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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가 만난 사람]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유라시아 대륙 호령했던 기질로 세계 경제 위기 극복 가능”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소득과 성장 우선 따지기보다 현 상황에서 유효한 게 중요… 한국의 경제 기적 낳은 한민족 DNA 밝힌 책 발간해 화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현장 답사를 다녔던 중앙아시아 일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고조선 국경 열차’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65)은 지난 30여 년간 금융실명제, 외환위기, 저축은행 부도 사태 등의 경제 위기 때마다 각종 현안들을 도맡아 처리하며 ‘대책반장’, ‘소방수’, ‘구원투수’ 등 으로 불렸던 대표적인 정통 경제관료다.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과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로 유명했던 그의 정책관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팀 개각설이 나돌 때마다 유력한 경제사령탑 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것도 위기 때마다 돋보인 그의 관리 능력과 정책 추진력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해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 정리한 책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를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 책에서 “미래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려면 고대사를 통해 한민족의 유전자(DNA)를 이해해야 한다”며 거쳐 유라시아 대륙에 제국을 건설한 북방 기마민족의 역사에서 한민족 DNA의 특질을 찾았다.

이를 위해 몽골 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유럽 대평원까지 10년간 50차례, 5만㎞에 이르는 현장 답사에 나섰던 그는 570쪽에 달하는 두툼한 이 책에서 전문 사학자들 못지않게 한민족의 고대사, 유라시아 대초원 제국의 기원, 그리고 반세기 만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경제 기적을 연결해 색다른 주장을 펼친다.

인터뷰는 몇 번의 고사 끝에 최근의 경제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선 묻지 않는 조건으로 성사됐다. 속사포식으로 강연하듯 이어지는 설명 속에서 그는 민감한 질문엔 애써 답변을 피하며 넘어갔지만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어느새 주제는 한국경제와 세계 경제에 대한 진단으로 이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2015년부터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를 맡아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군인·경찰,공무원, 기업인,학교 등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매달 5~6 차례 외부 강연에 나서고 있다.”

(지평인문사회연구소는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백혈병’ 관련 피해보상 최종 중재를 맡아 주목받은 진보 성향의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에서 김 전 위원장을 초빙해 설립한 연구 기관이다.)

60년 만에 40배 성장한 기적 같은 한국 경제

지금 같은 시기에 고대사 연구가 느닷없어 보인다.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인가?

“196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7.5배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한국 경제는 40배나 증가했다. 16세기 이후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일본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고속 성장이다. 한국은 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루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관료 시절 한국민들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이루게 됐는지,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가 항상 궁금했다. 이 책은 그 해답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내 나름의 답을 찾았는데 기적의 최종 열쇠는 따로 있더라. 기술·인력·자본과 같은 경제 요소 외에 두 가지가 더 있었던 것이다. 해외시장에서 수출로 승부를 걸었던 한국 고유의 개방 전략과 한민족의 독특한 기질이 담긴 유전자(DNA)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DNA로 6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경제대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한민족 DNA를 찾아서’라고 정한 것인가?

“한민족의 특질은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 강한 집단 의지, 개척자 근성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다른 민족에서 찾아보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특징이지만 2500여 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기마민족 전사들의 기질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시대에 따라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으로 불렸던 기마민족을 우리는 북방 오랑캐라고 만 치부하며 오해해 왔지만 그들은 700~1400년간 오랫동안 세계적인 대제국을 유지했던 민족들이다. 수많은 유적·유물이나 사서의 기록과 문화·언어·관습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민족과 친연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방 기마민족의 오리진이 바로 한민족인 것이다.”

꽤나 도발적인 주장이다.

“이 책은 언어학적 분석과 각종 유물·유적의 비교 등을 통해 기마민족과 한민족이 깊은 친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최근 DNA 분석 연구결과를 보면 한민족은 70%가 북방계열, 30%가 남방계열의 피가 섞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족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바이칼 남부-몽골고원과 만주-발해만-한반도로 이뤄지는 루트를 통해 내려와 이 땅에 정착했다. 만주와 한반도, 발해만 일대에서 실존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했다. 이 나라가 5대 북방 기마민족의 기원이 됐다는 게 내 주장의 골자다.”

