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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날개 단 박원순 서울시장 

“예산·권한 지방에 이양해야 文 정부 성공한다” 

글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신승민 인턴기자·사진 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인구 6억5000만 명 아세안 잡아야 한국경제 재도약 가능… 행자부·국토부·교육부 대대적 개혁해야

▎서울시 출신 인사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기용된 데다 서울시의 주요 정책들이 대통령 공약에도 포함돼 있어 박원순 시장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시장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인터뷰 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재선 시장으로서 임기를 1년 남짓 남기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두고 시중에선 “말년에 날개를 달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남은 기간 동안 못다한 주요 시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선 청와대·중앙정부와의 협치, 협조가 필수적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와 새로 진용을 갖추고 있는 중앙정부가 임기 후반에 접어든 박 시장의 서울시정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박 시장과 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 혁신 등 문제를 놓고 당시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사이에 갈등이 깊어질 무렵, 문 대표는 ‘문·안·박 연대’(문재인, 안철수, 박원순)라는 공동지도체제 구성을 제안했다. 이때 박 시장은 당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이 제안을 수락했었다.(하지만 안 의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이번 19대 대선을 앞둔 1월 말에는 박 시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자 경쟁자였던 문재인 당시 후보는 “사실 저로서는 박 시장이 가장 버거운 상대였다”며 “지지율과 무관하게 가장 잘 준비된 후보고 당장 국정을 맡아도 서울 시정처럼 문제없이 수행할 분”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박 시장만큼 정부와 청와대로부터 유무형의 압력과 시정 비협조를 심하게 받은 이도 드물 것이다. 단지 그가 야당 당적을 가진 자치단체장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가 안팎에서 들리는 얘기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진보적 시민운동을 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장이 된 그의 이력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일부 보수 권력자의 경계 심리가 작용한 것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도시재생과 개발,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박 시장이 구상하고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이 중요한 순간에 브레이크가 걸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박 시장은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 참석 멤버로서 소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박 시장의 발언을 무시하거나 때로는 집단으로 공박하기 일쑤였다.

6개월 전만 해도 이처럼 어려운 여건과 상황에 놓여있던 박 시장의 입지는 문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극적으로 반전됐다. 문 대통령 당선 직후 박 시장은 아세안 특사로 임명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또 박 시장과 함께 시민운동을 하며 깊은 인연을 쌓은 인사들, 서울 시정을 함께 끌어갔던 서울시 인맥들이 문 대통령의 최측근 핵심 참모로 곳곳에 포진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서울연구원장 출신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을 지낸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등이 박 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6월 9일 박 시장과 만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울시에서 박 시장과 손발을 맞춰 성과를 낸 유능한 인재들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재로 거듭났다”며 “박 시장이 혁신의 테스트베드이자 인재 양성의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한 것”이라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박 시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도 “청와대 등에 유능한 인재를 공급한 것뿐 아니라 서울시가 추진한 주요 정책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에 포함시켜 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박 시장이 추진해온 ‘찾아가는 주민센터’, ‘청년 구직 촉진 수당’ 등 서울시 주요 복지정책뿐 아니라 미세먼지 대책, 도시재생사업,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등을 공약과 정책에 반영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째를 맞아 새 정부에 대해 누구보다 큰 기대를 안고 있을 박 시장의 속내가 궁금했다. 월간중앙은 6월 10일 서울시청 6층 시장 집무실에서 박 시장과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예산과 권한을 대폭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확실한 지방분권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이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서울시 인재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중앙정부 부처에 갖다 쓰시라”고 문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아세안 특사를 맡은 것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사전교감이 있었는지부터 물었다.

“대통령 친서 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의 아세안특사로 임명된 박원순 시장이 5월 25일 베트남을 방문해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면담하고 있다. / 사진제공·서울시
지난 5월, 대통령 특사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것인가?

“(서울시장으로) 관광유치·도시외교 차원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방문 계획이 이전부터 잡혀 있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대통령 친서를 좀 주셨으면 좋겠다’고 청와대에 내가 먼저 제안했다. ‘마침 아세안 특사 파견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박 시장이 특사 역할을 맡으면 좋겠다’는 답이 왔다. 아세안과 저만큼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취임 후 아세안에 특사를 파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세안 국가들과 어떤 인연이 있나?

