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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장하성·김상조, 재벌개혁 칼을 빼들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전쟁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이익 당사자, 여야, 여론 공감하는 혁신안 마련이 관건...기업들, 정부 주요 경제 공약의 80% 입법 사항으로 분류

한국의 경제 질서를 재설계할 주역으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발탁됐다. 주로 ‘대안’으로 치부되던 이들이 현실의 정책을 만든다. 재벌개혁이란 시험대에 재계뿐 아니라 장하성·김상조 두 사람도 함께 올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동 소득과 기업 이익의 분배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자유로운 신분일 때와 달리 언론 인터뷰도 마음대로 하질 못합니다.”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6월 14일 취임식 이후 가진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에서 현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등 공정거래위 소관 세부 정책구상에 대해서도 “나 혼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여권 내부의 협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6월 14일 현재 청와대 주요 정책 포스트 중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이 아직까지 공석인 현실을 의식했을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에다 경제수석, 일자리수석 자리가 채워지면 본격적인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면서도 이날 오전의 취임사는 단호했다. 그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한치의 후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는 약자인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완급을 조절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빠른 속도로 할 수 없다”면서 재벌개혁에 관한 정교한 실태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임명을 강행한 그는 새 정부 재벌정책의 확고부동한 상징으로 부상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캠프에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공정위 기능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평소 재벌개혁이 재벌 해체가 아니라 재벌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는 방편이라는 소신을 펴기도 했다. 그가 현실론자로 분류되는 배경이다.

취임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국회의 권능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는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를 비롯한 형사규율 강화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민사 규율 강화 ▷공정위와 지자체의 협업체계 구축 등 공정위 주요 과업을 지목했다. 그리곤 “국회와의 충실한 협의·협치 과정이 없으면 한걸음도 나가기 어려운 과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위원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 중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며 “합리적 안을 준비해 국회와 진정성 있게 논의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만만찮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와의 협치에 충실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말대로 법률 제·개정이 필요한 정책 공약은 국회의 협조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높다. 이는 재계가 5월 30일 작성한 ‘신정부 대선공약 분석 및 경영계 의견’ 자료만 살펴봐도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자료는 일자리 분야 34개, 노사관계 분야 16개, 경제 분야 17개, 복지 분야 7개 등 모두 74개의 대선 공약의 특징과 경제적 파장을 나열하고 있다. 재계는 이중 60개를 ‘입법 사항’으로 분류했다. 의견이 갈리는 법안의 경우 180석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되는 국회법 하에서는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보수정당이 반대한다면 개혁 법안은 국회의 문턱에서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재계 초미의 관심사인 ‘기존 순환출자 단계적 해소’나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현 200%), 자회사 지분율(현 상장 20%, 비상장 40%) 요건 강화’도 상법 등을 고쳐야 가능한 입법 사항에 속한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인적 분할시의 자사주 의결권 부활 규제에 대해 “입법 사항이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입장 표명을 유보할 정도다.

재벌 문제에 현실주의적 접근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진보 성향의 여당 의원들도 넘어야 할 산으로 와 닿는다. 개혁의 폭과 속도에서 김 위원장을 앞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시장 안정을 해하지 않은 선에서 순환출자 고리 해소 효과를 내는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도 “지주회사 체제 내의 금산분리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하면서도 “이 제도와 관련하여 특혜 의혹 등 논란이 있는 점을 감안해 도입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반대하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의식한 것이다.

그래서 재벌개혁에 신중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과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민주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도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만만찮다”며 대(對)국회 관계설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은 보다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우 원내대표는 “국민의 여망을 받아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겠지만 입법에는 다른 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면서 “(각 당의) 공통 공약 중에서 협치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절충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 “각 당의 요구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정부의 최우선 과제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내지 개혁 과제의 실행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국회법상의 선진화 조항(쟁점법안 180석 찬성 필요)이 법안 통과를 지연시켜 국정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사유로 개정을 시도하더라도 120명 이상이 버티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의석구도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국회는 새 정부에 철저한 갑(甲)으로 남는다.

문 대통령이 새 정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같은 처지다. 장 실장도 재벌개혁에 앞장서온 대표적 사회 참여 지식인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문 대통령은 장 실장 발탁을 발표하면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경제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고 소개했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분배’?


▎올 1월 초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재벌개혁 관련 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
장 실장도 김 위원장이 그랬듯 언행에 신중을 기한다. 5월 21일 정책실장 임명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두들겨 패는 재벌개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재벌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로운 성공기업, 새 중소기업의 신화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재벌에 인위적, 강제적 조치를 하더라도 빈자리를 메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성장이 없으면 오히려 문제”라고 완급조절에 나설 것임을 내비쳤다. 그의 첫 정책 브리핑(6월 4일)도 민생과 관계된 소득격차와 실업문제에 집중됐다.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추경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분배 악화와 격차 심화의 문제에 일자리가 차지하고 있다”면서 “단번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자리 추경을 통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정부가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재계나 정치권은 궁극적으로 장 실장이 김상조 위원장과 투톱을 이뤄 새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혁 정책을 이끌 것으로 예상한다. 두 사람 공히 경제적 불평등의 뿌리를 파헤치는 연구를 오랜 기간 해온 데다, 참여연대 등을 통해 진보적 경제 어젠다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온 저력과 뚝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매진하기도 했다.