한민족이 흉노·선비 등 5대 북방 기마민족의 기원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석동 재경부 제1차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민족이 기마민족의 기원이라는 근거는?

“고조선은 기원전 24세기에 실존했던 대제국이다. 이미 여러 사료와 유적 등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거기에서 5대 북방 기마민족이 파생됐다. 흉노는 언어와 문화,무덤 유적이 우리가 유사하다. 선비는 고조선의 일파에서 갈라져 나갔으며, 돌궐은 북방사학자 전원철 박사가 주장했듯이 서역 진출 당시의 지휘부가 고구려 왕가의 가계와 이어진다. 몽골은 징기스칸의 가계가 발해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의 19세 손으로 이어진다. 여진은 자신들의 사서에서 시조 함보의 후예가 고구려에서 왔다고 전하고 있다.”

다소 허황되고 국수주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이 책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밝힌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북방기마민족 그들은 누구이며,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주장이다. 이제 한민족을 단일민족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처럼 굉장히 오랜 동안 교류·협력하는 과정에서 혼합된 민족 공동체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마민족을 연구주제로 정하게 된 동기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1000여 권의 사서를 모으며 우리와 우리 주변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 경제의 일선 현장에서 35년 동안 지켜보면서 우리가 이뤄낸 것을 경제사의 기적이라 여겼다. 그러다 한민족의 특질이 북방 기마민족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빠져들게 됐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유적을 찾아 다니다 보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찾아와 내 주장을 지지하는 논거를 보태주더라. 이 책은 2008년 재정경제부 1차관에서 물러난 후 10년 동안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연구했던 자료들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동안 역사 현장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유적은 어디인가?

“기원전 고대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중국 발해만 일대의 홍산(紅山)지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내 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들었다. 곳곳에 고대 무덤들이 흩어져 있던 어느 동네 어귀에 들어섰는데 한 동네 촌로가 그것들을 가리키며 ‘가오리무(高麗墓)’라고 말하더라. 고려는 ‘고구려’를 칭하는 말로 이 무덤들이 한족의 무덤이 아니라 한민족 등 북방인들의 유적이라는 뜻이다. 중국식 목관묘·옹관묘와 확연하게 다른 양식의 돌무지무덤(적성총)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한민족을 비롯한 북방인들의 문화가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중국 곳곳에 이처럼 박물관에 채 가져가지 못한 고대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기존 사학계에서 논쟁이 될 만한 주제다.

“국내 사학계에선 이런 논의를 본격적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워낙 광범위한 주제이기 때문에 서로 바라보는 궤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 기존 학계와 충돌한 적이 없지만 앞으로 그들의 주장도 존중하며 겸허하게 들으려 한다. 배제가 아닌 융화의 과정에서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한국 현대 경제사와, 고대사, 유라시아 역사 등 3개 분야를 묶어서 봐야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다고 주장했다. 학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경제 관료 경험에다 역사적 관점을 결합시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분야를 진지하게 파고 들었다면서 독특하고 도전적인 시각이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고 소개했다.

경제관료로 바쁜 삶을 살아왔을 텐데 언제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나?

