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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의 ‘동서고금 좌충우돌’(3)] “중용지국(中庸之國)은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의 5대 인사원칙은 지나치게 엄격, 장관 인사청문회도 ‘자업자득’… 사드배치로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당하는 괴롭힘, 미국이 보상해야

▎5월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당시 후보자 신분이었던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출근 중이다. 황태연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 기준을 상당히 엄하게 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호 ‘동서고금 좌충우돌’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인사 진통, 사드배치 보고 논란에서부터 시작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돌풍과 중도 정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황태연(62)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중도 정치가 세계적 흐름이라는 점을 중시한다. 독일은 이미 우파 기민당과 좌파 사민당의 대연정으로 중도의 흐름에 들어섰다. 황 교수는 중도가 정치적 안정의 비결이라며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협력하지 않으면 개혁과 국가 운영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했다. 프랑스가 중도의 마크롱을 선택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한국의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은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가 중도로 가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왼쪽으로, 미국은 오른쪽으로 가는 양상이다. 서로 다른 방향의 한미 두 정상이 회담을 하면서 어떤 결과를 산출해낼 것인가?

유럽 복지국가 개념에 대한 분석과 그 유래가 동아시아 공맹 철학이란 점, 유럽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막스 베버 분석의 허구성 비판 등이 이번 호 ‘동서고금 좌충우돌’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공감 철학의 전문가로서 지난 한 달여 기간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솔직히 말해서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인사 시련을 겪고 있어서 답답한 국면입니다. 자업자득 측면이 있어요.”

자업자득이라면?

“원래 인사청문회를 확대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잖아요. 그전에 김대중 정부 때는 총리, 국정원장 등 5명만 인사청문회를 했죠. 그걸 장관 일반과 공정거래위원장까지 확대한 겁니다. 인사청문회 관련 입법도 했고.”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제시한 5대 인사원칙은 어떤가요?

“그것도 자업자득 측면이 있죠. 상당히 엄하게 정해놓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인사원칙이란 게 어디 다섯 가지뿐인가요, 그 외에도 많죠. 대통령이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것을 넘어 일반에 공개한 것도 정치술로 볼 때 본인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죠. 음주운전만 해도 예컨대 알코올 농도 0.2 이상이면 안 된다든지 그런 원칙을 임시로 합의할 수는 있어도 고정시켜 놓으면 경직될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원칙에 맞는 인재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논문 표절의 경우 자기 표절도 문제를 삼는데 자기 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학문 탄압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엄격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겁니다. 같은 글을 다른 데 다시 실어도 문제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글을 원하는 곳이 있으니까요. 예컨대 제가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논문을 정치학회지에 실었는데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신학 관련 학술지에도 실어달라고 하면 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인사청문회 기준이 너무 높다는 뜻인가요?

“너무 높죠. 무엇보다 센세이셔널하게 인격 살인하고 시작하는 것이니까. 음주운전도 수준이 다양한데 언론에 의해 먼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엄격하게 적용하더라도 그 방식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 인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처음이라서 그런지 너무 자기 사람들 위주로 씁니다. 인재를 천하에서 구한다고 공약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친노 아니면 범친문이잖아요. 그렇다고 아주 실력자들도 아니고.”

취임 직후 사드배치 관련 국방부의 보고 문제로 혼선을 빚었는데요,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시나요?

“보고를 해서 문제가 될 듯하니 감춘 측면도 있겠지만 박근혜 대통령 때 이미 보고가 잘 안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 대통령에게 새로 보고를 해야 하는지, 인수인계가 안 된 것인지 애매모호한 상태로 보여요. 그런데 그런 문제를 너무 크게 공개해서 국제적으로 문제가 확대됐어요. 내부 조사해서 끝날 문제를. 한국에서 ‘깜짝 놀랐다’고 하면 워싱턴에서는 ‘배치를 안 하는가’ 하고 의심하고, 베이징에선 그릇된 기대를 높이게 됩니다.”

“인사청문회 기준, 적용은 엄격하되 방식은 신중하게”


▎6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황태연 교수는 문 대통령 초기 인사가 친노·범친문 위주임을 지적했다.
사드 1기가 여섯 대라는 것은 비교적 알려진 사실 아닌가요?

