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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와 오늘 

대통령이 인정한 ‘능력자’ ... 여성계는 왜 뿔이 났을까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공연·행사기획 전문가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상승에 기여 … ‘왕 행정관’ 구설과 ‘거짓말’ 논란은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남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펴낸 책들을 읽어보았다. 대학시절 신춘문예 병을 앓았다는 그의 글은 자유분방하고 솔직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물러나지 않고 있는지 이해할 만한 대목을 곳곳에 남겨놓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 행정관. 문재인 청와대에서 ‘왕 행정관’으로 꼽힌다.
탁현민(44)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왕 행정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자가 대놓고 말하는 남자 마음 설명서>와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등 그가 10여 년 전에 펴낸 책의 몇몇 구절을 문제삼아 여성계와 언론,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 의원까지 퇴진 주장에 가세했지만 문 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김경수 민주당 의원과 안도현 시인이 나서서 이를 방어했다.

정현백 여성부장관이 재차 탁현민 경질을 건의했지만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인사권의 문제’라며 탁현민 경질 불가(不可)가 대통령의 뜻임을 시사했다. 탁 행정관은 이후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퇴진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탁 행정관이 <여성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이자 인재풀로 꼽히는 ‘민변’ 소속 변호사가 맡고 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의 하나인 소통과 이미지 정치가 계속되는 한 탁현민은 청와대에서 건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탁현민은 누구인가? 그의 책에 적힌 프로필을 살펴보자. 탁현민은 공연 연출가이다. 성공회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연기획, 연출, 글쓰기, 과일장사, 다큐멘터리 제작, 홍보-마케팅, 코러스, 백댄서, 강의, 뮤직비디오, 웹 기획, 비디오아트 등을 해왔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 공익문화기획센터 기획실장,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장을 거쳐 ㈜다음기획 콘텐츠사업부 본부장으로도 일했다. 한양대, SBS방송아카데미, 한국공연예술원 등에서 공연기획과 연출, 이벤트컨설팅을 강의했고, 성공회대 문화콘텐츠학과·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탁월한 공연기획 전문가로 주목


▎지난해 여름, 문재인대통령과 히말라야 트레킹에 동참한 탁현민 당시 성공회대 교수.(오른쪽) 왼쪽은 양정철 전 청와대비서관. / 사진·탁현민 페이스북
수많은 직업 중에서 가장 재능이 돋보였던 것은 공연기획·연출이었다. 윤도현밴드, 강산에, 정태춘-박은옥, 들국화, 전인권, 자우림, 이상은, 여행스케치, 크라잉넛, 신해철-비트겐슈타인, 김광진, 이은미, 한영애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했고, 개혁적 음반 제작자들의 모임인 음반기획제작자연대의 간사를 맡았다. 그는 <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만들기>와 <탁현민의 무대 밖 무대 이야기> 등 공연 전문서를 비롯해 논란이 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등 10권의 책을 펴냈다.

탁현민의 최근작인 <당신의 서쪽에서>(2014년 10월)는 안도현 시인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한때 탁현민과 라디오 팟캐스트 ‘최고탁탁’을 운영했던 그의 친구 최성진(<한겨레> 노조위원장)은 ‘탁씨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탁현민에 대해 이렇게 썼다.

“탁(현민)에게는 다른 누구도 갖지 못한 귀한 에너지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작당을 멈추지 않는 힘 같은 것 말이다. 그가 한때 돈을 긁어모으던 공연연출가였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사람을 모아 흥을 돋우는 일에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 때로는 정치적 공간에서도 그를 불러낼 때가 있다.”

탁현민과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9년 6월 21일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를 통해 처음 만났다. 돈 잘 버는 대중공연 기획자였던 탁현민은 성공회대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서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지 않고 공연기획을 해준다. 탁현민은 이 공연을 통해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가까워지게 됐고, 정치공연 기획에 뛰어들게 된다. 탁현민은 이후 김어준·주진우 등이 주도한 ‘나 꼼수’ 연출도 맡았다. 탁현민은 정치 구호나 호소문이 주된 내용이던 야권의 집회와 행사를 대중가수의 노래와 문인들이 참여하는 ‘말랑말랑한’ 공연으로 만들어냈다.

