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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건축 전문가 임동우 교수가 말하는 북한 주민의 내적 변화 

“평양 도심 아파트는 미래의 강남될 것”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공간을 고루 나누는 사회주의 건축 이념에도 도시는 확장, 北도 예외 아냐
김정은 북한 자본계층의 욕망 억압 못해… 평양 재개발과 입주권 매매 성행


▎임동우 홍익대 건축대학원 교수가 27개의 북한 도시를 표시한 지도 앞에 서 있다. 그는 북한 도시의 변화에 인민의 욕망이 담겨 있다고 진단한다.
"과연 도시의 인프라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도시의 구축 환경은 그 사회의 이념,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판테온을 방문하라고 권한다. 고대도시 로마의 권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도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도시공간이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줘서 그 사회의 시스템을 변화시킨다. 광화문 광장이 없었다면, 탄핵도 없었다고 본다.”

임동우(42)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학 유학 시절 들었던 일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1964년 보스턴과 외곽을 잇는 노면전차가 놓였다. 한국 같으면 굉장한 두 손을 들어 환영할 호재였겠지만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에선 전혀 다른 반응을 낳았다. 보스턴 시민들은 운행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그린라인’의 정거장 일부가 사라졌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돈 없는 사람들이 노면전차를 타고 우리 동네로 오는 것이 싫다’는 백인 부유층의 거부감이 작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차량을 타고 올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만 받아들이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셈이다.

이처럼 도시 공간의 속성은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즉 도시의 환경을 보면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런 기조 위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 특히 북한의 평양을 들여다 봤다. 그렇게 평양의 건축물이라는 ‘말하지 않는 대상들’과의 대화를 계속 시도해왔다. 2010년 평양을 방문한 바 있는 임 교수는 이듬해 ‘평양건축’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또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란 저서를 통해 평양을 도시 공간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 성과를 인정 받아 2013년 뉴욕 젊은건축가상,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서울도시 건축비엔날레의 ‘평양전’ 총감독을 역임했다.

평양과 사회주의 도시를 지속적으로 들여다 본 임 교수가 도출한 잠정적 결론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평양 등 북한의 도시들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들처럼 무질서하게, 무계획적으로 비대해지리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사회주의자에게 도시는 惡”


▎사회주의 이념이 투영된 구소련의 도시 민스크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현재는 벨라루스의 수도다. / 사진:위키미디어
평양도 결국 이 범주에 포함될 텐데, 사회주의에서 도시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까?

“1917년 혁명 성공 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도시’가 무엇인지를 놓고 논의가 많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언급을 많이 했듯 ‘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차원에서 제기된 질문이었고, 후대 사회주의자들이 솔루션을 냈다. 1930년대의 ‘모스크바 마스터플랜’이 하나의 모델이 됐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란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무슨 뜻인가?

“쉽게 말하면 아파트 단지다. 사회주의자가 도시에서 코뮌(주민 자치제)을 실현하는 공동체로 기능한다. 공간을 평등하게 갖는다는 개념을 구체화시킨 것으로, 사회주의 통치자들은 건축물 하나에도 이념을 따졌다. 도시화도 하나의 혁명 과정으로 본 것이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도시화는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도시화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불거진 문제다. 그 전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산업화의 여파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공간에 몰려 살게 되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농촌의 농민들이 도시로 흘러가고, 부가 집중되고, 그 안의 노동자는 점점 열악해지고…. 고대 도시 로마가 인구 100만 명을 거느린 이래, 18세기에 들어서야 100만 인구를 가진 도시 런던이 출현했다. 그러니까 대략 2000년간 인류는 100만 도시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런던이 (18세기 이후 단기간에) 500만 도시로까지 커졌다.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발생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대도시라는 것은 억제해야 되는 것’이란 개념을 갖게 됐다. 실제 부르주아 출신인 엥겔스는 공기는 열악하고, 노숙자들이 득시글하며, 햇빛도 안 드는 데다, 상하수도도 변변치 않은, 쥐들로 들끓는 맨체스터의 뒷골목을 둘러 본 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이념으로도 도시의 확장은 막을 수 없었다.