“나 같은 지식인도 처음 듣는 얘기인데 누가 그렇게 사드에 대해 알겠어요. 한 대 갖다 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자꾸 늘어나는 것 같으면 불안해지지요.”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사드배치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사드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배치하는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대북 견제용이라면 어떻게든 갖다 놓으려고 해야 하고, 만약 부분적으로 중국·러시아 견제용이라면 두 가지 면에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다고 봐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미국이 책임을 지고 외교적으로 해결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미국에 협력하는 만큼 우리 군사력과 무기체계를 강화하는 데 협력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과 무관하게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 견제만이 목적이라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사드배치를 안 할 수는 없다는 건가요?

“사드배치를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동맹국의 입장에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이 모든 면에서 미국과 경쟁 관계인데, 그 경쟁에 우리까지 끼어드는 것은 일정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죠. 사드 때문에 중국·러시아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미국이 보상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국제무대에서 반발을 무마해주거나 그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든 미국이 해달라는 거죠.”

러시아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 가능할까요?

“러시아 커넥션이 갈수록 점입가경입니다. 특별검사 수사가 나오면 확실하겠지만 트럼프가 말로만 아니라고 하는 것과 진실은 다른 차원인 듯해요. 트럼프의 여성문제 약점을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등의 의혹을 해명해야 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권력이 취약해지고 있어요. 세계 흐름과도 너무 반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문제예요.”

“세계의 흐름은 중도(中道)로 간다”


▎5월 8일 루브르궁 앞에서 열린 자축행사에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에서 셋째)이 부인 브리지트 트로노(앞줄 오른쪽에서 둘째)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황태연 교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당선이 ‘중도의 세계적 흐름’을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봤다.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예상하나요?

“트럼프는 너무 오른쪽으로 가서 극우로 보이고 우리는 왼쪽으로 가는 모양새죠. 세계의 흐름은 중도로 가는데. 미국은 건국 이래 가장 큰 좌우 대결이 벌어지면서 마치 남미화하는 느낌이 듭니다. 남미도 좌우 대결이 치열하다가 결국 안 좋아졌잖아요.”

세계의 흐름이 중도로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 마크롱의 당선이 대표적이죠. 프랑스의 중도적 선택입니다. 르펜은 극우 세력이고, 공화주의운동연합도 상당히 우익적인 정당이었어요. 프랑스의 사회당만 해도 제3의 길을 사실상 거부했던 정당이에요. 클린턴, 블레어, 슈레더 등 기존 사회주의 세력의 중도화와 거리를 두고 사회주의 원칙에서 있었죠. 그러면서 부패 스캔들에 말려들고 노조개혁도 전혀 못하다가 이번에 참패를 한 겁니다.”

프랑스 대선에 이은 총선의 결과 말씀이신 거죠?

“프랑스 대선과 총선 모두 중도 세력의 압승입니다. 마크롱이 사회당에서 탈당해서 이룬 결과죠. 사회당을 중도화하려다 못하게 됐는데 마치 봇물 터지듯이 중도의 흐름으로 가는 겁니다. 독일은 이미 중도화해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파 기민당과 좌파 사민당이 대연정을 하고 있죠.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는 정도로 중도화한 겁니다.”

프랑스에서 40세의 마크롱 대통령 돌풍이 이어지는 것은 높은 실업률과 잇따른 테러에 프랑스 국민이 지쳐있어서 어떤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테러 관련해서 중도가 특별히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당이 못하니까 새로운 선택을 한 것이죠. 사회당에는 징벌적 평가를 내린 것이고, 그렇다고 우익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중도에 기대하는 것이죠. 또 경제개혁을 하려면 노조개혁을 해야 하는데 사회당 정부는 노조에 손도 못 대고 있었죠. 그렇다고 우익에게 맡기면 노조를 없애버리려고 하니까 중도에 기대를 거는 것이죠. 지금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협력하지 않고는 개혁과 국가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사회당이 총선에서 당의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로 참패했는데요, 좌파와 우파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이념 정당의 퇴조로 볼 수 있을까요?