“기획을 할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고 가장 끝까지 고려한 것은 ‘의도와 목적’이었다. 몇 십 명이 모이든, 몇 백 명이 모이든 수천, 수만이 모이든 어쨌든 모든 기획에는 분명한 의도와 그 의도가 담긴 내용이 있어야 마땅하고, 행사가 끝나면 참석했던 관객들이 의미 정도는 분명히 알고 돌아가야 성공적인 이벤트이며 축제라고 가르쳐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고 그럴듯해도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 기획들은 영혼이 없는 예술가와 같다고도 이야기해왔었다.”

탁현민이 자신의 책에서 말한 연출론이다. 집회나 행사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내면서도 집회의 ‘의도와 목적’을 잊지 않게 만드는 탁현민의 능력은 ‘운동권’ 문화에 익숙한 야권인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회에 대중성을 가미하면서 참여 인원도 늘어났다. 일석이조였다.

탁현민도 대중 공연과 정치 집회를 접목시키는 행사들을 통해 생각의 변화를 경험한다. “예술은 정치적이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게 하는 것”이라 믿게 됐고 “공연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탁현민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멘토 단원으로 활동한다. 그는 당시를 소회하며 책에 “2012년 12월 대선 유세 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여섯 개 지역의 유세 현장을 세팅하며 ‘사람은 죽도록 일해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을 확인시켜주기도 했었다”고 썼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 탁현민은 ‘급좌절’한다. 2013년 초, 탁현민은 정치적 좌절과 서글픔을 안고 뉴욕, 파리, 프랑스의 섬 모그바티스 등을 떠돌았다.

“파리의 오페라 대로변에 있는 카페 로얄에서 김어준·주진우와 커피를 마셨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늘 만났고, 재수가 없는 날에는 길거리에서도 마주치고 저녁도 함께 먹곤 했다. ‘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파리에서 일거리로 라면가게를 열자, 여행사를 차리자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위관급 직업군인이었다가 예편한 그의 아버지는 파리에 체류 중인 아들에게 말한다. “뭐가 그렇게 확 바뀌는 거 없다. 그렇지만 안 바뀌지도 않는다. 밥은 제때 먹어라.” 하지만 탁현민은 돌아와서도 제주도에 체류하며 그가 좋아하는 낚시에 빠져 오랫동안 마음을 다스려야 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문제삼은 시사평론가 변희재(43)와의 갈등과 소송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탄생에 공을 세우다


▎탁현민이 2013~2014년 펴낸 <흔들리며 흔들거리며>와 <당신의 서쪽에서>. / 사진·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와신상담한 탁현민은 대선을 1년 앞둔 2016년 여름 문재인 대선주자의 히말라야 트래킹에 동행했다. ‘문재인의 복심’으로 꼽히는 양정철 전 청와대비서관과 함께였다. 그들은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동지’가 됐다. 탁현민은 2012년의 패인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촛불정국으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열고 2017년 5월 화려하게 청와대에 입성한다. 공연과 행사기획자로서 그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던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등에서 회자된 문재인대통령의 공감 행보에 탁현민이 아이디어를 보탰다. 탁현민 행정관은 문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대국민보고대회, 기업인 호프 미팅도 주도했다. 집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데는 탁현민 행정관의 공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은 왜 탁현민을 곁에 둘까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을 비롯한 여성의원 및 중앙여성위원회 관계자들이 7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고 길다. 여성 비하 논란을 빚은 탁현민의 왜곡된 성의식과 여성관은 아무리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해도 ‘양성평등’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부담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왜 탁현민을 감쌀까? 탁현민이 자신의 책 <흔들리며 흔들거리며>(2013년 5월)에 썼던 한 대목이다.

“정치인도, 정당 소속의 관계자도, 심지어 당원도 아닌 공연 연출가가 선거캠페인에 참여하고 유세의 적지 않은 부분을 담당하고, 또 무대에까지 올랐던 일은 아마도 우리 선거 역사에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탁현민이 문 대통령에게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탁현민은 2012년 대선 패배 뒤 자신의 이름을 딴 ‘탁현민 프로덕션’을 해체하는 아픔도 겪는다. 그때의 심경을 탁현민은 이렇게 적었다.