소득양극화 해소는 장 실장이 추구하는 개혁의 단골메뉴다. 그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역할의 중심에 ‘분배’ 기능을 둔다. 나아가 한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을 대기업이 원천적인 분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로 돌린다.

그는 2015년 12월 펴낸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한국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진단했다.

“극도로 불평등한 원천적 분배를 그대로 두고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재분배만으로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불평등한 구조는 재분배만으로 교정할 수 있는 범주를 이미 넘어선 정도로 심각하고 구조화됐다는 판단이다.”

“선진국과 달리 가계에 노동소득으로 분배돼야 할 몫을 재벌 대기업이 분배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고용구조와 기업구조가 있다.”

그 해법으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했다.

“재분배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 잡는 게 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원천적 분배, 즉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임금불평등은 고용 불평등과 기업 간 불균형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

장 실장은 이런 진단과 처방을 통해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의 확대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 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론’이 장 실장이 주장한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기업 구조개혁 정책을 통해 외화(外化)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를 근절시키겠습니다.”

대선 당시 작성한 문 대통령의 정책공약집 44쪽에 실린 이 슬로건은 재벌정책의 이정표를 잘 보여준다. 장 실장과 김 위원장 앞에 놓인 숙제인 셈이다. 여권은 대선 당시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투명하고 건전한 경영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 도입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 등이 세부 공약으로 제시됐다.

“일자리 창출보다 재벌개혁이 더 시급해”


▎지난해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또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막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방안으로는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현 200%), 자회사 지분율(현 상장 20%, 비상장 40%) 요건 강화 ▷계열공익법인, 자사주, 우회 출자 등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 차단 방안 마련 ▷기존 순환출자의 단계적 해소 등이 공약집에 올랐다.

앞서 봤듯 현행 국회법을 고려하면 대선 공약 이행과 법률 제·개정은 동전의 양면이다. 180석 가까이 차지하는 야당과의 협치를 이뤄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군이라 할 시민사회 등 진보진영은 이마저도 양에 차지 않는다며 현실을 뛰어넘는 요구를 해온다. 여당은 여당대로 무거운 마음이다.


▎지난 1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 앞에서 정경유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6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재)더미래연구소(소장 김기식)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최우선 정책과제를 제안한다’ 토론회는 새 정부 경제개혁의 극한치를 가늠해볼 만한 자리였다.

재벌개혁의 범위를 어디로 잡는 게 실효적인가를 놓고 참석자들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불공정한 시장 거래의 관행을 바로 잡고 권한 남용을 척결하는 ‘행위 규제’로 끝나리라는 전망에서부터 경제력 집중 해소와 지배구조 개혁까지 포괄하는 ‘구조 개혁’의 기회라는 주장까지 쏟아졌다.

발제자들 중 일부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재벌 구조 개혁을 담보하는 데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홍명수 명지대 교수는 “구조적 조치가 결합하지 않는 상태에서 재벌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구조적 개혁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에 관한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정부여당의 정책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테면 일자리 창출보다는 재벌개혁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재벌개혁으로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일자리 창출도, 생산성 향상도 가능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양극화 해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이 한계에 왔기에 단순하고, 불가역적인 구조적 개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진단에 기초한 것이다. 또 재벌개혁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 경쟁력이 올라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다는 논리를 폈다.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을 미봉책이라 비판했다. 박 교수는 “지금처럼 민간의 고용창출이 미약하다 해서 정부가 일자리를 공급하는 방식은 일시적 해법일 뿐 항구적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정부가 재벌개혁의 명확한 청사진을 갖지 못하다 보니 일자리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보다 선명한 개혁 로드맵을 요구했다. 박 교수는 재벌의 세습 구조까지 청산의 목표로 삼았다. “재벌 세습이 시장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약자의 재산권, 법의 지배, 주식회사 운영의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 재벌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이 국가와 사회의 의사결정에도 그림자를 드리워 결국 재벌 총수의 이익에 따라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토론회 사회를 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역대 정부의 재벌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예를 들면서 “정부 초기에 개혁 의지를 분명히 해야 재벌도 대화에 나서고 타협도 더 용이해진다”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기식 소장은 장 실장, 김 위원장과 함께 참여연대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1차적으로는 기업의 소유구조 개선 등 경제법 차원의 개혁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론 유럽식 노사가 사회적 합의모델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재벌의 오너 흠이 많아 털면 다 털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와 협의를 통한 경제 개혁 법안 마련의 중요성을 잘 안다.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구속 등으로 정경유착 타파와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진 상황이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재벌개혁을 10대 공약 중 3번째로 언급했다. 마치 재벌개혁이 촛불민심의 명령처럼 존재하는 듯하다.

