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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급소는? 

檢 권력 속성에 훤한 대통령 ‘셀프 개혁 어림없다’ 

고성표 기자 · 도서현 인턴기자 muzes@joongang.co.kr
‘우병우 사단’ 제거는 검찰개혁의 출발점… 조국 수석 ‘검찰 속성은 하이에나’라는 인식 강해… 법무부 주요 직책서 검사들 모두 뺄 듯

▎5월 1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내정자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조 수석 내정자는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했더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초기에 예방됐을 것”이라며 검찰 개혁의지를 드러냈다. / 사진·김성룡
“무섭다. 이번에는 절대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와 지방검찰청 특수부를 두루 거치고 몇 년 전에 퇴직한 부장검사 출신의 A변호사는 “최근 좌천돼 옷을 벗은 검사장 4명 등을 포함해 검찰에 불어닥친 인사 태풍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무섭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뭘까. A변호사는 “검찰개혁이 새 정부의 핵심 과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하지만 이 정도로 전격적이고 파격적 수준으로 시작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전격적’, ‘파격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청와대가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예리한 메스’를 검찰조직에 들이댔기 때문이다.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문제 등은 정치권에서 10여 년 전부터 논의돼 왔던 사안인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검찰개혁 관련 공약에 언급된 내용이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들 과제는 입법 사안이거나 헌법 개정을 통해 실현 가능한 일이라 지난한 과정이 예상되는 국회 논의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자칫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검찰개혁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검찰개혁 관련 입법과는 별도로 대통령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인사권, 대통령령 개정을 통한 법무부 직제개편 등을 통해 우선 손댈 수 있는 부분부터 일사불란하게 처리해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출신이자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을 역임한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역시 “그 누구보다 검찰의 문제점을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면서, 어디를 어떤 방식으로 개혁해야 할지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넣고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당장 법률 개정 없이도 할 수 있는 부분과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나눠서 검찰 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혁작업을 위해 우선적으로 검찰 인사권이라는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다. 공석인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나머지 검사장급 이하의 인적 쇄신은 통상적인 인사방식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문재인 정부의 특정 ‘검사장 쳐내기’는 법무부와 검찰 내에서도 예상한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번에 퇴출 대상이 된 검찰 고위직 고검장, 검사장급 인사들은 지난 정권 때 소위 정권 입맛에 맞는 ‘맞춤형 수사’ 논란을 불렀던 이들을 겨냥해 마치 외과수술을 하듯 이뤄졌다.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검찰 인사방식이었기에 검찰 조직 내 충격은 더 컸다. 더구나 이번 인사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연루된 돈봉투회식 사건에 대한 감찰결과 발표 직후에 이뤄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두 사람에 대한 면직 청구와 수사의뢰라는 초강수만 해도 조직을 흔들리는 충격요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다음날 곧바로 단행된 특정 인사들에 대한 인사조치는 검사들을 ‘멘붕’에 빠뜨렸다는 후문이다. 이는 본격적 검찰개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넘어 부적절한 정치검사의 행태를 보인 이들과, 이들을 고속 승진시킨 검찰 조직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는 조치라는 게 법조계 일반의 시각이다.

하나회 숙청하듯 ‘우병우 사단’ 제거


▎5월 15일 검찰총장 이임식에 참석한 김수남(왼쪽) 검찰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이영렬 지검장은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발표 나흘 뒤 소위 ‘돈봉투 만찬’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 결국 옷을 벗었다. 사진·장진영
이번 인사조치는 내용이나 형식에서 모두 전례가 없었다.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주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전보했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라고 인사 사유를 못박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이 과거에 수사했던 사건들이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정권에서 주요 정치적 사건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던 전력이 있거나 ‘우병우 사단’으로 꼽혀온 검사들이다. 과거 정권에서 승승장구해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우선 윤갑근 대구고검장은 우병우(50·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의혹과 관련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우 전 수석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황제 소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다.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도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으로 거론됐던 검사다. 우 전 수석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상당히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이 전 정권에서 가장 빠르게 승진코스를 밟았다.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의 경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의 대리인으로 나선 전력이 있다.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역시 ‘우병우 사단’ 중 한 명으로 지목됐다. 전현준 대구지검장은 MBC PD 수첩 제작진을 기소해 논란을 불렀던 인물이다. 전 지검장은 애초 수사를 맡았던 임수빈 검사(현재 변호사)가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검찰을 떠나자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전 지검장은 MBC 의 김보슬 PD를 체포하고 제작진 4명을 모두 기소했다. 당시 사회 각계에서 무리한 기소라고 비판이 일었고, 전 검사가 기소한 제작진은 모두 무죄를 받았다.