“그 시작은 소련이었다. 그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은 했지만 1950년대 들어 주거 공간을 어마어마하게 공급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전쟁 이후에 복구도 해야 했고, 사람이 많이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적용된 모델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그 건축 양식이 동유럽, 중국, 베트남,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로 퍼져나갔다. 시기와 재료 사용만 다를 뿐이다. 가령 다른 나라는 콘크리트로 지었는데 베트남은 70년대에 벽돌을 많이 썼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겠다.

“하나의 도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민들을 위한다’는 사회주의 국가가 (도시의 확장을 통제한다고) 사람들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내쫓을 순 없지 않겠나. 즉 이상은 있으되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쨌든 평양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됐다. 게다가 폐허의 책임은 자기들이 아니라고(미국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미 제국주의의 침략, 일제 잔재의 청산, 봉건제도의 타파, 이 모든 것이 사라진 토대 위에 사회주의의 상징을 건설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도시로서의 평양이 갖는 위상은 북한에서 특별한 것 같다.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이 산다. 중국처럼 1가구1자녀 정책을 편 것도 아니니까 아이를 많이 낳는다. 외부 유입도 있었겠지만 내부 성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인구 300만 도시가 된 것이다. 그래도 북한 주민의 10분의 1 수준이니 억제가 잘 된 편이다.”

억제의 부작용도 있지 않았을까?

“북한의 물류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한 것은 A도시와 B도시의 사람과 물류가 왕래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 평양은 김정희 건축가의 작품인가?

“김정희는 1953년 <도시와 건설>을 썼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이 1950년대 김일성 광장 등, 평양의 복구 마스터 플랜으로 실행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에서 유학할 때, 김일성이 그를 불러와 재건 계획을 세우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 선전영화 ‘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그 정도로 김일성이 총애했다. 북한 지방 도시계획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이전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행적은 현재로선 베일에 가려져 있다.”

평양 거리에 등장한 ‘분양광고’


▎평양 지도. 광복거리와 통일거리는 도심 외곽에 조성됐지만 최근의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는 강을 접한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사진:임동우
평양도 1970~80년대 인구가 팽창했고, ‘살림집’이라고 하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인구가 늘어났을 때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문제다. 소련에서 온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북한에선 ‘주택 소구획 계획’이라고 했다. 6~7층 규모의 중층 아파트 단지가 70년대까지 들어섰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이 사이즈로 수용할 수 있는 이상의 속도로 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광복거리, 통일거리가 나왔다. 행정구역상 평양이지만 도시 외곽(suburban)인 셈이다. 대규모 개발을 통해 인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소련에서부터 고층아파트 모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련은 판상형(일자형)인데 북한의 고층아파트는 김정일의 영향인지 조형성을 강조했다. 건축에도 프로파간다(선전, propaganda)적인 것이 많아졌다.”

이후 김정은 시대에 어떻게 변화가 되고 있나?

“2012년 ‘평양의 타워팰리스’로 유명했던 창천거리, 미래학자거리의 초고층 아파트가 대동강변에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광복거리, 통일거리는 주민을 많이 수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도 더 지을 땅이 많다. 그런데 거기가 아닌 강변에, 그것도 원래 존재하던 건물을 부수고 재개발로 건축을 진행했다. 빈 땅에 한 것이 아니다. 왜 이런 수고를 감수했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새 아파트를 지으면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북한 법에선 땅, 집, 주차장이 국가 소유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부동산 개념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소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입주권에 관한) 매매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그러다 보면 부동산 개념이 생겨난다.”

소유권만 없을 뿐 나머진 자본주의 국가의 부동산 시스템과 흡사하다?

“그렇다. 평양에 비파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기존 주택을 헐고, 높게 짓는 일들이 지난 10년간 야금야금 벌어지고 있다. 전주(錢主)들,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부동산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다. 작년에 누군가 자료를 보내줘서 봤는데 평양거리에 ‘근대식 시설, 면적은 몇 제곱미터’라는 문구가 담긴 분양 광고가 있었다. 나라가 특정인한테 아파트를 재공한다는 개념만 있으면, 이런 광고가 있을 리 없다. 어느 정도 국가의 컨트롤 하에서의 묵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장마당처럼 말이다.”

북한에서도 자본력을 갖춘 계층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겠다.