“공식적으로는 서울시와 아세안 국가의 주요도시들 사이에 대부분 파트너십이 맺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도 막사이사이상 수상 경력, 싱가포르의 ‘리콴유 익스체인지 펠로우십’(해외 주요인사를 공식 초청해 현장 시찰 등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싱가포르의 우수 정책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대부분 아세안 국가가 친근할 뿐 아니라 각국 수상 등 정치권 주요 인사와도 대체로 잘 알고 있는 사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아세안 외교에 무신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아세안 외교가 왜 중요하다고 보나?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올해 의장국인 베트남, 아세안 본부가 있는 인도네시아 등은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나라다. 아세안에 속한 국가의 인구만 해도 6억5000만 명인데다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률도 해마다 5%를 웃돈다. 한국으로서는 주요 투자국이고 교역국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 규모도 적지 않다. 이제는 4강 외교에만 의존하기보다 외교의 다변화를 꾀할 중요한 시기다. 침체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것도 아세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특사 활동 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소개해달라.

“한국의 외국투자 1위 국가인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다. 베트남 당 서열 1위인 당서기, 2위 국가주석, 3위 총리 그리고 수도 하노이 시민위원장까지 모두 만났다. 짧은 일정인데도 대통령 특사에 대한 예우를 다 보여준 것이다. 베트남 측은 현재 450억 달러 정도의 교역 규모를 2020년에 1000억 달러까지 올리고 싶다는 희망을 표하더라.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도 화장품·패션·애니메이션 분야의 한류산업과 전투기·잠수함 등 방위산업,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발전소 건설 등 우리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 많다.”

특사 방문일정 마치고 귀국 후 대통령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눴나?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대통령 취임 1년 안에 아세안 10개국을 다 한 번씩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그만큼 중요한 외교무대라는 판단에서다. 둘째, 아세안 외교를 현지 대사관에만 맡길 것이 아니고 ‘아세안TF’(가칭)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는 이번 특사에서 인도가 빠졌는데 이른 시일 안에 인도특사를 추가로 파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실제로 지난 5월 29일, 아세안 특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박 시장과의 이 같은 면담 직후 문 대통령은 대(對)아세안협력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인도특사 추가파견 검토를 지시했다.

서울시 출신 인사들이 문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소위 박원순 인맥이 중용됐다고들 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서울시 일이라는 게 융복합적 행정의 결정판이지 않나. 서울시가 행정의 테스트베드처럼 됐다. 그걸 경험한 분들이니까 대통령 참모로서도 역할을 잘 해내리라 기대한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에도 서울시 공무원들이 많이 갔으면 좋겠다. 요청이 있다면 얼마든지 파견할 용의가 있다. 도시재생을 비롯한 각종 혁신, 협치 분야에서 서울시 공무원들이 그동안 많은 경험을 쌓았고 잘해오고 있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보통 레임덕이 오는데, 마지막까지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협치의 테스트베드인 서울시에서 잘 훈련된 공무원들이 중앙정부 부처 등으로 가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내 입장에서는 좋은 사람을 뺏기는 것일 수도 있는데 대한민국이 잘 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흔쾌히 내 줄 수 있다.”

“임종석, 文 대통령에게 큰 도움 될 것”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4일 박원순 시장(맨 왼쪽)을 포함해 전국 17개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약속했다.
특히 장하성, 임종석 등 박 시장과 인연이 깊은 분들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된 장하성 교수님은 참여연대 시절 함께 경제민주화위원회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중책을 잘 해내시리라 본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특히 정치에서 탁월함이 있더라. 굉장히 크게 보고, 큰 틀에서 조언을 잘하는 분이다.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으로 2년 가까이 일하면서 미세한 행정의 영역도 보고 경험을 하지 않았나.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겪어본 경력이 있어 대통령 비서실장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 취임 한 달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탈권위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얘기가 많다. 박 시장은 어떻게 보았나?

“평소 문 대통령의 모습은 취임 후 여러 행보에서 보여준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강직하고 깨끗하고 굉장히 순수한 분이다. 특히 중요한 순간, 시기에는 결단을 내리는 힘도 있어 보인다. 많이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시도지사와 청와대에서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겠다고 했는데 기대감이 크겠다.

“제2국무회의라고 하는 개념으로 시도지사와의 만남을 정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앙정부의 정책과 지방정부의 일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꼭 필요하다. 특히 현장 경험이 있는 자치단체장들이 대통령과 다양한 분야에서 국정을 얘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과거에도 시도지사 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거의 만남과는 좀 달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입장에서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생각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자치단체장과의 만남이 어떤 식이었나?

