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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사건추적] 지난 4년간 박원순 비서실에서는 어떤 일이… 

“몇몇 비서 주업무는 시장의 ‘기쁨조’였다” 

비서실 장악한 시민운동그룹, 시장 심기경호에 치중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자 호소는 외면한 정황도


▎김재련 변호사와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이 7월 13일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장막에 가려 있던 ‘서울시청 6층 사람들’, 즉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비서실의 충격적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 A씨에 따르면 페미니스트 시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은 성희롱이 만연했다.

피해자 A씨는 약 4년간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박 전 시장의 일정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박 전 시장으로부터 신체적 접촉과 언어적 희롱, 휴대전화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문자와 사진을 통한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A씨는 7월 8일 박 전 시장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박 전 시장은 이튿날 피소 사실을 알게 된 뒤 홀로 북악산에 올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여성 인권 향상에 앞장서온 그였기에 8일부터 13일까지의 시간은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비서실 떠난 뒤도 '은밀한 초대' 계속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7월 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서 인근 길을 지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박 전 시장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전 시장은 자신의 성추행 피소 혐의에 관해 단서가 될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단순한 작별 인사만 남아 있었다.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은 기이한 상황에 저마다의 추측과 상상이 더해져 의혹과 논란만 증폭됐다.

남아 있는 것은 A씨의 증언과 그가 확보했을 물증뿐. A씨는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는 “A씨가 비서직을 수행했던 4년과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지속해서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희롱과 추행이 있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밝힌 주장과 월간중앙이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추행은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A씨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주장하는 성추행 무대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시장 집무실이고, 다른 곳은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방이다. 집무실에서의 신체 접촉과 언어적 희롱은 업무시간에 일어났다. 업무시간 이후에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통해 희롱이 이어졌다.

시장의 일정을 관리하는 업무상 A씨는 늘 박 전 시장의 곁에서 보좌했다. 시장이 다른 업무 중이거나 집무실 안에 있는 내실에서 휴식 중일 때 일정을 알리고 준비하도록 하는 게 A씨의 업무였다. A씨가 나타나면 회의가 중단된다고 해서 참모들 사이에선 ‘저승사자’라고도 불렸다.

피해자 A씨 측이 말하는 정황은 가히 충격적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박 전 시장은 집무실에 둘이 있을 때 그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곤 했다. 또 손톱에 장식한 네일아트가 예쁘다며 손을 만지거나 둘이서 셀카를 찍자고 하기도 했다. 셀카를 찍을 때마다 얼굴을 맞대거나 불필요하게 신체를 접촉하기도 했다. 하루는 무릎에 멍이 든 것을 보고 ‘호 해주겠다’면서 무릎에 입술을 대기도 했다.

신체 접촉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는 게 피해자측의 호소다. 이를테면 ▷A씨를 내실로 불러 손을 잡고 안아 달라고도 했다 ▷바깥에 사람들이 있다며 피하려 하자, 박 전 시장은 ‘내가 여기 있는데 누가 들어오겠냐’며 요구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행동을 선의로 이해하려 했던 A씨의 생각은 이날의 사건 이후로 두려움이 됐다. 이는 시기적으로 박 전 시장이 3선 연임에 성공한 이후에 해당한다. 그 뒤부터 박 전 시장의 사적 연락이 점점 잦아졌다고 한다. 그 수위도 이전과 달랐다.

김재련 변호사는 1차 기자회견장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박 전 시장이 2020년 2월 6일 늦은 밤에 A씨를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화면이다. 대화방은 깨끗했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A씨와 나눈 대화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다고 했다. 당시는 A씨가 비서실을 떠나 다른 업무를 맡은 뒤였다고 한다. A씨를 비밀대화방에, 그것도 한밤중에 초대해야 할 공무상 이유는 없었다.

텔레그램은 대화방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 대화 내용을 쌍방의 휴대전화에서 모두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 경우 서버에 흔적이 남지 않아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디지털포렌식 업계 관계자는 “보안장치를 풀기가 어렵고, 저장기간도 짧긴 하지만, 복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도 A씨의 전화기를 사설 디지털포렌식업체에 맡겨 복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상세한 방법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속옷 차림 사진 보내며 낯 뜨거운 대화 유도


▎피해자의 변호인을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가 7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 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의 참모진은 7월 8일 박 전 시장이 피소됐다는 상황을 확인한 뒤 혐의 내용에 대해 자체적으로 진상 파악을 벌였다. 그리고 A씨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이란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가 사실인지 여부와 함께 박 전 시장 측이 피소 사실을 알게 된 경위도 이번 사건의 쟁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통상 성범죄 관련 고소 사건이 접수되면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피고소인에게 피소 사실을 통보하고 조사를 벌인다. 피해자 보호와 증거인멸 방지를 위해서다. 공식 경로로 통보되지 않았다면, 누군가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사실을 흘렸을 개연성이 높다. 이는 범죄정보 불법 유출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형사사법절차상 수사·재판을 제대로 거쳐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으나 고소 당일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상황이 전달됐고, 피고소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피해자는 온·오프라인에서 2차 피해를 겪는 등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7월 8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이튿날 새벽 2시 30분쯤까지 1차 진술조사를 마쳤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8일 저녁 경찰청을 거쳐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보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 사건이 발생하면 청와대까지 보고하는 것은 통상적인 절차”라고 했다.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어떻게 알았나


