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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새 대통령이 1년 내 해결해야 할 7대 난제] 3. 헌법 개정, 어떻게 실현할까 

‘개헌이 만능’이라는 환상 버려야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개헌의 필연성 과연 있는지부터 면밀한 검토 필요…
극한 정쟁으로 국가분열 조장될 위험 상존


▎지난해 11월 28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는 대전시 대학생들과의 시국 대화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발언했다.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그의 개헌 공약은 그동안 많은 개헌론자가 주장했던 내용과 동일하다.

개헌론자들은 대체로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규정하고 있는데, 단임제는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없으므로 중임제로 변경하면서 임기를 4년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게다가 수많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경험과 앞으로 예상되는 제왕적 대통령의 반복적 출현에 대한 우려도 대통령제 정부형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웠다.

현행 헌법은 유신정권 때부터 잃어버렸던 국민의 대통령 선택권을 되찾기 위해 ‘직선제’를 도입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거쳐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자 국민은 6·10 민주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했다. 이미 신군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1980년 헌법에서부터 단임제가 도입되었고,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개정안이 발의될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효력범위 제한조항도 명시되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헌법은 권력자의 정권 연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헌법 개정은 오로지 그들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열망은 대통령 단임제와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 금지로 수렴되었고, 1980년 헌법은 무엇보다 이러한 국민의 열망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군부가 간접선거를 통해 또다시 권력을 장악하자 국민의 열망은 이제 직선제로 옮겨갔던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대통령 단임제와 시민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이것은 그동안 30년 가까이 결코 변경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처럼 인식되었다.

‘엄격한 권력분립’ 관철되지 않은 현행 헌법


▎지난 2월 15일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오른쪽부터)이 회동했다. 3인은 이날 “국가 미래를 위해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꾸준히 5년 단임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임기 5년차는 레임덕 때문에 대통령이 아무런 정책도 추진할 수 없는 식물대통령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4년 중임제도 역시 2기 임기가 끝나가는 7~8년차에 레임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단임제는 대통령의 중임 변경 때문에 발생했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전히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아직도 많은 지지를 받는 것도 현실이다. 5년 단임제가 4년 중임제로 바뀌면 사실상 대통령의 임기만 8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같아진다는 비관적 전망도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일종의 중간 평가 의미를 가지는 대선이, 임기 4년이 끝난 뒤 한 번 더 치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4년 중임제는 8년 단임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현행 헌법의 문제점은 대통령 단임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한국 대통령제는 미국 대통령제와 달리 ‘엄격한 권력분립’이 관철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처럼 법률안제출권을 가진다는 점부터 다르다. 예산을 법률과 구분해 정부가 편성권을 갖고 국회는 심의·의결권만 갖도록 규정한다. 세입·세출의 결산에 대한 회계검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감사원도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어 있다.

대통령은 사법부의 구성원인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 헌법재판소장과 일부 헌법재판관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이 밖에 국회의 통상적 입법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긴급입법권과 국민투표부의권도 대통령에게 부여되어 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독주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헌법적으로 이렇게 엄청난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그가 제왕(emperor)이 될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대통령은 현행 헌법상 언젠가 제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왕인데도 그 권한을 실제로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제도의 문제점이 아니라, 실제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정치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현행 제도 아래서도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의식적으로 축소해 행사하고, 더욱이 국무총리에게 이른바 ‘책임총리’가 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제도는 본래 인간의 일탈을 예정하면서 만들어진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에 불과


▎지난 1월 5일 열린 국회 개헌특위 첫 회의. 왼쪽부터 이인영 민주당 간사, 김동철 국민의당 간사, 홍일표 개혁보수신당 간사, 이주영 위원장.
대통령의 권한이 여전히 과도한 경우에는 아무리 민주적 통치 스타일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독주나 독재의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권한을 줄이지 않은 채 대통령이 알아서 그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미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의미다. 헌정주의의 본질은 애초에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권한을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헌법에 명시하여 통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난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책임총리제에 대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당하면 권한이 정지되어 국정이 마비될 수 있으니 대통령직은 임기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대통령 스스로 2선으로 물러난 뒤 국무총리가 책임총리로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현행 헌법은 어디에서도 책임총리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무총리는 국무위원들과 함께 대통령을 ‘보좌’할 뿐이고(헌법 제86조 제2항), 아무리 국무회의에서 ‘부의장’이 된다고 해도(헌법 제88조 제3항)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 국무총리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국무총리의 해임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으므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정치적 부담을 떠안고서라도 책임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국무위원의 임명을 제청하고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을 가진 국무총리가 책임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만 아니라 헌법을 우회하는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현행 헌법에 따른 대통령제는 순수한 형태의 대통령제, 즉 엄격한 권력분립이 관철되는 형태의 대통령제가 아니다. 우선 대통령제인데도 대통령제의 본질적 요소인 ‘부통령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대통령제에서 부통령은 대통령과 함께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헌법처럼 국무총리제를 채택하면서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경우에는, 심지어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경우에 조차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부통령보다는 민주적 정당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는 대통령과 동일하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지난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탄핵소추 상황에서도 볼 수 있듯 대통령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현상유지적 권한 행사만 가능할 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현행 헌법처럼 국무총리에게 단지 대통령의 ‘보좌기관’이라는 지위만 부여하면 국무총리는 평상시에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과 대등한 지위에서 국가정책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궐위나 사고 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과 동일하게 행사할 수도 없다.