“원래의 계획은 멋지게 이겨 취임식과 축하공연을 연출하고, 그동안 못해왔던 음악공연, 문화공연의 새로운 기획들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작업실부터 여러 가지를 차근차근 준비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준비한 만큼 부담이 되고 짐이 되어 버렸다.(…) 탁현민의 시사콘서트도 이들과 함께했고, 문재인의 첫 북콘서트도 이들과 함께했다. 문재인의 북콘서트 주제가 ‘운명’이라고 했더니 타이틀 영상의 배경 음악을 ‘데스티니’로 만들어와 자칫 지루해질 뻔한 공연을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공이었다. (…) YB콘서트, 여러 인디 밴드의 공연, MBC파업 지원 공연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문제작을 함께 만들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프로덕션을 접어야 할 수밖에 없다.”

탁현민은 문재인 대통령의 2차례 대선 선거운동을 도운 은인이자 동지다. 친노·친문 인사들 중에는 권력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동지가 제 발로 떠나지 않는다면 주군이 동지를 버리는 것은 ‘야박한’ 것이라는 정서가 있다. 탁현민은 또한 두 차례의 선거를 도우며 상당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특히 탁현민이 정치판에서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대선을 치르면서 겪은 2012년 선거패배의 충격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탁현민은 <흔들리며 흔들거리며>에서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토로한다.

“애초부터 서로를 적대시했던 부류의 사람들의 비난은 당연하겠지만 함께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도 슬며시 책임을 미루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어야 하는 건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장 고되고 힘들었던 시기에 팔짱만 끼고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는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하는 말을 고스란히 들어가며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도 참 기막힌 일이었다.”

당시 문 후보 측에 선거 패배 책임론을 주장했던 민주당 내 비주류나 비노(非盧), 비문(非文) 진영을 겨냥한 듯한 대목이다. 탁현민은 같은 책의 ‘좀 더 뻔뻔하게, 좀 더 염치없게’에서는 또 이렇게 썼다.

“뻔뻔한 자를 이기려면 더 뻔뻔해져야 하고, 염치없는 자를 이기려면 그보다 더 염치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킬 것을 지키고, 챙겨야 할 것을 챙기고, 배려해야 할 것을 배려하며, 그 모든 것을 사뿐히 무시하는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가 끝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상대의 뻔뻔함과 염치없는 사건들을 복기하면서 그것에 대처하는 이쪽의 대범함, 혹은 고결한 정신세계가 나는 좀 허망해졌다. 개싸움을 하면서 상대편 개에게 규칙과 매너를 지키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것은 그저 우스운 일이었지 않았나 생각했다.(…)”

탁현민이 여성계와 정치권 일각의 퇴진 요구와 언론의 문제 제기에도 제 발로 청와대를 나가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만하다. 한번 쓰라린 패배를 경험해본 그는 자신에 대한 야당과 여성계 쪽의 공격에 버티기를 택했다. 한 번 여론에 밀리면 주도권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매번 ‘공신’을 감싸다 보면 그 부담이 대통령에게 이어질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탁 행정관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공직을 맡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만큼 밖에서 돕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있다.

왜곡된 성의식과 거짓말 논란


▎1996년 서른넷, 치기 어린 시절의 탁현민.
탁현민의 책에는 논란이 된 ‘여성비하’ 못지않게 여성계와 보수 진영이 문제삼을 만한 대목도 눈에 띈다. 첫째, 탁현민의 진실성 문제다.

탁현민은 논란이 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2007년, 탁현민 등 4명 공저)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 여학생과 첫 성관계를 가졌다”며 “얼굴이 좀 아니어도 신경 안 썼지. 그 애는 단지 섹스의 대상이니까”라고 했다. 이어 “그녀도 친구들과 공유했던 여자”냐는 물음에 “응, 걘 정말 쿨한 애야”라고 답했다. 탁현민은 이 대목이 논란이 되자 지난 8월 <경향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전부 픽션”이라고 했다. 탁현민의 이 해명을 믿을 말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 <흔들리며 흔들거리며>에서 탁현민은 자신의 성장사와 내면을 털어놓았다. 탁현민은 초등학교 때 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위관급 장교였던 아버지 탓이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면 전학을 해야 했다. 시골 아이들은 순진하지 않았다. 걔들은 대부분 어른스러웠고 대부분 발랑 까져 있었다. 담배를 일찌감치 피우는 애들도 많았다. 그런 까진 아이들 틈에서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가 얌전하고 조용했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왕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떠나게 될 테니 시끄럽게 하고 싶은 대로 마구 사고를 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다. 그 나이의 나는 그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주목받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그 시절은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세월이 흐르면서 성격이 되었다.”