주목해야 할 인사는 검사장급뿐만이 아니었다.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던 유상범 창원지검장은 광주고검 차장 검사로 이동했고 당시 수사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정수봉 범죄정보기획관도 서울고검 검사로 배치됐다. 정 기획관은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문건 진위 여부를 수사했다. ‘부적정처리’ 수사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던 고위직뿐만 아니라 실무자로 참여했던 검사까지 비수사 부서로 보직을 배치한 것이다.


▎2003년 6월 26일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만났다. 강 장관은 이날 검찰의 지속적인 개혁을 주장한 반면 송 총장은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검찰 조직에 대한 일련의 충격요법과 관련해 김선수 변호사는 “결국 대통령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지시, 검사장 인사 등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는 본격적인 검찰개혁이라고도 볼 수 없다. (검찰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검찰권을 남용하고, 편파적으로 이용한 이들에 대한 정리도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인사조치는 형식적으로는 법무부가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한 것이다. 이를 두고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마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하에서 단행된 군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작업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도 돌았다.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이후 10년 이상 이어져온 군부 세력의 적폐를 일거에 청산하기 위해 당시 김 대통령은 특정 인맥이 군을 휘두르며 요직을 장악해온 하나회 출신 인사들부터 과감하고 신속하게 쳐냈다. 대담한 인사조치 내용과 속전속결의 과감성 때문에 국방부는 물론이고 군 내부에서는 ‘악’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기선을 제압당했다.

조국 수석 “검찰 속성은 하이에나” 비유도


▎2003년 3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전례가 없었던 이날 토론회는 TV로 전국에 생중계돼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조치의 중심에는 조국 민정수석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강력한 검찰개혁을 위한 신호탄은 바로 조국 수석의 임명에서부터 시작됐다. 비법조인 학자 출신의 조 수석은 그동안 법학계에서 가장 강한 톤으로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언론 기고와 인터뷰, 논문 발표 등을 통해 “더 이상 셀프 개혁을 믿을 수 없는 것이 검찰 조직이며, 상설특검제·공직자비리수사처 등 설치를 통한 외부로부터의 검찰권 견제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이 본격화한 지난해 11월 당시 조 수석은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주최로 열린 시국 토론회에서 검찰의 기본 속성을 ‘하이에나식’이라고 정의하며, 검찰 개혁의 핵심은 공수처를 통한 국회의 통제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조 수석은 “검찰의 기본 속성은 죽은 권력과는 싸우고 산 권력에는 복종하는 ‘하이에나식’”이라며 “이번에도 (박근혜) 정권 초기에는 산 권력을 위해 칼을 닦고 권력이 죽어 간다 싶으면 바로 찌르는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에 임명되기 불과 6개월 전 그가 검찰에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톤다운을 하긴 했지만 조 수석은 민정수석 취임 첫날에도 “검찰이 그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엄정하게 사용해왔는지에 대해선 국민적인 의문이 있다”고 검찰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개혁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 조 수석이 민정수석 자리에 임명되자 일각에선 “아무리 평소 검찰개혁에 대한 소신과 의지가 강하더라도 검찰 조직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교수 출신이 과연 검찰의 약점(급소)을 제대로 찾아 개혁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그래서 검찰 출신 변호사 등 재야 법조인들의 자문을 조 수석이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누구보다 검찰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의 존재는 조 수석이 흔들림 없이 검찰개혁을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일부에서 “조 수석을 움직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부 비선 그룹이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참여정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출신 B씨는 고개를 저었다. B 전 행정관은 “이미 조 수석 자신이 검찰 개혁에 대한 구체적 그림과 방안이 있다”며 “더군다나 조 수석이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문 대통령을 지칭)이 내부 가장 가까이에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검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문 대통령. 특히 노무현 대통령 바로 옆에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의 시작과 실패를 생생하게 지켜본 사람이 바로 문 대통령이다. 개혁에 대한 검사들의 저항, 반발의 방식, 그리고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이고 은밀한 정치권 로비 등 세세한 부분까지를 다 꾀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는 또 한번 살아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을 대하는 검찰의 속성을 경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상당히 정교하고 치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참여정부 시절 왜 검찰개혁에 실패했는지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민주당 의원의 증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시 들어보자.

