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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경제개혁 주도 ‘김동연號’의 행선지는? 

‘실세 그룹’과 이견 있더라도 정책방향·메시지 주도한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경제부총리 내정 직후 숨어있는 ‘킹핀제거론’ 강조, 인사청문회 땐 문 대통령이 강조한 소득주도 성장론 언급 안해, 새 정부 균형잡힌 정책수립에 도움 될 것이란 평가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15일 취임식이 열리는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으로 향하며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미 나흘 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지만 현장 방문 일정 등 바쁜 일정 때문에 취임식을 뒤로 미뤘다고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운 경제정책인 ‘J노믹스(소득주도 성장론)’를 실행할 경제 사령탑이자 핵심 엔진이다. 김 부총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 등 핵심 관료로 일했지만, 탁월한 실무 능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김 부총리의 견해를 보면 일부 발언에서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나 공약과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다. 김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경제공약에 대해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청문회 자리에서 밝혔다.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 공약 실현을 위해) 애쓰겠지만, 공약 우선순위와 조정할 부분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부총리는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사람중시 투자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3가지 정책방향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이들 중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강조해 온 소득주도 성장론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며 의아해 하기도 했다. 이에 김 부총리는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 경제를 위해서는 소득주도 성장 측면에서 일자리가 중요한 축이고, 다른 축은 혁신성장으로 구조개혁·생산성 등의 문제도 받쳐줘야 한다”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의 과거 정부 이력과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낸 경제 정책에 관한 철학과 소신을 놓고 과연 문 대통령의 J노믹스를 얼마나 잘 현장에서 구현해낼지 일부에선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저서와 각종 강연에서의 발언 등을 놓고 보면 김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와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아주대 총장 시절 강연과 저서 등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킹핀제거론’을 제기했다. 킹핀은 볼링핀 중 1, 3번 핀의 뒤에 숨어있는 5번 핀을 지칭하는 용어다. 김 부총리는 부총리 지명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킹핀제거론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볼링핀이 10개 있는데 맨 앞의 1번 핀을 보고 공을 굴리면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고 스페어 핀들이 남는다. 숨어 있는 5번 핀을 제대로 공략하면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뜨려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5번 핀을 킹핀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0개의 핀이 각각 사회문제들을 상징한다고 가정했다. 1번 핀을 저성장, 2번 핀을 청년실업, 3번 핀을 저출산으로 가정하고는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킹핀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1번 핀 즉, 저성장을 해결하면 나머지 문제가 모두 해결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가 지목한 현재의 킹핀은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즉 의사결정구조다. 김 부총리는 “사회보상체계는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느냐의 문제다. 과거에는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다들 이곳에 가려고 경쟁하느라 대학 입시와 취업 문제가 나타났다. 앞으로도 이런 길로 가는 데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게 맞느냐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승자독식의 구조를 부수고, 보상체계를 흐트러뜨린 뒤 재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부가 소수에 집중돼 있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단절되면서 사회 다수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킹핀으로 제시한 것이 거버넌스다. 의사결정 구조를 의미하는 거버넌스 역시 사회보상체계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엘리트가 과점하면 안 된다는 게 김 부총리의 지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고민과 맥이 닿아있는 주장이다.

盧 정부 때 ‘비전 2030’ 작성에 참여


▎문재인 대통령이 6월 9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김 부총리의 부인 정우영 씨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진보성향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업무 조율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가 참여정부 때 ‘비전 2030’보고서 작성 실무를 맡았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로 인한 경제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보고서는 기존의 ‘선성장, 후복지’, ‘낙수효과’식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성장·복지의 ‘동반성장’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인적 투자가 성장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성장을 통해 복지를 확대한다는 논리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결이 같다.

물론 김 부총리의 앞에 놓인 게 꽃길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불안하다. 최근 반도체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세를 보이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민간 소비가 뚜렷한 개선 흐름을 보이지 못하는 등 불안한 경기 회복이라는 시각도 많다.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은 청년실업 문제, 전통적 주력 산업인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 저출산·고령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부동산 급등, 가계부채, 일자리 확대, 저출산 등 산적한 과제가 모두 그의 양 어깨에 얹혀진 부담이다.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방침과 각오의 일단을 밝혔다. 그는 “단기적으론 우선 대내외 위기관리에 주력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러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사람 중심의 일자리, 소득 중심의 성장을 생각하고 있다. 중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체질과 구조 개선에 신경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사람중심 투자,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는 3가지 정책 방향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 적극적 거시정책과 함께 가계부채·부동산·구조조정·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 리스크를 선제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6월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정보기술(IT) 업체 아이티센을 방문해 직원들과 일자리 간담회에 앞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과제다. 벌써부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과 각종 복지 지출의 확대를 골자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타당해 보인다. 지금처럼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면 결국 노동력의 질 저하 등으로 이어져 경제의 성장 잠재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예컨대 일자리 창출용 추가경정예산이라면 과거 공공근로 같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지속해서 불어넣을 수 있고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내실 있는 재정정책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에 대해서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우선 실효세율을 높일 방안을 봐야 한다. 예컨대 조세감면 혜택을 다시 보고 분리과세를 종합과세로 본다든지 세정 측면에서 먼저 찾아보는 것이 먼저다. 법인세 증세 문제는 여러 재원과 실효세율 방안을 검토한 뒤 아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그가 밝힌 정책기조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그가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을 펴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정부 경제팀을 구성하고 있는 정권 실세들의 존재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팀의 면면을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지금까지 발표된 경제팀의 주축 인사들 중에는 쟁쟁한 실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경제팀의 한 축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다. 모두 공직 경험이 전무한 교수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지만 문 대통령의 신임이나 정권 내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이 만만치 않다.