“17명의 시도지사가 돌아가면서 자기 지역의 민원을 잔뜩 얘기한다. 대통령은 마지막에 형식적 코멘트 몇 마디 하고 끝난다. 모두 바쁜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왜 만나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대통령은 자치단체장들이 국정의 동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또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어야 생산적인 만남이 될 텐데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박근혜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때로 이어졌다. 국무회의 멤버로 참석한 박 시장에게 당시 회의 분위기를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청와대서 열린 국무회의에 자주 참석했는데 환영받지 못할 자리에 굳이 나간 이유가 있나?

“서울시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는 단순히 지자체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경험한 것과 문제들을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다면 국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참석했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국민에게 포용력 있게 비춰져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협치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막상 참석해 얘기를 하면 결과는 거의 왕따시키는 반응뿐이었다. 국민기초연금문제, 청년수당문제, 누리예산 등 문제제기할 때마다 그랬다. 국무회의 자리에서 이런 것들을 논의하기 어렵다면 따로 시간을 만들어 청와대로 불러줘도 되는 것 아닌가. 시청에서 청와대까지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데….”

회의 때 다른 국무위원들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로 사달이 났을 때였다. 사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서울시가 아니라 각 지방교육청 소관이다. 하지만 당시에 이 문제로 교육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걸 보다못해 국무회의에 참석해 그 문제를 거론했다. ‘대통령께서 한 번 시간을 내서 교육감, 시도지사 다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소통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돈이 다 내려갔다는데요’라고 딱 한마디 하시더라. 보고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회의 끝나고 나오는데 현기환 정무수석이 ‘아니 어떻게 박 시장은 국무회의를 국회 상임위 회의처럼 만드느냐고 큰소리로 나무라더라. 순간 청와대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 또 (참모들이) 대통령 귀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시장은 지난 정부 때 서울시 수장인 자신과 청와대·중앙정부와의 소통이 전혀 되지 않은 부분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 시장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비서실장, 인수위 핵심인사들, 대변인 등에게 만나자고 요청을 했는데 한 번도 만나주지를 않더라”며 “그런 (폐쇄적) 마인드로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나.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박 시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정권과 불편한 관계였다. 박 시장은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가장 탄압받은 인물이 바로 나였다”고 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5년 서울연극제를 앞두고 서울연극협회가 서울시 등록단체인데다 협회장이 박 시장과 같은 좌파 성향이라는 이유로 연극제 대관장소 협조를 거부하도록 청와대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최근 드러난 서울연극제 대관 문제를 포함해 정권과 지속적으로 대립적 관계였는데 어떤 일이 있었나?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이 ‘박원순 제압문건’이라는 걸 만들어서 나를 사찰하지 않았나. ‘박원순 시장이 성공할 수 없도록 민간단체, 언론까지 동원해 탄압하겠다’는 구체적 계획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 문건 내용이 실제로 대부분 시행됐다고 본다. 실제로 어버이연합은 나를 상대로 11차례나 집회를 했다. 특정 정치인을 상대로도 그렇게 많이 한 적이 없을 정도다. 국정원 측은 부인했지만 이건 앞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또 새누리당에서 박원순 저격특위라는 것을 만든 적도 있다. 시장 선거 때 나를 지지한 문화예술인 500여 명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정당 소속 정치인을 상대로 이런 일들이 벌어져왔다면 조사특위 같은 거라도 만들어졌어야 할 정도로 나에 대한 사찰과 공작이 심하게 이어졌다고 본다. 나 개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시의 주요 정책 추진과정에서도 방해가 심했다.”

“지난 정부 때 사찰·방해 심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한 지난해 11월 26일 박원순 시장(가운데)이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 함께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구체적으로 사례를 든다면?

“청년수당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당시 복지부장관이 사실상 사인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발표할지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막바지 단계까지 왔다고 알고 있다. 안종범 수석 선까지 통과한 것으로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가 방침으로 돌아선 것이다. 안 수석 더 윗선에서 그런 것 아니었겠나.”

앞으로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관계도 확 달라질 것 같은데 특히 기대하고 있는 지방분권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이 얼마나 실천 의지가 있다고 보나?