“그 당시 강금실 변호사가 검찰의 수장, 법무부 장관이 되는 순간 검찰개혁의 반은 이루어진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검난(檢亂)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보고에 대해서도,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절대 6개월 이상은 못 갈 것이라고 (노 대통령은) 생각하셨다.”

“강금실 임명하면 검찰개혁 다 되는 줄 알아”


▎우병우 사단에 대한 좌천인사 조치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군 개혁의 일환으로 단행된 하나회 척결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2월 18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조사실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우상조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부장관 발탁은 기대도 컸지만 모험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9년 검찰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2년 후, 검찰개혁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에는 참여정부 시절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강금실 변호사 임명을 두고 강 변호사,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의 증언이 실려 있다. 먼저 강금실 장관의 기억을 바탕으로 서술한 대목이다.

“강금실 장관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의 미팅 과정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검찰이 다 반발해서 사표를 내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검사들 사이에 실제로 집단 사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강금실 장관도 검찰도 긴장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2005년부터 1년여 동안 법무부 장관직을 맡았던 천정배 의원의 증언도 참여정부 시절 왜 검찰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천 장관의 얘기다. “법무부 장관 혼자 일하나. 내가 보니까 강금실 장관은 굉장히 대가 세고 강력한 사람이더라. 제대로 뽑았다. 그런데 검찰이라는 무지막지한 집단에 강금실이라는 한 사람만 낙하산에 태워 뚝 떨어뜨려 놓은 것이었다. 너 혼자 알아서 해봐라. 이런 거랑 똑같은 거였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낸 김선수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면 (검찰개혁이) 되지 않겠느냐는 나이브한(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집권 전에 검찰개혁에 대한 세부 계획이나 구체적 방안에 있어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법원개혁과 형사소송절차 개혁을 중심으로 한 사법제도 개혁이 중심이었고 검찰개혁은 그 범위 안에서 부수적 내용으로 다뤄졌을 뿐이었다. 공직자비리 수사처 역시 검토는 된 바 있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이 심했다. 당시 한나라당 쪽에서는 야당 탄압의 전위기구가 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도 벌어져 돌파가 안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역시 얘기는 나왔지만 정밀하게 준비는 안 돼 있었다.”

천 의원의 지적과 김 변호사의 증언대로 참여정부 때는 막연하게 검찰개혁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있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 만만치 않은 검찰 조직을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실행방안이 미처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런 한계 상황을 대선 후보 시절 수차례 복기했을 법하다. 특히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만 시키면 자동으로 검찰 개혁이 되리라 생각했다는 노 대통령의 생각도 강력한 검찰 개혁을 하지 못한 한 이유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따라서 평소 문 대통령은 검찰의 ‘셀프개혁’을 더 이상 신뢰하거나 실효성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력한 검찰 인사권, 법무조직 개편을 통한 충격요법과 확실한 법적 장치 마련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견제 방식 등 정교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결코 검찰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누구로 뽑느냐가 검찰개혁의 결정판은 아니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개혁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검찰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하는 인사가 임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청문회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지 여부가 남긴 했지만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조국 민정수석과 사제지간으로 검찰개혁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와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총장 자리다.