다른 한쪽에는 김진표 국가기획자문위원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등 5인의 정치인이 포진해 있다.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정치인들로 김 부총리의 까마득한 선배들이다. 나머지 정치인 출신 장관 후보자도 문재인 정부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적지 않은 인사들이다. 어디를 보더라도 김 부총리가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인사들은 없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선명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인과 교수들이다. 관료 출신 인사들도 정치권에 입문한 지 10년 안팎이 됐기 때문에 관료색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을 풀어 복지 지출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재정 건전성은 관심사가 아니다.

김 부총리는 다르다. 사실상 경제팀의 유일한 정통 관료로서 재정 건전성 측면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실제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김 부총리는 이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말 기재부 간부들에게 정치권에서 나온 모든 공약의 소요재원을 분석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현실성 낮은 복지공약을 쏟아내던 무렵이다.

기재부는 석 달 뒤 공약 이행에만 5년간 200조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결과를 내놓았고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 부총리는 이 일 때문에 당시 청와대에 사의를 표했고, 기재부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으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기관 경고조치까지 받았다. 2012년 7월에는 무상보육을 비판하면서 “재벌가 자식에게도 정부가 보육비를 대주는 것은 복지 과잉이며 공정한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이던 2013년 6월에는 국무회의에서 무상보육 예산을 놓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장하성 등 실세들과 업무 조율이 관건


▎아주대 총장 시절의 김동연 경제부총리.
이 때문에 김 부총리의 성패 여부는 장하성 실장 등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의 업무 조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만일 그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부딪히게 되면 따돌림을 당하거나 배척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문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김광림 의원은 “김진표 위원장, 이용섭 부위원장, 장하성 실장 등 막강한 실세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김 부총리와 다른 의견을 밀어붙이려 하더라도 쉽게 의견을 굽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청문회 모두발언에 현 정부의 핵심 정책 방향인 소득주도 성장이란 말이 없고, 대신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있다. 현 정부 인사들과 달리 소득주도성장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자신이 경제정책의 중심을 잡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 부총리는 “후보자 지명 이후 문 대통령을 만나 김 의원 등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전달했다. 모든 것은 제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혹시 이견이 있더라도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부총리가 담당할 것이라는 뜻도 분명히 전했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새 정부 공직 후보자 중 처음으로 여야 합의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돼 6월 11일 정식 임명됐다. 그는 그러나 취임식을 나흘 뒤인 15일로 미룬 채 현장을 먼저 찾았다. 추경안의 국회 통과를 지원하기 위해 6월 12일 국회를 예방한 그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을 만나 취임 인사를 했다. 하루 뒤에는 새 정부의 첫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부동산 투기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상과열 현상이 발생한 지역에 맞춤형으로 대응하고, 투기 수요는 근절하되 실수요자 피해는 없도록 거래를 지원하면서, 시장 불안이 지속하면 가용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추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부동산 대책의 대원칙을 제시했다.

6월 13일 정오에는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와 만나 재정·통화정책을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경제부총리가 한은을 방문한 건 2014년 4월 현오석 부총리 이후 3년 만에 처음이었다. 김 부총리는 회동 이후 “격의 없이 국내 경제 상황,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했다. 같이 협조해 좋은 방향으로 우리 경제를 끌고 가겠다”고 말했다. 16~18일에는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인프라은행(AIIB) 연차총회에 참석해 국제무대에도 데뷔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김동연 경제부총리. 지금의 시점에서 김동연표 경제정책의 주 타깃이 어디를 향할지, 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분명 김 부총리는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결이 다르다. 인사청문회에서도 드러났듯 보수에 기운 듯한 자신의 경제철학을 소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 부총리가 과연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정책을 현장에서 잘 구현해낼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경제를 보는 시각이나 평소 철학이 새 정부와 다른데 경제 수장으로서 적절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자칫 진보주의자인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과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일각의 이런 우려와는 달리, 김 부총리의 경제 문제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두루 감안해 그를 사령탑에 앉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장하성, 김상조와 김동연의 조합은 엇박자를 내기보다 오히려 균형 있는 정책수립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특히 김 부총리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가려는 그의 소신이 오히려 새 정부의 정책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옹호론을 펴기도 했다. 그가 기라성 같은 정권 실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심잡기에 성공하면서 김광림 의원의 덕담대로 한국경제사에 오래 기억될 경제부총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박스기사]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누구? - 청문위원도 숙연하게 만든 ‘흙수저’ 출신 성공모델


▎2014년 7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동연(왼쪽에서 둘째) 국무조정실장. 당시 김 실장은 세월호 사건 직후 한 언론에 기고한 기고문에서 세상을 떠난 큰아들을 떠올리며 “시간 지나야 해결된다고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자식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돈·학벌·인맥도 없이 이 자리에 왔고, 기고문에 보면 하도 힘들어서 아버지를 일찍 만날까….”