“대선 과정에서 관련 공약을 확실히 내걸었으니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 자치와 분권은 큰 시대의 흐름이 됐다. 지방분권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이번 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 지방분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예산과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이 문제는 중앙정부가 근본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현재 중앙정부와 서울시 포함 지방정부의 예산 규모는 8대2다. OECD 국가 평균은 5대5다. 창조와 혁신이라는 게 각 지역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나? 지역에서 혁신과 변화가 만들어지면 이를 전국화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책임이다. 중앙정부는 외교나 국방 등에서 큰 틀의 국정운영을 하고 나머지 상당부문의 예산, 권한은 지방정부에 넘겨주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박원순 시장과 인터뷰 한 지 나흘 뒤인 6월 14일 문 대통령은 시도지사 17명과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날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내년 개헌 때 (시도지사가 참석하는) 제2국무회의 신설의 헌법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뒤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중앙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한데 권한을 대폭 지방정부에 이양했을 때 문제는 없을까?

“가령 메르스 사태와 같은 경우 전국적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관련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었다면 훨씬 더 잘 풀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 서울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충청남도 등 자치단체들이 발빠르게 잘 대처하지 않았나. 중앙정부가 권한과 재원을 틀어쥐고만 있으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지방정부를 신뢰하고 맡겨도 될 때도 됐다.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경험이나 능력면에서 중앙정부 공무원보다 더 낫다는 평가도 많다.”

박 시장은 그동안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에도 많은 공을 들여왔다. 마침 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광화문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징공간이다. 6·10 민주항쟁, 촛불집회 등 역사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다 벌어진 곳이다. 하지만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오명을 받으며 광장으로서는 반쪽 역할밖에 못했다. 서울시는 박근혜 정부 때 ‘광화문 재구조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힘만으로는 힘들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박 정부가 받아주지 않더라. 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우리가 추진하려는 ‘광화문 재구조화 프로젝트’와 마침 맞아떨어진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청와대) 이전과 광화문 재구조화가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잘 추진될 것으로 생각한다.”

“국토부·교육부 대대적으로 손봐야”

‘광화문 재구조화’는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가?

“지난해 9월 광화문 포럼을 만든 이래로 지금까지 11차례 정도 각계 전문가와 함께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서울시가 중심이 돼 안을 만들고 추진하면 중앙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구체안이 나오면 청와대(정부)와 협의해 추진할 생각이다. 광화문의 역사성과 문화적 의미를 잘 담아내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국민통합의 광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박 시장은 이 대목에서 ‘광화문(光化門)’ 석 자의 의미를 풀어내며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옛날에는 광화문이 왕의 옥음(윤음)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입구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어 “(왕조 시대와 달리)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광화문은 국민의 목소리를 권력에 전달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운동 기간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적폐청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달라.

“적폐라는 게 표현 자체가 과격해 보일 수 있는데 결국에는 이 시대에 맞는 혁신과 개혁을 하자는 것 아닌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역사가 퇴행됐다고 생각한다. 정치·사회적 측면에서의 적폐도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도 많이 후퇴했다. 원전 정책, 화석연료 집중 등 잘못된 문제를 복원하거나 방향을 재조정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박원순 시장이 시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도시재생, 보행도시로 주제가 옮아갔다.

최근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이용해 만든 ‘서울로 7017’이 주목받고 있다. 계획단계에서부터 긍정적인 평가와 비판적 목소리가 엇갈렸는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우선 접근로나 쉼터, 그늘막 부족 등 시민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잘 귀담아듣고 반영해 지속적으로 개선할 생각이다. 그럼에도 ‘서울로 7017’을 조성한 취지를 잘 살펴봐줬으면 좋겠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가 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책이 있다. 서울은 자동차의 도시지 사람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 주된 요지다. 시장이 된 뒤 일관되게 추진한 것이 ‘걷는 도시’다. ‘걷는 도시’는 연결의 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광화문 프로젝트도 그 일환의 하나다. 도시라는 게 사람이 주인이어야지 차가 주인이어서야 되겠나. 광화문광장, 서울로 7017 외에도 세운상가 2층 데크를 통해 남산으로 연결한 것, 그리고 종로의 차선을 줄이면서 보행성을 강화하는 작업들이 다 보행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다.”

도시 속에서 연결의 개념이 왜 중요한가?