천정배 전 장관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송광수 검찰총장을 임명한 것을 두고 검찰개혁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목한 적이 있다. 천 전 장관은 “송광수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 실수다. 검찰개혁에 가장 저항하는 중심 인물을 검찰총장에 앉혀놓은 것 아닌가. 인사의 최대 실패작이었다”고 말했다.

권력이 간섭만 하지 않으면 검찰 스스로 개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본 노 전 대통령의 순진한 판단, 선의가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개혁에 실패한 한 원인이 됐다는 김선수 변호사의 지적과 맥을 같이하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향후 검찰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에 누구를 앉히느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이 자신의 친정을 발가벗기는 개혁작업에 앞장서 나서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조직 통제력을 상실해 조직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나게 방치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칫 검찰개혁 문제가 정치권 공방으로까지 번져 개혁의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조국 수석도 검찰총장 인선에 상당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법무부 탈검찰화는 개혁의 핵심


▎지난해 8월 31일 정병하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대검에서 검찰개혁추진단 개혁 방안을 발표한 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전현직 고위직 검찰 출신 인사들의 비리 사건으로 국민 여론이 나빠지자 자체 개혁에 나선 것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여건이 좋은 부분은 바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여론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안 돼 대검중수부는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했다. 여야 모두 검찰의 날 선 칼 앞에 섰고 현역 국회의원 23명 등 정치인 40여 명이 형사처벌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도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구속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 수사를 이끌었던 국민은 수사를 이끌었던 안대희 당시 대검중수부장은 ‘국민검사’, ‘안짱’이라고 불리며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김선수 변호사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안대희 중수부장의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검찰 개혁의 동력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평소 검찰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아왔지만, 국가의 중대범죄와 부패문제를 일소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은 그래도 검찰밖에 없다는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다.

반면 현재의 검찰은 심지어 국정농단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한 축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윤회 문건(일명 십상시 문건)’ 유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 한마디에 이미 검찰 수사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문건 내용의 진위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유출경위만 집중적으로 캤다. 그 결과 의혹의 핵심에는 접근도 못한 채 문건 유출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최경락 경위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진경준, 홍만표 전 검사장 사건 등 전·현직 검찰 고위직 인사들이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검찰을 좌지우지 한 우병우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의혹 등 각종 부적절한 처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검찰을 향한 국민의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올 1월 초 언론에 보도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90%대에 이를 정도였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5월 10일부터 3일간 리얼미터가 전국 유권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개혁과제로 검찰개혁(24.0%)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 정치개혁(19.9%), 언론개혁(13.7%), 노동개혁(12.0%), 재벌개혁(11.1%)이 그 뒤를 이었다. 지금이 검찰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공직자비리수사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가 바로 ‘법무부의 탈검찰화’라고 입을 모은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역시 지명 직후인 지난 6월 11일 ‘법무부의 탈 검찰화’를 강조한 데 이어 다음날 지명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도 이를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그만큼 현시점에서 검찰개혁의 핵심 내용임을 뜻한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도 “(안 후보자 발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법무부 탈 검찰화’ 약속을 이행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한 바 있다.

법무부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일을 맡고 있지만, 검사 파견 형태로 검찰이 법무부를 장악한 탓에 이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한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다. 탈 검찰화를 통해 엘리트 검사 중심의 내부 카르텔을 제압하고, 법무부가 검찰개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실제 법무부 과장급 이상 64개 직책 가운데 현직 검사들이 파견 형태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30개에 이른다.

최근 참여연대가 낸 ‘법무부와 검찰의 유착 근절 및 정상화’ 자료를 보면, 6월 현재 법무부에 근무하는 현직 검사는 88명이나 된다. 어지간한 지방검찰청의 검사 정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법무부에 파견된 검사들은 업무를 보좌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법무부 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요직을 꿰차고 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차관을 비롯한 검찰의 예산·인사를 담당하는 검찰국장, 법무실장, 기획조정실장, 감찰관 등 ‘법무부 빅6’로 꼽히는 자리를 거친 44명 가운데 43명이 검찰 출신이었다.