“크게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유럽에서 좌우 대립이 가장 심한 나라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였죠. 이탈리아도 좌파 군소정당이 너무 많고, 프랑스도 좌파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녹색정당에서부터 극단주의 세력까지 사분오열됐죠. 좌우파의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나라 경험으로 알 수 있잖습니까. 한국의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연정을 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을 할 수 없죠. 서울시청 앞 광장은 노인 세력이 점령했다가 노조 세력이 점령했다가 풀을 심을 수 없을 정도 아닌가요?”

좌우파의 이념이 사라지면 중도만 남게 되나요, 도대체 중도란 무엇입니까?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중도를 습관화한 것이 중용입니다. 덕으로 만든 것이죠. 선한 것이 덕이 아니라 선한 것이 습관이 되어서 몸에 익으면 덕이 됩니다. 한문에서 덕(德)은 얻을 득(得)과 의미가 서로 통합니다. 공자는 몸으로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몸으로 체화하는 것. 어쩌다 선행 한 번 했다고 선인이라고 안 합니다. 중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몸에 체화·체득한 것이 중용이죠. 언제나 중도적인 나라만이 잘 살고 부강하게 됩니다.”

중도의 의미를 국가로 넓히면 어떻게 되나요?

“정치·사회적으로 중도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중용지국(中庸之國)이 되려면 헌법과 법률 제도에 중도적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극단적이지 않아야 하죠. 중도는 중화(中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를 공자는 감정에 비유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했어요. 화가 나도 꾹 참고 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희로애락이 발동하더라도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했습니다. 화를 내더라도 적절하게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중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양극화가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서민은 중산층이 될 수 있고 중산층은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부자는 세계적 갑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골고루 잘살면서 계층 상승의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는 뜻인가요?

“전통적으로 좌파는 서민의 중산층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현 정권에도 그런 측면이 있음을 의심합니다. 서민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민이 중산층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성장을 배제하고 복지만을 중심에 놓는 식의 사회주의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중도를 어떻게 찾아가느냐가 숙제가 되겠습니다.

“생계 지향적 복지만 추구하면서 그걸 탈피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중산층이 바뀌었습니다. 생산수단을 중간 정도 가지는 구 중산층보다 화이트칼라 신 중산층이 훨씬 더 늘어났죠. 양도 늘고 질도 바뀌면서 엄청 유식해졌습니다. 새로운 중산층을 자신들의 표밭으로 만들 생각을 전통 좌파가 못한 데 몰락의 원인이 있습니다.”

“중화(中和)는 양극단을 상생(相生)케 하는 덕목”


▎중국 고대의 사상가 공자의 초상. 황태연 교수는 저서 <공자와 세계>에서 ‘유럽의 복지정책은 동아시아의 공맹철학에서 배워간 것’이라고 논했다.
사회계층 분석에 능한 좌파가 오히려 계층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가요?

“여전히 생계형 복지가 시급한 블루칼라에게만 정책이 맞춰지면 사회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새로 생겨나는 화이트칼라 지식노동 계층을 중심에 놓고 보는 정당이 중도 정당입니다. 블루칼라를 보면 구 사회당이죠. 그런 의구심을 우리의 현 정부에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패러다임이 과거 유럽의 정당을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좌파 정당을 높게 보는데 그들도 대홍역을 치렀습니다. 노조와 한 몸이라서 개혁을 못하고 있었죠. 노조는 축소되는 블루칼라의 아성처럼 되어갔죠. 새로운 기술 도입에 반대하면서 점점 왼쪽 변두리로 가면서 마지널라이즈(marginalize)되었죠.”

한국과 유럽 정당의 이념 지형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 않나요? 예컨대 한국의 좌파라고 해봐야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중도 정도 아닙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팔뜨기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좌파는 중국 공산당보다 더 좌파적입니다. 한반도로 넓히면 더 지독하죠. 북한은 구 좌파의 좌파라고 할까요, 뒤틀린 좌파가 됐어요. 남쪽에선 50~60년간 싸움을 통해 구 유럽 좌파 정도의 세력이 생겨나 집권까지 한 상태입니다. 남한에서는 북한과 동일시하지 않기 위해 좌파라고 하지 않고 진보라고 하지만 명칭만 그렇지 실제 훨씬 좌파적이라 할 수 있어요. 서양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 말 합니다. 독일 사민당이 우리 좌파보다 훨씬 온건해요.”