“시장으로서 지금까지 추진해 온 올바른 도시재생의 방향, 원리와 맞닿아 있다. ‘서울로 7017’의 경우 이 보행로가 17개의 가지도로와 연결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이 길을 통해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노후하고 침체한 지역이 살아나고 있다. 해당 지역의 아파트값이 1억원씩 오르는 등 단속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과거에 햇볕이 들지 않던 곳, 음지가 양지로 바뀌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루 40만의 유동인구가 있는 서울역은 지금까지는 고립된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남대문, 중림동·공덕동·명동·남산 등으로 연결됐다. 보행과 재생이 하나로 연결돼 도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도 도시재생 관련 공약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시 정책에서 가져간 것인가?

“그동안 제가 강조했던 사람 중심으로의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을 문 대통령이 ‘도시재생뉴딜사업’이라는 공약으로 만들어 가져간 것이다. 신도시(도심)가 만들어지면서 구도심은 노후화되고 고립되면서 활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앞을 내다보지 않고 계속 신도시를 만들고, 노후화되는 구도심은 방치해왔다. 일본도 같은 문제를 겪은 뒤 내각부 산하에 도시재생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위원장은 수상이다. 나는 일본의 요코하마를 둘러보며 구도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주목했다. 베드타운이던 요코하마시는 칸나이라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관광과 창조도시로 재생됐다.”

도시재생 외에 중앙정부와 함께 추진해야 할 사안들은 어떤 게 있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소방 부문을 혁신하는 것은 그동안 서울시가 꾸준히 시정에 반영하고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사안이다. 앞서 도시재생 문제처럼 문재인 정부가 서울시의 이런 사례들을 참고해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잘 갖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의 방식, 혁신과 협치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특히 혁신은 기업만 하는 게 아니다. 정부 부문에서도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중앙정부 혁신의 구체적 내용이 있다면 가령 어떤 것인가?

“현재 정부 부처는 대체로 이전 정부 것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 그런데 행자부, 국토부, 교육부 등은 굉장한 혁신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별히 이들 부서의 혁신에 신경을 써달라는 주문을 (대통령에게) 하고 싶다.”

“‘구의역 사고’ 가장 뼈아팠다”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후회스럽거나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은 없나?

“가장 뼈아프게 여기는 것이 ‘구의역 사고’다.”

구의역 사고는 지난해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 김모(19) 군이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다.

그 이유는 뭔가?

“시장으로서 사람 중심도시를 구호처럼 외쳐오지 않았나. 그런데 서울 하늘 아래서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여전히 돌아가는 부분을 미처 몰랐고,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당시 김 군이 희생된 구의역 사고는 경영의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수리를 외주로 돌린 것이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적어도 안전문제만큼은 그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미세먼지다. 서울시 미세먼지의 주범은 뭔가? 대책은 뭔가?

“자체적으로 분석해보니 서울에 유입되는 미세먼지의 55%가 중국 등 해외요인이다. 그 다음이 서울 바깥의 도시, 가령 경기도나 충청도 등에서 들어오는 게 대략 23% 정도 그리고 시 자체의 원인이 22%다. 시 자체 원인 중에서는 교통에서 유발되는 것이 37%, 난방·발전이 39% 등이다. 중국 부분이 절반 정도로 크기 때문에 대기질 외교를 제대로 해야한다. 서울시는 총 12개 해외도시와 동북아 대기질개선협의체를 만들어서 국제 간 협력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세먼지가 정도가 극단적으로 좋지 않을 때는 차량 2부제 등으로 도심권 차량 진입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시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중앙정부가 이 문제는 확실히 나서야 한다. 최근 문 대통령이 노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SNS를 통한 소통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라인을 통한 보고시스템이 중요하다. 하지만 늘 현장을 챙기는 힘이 행정과 정치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크든 작든 현장에서 나오는 민원이 중요한데 이게 단지 한 개인 차원이 아니고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잘 알아보면 전반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메신저,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달린 댓글도 꼼꼼히 챙겨본다. 직접 피드백을 하기도 한다. 정책에 반영할 때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올빼미 버스’, 도시계획인 ‘서울플랜 2030’ 등이 시민들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정책이다.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내년 지방선거 때 3선 도전하는 문제를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다.

“아직 임기가 1년이나 남았다. 올 연말쯤 시장 출마 여부를 결정을 하겠다.”

- 글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신승민 인턴기자·사진 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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