현행 검찰청법이 ‘검사가 법무부 직원을 겸임할 수 있다’(44조)고 규정해, 검사들의 법무부 보직을 자유롭게 허용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파견검사는 법무부에서 경력을 쌓고, 청와대와 국회 등을 상대하며 인맥을 넓힐 수 있다. 검찰 출신이 1~2년 정도 법무부 핵심 보직을 맡다 돌아가는 관행이 정착되면서, 검찰은 수사 분야를 넘어 조직의 행정과 관련된 권한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검찰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스스로 바꾸거나 외부로부터 견제받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이와 관련 김선수 변호사는 “검찰이 법무부의 주요 보직을 다 차지하면서 지금은 법무부가 오히려 검찰의 하부기관처럼 됐다”며 “검사가 반드시 맡아야 하는 검찰국장, 검찰인력과장 등을 제외한 나머지 실장, 본부장 등 주요 보직에 변호사나 관련 분야 교수 등 전문가를 적극 기용해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시급히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청법 개정도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는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위해 현직 검사의 파견을 제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자유한국당·바른정당·정의당 후보들이 모두 검사의 법무부 파견을 전면, 또는 제한적으로 금지하는 데 동의한 바 있다.

“공수처는 내줘도 수사권·영장청구권은 안돼”


▎2010년 9월 9일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 고소인 조사를 위해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대검찰청에 출두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후 문 변호사는 조 청장의 검찰 소환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검찰청사 앞에서 하기도 했다. 사진·강정현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개혁에 대해 과연 검사들의 조직적 반발이나 저항은 없을까. 참여정부 때는 검사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게 이어졌다. 눈치 보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대놓고 청와대와 맞서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반발은 강금실 장관 임명 직후부터 바로 시작됐다. 2003년 3월 6일 청와대와 강 장관이 작성한 검찰인사안에 대해 검찰에서는 반대건의서를 올리는 등 집단 반발했다. 일부 평검사는 검찰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는 주장까지 했을 정도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와 중수부 폐지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발언을 했다. 검찰 최고위층에서부터 평검사까지 위아래 할 것 없이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현재는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과 지지가 워낙 높아 검찰은 일단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법조 출입기자는 요즘 검찰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비위 혐의로 감찰이나 수사 대상에 오르지도 않은 검찰 간부를 예고도 없이 찍어내기 식으로 좌천시켜 결국 퇴진하도록 한 이런 인사에 불만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공개적인 불만표출이나 평검사회의 개최, 연판장 돌리기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의 직접수사권, 영장청구권 등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데 대한 공감대는 꽤 퍼져 있다.”

최근 대검찰청은 검찰 내부의 이런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자체 검찰개혁안’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는 찬성하는 반면, 수사·기소권 분리와 독점적 영장청구권 제한 등에는 반대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공수처를 내주는 대신 검찰 권한을 크게 훼손하는 사안은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 정도 수준의 검찰개혁안을 그대로 용인할 리 없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기획자문위 여당 소속 관계자는 “이번만큼은 검찰의 어설픈 셀프 개혁안이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구보다 검찰 권력속성에 훤한 문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을 검찰이 곱씹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문 대통령은 평소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한번 임명한 법무부장관이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개혁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 강금실 장관의 임기가 그나마 1년 5개월이었다. 뒤를 이은 김승규, 천정배, 김성호 장관은 재직기간이 1년 안팎에 불과했다. 이 정도 기간으로는 법무부와 검찰을 개혁하기는커녕 조직을 파악하는데도 짧다는 것이 대통령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의 한 축을 담당할 첫 법무부장관의 임기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 고성표 기자 · 도서현 인턴기자 muzes@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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