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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평양] 미세먼지 ‘악몽의 일주일’ 북한의 대처법은 

정규 TV 방송 중 ‘황사 경보’ 자막 내보내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대기오염에 따른 사망률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
“외출 자제하고, 마스크 쓰라”고 강조하지만 동원집회는 강행


▎평양시 외곽에 있는 상원 석회석광산의 노동자들이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환영하는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3·1 운동 100주년의 열기는 생각만큼 뜨겁지 못했다. 전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탓이다. 당장 대통령 기념사에서 밝힐 평화 메시지가 궁색해졌다.

이에 더해 100주년 열기를 차갑게 식힌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날부터 일주일간 계속된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다. 오후 5시쯤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환경부로부터 전송되는 메시지가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같은 기간 미세먼지 마스크 판매량이 13배나 늘었다. 미세먼지 재앙의 책임에 누구에게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당국은 미세먼지를 흡착하는 페인트를 공공건축물에 바르겠다는 등 기상천외한 대책을 쏟아냈다.

이처럼 산업화의 그림자는 짙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머리 위에 있는 북한은 어떨까.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그곳에선 여전히 맑은 공기를 즐기고 있을까.

3월 5일 밤 북한 조선중앙TV는 “서풍 기류를 타고 미세먼지가 흘려들어서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보임 거리(가시거리)가 짧고 대기 질도 몹시 나빴다”며 날씨 소식을 전했다. 이어 “내일(6일) 대부분 지역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여전히 높겠으나 비가 내린 후 바람이 불면서 오후부터는 점차 낮아져 정상상태를 회복하겠다”고 예보했다. 이때 북한 매체가 보도한 사진을 보면 평양과 북한 대부분 지역은 뿌연 미제먼지에 갇힌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 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세먼지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3월 5일 북한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베트남 공식 방문을 마치고 전용열차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도 다음날인 6일 새벽에 돌아온 김 위원장을 반기는 각계각층 반응을 소개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보다 더 눈에 띄었던 부분이 바로 미세먼지다. 김 위원장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속 배경을 보면 안개처럼 뿌연 먼지가 마치 김 위원장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이나 하는 듯했다.

평양, 평안남도 지역에 화력발전소 집중


▎베트남 방문을 마치고 전용열차로 평양에 도착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북한도 미세먼지에서 자유롭기는커녕 한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발표한 ‘2018 세계보건통계’에서 북한 인구 10만 명 당 207.2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한국(20.5명)의 10배 수준에 중국(112.7명)과 비교해도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2017년 통계에서도 대기오염에 따른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238명으로, 조사가 이뤄진 전 세계 172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북한의 대기 질 수준도 전 세계 평균보다 2.6배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동남아시아 국가 평균에 비교해도 2배 수준이었다.

WTO는 심각한 대기오염의 원인으로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지목한다. 에너지를 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저개발 국가일수록 대기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해당 조사에선 북한을 비롯해 인도와 나이지리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대도시권이 주의를 기울여야할 권역으로 거론됐다.

김순태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한국 전체 미세먼지 가운데 북한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 비율이 최대 30%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북한 평안남도 지역에 위치한 북창화력발전소 일대 위성사진을 보면 사진에도 선명히 잡힐 정도로 많은 연기가 배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진시설이 미비하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북창화력발전소의 시설 용량은 1600㎿로 추정된다. 북한 화력발전소 여덟 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한국 최대의 화력발전소인 태안화력발전소(설비용량 6480㎿)에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설비 결함 때문에 실제 가동용량은 500㎿ 이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의 대기오염도 심각하다. 북한 주요 도시의 중앙난방은 화력발전소에 의존한다. 평양과 평안남도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집중된 이유다. 1950~1960년대 구(舊) 소련에서 도입한 낡은 설비를 지금도 가동하는 탓에 매연 저감장치는 언감생심이다. 더구나 정제되지 않은 연료를 사용하는 까닭에 한국의 화력발전소에 비해 더 많은 불완전 연소물질을 대기로 뿜어낸다.

북·중 접경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동북 지역은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90% 이상을 화석연료에서 뽑아낸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에선 겨울마다 타이어를 태우는 듯한 냄새가 진동한다. 접경지대에 살던 탈북자들은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술회한다. “실제로 타이어를 태워서 나는 냄새다. 태울 수 있는 물질이면 무엇이든 연료로 쓰인다. 그나마 태울 게 있으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도 심각성을 모르는 게 아니다. 2월 24일자 [노동신문]은 ‘미세먼지에 의한 대기오염과 그 방지’라는 제하의 보도를 냈다. 조선자연보호연맹 중앙위원회 연구사로 소개된 필자는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미세먼지의 기본성분은 탄소화합물과 규소화합물로 돼 있다. 미세먼지에는 그밖에 여러 가지 유독성 금속과 미생물, 기생충 알, 발암성물질들도 함유돼 있다. (…) (미세)먼지는 사람의 호흡기를 따라 인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은 만성기관지염·폐렴·규폐증(폐에 규산이 쌓여 생기는 만성질환·편집자 주)을 일으키고 심지어 폐암과 같은 위험한 질병을 일으킨다.”