의원내각제 개헌의 함정


▎1987년 6월 직선제 개헌 투쟁 과정에서 ‘닭장차’로 끌려들어가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순수한 형태의 대통령제에서는 엄격한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의회 구성원이 정부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되면서 의회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정부 구성원인 국무총리나 장관이 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국무총리나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나 장관의 직을 바라보는 국회의원, 특히 여당의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나 장관으로 임명된 국회의원은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와 같은 정부 형태는 의회와 정부의 협력을 증진시키기보다 의회를 대통령의 부속기관으로 만들 위험성이 높다. 의회는 대통령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의회를 장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부여하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권력분립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의원내각제에서는 권력분립 원칙이 완화되어 정부의 수반인 총리(수상)를 포함해 의회의 구성원이 정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의회의 다수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고, 선출된 총리에 의해 다수당 중심 혹은 연합정부 형태로 내각이 구성된다. 이처럼 의회에 의해 정부가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는 당연히 의회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의원내각제가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회와 정부가 갈등하면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고, 정부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의회와 정부의 갈등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선거로 봉합되고, 새로운 의회와 정부의 구성은 국민의 결정에 맡겨짐으로써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도 구현될 수 있다. 유럽의 국가들을 비롯한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 의원내각제를 정부형태로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긴 만큼 정당제도가 완비되어 있고, 정당을 통한 시민의 정치참여도 활발하다.

한국도 이제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정당제도가 완비되어 있지 않고 정당정치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 심지어 혐오도 크다. 이런 현실에서 의원내각제가 아무리 책임정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해도 대통령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의회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의원내각제는 정당제도와 정당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수직적 정당구조를 가진 한국 정당들의 수뇌부에 국가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헌법 개정이 시급하지 않은 이유

행정부의 권력을 이원화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 총리에게 분점시키는 제도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교·국방 등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총리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내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총리에게 권한을 분산시키는 정부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원내각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총리를 국민의 선거로 선출하여 국가원수의 지위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분권형 대통령제와 유사한 형태의 분권형 정부형태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른바 분권형 의원내각제도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대통령제를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에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택한다면 대통령의 권한 가운데 일부를 총리에게 부여하는 방식의 정부형태가 될 것이다. 다만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지 않고 국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하면서도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경우,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이 총리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려고 할 때 언제든지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 가능성은 남아 있게 된다.

개헌은 국가의 모든 의제를 송두리째 흡입할 수 있는 블랙홀이다. 개헌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마다 이것도 고쳐야 되고, 저것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질서로서 필수적으로 담아야 할 기본가치를 보장한다. 인간 존엄을 본질로 하는 기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복지주의와 같은 기본가치가 그것이다. 이미 현행 헌법도 이러한 가치들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 사실 헌법 개정이 시급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토조항(헌법 제3조)이라든지 국가배상청구권의 주체에서 군인과 경찰을 배제한 조항(헌법 제29조 제2항) 등이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면 그 결과는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아무리 4년 중임제로의 변경만 포함한 개헌이 추진된다고 해도 일단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다른 쟁점에 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헌법은 어떻게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헌법의 규정은 일반 법률의 규정보다 훨씬 그 의미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넓다는 뜻이기도 하고,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새로운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헌법이 변화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그 의미가 고정되고 협소한 경우에만 개헌은 불가피하다. 합리적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보완할 수 있다면 굳이 헌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다. 섣불리 국가의 통합을 목적으로 헌법을 개정하려다 헌법에 포함될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벌어질 이해의 대립이 자칫 봉합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의 분열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헌이 대선 공약이라고 하더라도 헌법 개정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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