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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총력취재] 화폐를 끝없이 찍어내는 시대의 명암 

“나는 돈이 없는데··· 현금이 쓰레기 된다고?” 

코로나19에서 시스템 지키기 위해 돈 풀기 정책 총동원… 모두 살리거나 다 죽거나
단기적으로 자산시장의 유동성 거품 가능성도… 포퓰리즘과 결합하면 양극화 심화될 것


▎문재인 대통령이 4월 8일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3월, 증권가에 이상한 루머가 돌았다. 삼성증권의 신규 계좌가 갑자기 확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 주식은 삼성증권에서만 파는 것’이라고 생각한 초보 ‘개미 투자자’들이 몰린 탓이었다. 3월 한 달간, 삼성증권의 계좌 개설은 10만 건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12조7000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코스피와 코스닥을 받쳤다. 홍춘욱 ERA리서치 대표는 이런 현상을 “머니 무브(money move)”라고 지칭하며 “펀드 붐(2007년) 이후 처음”이라고 봤다. 당시는 중국 특수를 타고, 출시 한 달 만에 4조원을 모은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 등이 유행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삼성전자 등 우량주 쏠림 현상이다.

코로나19 이후 주가지수가 곤두박질치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개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의 대장주(시총 약 300조원)인 삼성전자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코스피의 강남 아파트”에 비유했다. 성장성, 재무안정성, 배당 등에 걸쳐 독보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상향이었던 부동산과 달리 대한민국 주식은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미국처럼 ‘우량주 장기투자=필승’ 공식이 먹히지 않는 곳이다. 여기서 예외적 존재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만큼은 사놓고 기다리면 오른다’는 것은 과거 그래프가 증명한다. 코로나19로 공포 장세가 펼쳐지자, 6만2800원(1월 20일)까지 올랐던 삼성전자 주식이 5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주식들이 더 많이 떨어졌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본 삼성전자로 몰렸다.

‘망할 것 같으면 다 사주겠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재선을 앞두고, 전염병에도 꺾이지 않을 증시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고 발언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미국 등 주요국들이 돈을 무지막지하게 찍어내는 이상, 현금 가치는 하락한다는 시각이다. 이를 방어하려면,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견해다. 이 관점을 한국에 적용하면, 부동산은 정부 규제에 묶여있다. 금은 이미 많이 올랐다. 달러는 원화와 같은 화폐다. 비트코인은 위험해 보인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주식이고, 특히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다. 그러다 성에 안 차면, 테마주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로 향한다. 금융감독원에서 4월 7일 “빚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권고를 할 정도로 과열 분위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3%로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6.7%,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3%, IMF는 -1.2%로 예측했다. IMF는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5.1%) 이후 마이너스 성장이 유력하다.

경제가 ‘폭망’인데 주식시장은 딴 세상이다. 3월 19일 최저점(코스피 1457.64, 코스닥 429.35)에서 4월 17일 코스피 1914.47, 코스닥 634.76까지 회복했다. 주식만 놓고 보면, 이미 V자 반등에 가깝다. 코로나19가 자본주의를 변형시킨 여파다.

경제가 안 좋다 싶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린다. 정부는 재정 지출을 확대한다. 경기를 띄우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동시에 시행한다. 코로나19는 ‘이렇게 해도 안되면?’이라는 물음을 각국 정부에 던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3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5%p 금리 인하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1일 근로소득세를 0으로 하는 감세안을 꺼냈다. 3000억 달러(약 360조원)의 재정 정책이다. 이어 3월 14일, 트럼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실질적 양적완화(QE)에 돌입했다. 그 연장선에서 7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 등을 매입하기로 했다. 3월 17일 Fed는 기업어음(CP) 매입을 선언했다. 3월 23일에는 당초 7000억 달러였던 증권 매입 규모를 ‘무제한’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4월 10일, Fed는 최대 2조3000억 달러(2800조원)의 유동성 투입을 결정했다. 미국 실업자 수가 1700만 명으로 집계되자 꺼낸 카드였다. 액수도 컸지만, 돈을 꽂는 방식이 더 파격이었다. 정크본드로 불리는 투기등급 회사채 일부와 자산유동화증권(ABS), 상업용 주택저당증권(CMBS),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까지 매입하겠다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못 봤던 액션이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EU·일본·한국·싱가포르 등 주요국들도 유사한 패턴으로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들여다봐야 할 사항은 크게 3가지다. ▷왜 이렇게 돈을 푸는가?(QE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마련하는가?(이것이 자본주의 체제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인플레이션은 오는가)가 그것이다.