새 정부 출범 후 잔뜩 움츠린 재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의견이 결집된 ‘신정부 대선공약 분석 및 경영계 의견(5월 30일 작성)’ 자료는 이런 기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기업집단 규제강화가 경제 전반에 악순환을 초래하리라는 예측이다. 이 자료는 “과도하고 인위적인 기업 규제는 시장 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대기업집단에 대한 지나친 규제 강화는 ‘반(反)기업 정서 확산→ 기업하려는 의지 저하→ 투자 및 고용 위축’의 악순환 초래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무리한 배임죄 적용 확대나 기업인 사면 제한 등은 대기업 역차별로 이어지거나, 기업 사기 저하,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게 재계의 정서다. 이 자료는 “인위적인 기업 규제 도입보다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들이 확충돼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재계의 분위기와 관련해 자유기업원장을 역임한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는 “재벌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교수는 “재벌의 오너들은 흠이 많은 사람들이라 털면 다 털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댔다. “지금까지 오너들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이 약했다. 이제 공적인 돈과 사적인 돈을 엄격히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정부가 내놓을 순환출자 해소 정책의 향배를 주시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선에서 정부의 재벌개혁이 그칠지, 아니면 계열사 지분을 팔아 사주일가의 지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확산될지가 포인트라는 것이다. 자사주 의결권을 없애면 재벌이 계열사들을 대폭 매각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계열사 매각의 경우 대기업집단에서 떨어져 나가는 계열사의 매수자 확보, 종업원들의 반발 등 후폭풍도 상당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내 유보금 여론의 표적 될라


▎새 정부 첫 고위 당·정·청 회의가 6월 5일 총리공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추미애 민주당 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시민단체와 재계의 시각도 이처럼 양극화돼 있다. 이를 어떻게 수렴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과도 결정된다. 문희상 민주당 의원은 재벌 계열사 매각과 같은 근본적인 방법론과 관련해 “그건 혁명적인 건데 경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면서 “근본적 개혁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가지 않는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새 정부는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다 바꿔야 하는 입장이다. 마음 같아서야 혁명적 상황에 준하는 경제조치를 취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가 그렇게 한 방에 뒤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고, 기업은 일자리 늘리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격차를 줄여가는 게 현실적인 경제노선 아니겠나. 주요 정책도 대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혁신을 도모하게 된다. 다만 소득 양극화와 경제 격차가 사회 불안 요인으로 등장한 요즘 사내 유보금을 한껏 쌓아둔 대기업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경제 분야 대표적 브레인으로 활동한 한 여권의 인사도 재벌이 몸 사릴 이유가 뭐냐고 되묻는다. 이 인사는 문 대통령이 기업에 어떠한 편견도 가진 게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기업에 무슨 유감을 가진 게 아니다. 한마디로 일자리를 잘 만들자는 게 문 대통령의 바람이다. 장하성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도 갑질을 없애고, 잘못된 관행을 고쳐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미션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는 지배구조의 투명화는 대세라고 했다. “2%의 지분을 가지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현실은 바로잡혀야 한다”며 과도한 순환출자의 해소 필요성을 언급했다. 나아가 새 정부의 정책 책임자들이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거나 시장의 질서 자체를 바꾸는 정책으로 달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정부·여당의 논의구조는 아직 이런 각론에까지 이르지 못한 상태다. 청와대는 경제수석, 일자리수석이 공석인 데다 정부 조각도 완결되지 못한 까닭이다. 게다가 경제민주화는 문 대통령의 국민성장 개념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문 대통령의 자문교수이자 J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진 김현철 경제보좌관(서울대 교수)은 기자에게 “문 대통령의 국민성장 개념은 일자리 성장, 소득주도 성장, 혁신주도 성장, 재벌개혁과 동반성장이라는 네 바퀴 성장이 기본 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네 바퀴 성장 속에 경제민주화, 경제민주주의 개념이 부가돼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은 관련 논의구조 마련에 본격 뛰어들 태세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경제민주주의를 제시한 문 대통령의 ‘6·10 민주항쟁 기념식’ 발언이 출발점이라고 국회 정무위의 정재호 민주당 의원은 말한다. 정 의원은 “현실적으로 재벌개혁은 법으로 강제하거나 (사정의) 칼을 휘둘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벌개혁 방안은 사회적 공감대를 먼저 만든 뒤 입법화를 추진해야 여야 합의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자면 한국사회의 주요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기구에서 먼저 솔직한 대화와 양보가 이뤄져야 한다.” 정 의원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런 방법론에 흔쾌히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사회적 합의 도출 기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벌개혁의 얼개는 이제부터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 맨 앞 열에 장하성·김상조 두 사람이 서 있을 뿐이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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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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