“원래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고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슐리만이 암스테르담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어들인 뒤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나왔던 트로이 유적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듣고선 저거다 싶어 전율을 느꼈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부모님이 강력하게 권유해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슐리만처럼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가 ‘주제(主帝)실업’이란 이름으로 개인무역회사를 차려 독립했었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가 오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가 도산했다. 우연한 기회에 버스를 타고 가다 행시(23회) 공채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한 게 내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때부터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다.당시 시험준비 4개월 만에 역대 최단기간으로 합격하자 주변에서 모두 놀라며 ‘고시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난 아닌 비난까지 받았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이뤄낸 것에 대한 분석의 관점이 독특하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미래 이야기를 해보자.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한국 경제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년 이후 세계 경제는 어려워 질 것이다. 대외적인 환경과 국내적 상황이 모두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제 침체는 ‘계속되는 위기(on-going crisis)’로 이어지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수요 부족이라는 심플한 원인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경제가 호전됐고, 1950년대에는 세계 경제가 회복됐던 것이다. 이와 달리 2008년 이후의 위기는 고(高) 부채의 문제다. 부채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터진 게 2008년 금융위기였고 그 위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시 부채라는 암초에 직면하자 이를 그대로 놔둔 채 그 위로 ‘금리 인하’라는 물을 더 부어서 암초에 걸리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미국 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유럽 경제는 재정 부채 등으로 고생할 것이다. 여기에 중국 경제도 지방정부와 공기업의 부채와 부동산 버블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 분쟁은 위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내년 이후 세계 경제 ‘계속되는 위기’ 이어질 것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입장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을 어떻게 전망하나?

“1985년 엔화 등의 평가절상을 이끌어낸 플라자 합의 때 담당 사무관으로 현장에서 이를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달러당 250엔 하던 환율이 2년 만에 125엔으로 내려가더니 8년 후엔 80엔으로 3분의 1로 떨어지더라.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즉각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잃어버린 20년’이 이어지면서 오랜 기간 경제가 침체됐다. 미·중 무역 분쟁은 전임 오바마 정부서부터 정교하게 준비한 것이다. 트럼프가 그 방아쇠만 당긴 것일 뿐이다. 중국 역시 이제 황제의 반열에 올라간 시진핑 주석이 쉽게 (미국에) 항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 세력화의 차원에서 설계된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이 오래 갈 것이다.”

양국 간에 무엇이 문제인가?

“중국의 ‘제조업 2025’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촉발점이 됐다고 본다. 세계 제조업을 장악하고, 중앙아시아 일대의 신(新)실크로드를 건설한다는 중국의 야망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터라 쉽게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다. 한쪽이 항복해야 끝나는 게임이다. 경제 침체와 위기에 몰린 중국이 쉽게 밀릴 수 없는 입장이지만 결국 미국의 의지대로 될 것이다. 세계 경제 2위는 의미가 없다. 지금 세계에는 미국과 미국 외의 나라(the others)밖에 없지 않나. 이게 현실이다. 미국을 이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이 신약 가격을 80%나 낮춰서 중국의 신약 복제산업을 위기에 빠뜨린 것이나 화웨이 구속 사태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싸움이 정교한 계획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울한 이야기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경제의 활로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 문제와 경쟁력 상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서로 얽히면서 불균형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한국 경제는 이제 100m 달리기 하듯 1㎞를 뛰어왔기에 목에 숨이 차서 허덕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숨돌릴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북방 기마군단의 네 가지 특질을 지닌 한국인들은 이런 위기를 이겨낼 것”이라며 “위기와 기회를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특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민족의 DNA는 위기에 강한 국가, 세계와 경쟁하는 국가, 통일로 번영하는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민족의 특질이 위기 극복에 어떤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나?

“우리가 위기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느냐가 이 책의 결론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를 선으로 이어보면 한반도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세계적인 물류·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여태껏 해보지 않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생산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 국제적 협력과 이익의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생산방식이란 표현이 낯설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다면?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고, 목포에서 신의주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大) 물류의 장이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다. 이러한 담대한 구상이 바로 새로운 방식이다. 현재 1년에 4개월 정도만 열리는 북극 항로도 2030년쯤에는 1년 내내 열리게 된다. 북극 항로를 통하면 부산~로테르담 간의 거리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40%가 단축된다. 러시아 가스관을 남북한과 일본까지 연결할 수도 있다. 북·중·러 접경 지대의 공동 개발도 고려해볼 만하다.”