탁현민이 이렇게 야단스럽게 과시하는 성격이라면 ‘고 1학년 때 여학생과 섹스하고 그녀를 친구들과 공유했다’고 한 것은 그냥 지어낸 “픽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탁현민의 다른 책에는 탁현민의 이성관이 전혀 다르게 묘사돼 있다. 탁현민은 <당신의 서쪽에서>(2014년 10월)에서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고2 학생들을 아파하며 자신의 고2때 이야기라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서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짝사랑이어서 일요일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먼발치에서 그 여학생, 교회 누나를 훔쳐보는 게 고작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그 누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말미에는 ‘사랑한다’고 적었다. 두 장, 세 장, 열 장의 편지를 썼고, 두 통, 세 통, 열 통의 편지를 매주 보냈다. 어느 날 교회 누나의 엄마가 예배가 끝난 오후에 나를 부르셨다. 누나의 엄마는 교회 일에 열성이신 집사님이셨고, 교회 학생회의 지도교사였다. 내가 보낸 편지들이 봉지도 뜯지도 않은 채 수북이 담겨져 있었다. ‘앞으로 이런 편지 보내지마. 누나한테 사랑한다느니 그러는 것 아냐.’ 꽤나 울었다. 그날도 밤새 쑥쑥 자랐다. 고등학교 2학년, 그때 나는 그랬다.”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사내아이와 짝사랑에 눈물 흘리며 애달파한 순정남, 어느 쪽이 진짜 탁현민의 얼굴일까? 진실은 탁현민만이 알 수 있다.

두 번째, 논란이 된 탁현민의 왜곡된 성의식, 여성 비하의 언사 등이 실제 사실이거나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개연성이다. 역시 <당신의 서쪽에서>의 한 대목이다.

“누군가가 트위터를 통해 젊은 시절에 썼던 치기 어린 글의 한 단락을 보내며 아직도 그 글과 같은 생각인지를 물었던 적이 있다. (…) 어찌되었든 그때 썼던 그 글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글이 나라는 걸 내 모습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때로는 자랑스럽고 때로는 부끄러운 시절, 내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도 같은 실수를 하거나 더했을 그 풋내 나는 시절, 무엇을 돌아보고 살펴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뜨거웠고 대책 없었던 그 시절 말이다. (…) 옛 글들을 읽으며 이제 그때를 어쩔 수 없다면 여전히 많지 않은 나이이기는 하나 그게 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마흔인 내가 오십쯤 되어서는 제발 똑같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를 노력해야 할 뿐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 아 참, 아직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었던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그 편이 서로에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그동안 논란을 빚은 내용들이 그의 해명처럼 “픽션”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개연성을 남기고 있다.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는 표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적어도 책을 펴낸 2014년까지는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탁현민의 책에서 발견한 궁금증

세 번째, 탁현민의 낭만적인 국가관 문제다. 조지 오웰과 존 레논의 글과 음악을 좋아하는 탁현민은 <흔들리며 흔들거리며>의 ‘애국가와 Imagine’에서 이렇게 썼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것을 보다가 한국선수들이 이기면 뭉클해질 때가 있다. (…) 그러나 환호를 하면서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애국주의나 전체주의의 서늘한 칼날을 붙잡고 칼춤을 추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뭔가 내세울 것 없는 궁벽한 살림을 사는 권위 잃은 가장이 허세를 부리는 기분이랄까. 그냥 찌질한 루저의 대리만족 같은 것이랄까. (…) 언제고 한 번쯤은 시상식 세리머니를 국가 대신 그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는 것으로 한다면 뭔가 더 축제답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본 건데, 만약 내가 금메달을 받게 된다면 나는 존 레논의 ‘Imagine’을 선곡하겠다. 수천수만의 환호 가운데 내 오랜 노력의 결실을 목에 걸며 듣는 ‘Imagine’ 이라니 진짜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탁현민은 현재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이다. 자유인 신분이라면 모를까 공직자인 지금도 당시의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탁현민 행정관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국가 행사를 기획하는 등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문 대통령은 야인 시절인 2013년 탁현민의 <흔들리며 흔들거리며>가 출간되자 책 후기에 “과연 탁현민이다”라며 격려하고 축하한 바 있다. 탁현민은 지난 8월 야당과 여성계의 사퇴 요구에 대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물러날 때”라면서 물러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에서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탁현민 행정관을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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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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