돈 풀기의 목적은 ‘시간벌기’이자 ‘시장을 안심시키는 시그널’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어떻게든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게 버티겠다는 것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나올 시점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럴수록 나라 곳간이 비는 한이 있어도, 당장은 내일이 없는 지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QE는 큰 틀에서 금융·산업·가계를 망라해 흘러가고 있다. 미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금융으로 위기가 전염되는 것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2008년 금융위기가 재발하면, 공멸이다. 미국 텍사스의 주택담보대출 업체인 칼리버 홈론스 CEO인 산지브 다스는 4월 2일 CNBC 인터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9년, 3개월 이상 연체율이 9%였다. (코로나19로) 이 수치가 40~5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어번연구소는 ‘실업률이 40%까지 치솟는 상황이 닥치면 2920만 가구가 현재 사는 집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예측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약 9200만 가구가 주택담보대출 이자 혹은 임대료를 내고 있다. 즉, 월세를 못 내면 상당수 집주인은 은행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러면 은행이 부실화하는 도미노 붕괴가 터진다. Fed가 MBS를 사주겠다고 선언한 배경은 ‘빚내서 집 산 사람들이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도,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이 망하지 않도록 메워주겠다’는 불안 심리의 진정에 있다.

투기등급 기업의 대출채권을 묶어서 만든 파생상품인 CLO 지원도 같은 맥락이다. CLO는 주로 셰일가스 회사들이 얽혀 있다. 유가가 하락하자 셰일가스는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다. 셰일 회사들이 무너지면, 파생상품을 판 금융기관도 온전할 수 없다. Fed의 매입 선언은 ‘CLO가 미국 경제 대공황의 뇌관’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다.

MMT, 샌더스가 주창하고 트럼프가 실행하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온갖 악재를 뚫고 부동산의 상승을 가져올까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매입은 산업의 파산을 막겠다는 의지다. 공급과 수요가 막힌 코로나19 환경에서 기업의 부도 위험이 증폭돼 있다. 회사가 망하면, 실업자가 발생한다. 이 실업자들은 곧 유권자들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방치해둘 수 없는 것이다. EU에서도 유럽중앙은행인 ECB가 나서서 이탈리아, 그리스 등 재정 여력이 약한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와 회사채, CP 등을 사주기로 계획하고 있다.

금융, 산업 지원책과 별도로 개인에게 직접 꽂아주는 재난지원금이 있다. 이는 국민이 ‘코로나로 죽느냐, 굶어 죽느냐는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도록 연명해주는 돈이다. 실업을 당하고, 돈이 없으면, 개인은 감염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갈 것이다. 이러면 확진자가 줄어들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국 등 각국 정부는 금융과 산업, 가계에 언제까지 돈을 뿌려댈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길어질수록 회복이 더뎌진다. 부양책을 발표할 때마다 정부 수장들이 강한 톤으로 낙관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경제=심리’에 근거한다. 실제로 경제 심리를 선반영하는 증시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사실상 소멸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종일관 움직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나라의 처지도 대동소이했다. 이를 목격하며 경제 참여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당혹감을 실감한다.