6월 7일 늦은 저녁, 당시 공직후보자 신분이었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장에서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언을 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잠시 말이 끊어진 것이다. 김 의원은 제1야당 의원으로 김 부총리에 대해 맹공을 퍼부어야 할 입장에 있었지만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김 의원은 한때 김 부총리의 직속 상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의 가족사와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김 의원은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75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김 부총리는 26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뒤 1983년 역시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 의원은 청문회에서 “1994년 김 부총리가 청와대 파견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 내가 그의 직속상관이었다”고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인사청문회 3차 보충질의에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질의 대신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기획재정부 직원들에 대한 격려의 말을 한 뒤 “부총리에게도 한마디하겠다. 돈·학벌·인맥도 없이 이 자리에 왔고, 기고문에 보면 하도 힘들어서 아버지를 일찍 만날까…”라고 김 후보자의 어려운 시절을 소개하던 중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의원은 감정을 추스른 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오늘까지 온 것으로 안다”라고 간신히 말을 맺었다. 이어 “현 정부에서 도덕성과 능력, 전문성을 인정받고 일면식도 없는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다. 저를 포함해 선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했던 믿음직한 공무원이었고, 그립(장악력)이 강해 조직 통제력도 강한 만큼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함께(기재부에서) 근무했던 동료·선배로서 한국경제사에 오래 기억될 부총리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냉정해야 할 청문회장을 숙연하게 만들 만큼 김 부총리는 힘든 성장사를 갖고 있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기 힘들어진 요즘 사회구조에서 보면 그가 부총리가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에게는 일찍부터 ‘고졸 신화’ ‘인간 승리’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김 부총리는 열한 살 때 졸지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아버지가 서른 넷의 창창한 나이에 갑자기 작고하면서부터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살고 있던 큰 집에서 쫓겨나 청계천의 무허가 판잣집으로 내몰리듯 들어갔다. 몇 년 뒤 그 집마저 강제로 헐리면서 그는 현재 성남시가 된 당시의 경기도 광주에서 천막살이까지 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동생을 둔 김 부총리는 하루아침에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학업 성적도 뛰어났지만 가정형편상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덕수상고에 진학한 그는 졸업도 하기 전인 17세 때 한국신탁은행에 취업해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부의 갈증을 풀기 위해 당시 야간대학이었던 국제대학(현 서경대) 법학과에 진학해 은행 업무와 대학생활을 병행했다.

쓰레기통 속 고시잡지 보고 인생 바뀌어

그의 인생이 바뀐 건 직장 독신자 숙소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고시 관련 잡지를 발견한 이후부터였다. 그때 처음 고시의 존재를 알게 된 김 후보자의 이후 생활은 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 김 후보자는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가장이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력할 수는 없었다. 고시에 합격해 발령증을 받은 그날까지 은행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힘든 생활 끝에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한 그는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사무관 시절에도 일과 공부를 병행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1993년 귀국한 뒤 예산·재정·기획 분야의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예산·정책통으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경제부처엔 명문고·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 수두룩했지만 그는 꼼꼼하고 통찰력 깊은 업무 추진으로 공직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뛰어난 정책 추진력까지 인정받은 그는 이념과 지향이 다른 모든 정부에서 중용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근무하면서 중·장기 복지정책 로드맵인 ‘비전 2030’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책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국정과제비서관 등을 맡으면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재부 예산실장, 기재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뒤 2014년에 32년 간의 공직생활을 일단락했다. 이듬해에는 아주대 총장으로 부임하며 교육자로 변신했다.

김 부총리는 합리적 성격과 열린 시각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추진력이 강한 데다 혁신적 사고를 자주 해 ‘아이디어 뱅크’라 불리기도 했다. 특히 정무적 감각과 정책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일 욕심이 많아 일부 후배들 사이에서 모시기가 만만치 않은 상사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간부는 “보고서를 적당히 만들어서 올렸다가 불호령을 들은 후배들이 적지 않다. 그립(조직 장악력)이 센 분이라 기재부를 확실하게 리드해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장 시절 백혈병으로 사망한 아들(당시 28세)의 장례식을 치른 뒤 당일 출근해 업무를 볼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다. 김 후보자는 당시 아들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선물을 거절한 몇 안 되는 정·관계 인사 중 한 명으로도 유명하다. 성 전 회장의 ‘선물 리스트’에 당시 국무조정실장이던 김 부총리 이름도 올라 있었지만 비고란에 ‘사양’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부총리를 지명하면서 “경제계와 학계, 정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유능한 경제전문가이며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할 적임자”라며 “위기의 한국 경제를 다시 도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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