▎고한석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이 7월 15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관련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전 시장 측이 피소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이르면 7월 8일 오후부터 늦어도 9일 오전 10시쯤 이전까지다. 시장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처음으로 감지한 사람은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별보좌관. 임 특보는 8일 오후 3시쯤 박 전 시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주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데 물어보라’고 해 시장을 직접 만났다”고 했다. 그는 다만, 박 전 시장이 “일정상 바쁘니 나중에 얘기하자” 정도로 답했고, 자세한 언급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도 피소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임 특보는 지난해 1월 박 전 시장에게 여성정책을 자문하기 위해 지방전문임기제 3급(국장급)으로 채용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국가인권위원회·한국인권재단 등을 거쳐 2012년 5월부터 11월까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가 ‘불미스러운 일’을 인지한 시각은 A씨가 고소장을 제출하기 1시간 30분 전이었다. 따라서 임 특보가 외부에서 소식을 들었다면 과거 인연이 있는 시민운동그룹으로부터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 전 시장은 8일 저녁 구청장들과 성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예정된 만찬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이날 참석했던 한 구청장은 “식사하는 동안 전혀 이상한 낌새가 없었다. 불안한 모습도 없었고 평상시처럼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이 이때까지는 피소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다.

만찬이 끝난 뒤 공관으로 돌아온 박 전 시장은 임 특보를 다시 불렀다. 임 특보는 비서관 2명과 함께 공관으로 갔고, 여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의 대화가 오갔다. 이때 박 전 시장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며 회의를 끝냈다.

이튿날(9일) 아침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박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한 방송기자로부터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됐는지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연락이 돌았다”며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면서 참모들도 피소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시각 박 전 시장은 출근하지 않고 공관에 머물고 있었다. 고한석 전 비서실장은 오전 9시쯤 공관을 찾아가 10시쯤까지 박 전 시장과 면담을 가진 뒤 공관을 나왔다. 박 전 시장의 한 측근은 “고 전 실장이 파악된 상황을 정리해 시장께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시장직 사임 등의 대응책이 거론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고 전 실장이 공관을 나간 지 30여 분 뒤 박 전 시장은 등산복 차림으로 공관을 나섰다. 이 장면이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그는 자정쯤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캠프에서 9일 오후 사퇴 외에 다른 대안을 마련해 시장에게 급히 연락했지만, 시장이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며 “참모진이 시장의 신변 이상 가능성을 전혀 예상치 않은 것은 안이한 판단이었다”고 아쉬워했다.

박 전 시장은 광화문에 ‘함께 백년 재단’이라는 이름의 외곽 조직을 운영해왔다. 2022년 대선을 준비하는 캠프 성격이다. 이곳에 주로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상주하며 조직·기획·전략 등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서울시 비서실은 박 전 시장과 오래전부터 함께 활동해온 시민운동그룹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박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고한석 비서실장을 영입한 것은 비서실 내 반목이 심해지면서 전체를 총괄 조정할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전 실장의 전임자인 오성규 전 실장은 환경정의 사무처장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지낸 시민운동그룹 출신이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박 전 시장이 출마하자 이를 반대하는 다른 시민운동그룹과 달리 박 전 시장을 지지하면서 핵심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시설공단 이사장 등 외청 사업소를 돌다가 2018년 7월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되면서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지난 4월 비서실 내에서 발생한 여직원 성폭행 사건 직후 물러났다.

“마라톤 할 때 여비서 나와야 기록 좋다”


▎박원순 전 시장 사망 후 텅 비어 있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6층.
박 전 시장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시민운동그룹이 장악한 비서실은 박 전 시장에게 직언을 하거나 정무적 조언을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A씨가 자신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박 전 시장의 심기경호였다고 할 정도로 박 전 시장을 떠받드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비서실 사정은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7월 16일에 발표한 2차 입장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공개한 입장문에 따르면 비서실은 성희롱과 성차별이 만연해 있었다. 여성단체 측은 “비서들의 업무는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비서의 평가와 교체 여부 역시 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시장이 마라톤을 할 때에는 여성 비서가 오면 기록이 더 잘 나온다며 주말 새벽에 나오도록 요구했고, 결재를 받을 때 시장의 기분을 확인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여성단체 측은 이를 ‘기쁨조’라고 표현했다.

여성단체 측은 비서실장들이 몰랐다거나,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했다고 한 데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시장이 운동을 마치고 와서 샤워할 때는 옷장에 있는 속옷을 비서가 가져다줘야 하고, 입었던 운동복과 속옷은 비서가 봉투에 담아 시장의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또 내실에서 낮잠을 자는 시장을 깨우는 역할을 여성 비서가 해야 시장이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며 이를 요구했다고도 했다. 시장실을 방문한 국회의원 등 외부 인사들은 “여기 비서는 얼굴로 뽑나 봐”와 같은 성희롱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여성단체 측은 주장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초 경찰은 피고소자인 박 전 시장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비서실에서의 조직적인 은폐와 성희롱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실체 규명이 불가피해졌다. 박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제라도 추악한 현실이 드러난 만큼 밝힐 건 밝히고 책임을 물을 건 묻는 게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죄 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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