당의 내규에 따른 것이다. 당 대회 개최 시점에 ‘67세이면 유임하고 68세는 퇴임 하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현재 7명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 시 주석(1953년생)과 리커창(1955년생)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은 19대에서 모두 퇴임해야 한다. 시 주석이 추진해온 반부패 운동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왕 서기는 내년에 69세가 된다. 왕 서기가 ‘칠상팔하’라는 내규를 깨고 유임될 경우 2022년 70세가 되는 시 주석에게 선례를 만들어 ‘팔하’의 규정을 받지 않고 상무위원에 남을 근거가 된다.

물론 시 주석은 국가주석 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국가주석 직은 삼선(三選)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서기 직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 임기에 대한 조항은 헌법에 없다. 결국 1인 체제를 강화한 시 주석과 이를 견제하려는 세력들 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미래 권력의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자신들의 측근들을 대거 요직에 기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이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만 유지해도 앞으로 최고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측근 세력들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2021년까지 중국의 국민소득을 2010년의 두 배로 만드는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임기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시 주석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빅토르 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시 주석은 그동안 당내 신설되는 대부분 기구의 수장으로 앉으면서 총서기직 유임에 대한 야심을 노골화해왔다”고 지적했다. 윌리 람 홍콩 중문대 교수도 “시 주석이 총서기직을 내려놓는 것을 거부할 확률이 60∼70%에 달한다”고 내다봤다. 서방 언론들은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시 주석에 대해 ‘황제’로 등극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비판해왔다. 시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마오 전 주석은 ‘건국의 아버지’, 덩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고 불렸다. 시 주석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칭호가 붙기를 바라고 있을지 궁금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610호 (2016.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