정부는 돈을 푼다고 마구잡이로 화폐를 찍어내진 않는다. 국채를 발행해서 시중에 통화량을 늘린다. 다시 말해 나랏빚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나 가계와 달리 정부는 어지간해선 파산하지 않는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미국·EU·일본 등은 돈을 풀고 나서 감당해야 할 상황에 관한 두려움이 덜하다. 이를 확장한 개념이 MMT(현대화폐이론)다. ‘기축통화국은 정부 부채가 아무리 증가해도 채무불이행에 빠지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화폐를 발행하면 된다. 무제한 재정 정책으로 고용을 증가할 수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은 경계해야 한다’가 MMT의 골자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부인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아베노믹스’를 MMT 범주에 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MMT는 미국 좌파 진영에서 나온 논리다. 스테파니 켈턴 뉴욕주립대 교수가 MMT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의 경제자문이었다. 원래 MMT는 ‘확장재정을 통해 고용이나 복지를 증대하자’는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자 정반대 진영이랄 수 있는 트럼프 정부에서 MMT를 차용하는 상황이 됐다. 목적은 ‘증시부양,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 시스템 지키기’로 판이했지만,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메커니즘은 일치한다.

살림살이 힘들어져도 주식·부동산은 오른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오른쪽)은 2020년 1월, 여의도 KDB산업은행에서 쌍용차의 회생 방안을 논의했다. / 사진:뉴시스
이 과정에서 ‘국가가 돈을 풀어서 어느 선까지 살려줘야 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현재 각국 정부의 스탠스는 ‘일단 전부 살리고 봐야 한다’는 쪽이다. 이러면 진작 망했어야 했을 부실기업도 회생 리스트에 들어간다. 이런 회사는 소위 ‘좀비기업’으로 생존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설 때, 좀비기업은 큰 짐이 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경영을 엉망으로 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라도, 국가가 돈을 풀어 살려준다면 이게 자본주의가 맞는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와 마주한다. 지금처럼 국가가 회사채를 무제한으로 사줬다간, 코로나19가 끝난 뒤 어지간한 회사들은 국영화 상태나 다름없게 돼 있을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대응한 나라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었다. 반면 미국·EU·일본 등 민주주의국가는 자본주의의 선을 넘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의 주요국 경제 정책이 양극화 해소를 명분 삼아 한층 사회주의적으로 물들 것임을 짐작케 한다.

2020년 4월, 부동산·주식 카페 등 온라인 재테크 토론방은 갑론을박 중이다. 코로나19가 언젠가 잦아들어 경제 활동이 정상화될 때, 인플레와 디플레 중 어느 그림이 펼쳐질지 격론이다. ‘경제가 빈사 상태일 터인데 어떻게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이 오를 수 있겠나? 디플레를 우려할 상황이 올 것이고, 현금이 왕’이라는 주장과 ‘시중에 돈이 이렇게 많이 풀렸는데 다 어디로 가겠는가? 현금을 가진 게 가장 위험하다. 주식, 부동산, 금 등 뭐라도 사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종합하면 ‘성장률을 동반하지 않는 자산 가치의 상승이 가능한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이에 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유동성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유동성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릴수록 화폐가치가 하락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자산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특별한 호재 없이도 15억 하던 아파트가 돈이 너무 흔해졌다는 이유 하나로 18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 수입으로 사는 계층에게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반면 ‘단기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성장률 동반 없는 자산 가치 상승은 결국 언젠가 터져야 할 거품’이라고 풀이한다. 이러면 일본식 장기침체에 가까운 현실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익명의 금융계 인사는 “실물 경제는 디플레인데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에는 인플레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저마다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집값과 주식은 상승하는, 경험한적 없는 세상이 온다는 뜻이다. 당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돈을 일단 뿌리고 본 후유증인 셈이다. 이 인사는 “물론 정부가 그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뿌린 돈을 거둬들이는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맹점이 두 가지 존재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첫째, 정책의 시차다. 사람들이 5만원으로 살 게 별로 없어졌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속성상, 선제적으로 변경하기 어렵다. 정부가 손을 쓸 땐, 이미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치는 저 멀리 날아가 있을 개연성이 높다. 둘째, 정부의 의지다. 돈을 푸는 정책은 표에 도움이 된다. 돈을 거둬들이는 정책은 반대다. 문재인 정부로선 인기 없는 정책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을 수 있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디스토피아