북·중·러 접경 지대의 바람직한 국제 공동 개발 방식이란?

“중국은 두만강변에서 16㎞ 정도가 막혀 있어 동해안까지 직접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 가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망해각’이라는 거대한 탑을 세워놓고 물류가 태평양까지 통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도 극동 개발에 국운을 걸고 있다. 북한도 경제 개발을 원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산업개발과 도시개발의 경험을 보유한 한국이 여기서 절대 빠질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북·중·러 3개국이 땅을 내놓고, 한·미·일이 가세하는 6개국 공동 보유 방식으로 국제도시 건설에 나서는 방안 등이 구상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이라야 통할 수 있고, 국제적 협력 속에서 진행돼야 세계 경제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국 경제, 미래 산업구조로의 개편, 구조조정 시급


▎김 전 위원장이 한민족과 연관이 있는 북방 기마민족 왕가 가계도를 설명하고 있다.
경제 환경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어 경제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 경제, 무엇이 문제라 생각하나?

“다가올 혹한기에 대비해서 산업 구조조정을 가급적 빠르게 진행하고, 신산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독점적인 구조를 지닌 산업 분야에 경쟁 요소를 도입하고, 완제품보다 부품 산업을 진흥시킬 대책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산업구조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새 판을 짤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지 않나.”

현 정부가 경제정책 운용을 잘하고 있나?

“(손사래 치며) 에이… 노 코멘트 하겠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논란이 많다.

“‘경제가 나쁘다’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이라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의 급격한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는 중이다. ‘정부 정책이 문제’라는 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외부 환경 요인까지 고려해야 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성장과 소득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만 봐선 안 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복잡다기하기 때문에 결과가 때로는 원인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뭐가 우선인지 따질 필요 없이 ‘흑묘백묘론’처럼 현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게 중요하다. 내가 35년간 경제 정책을 해왔지만 경제이론대로만 되지는 않더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일전을 결할 각오로 이 위기를 헤쳐 가야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업 기죽이기에만 치중한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왜곡된 문제를 푸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균형을 잃거나 기업 마인드를 위축시키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있는 것을 모두 때려부수는 식은 곤란하다. 대한민국의 성공 비결은 뭐든지 하도록 풀어놨기 때문이다. 남북한만 놓고 봐도 북한은 묶어 놓고, 남한은 풀어 놨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놔둬라. 가르칠 필요도 없이 그냥 놔두면 된다. 금융위원장 시절 금융사의 금리·수수료·급여에 관한 사항은 각사가 알아서 하고 나에게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던 적이 있다. 금리 자유화가 바로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내년 이후 한국 경제의 안팎 사정이 어려워지면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

관치(官治)를 주장하는 것인가?

“위기를 돌파할 때는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위기가 다가온 것을 모르는 게 가장 문제다. 해일이 다가오면 높은 곳으로 피하면 되듯이 위기가 무엇인지 알면 그에 맞게 대응하면 된다. 그게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경제팀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오른다. 입각 제의를 받은 적 있나?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공직 복귀는 없을 것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다. 한민족의 DNA를 심층 연구하고, 동이족의 궤적을 더 파보고 싶다.”

공직과 일선 현장이 그립지 않나?

“(웃음을 지으며)역사의 현장이 내 현장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감히 중국 정사인 [25사]를 완역해 보는 게 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작업이라 쉽진 않을 것이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 조선’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 나돌고 있어 안타깝다. 그들이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세계인이 될 수 있게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와 DNA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 홍병기 경제전문기자 -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사회부·산업부 기자와 경제부 정책·금융·증권팀장 등으로 일선 취재현장을 두루 거친 뒤 JTBC 보도국 취재담당 부국장, 중앙일보 선데이담당 경제에디터 등을 역임했다.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공저)] [떠오르는 재계 새별(공저)] [뉴스 동서남북: 한 권으로 읽는 한국 언론 명인·명문 열전]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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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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