해당 보도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대기 중에 미세먼지농도가 10㎍/㎥씩 증가될 때 사람들 속에서 호흡기 질병에 걸린 비율은 26%씩 높아졌다. 그리고 비흡연자들 속에서 폐활량이 2%씩 감소됐다.”

구체적인 대처법도 이어졌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미세먼지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공장, 기업소에서 먼지잡이장치(집진장치)와 공기여과장치를 철저히 갖춰 먼지가 대기 속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윤전기재들에 이용되는 연료의 질을 높이고 유해 가스와 먼지를 많이 내보내는 윤전기재들은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문은 화석연료뿐 아니라 다른 문제점도 분석했다. “도시폐기물을 실어내거나 화물차로 물자들을 운반할 때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며 자동차들이 달리면서 먼지를 일구지 않도록 도로관리와 청소를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록화를 잘해야 한다. 도시의 어디에나 흙이 드러난 곳이 없도록 잔디를 비롯한 지피식물을 심으며 공원, 유원지들과 공장, 기업소주변, 거리와 마을들에 많은 나무를 심어 도시를 수림화, 원림화해야 한다.”

김정은, ‘산림복구전투’ 강조하지만…


▎평양시 외곽에 있는 북창화력발전소는 북한의 화력발전소 가운데 시설용량이 가장 크다. / 사진:연합뉴스
산림 녹화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초기부터 강조된 역점 사업이다. 북한에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 이어진 산불 사태로 산림 1만2800㏊가 소실됐다. 김 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모든 산을 10년 안에 ‘황금산’, ‘보물산’으로 복원하라는 방침을 발표하며 황폐화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는 ‘산림복구전투’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 주민들은 민둥산에 올라 땔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발 빠른 예보도 눈에 띈다. 조선중앙TV는 지난해 3월 24일 “미세먼지 예보입니다. 내일도 중국 대륙으로부터 서풍 기류를 타고 대기 오염물질이 우리나라로 이동해오고 안개가 끼면서 서해안의 여러 지역에서 대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 예견되므로 건강관리에 주의를 돌리기 바랍니다”라고 사전 대비를 주문했다.

다음날인 25일에는 낮 12시 라디오 보도에서 “오늘 9시 평양지방의 미세먼지 일평균 농도는 ㎥당 144㎍으로서 일평균 대기환경 기준인 ㎥당 80㎍을 초과했다”며 “내일 아침까지도 중국 대륙으로부터 서풍 기류를 타고 대기 오염 물질이 우리나라로 이동해 오고 안개가 끼면서 서해안의 여러 지역에서 대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실시간 정보를 전달했다.

방송 중간에 긴급 방송을 통해 주민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중앙TV는 2016년 5월 5일 정규방송 마지막에 “황사 경보”라고 안내하며 황사와 미세먼지 주의를 당부했다. 다음날에도 만화영화를 내보내던 중간에 “어젯밤 서해안의 여러 지역에서 관측된 황사는 오늘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다음날인 7일까지 계속 영향을 줄 것이 예견되며 이 기간에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대처법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예컨대 방송에선 “목과 눈 아픔,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협심증, 기관지 천식과 같은 만성질병도 심해져 창문을 열어놓지 않도록 하고, 모자와 눈 보호 안경, 마스크 착용,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옷을 털고, 연한 소금물로 입을 헹굴 것“을 당부했다. 특히 ”어린이들과 노인들을 비롯한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2∼3%의 연한 소금물 함수(양치질)를 자주 하는 등 건강관리에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예보와 온도차가 컸다. 올해 3월 5일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위원장을 환영하려 동원된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6일자 [노동신문] 사진에는 평양시 외곽 상원 석회석광산 노동자들이 미세먼지 가득한 공터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북한에서 나온 사진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북한 주민들은 동원된 행사에서 집회를 열거나 실외 대규모 운동을 했다.

전력의 평양 집중, 미세먼지의 인민 평등


▎국립산림과학원은 북한 지역의 산림 자원 상당수가 황폐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사진:김성일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북한 특유의 동원 체제는 북한 주민들을 열악한 기후 환경에 자주 노출케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3월 5일 서울 시민들이 공기 오염을 피해 실내로 대피하던 순간이다. 서울에선 휴대폰 문자 경보를 보내 실외 활동을 자제토록 했다. 대중교통 사용을 늘려 자동차 운행을 줄였다.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예산을 투입했다.

주민 건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몸에 축적될 오염 물질을 알면서도 각종 행사에 동원되지 않을 방법이 없다. 만세를 외쳐야 하는 입을 마스크로 가릴 수도 없다.

그나마 평양 인근 화력발전소(평양화력발전소·동평양화력발전소)는 지방 발전소보다 배출 오염물질이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전소의 집진장치도 평양 위주로 설치돼 있다는 소문도 있다. 북한 대기오염물질 배출 특성을 분석한 이인선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의 연구를 보면,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유기탄소(OC) 비율은 대도시권 밖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탄소는 불완전 연소에서 많이 배출된다. 다시 말해 대도시권 밖에선 여전히 목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유기탄소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북한이 한국보다 절대 배출량이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평양 외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그쪽 지역에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북창 발전소뿐 아니라 멀리 압록강 인근 수풍발전소에서 만들어낸 전기도 평양으로 공급된다. 그나마 수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주민 생활이 아닌 군수공장과 군대에 우선 공급된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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