한국과 유럽 선진국의 사회복지 수준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복지 정책에서 우리나라가 유럽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우리 집권당이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마크롱, 독일 사민당보다 더 좌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권하면 또 우경화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고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야당 시절을 보면 엄청 좌측이었죠. 중국 공산당의 경우도 전위당 개념과 공산당 지배 두 가지 원칙만 남고 다 무너졌어요. 사회주의라는 말만 남았고 사실상 독재 체제죠. 민주화 대상입니다. 민족주의적이고 우경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한국당과 비슷해 보여요. 중국에 사회주의 정책이 남아 있나요. 복지정책 하나 제대로 안되어 있습니다.”

황 교수님의 책 <공자와 세계>를 보면 유럽의 복지정책은 동아시아의 공맹철학에서 배워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복지정책이 발달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정신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 것 아닌가요?

“기독교 국가나 로마 희랍 국가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상공 신분이 하는 일이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이 대표적이죠. 국가가 할 일은 경찰, 국방, 사법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그리스 로마의 순수국가, 야경국가 개념으로 복지국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야경국가가 유럽의 전통적 국가관이죠. 기독교는 국가관이 없고, 플라톤의 영향이 지배적이죠. 그걸 비판하면서 백성을 먹이고 가르치는 양민(養民), 교민(敎民) 사상을 17~18세기에 서양에 번역된 공자로부터 유럽이 배우게 됩니다. 백성을 먹여 살리려면 시장경제를 해야 하고, 빈민구휼 즉 좁은 의미의 복지개념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배우게 되죠. 그런데 당시 프랑스와 영국으로는 주로 시장경제 개념, 독일로는 주로 복지 개념이 들어갔습니다. 독일에서는 복지국가의 명칭을 ‘폴리차이슈타트’라고 했어요. ‘폴리차이’는 양호(養護) 즉 기르고 보호한다는 의미의 국가론이죠. 공맹의 양민, 교민론이 양호 국가론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시장경제와 복지국가 이념이 합쳐져야 하는데, 따로 들어가서 이 둘이 합쳐지는데 120년의 노동운동이 필요했습니다. 최초의 복지 개념이 등장한 비스마르크 때를 기준으로 한 겁니다. 그때 일련의 사회보장법이 통과되죠. 19세기 중반의 일인데, 시장경제는 약화되고 복지가 강화되는 관헌국가가 됩니다. 영국에서는 시장경제만 발전하다가 복지국가 개념이 나오는 것은 1930년대에 독일을 뒤따라 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복지국가가 유럽의 일반적 이념이 됩니다. 이는 국가의 역할을 반드시 전제하는 것이죠. 시장에 반하는 개입이 아니라 시장을 위한 국가의 긍정적 개입입니다. 이런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공맹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공맹사상에서 유래”


▎황태연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5대 인사원칙에 관해 적용은 엄격하게 하되, 방식은 신중하게 할 것을 조언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는 “우리가 열심히 노동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칼뱅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자로 만든 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이런 기독교의 영향으로 복지가 발전한 것 아닌가요?

“그런 얘기는 모든 문명권에서 다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임무로 복지를 얘기하는 것이죠. 아담 스미스조차도 <도덕감정론>에서 국가의 역할은 사법적 정의에만 적용했어요. 인애(仁愛)는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 겁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차가움을 얘기했다면 <도덕감정론>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따뜻한 감정을 이야기한 것 아닌가요?

“그 문제를 ‘아담 스미스의 모순’이라고 흔히 얘기하는데 내가 <공자와 세계>에서 정리해 놓았어요.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이에 모순은 없습니다. 복지국가 개념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양민, 교민 개념을 접하지 못한 것이죠. 최근 세계적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합니다.”

아담 스미스보다 앞선 흄이나 케네는 어떤가요, 그들은 중국의 부유함을 칭송하면서 공맹 사상을 중시했는데 복지국가 개념은 없었나요?