이에 관해 현 정부에 비판적인 금융계 종사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했다. “더 커지는 속성을 갖는 거품을 계속 두는 것이다. 그런 다음 부동산과 주식 등의 투자로 부를 축적한 소수나 대기업을 겨냥해 증세한다. 이러면 극심한 양극화에서 소외된 다수를 달랠 수 있다. 그 결과, (부의 사다리를 놓치거나 증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중산층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총선 국면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겹쳤다. 문 대통령은 3월 24일 100조원 규모의 ‘기업 구호 긴급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을 돕는 정책자금 공급에 53조3000억원, 채권시장과 회사채를 지원하는 기업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31조1000억원이 배정됐다. 이 밖에 증권시장 안정 펀드에 10조7000억원을 마련했다. 4월 초에는 재난지원금 액수와 범위가 이슈화됐다. 처음에 정부는 소득 하위 70%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풀기로 했다. 그러나 선별 지급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자 총선 정국에서 여당, 야당 불문하고 전 국민 지급 주장이 나오며 혼선이 가중됐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전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을 주장했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 국민 지급 방식에 대해 “매표(買票)형 헬리콥터 현금 살포가 아니다”며 말했다. 재난지원금이 ‘일단 쓰고 보자’는 포퓰리즘 정치의 도구로 훼손된 셈이다.

현재의 생존과 후대의 미래 사이에서

정부는 4월 7일, ‘2019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부채는 사상 최초로 1700조원을 넘어 174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꼭 갚아야 하는 중앙·지방정부의 채무(국가채무) 역시 728조8000억원으로,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 1인당 빚이 1409만원에 달한다. 정부의 총수입보다 총지출한 돈이 12조원이나 많았다. [중앙일보]는 4월 8일 사설에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수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0년 경제 성장마저 정체되면서 재정적자는 100조원, 국가채무 비율은 43%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며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재정 건전성이 무너질 경우 국가 신용도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형국인데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위기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 예산이 불가피하다. 이미 총 20조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이 두 차례 진행됐고, 3차 추경 얘기도 나온다. 재정은 늘어나면 속도가 붙는다. 그동안의 한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40% 아래로 유지해온 이유다. ‘40%’를 넘기면, 정부가 통제하기 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활동이 위축될수록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세수는 줄어들 것이다. 코로나19로 돈 쓸 곳은 늘어났으니, 남은 방법은 국채 발행이다. 이는 재정 적자를 키울 것이고, 성장률에 부담을 지우게 된다. 공짜 점심은 없다. 빚은 결국 후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4월 15일 총선에서 나타난 여당의 압승(180석 획득)은 ‘그렇다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방치해둘 수도 없다’는 민의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지금을 전시(戰時)로 파악한 민심과 문 정부의 확장재정 선호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에는 진영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4월 14일 “경제의 본격 위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장 쌍용자동차와 두산 같은 큰 기업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는 당초 계획했던 2300억원 지원 방안을 철회했다. 그 대신 4월 12일 긴급운영자금 400억원만 집어넣기로 했다. 쌍용차의 시장 경쟁력이 열악한 탓이다. 쌍용차 경영진은 정부와 금융권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판단이 작용할 상황이다.

두산중공업도 유동성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2020년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이 4조2000억원에 달한다. 두산그룹의 파산을 막기 위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두산은 자회사 두산솔루스 등 알짜 자회사 매각, 임직원 급여 삭감 등 자구안을 냈다. 이래도 안 되면 구조조정 안이 등장할 것이고, 일자리가 없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산업의 옥석 가리기는 필연적이다. 코로나19는 자영업, 중소기업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저격했다. 그다음에 경쟁력이 약한 분야의 대기업으로 전이되고 있다. 그렇다고 기축통화국인 한국이 미국처럼 무제한 회사채 매입을 해주긴 쉽지 않다. 사경에서 헤매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모르핀(돈 투하) 처방은 불가피하다. 관건은 거기에 중독되지 않게, 적정 시점에 의사(정부)가 판단해줄 수 있느냐 여부다. 결국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길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와 역량의 문제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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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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