“평양, 북한 여러 곳이 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있는 계층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불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이념, 주체사상 등이 통했지만 지금 돈 있는 사람들한테 (욕망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외국 친구를 만났는데 ‘평양에 돈 있는 사람들이 원산에 많이 간다’고 하더라. 왜 그러냐면 평양은 통제가 있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주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돈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형식적으론 국가의 통제 아래 두지만(자본계층이) 갖고 싶은 것을 갖도록 고려할 것이다.”

더 이상 북한이 아파트를 지을 때, 동구권 모델만 참조하진 않겠다.

“그렇다.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최근 북한 아파트의 평면도를 보면 우리나라 주상복합처럼 짓는다.”

인테리어도 도입됐을까?

“장마당은 생필품 위주다. 반면 중국에서 물품을 가져와야만 하는 인테리어는 개인 비즈니스에 속한다. 소수에게만 해당한다. 다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로마를 느끼려면 판테온에 가라고 했다. 평양이라면 어디쯤일까?

“김일성 광장. 도시 중심에 큰 광장을 두는 발상은 부동산 개념에서 허용될 수 없다. 그 주변에는 동유럽권에서 영향받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도 있다. 평양 건축들을 둘러보면 ‘역시 여기는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갭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양성은 자본주의의 증거


▎북한 체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로 꼽히는 김일성 광장. 선전과 과시의 공간이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과시적 건축물과 비루한 현실이 대비된다.

“사회주의는 혁명을 통해 이념을 실현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인민의 계몽이다. 계몽에는 선전, 과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 건축물이 나온다. 첫째, 부동산 개념이 없고 둘째, 과시를 해야 사람들이 계몽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군중을 모아 연설하는 데 김일성 광장이 필요했다. 다만 안 좋은 현실을 덮기 위해 생겨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90년대에는 아무것도 없다. 70년대 경제력이 우리나라와 비등비등할 때 대규모 건축물, 공간이 나왔다.”

여명거리를 보면, 김정은조차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정은으로선 옛날 방식을 유지해서 이 나라를 계속 통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안위를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고려할 것이다. 젊으니까 과감한 면도 있고, 더 길게 봐야하는 면도 있다.”

북한 인민의 내면에 자본주의 물이 들어갔음을 실감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쇼윈도.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굉장히 큰 부분이다.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건설 때만 해도 건물 몇 개 박아놓는 것이 아파트 개발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을 보면 아파트 디자인이 다 다르다.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다양성은 배제돼야 하는 가치 중 하나다. 사회주의에선 통일된 가치관, 효율성, 합리주의를 추구했다. 다양성을 추구하면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그런데 지금 북한인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이야기다. 요즘 보면 북한 패션도 완전히 달라져 있다. 옛날엔 길거리에 10명이 있어도 패션은 두 가지(남자,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10가지다. 사람들의 표출에서 달라진 북한을 느낀다.”

개인의 욕망과 체제의 힘 사이에서 북한이 점점 개인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 아닌가?

“불가항력적이다. 중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보면 통제를 당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 누가 와서 검문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나라가 통제에 자신감이 있으면 오픈 업(open up)이 된다. 북한은 쉽게 오픈 업 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점점 ‘못하게 한다’가 아니라 ‘손바닥 안을 다 내려다보고 있다’는 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 부동산은 중국 錢主들의 엘도라도?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건축물의 다양성은 돈 있는 계층의 욕망을 상징한다./사진:조선중앙통신
미래 평양은 어떻게 변모할까?

“베를린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지금 평양의 모습, 즉 건물에 선전문구와 인공기가 걸려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똑같은 배경에서 선전문구와 인공기만 포토샵으로 지웠다. 그리고 삼성, LG의 광고판을 입혔다. 두 장면이 다 미래도시 평양의 정답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 변할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일어났던 문제들이다. 지금 사회주의 도시에 관한 논문을 보면 ‘그 많던 녹지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공적 공간은 왜 상업시설에 점령 되었는가’란 주제를 다룬다. 자본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북한은 이런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북한이 사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나아갈 방향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평양에 초고층 건물들이 올라가는 현상을 어떻게 볼까?

“지금은 북한이 국제 제재 속에 있다. 그러나 언젠간 제재가 풀린다는 전제에서 봤을 때, 하나의 도시 개발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체제 선전을 떠나서 말이다. 이는 다른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심의 고급 아파트, 도시 외곽의 개인 주택…. 이미 있던 현상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나머지 도시들은 어떤 상태인가?