“대개 무위(無爲) 개념만 받아들이죠.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얘기하는 공맹 철학에서 보면 흄, 케네, 스미스의 자유시장론은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어요. 시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게 공맹철학이죠. 공맹철학에서는 환경정책도 국가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창 자라는 나무를 베거나, 알 밴 고기를 잡거나, 무덤 부장품을 파는 것 등을 자유시장이라고 하면서 옹호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시장을 자율에 맞기지만 그런 것은 금했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는 종교개혁이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톨릭의 사회이론입니다. 가톨릭은 종교개혁에 반대했죠. 독일 기민당은 가톨릭 정당이고 사회적인 교설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관점이죠.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불편해 합니다. 사회주의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는 주장도 맹렬히 비판합니다. 베버가 이야기하는 것은 루터의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 칼뱅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칼뱅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기도하고 노동하고 돈을 벌면 천국에 가는 보증수표라고 했죠. 금욕적으로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고요. 그렇게 합리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체제가 서양의 자본주의로 발전했다고 하는 것인데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베버의 자본주의 분석이 잘못됐다는 말씀이시죠?

“독일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반반입니다. 베버가 모델로 삼은 칼뱅의 스위스는 가톨릭 국가죠. 유럽 안에서 가톨릭 국가도 잘살고 개신교도 잘사는데,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관료체제를 동아시아 전통에서 베껴갔다는 것이죠.”

자본주의와 관료주의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는 대부분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국가인데 대개 못사는 나라들입니다. 왜 남유럽·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는 못살까요? 공자의 영향을 받은 정도에 비례해서 잘살고 못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공자와 극동의 정치 문화를 받아들인 7~8개 서유럽 국가만 잘살고 있습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스웨덴 같은 극서 국가들(Far Western Countries)이죠.”

흄이나 스미스가 공맹의 도덕감정까지 받아들였는데 복지국가 개념은 왜 안 받아들였을까요?

“그만큼 플라톤 영향이 강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베버의 근대성 테제는 잘못된 것”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 그는 그리스 로마의 순수국가, 야경국가 개념으로 복지국가를 비판하기도 했다.
루터와 칼뱅의 사상이 어떻게 다릅니까?

“종교개혁은 연속적이지만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입장은 상반됩니다. 루터는 이윤과 이자, 축적 등을 죄악으로 봤습니다. 이웃이 굶어 죽는데 돈 쌓아놓는 것을 죄악시한 거죠. 이윤이 나오고 돈이 축적되어야 자본이 형성되는데 그것을 죄악시한 겁니다. 반면 칼뱅은 돈 버는 것을 노동의 산물로 보고 천국에 가까이 가는 것으로 봤습니다. 또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되고 모아둬야 한다고 했죠. 축적된 자본은 열심히 산 것으로 긍정합니다. 베버가 그렇게 봤죠. 그런데 그것은 소규모 생산을 설명할 때나 가능하지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약합니다.”

미약한 점이란 구체적으로 뭐죠?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인 막스 베버. 황태연 교수는 “베버의 근대성 테제는 잘못된 것”이라며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설명으로는 미약”하다고 논했다.
“조직된 노동이 가능하려면 기업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관료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 관료제가 극동에서 온 것을 베버는 몰랐어요. 영국은 18세기에 이미 중국 제도인 것을 알면서 관료제가 입법조치 되었는데 그런 것을 베버는 전혀 몰랐습니다. 서양의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관료를 충원하는 필기시험도 서양 전통에는 18세기까지 아예 없었다가 동아시아의 과거시험을 알고 나서 유럽에서 임용고시가 도입됩니다. 그런 역사를 베버만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20세기 중반의 푸코조차 필기시험이 서양의 고유한 제도라고 생각했어요. 푸코는 그런 필기시험이 점수로 새로운 신분제를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어요. 비판만 할 줄 알지 역사는 몰랐던 거죠. 프랑스 그랑제꼴은 처절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 푸코가 서양의 고유한 제도라고 착각한 거죠. 우린 어떤가요?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과거시험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다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베버의 근대성 테제는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학술사에서 가장 사기스러운 이론입니다. 서양중심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책이죠. 7월에 출판된 저의 새 책 <공자, 유럽을 계몽하다>에서 베버의 그런 점을 집중 비판합니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테제의 허구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베버의 이 책은 지금까지 동서의 사상사가 경험한 가장 사특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설명은 맞는 겁니까?

“마르크스는 잉여가치 이론, 이윤율 하락이 맞냐 아니냐는 문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잉여가치 학설에 기초한 것이라서 베버와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이제는 설득력을 상실했습니다.”

- 대담·정리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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