“부(富)는 평양에 집중돼 있다. 다만 원산·신의주 등을 포함한 5~6개 도시들에서 개발 계획도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기본 틀이 있다. 북한이 이것을 무너뜨리진 않을 것 같다. 이것을 무너뜨리고, 평양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시간문제일 뿐, 지방 도시들의 개발 플랜은 다 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의주는 중국 자본과 투자 협약이 됐다고 들었다. 원산은 관광특구로 개발될 것이다. 지방의 도시를 살리지 않으면 인구가 평양에 더 몰릴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북한 정권의 통제가 불가능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가 계속 평양에 몰려든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에 투입된 중국 자본은 어느 정도로 파악되나?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 다만 중국 조선족을 만난 적이 있다. 북한의 어느 지역 부동산 개발을 해서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레벨에서 (개발이) 어마어마하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일일이 파악하진 못하겠지만 북·중 접경지역 사람들 중에서 분양사업에 관련된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지난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중국에서 관광객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을 하나의 기회로 보는 듯하다. 중국의 힘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본다. 결국에 한국의 경쟁 상대는 중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북한 도시와 한국 지방도시의 ‘접점’


▎임동우 교수는 북한의 도시들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개발되는 사태를 경계한다.
고가아파트는 건물 자체보다 어떤 인프라와 커뮤니티를 거느리냐에 더 영향을 받는다. 북한에도 이 개념을 적용하면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가 부촌에 해당한다. 부동산을 통한 계급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북한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 겪는 문제다. 도심 외곽에 고급화된 주택들이 생겨나고, 도심지에서는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가 교통·환경·전망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이곳이 미래의 강남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 땅을 살 수도 없고,(웃음)”

하나의 가정일 수 있겠으나 어느 날 김정은이 사유재산의 인정을 용인하면 평양은 어떻게 될까?

“그런 사회에서는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누가 더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계급이 나뉠 것이다. 변화된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만 해도 1960년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아파트 산 사람은 부자가 됐다. 노동하는 것을 가치로 삼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북한의 자본주의화도 자본주의에 관한 이해도에 따라서 나뉘지 않을까.”

북한 건축에 관한 연구를 지속할수록 데이터와 권위가 쌓여갈 텐데 향후 방향성을 어디에 맞추고 있나?

“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경제가 됐든, 학술이 됐든 빨리 정상적인 교류가 이뤄지면 우리나라에서 북한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10명 중 9명은 밥줄이 끊길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말일 수도 있다. (북한에 관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보의 교류가 되면 총알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북한 관련 자료들이 워낙 희귀하다보니 그렇다. 하지만 자료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 (북한 데이터베이스가 설계되고, 모두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이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회주의 도시들의 전례를 봤을 때, 북한 도시는 어떻게 될까?

“북한도 지향해야 하는 모델이란 것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향 없이 개발하다보면 탈(脫)사회주의 도시들이 겪는 문제를 그대로 겪게 될 것이다.”

북한과 한국의 도시 계획 사이에 접점은 있을까?

“(건축가로서) 서울은 포기한 편이다(웃음). 서울은 너무 큰 도시가 됐다. 다만 지방의 중소도시들, 소위 말하면 다 망했다고 여겨지는 도시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 이것들이 북한의 도시들과 접점이 있다고 본다. 대량 생산 시대, 산업화 시대 때의 사회주의 모델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하지만 동유럽 지역의 도시들을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는 자생하는 모델을 고민했다.”

한국의 중소도시와 북한 도시들도 향후 ‘자생하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뜻인가?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등 자본주의 국가에선) 소비하는 도시는 따로 있고, 생산하는 지역은 또 어딘가에 있었다. 이제 생산이라고 하는 것이 100년 전처럼 굴뚝에서 매연이 나오고, 소음이 생기고, 신발 백만 켤레씩 만들고, 이런 것이 아니다. 다시 생산을 도시로 가져오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실제 아디다스도 독일로 다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생산을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지역 순환경제가 생길까를 생각한 것은 사회주의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당시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제 북한 도시들 그리고 탈산업화로 고생하는 한국의 도시들은 비슷한 지향점에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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