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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정치 구루’ 최장집(고려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교수에게 대통령의 자격을 묻다 

“20대 대선, 정치 양극화 넘어서는 대통령 나와야”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 文 정부, 민주주의 훼손해… 보수 정당도 자유주의 대변자 될 기회
■ 민주화 세력, 민주주의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양극화 심화 못 막아
■ 시민사회 흡수한 文 정부의 국가 중심 운영, 군부·권위주의와 비슷
■ 차기 대통령 자질? 권력 절제하고 경쟁 정당 존중하는 사람 뽑아야
■ 모든 국민에 기본소득 보장하는 건 동의하지 않아, 선별적 지원 필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며 포퓰리즘 정치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직접민주주의의 경향성을 우려하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시위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겨울이다. 진보·보수 구분 없이 광화문 거리에 나와 세대를 뛰어넘어 ‘미래’를 향한 열망이 소용돌이쳤던 때로부터 4년여가 지났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대선 정국을 맞아 사회 전반이 다시 둘로 갈라진 형국이다. 협치가 사라진 국회는 입법 독주로 채워졌고, 삼권분립은 ‘청와대정부’라는 위세 앞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치·사회의 파열을 진단하기 위해 최장집(79) 고려대 명예교수를 찾았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학자이자 정치철학의 권위자인 그는 현 집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을 위협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는 점에 대해 실망감과 우려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요소가 강하다고 보는 그는, 민주화 이후 그 어떤 정부보다 현 정부에서 사회가 둘로 양극화된 것에 대해 우려했다. 다가오는 대선이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 새로운 정치가 나타날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최 교수는 차기 정권과 관련해 사회의 다원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문하면서 대통령 권력의 소극적 행사를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로 꼽았다. 11월 4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어떻게 지내셨나?

“은퇴 이후에 여러 글을 써왔다. 요즘에는 민주주의 위기와 관련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백슬라이딩(backsliding), 후퇴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충분히 담는 말로 표현하면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정치적 민주주의(liberal represen tative political democracy)’로 정의된다.

“민주화 세력이라고 반드시 민주적이진 않아”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017년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참석자들이 레드카드와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 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민주주의(democracy)는 고대 그리스어인 Demo(인민, 민중)와 Kratos(권력)의 합성어다. 인민, 민중이 주체가 돼 만든 정부 통치 체제인데, 다시 말하면 ‘우리(인민) 스스로(자치)의 통치 체제’가 민주주의다. 이렇게 인민 스스로가 권력을 만들어 정부를 구성했다고 가정하자. 정부는 국민이 준 권력을 행사하면서 통치하게 된다. 문제는 다수의 동의를 받아 정부가 행사하는 권력 앞에 개인은 작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국가의 권력 행사로 인해 인민의 권리가 침해된다면, 누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켜주는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될 때 비로소 인민 스스로가 통치 체제를 만들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최 교수에 따르면 민중에 의한 통치 체제의 일환으로 강력한 국가 권력이 사회 전체를 통치하는 시스템에서 개인의 권리나 권력의 보호는 ‘비어 있는(결여된) 공간’이다. 이 ‘비어 있는 공간’을 보완하려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가 성립돼야 비로소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인민 스스로의 통치, 또는 인민 사이의 평등을 중심으로 체제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며 “평등과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정부의 민주주의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이라는 말인데.

“지금의 민주당 정부는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의지보다 그들 자신의 민중주의적(populist)이고 대중·시민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시민 참여적인 민주주의는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물론 그렇다. 그러나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인민 스스로의 통치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그 의미가 아주 다르다. 운동은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권위주의 타도, 군부 독재 타도 등 목표가 하나다.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구체제를 타도하는 안티 체제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 내용이 단순하고 투쟁 일변도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는 좋은 것, 독재는 나쁜 것’ 하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

‘촛불 혁명’ 규정 후 국가 중심 역사관 공식화돼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이 정권의 핵심 세력이 민주화 세력은 맞으나 민주주의자는 아니다”는 비판도 있다.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이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운동으로서 이해되는 민주주의와 정부 형태로서 이해되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해서 언제나 민주화 세력이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사회적 행위는 얼마든지 반민주적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역사 청산, 과거 청산을 강력하게 내걸었다.

“민주당 정부는 ‘촛불 혁명’ 이전의 보수정부 시기나 구체제(1980년대 민주화 이전의 정치, 및 사회체제)하에서 보수 세력이 헤게모니를 가졌던 시기를 구질서로 정의하면서 이를 적폐로 규정하고, 개혁 대상을 광범위하게 설정했다. 이는 해방 이후 분단국가 건설과 냉전 시기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촛불시위 이후 그에 힘입어 출현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이 과도하게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것이어서 격렬한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가가 역사의 옳고 그름을 해석하는 국가 중심 역사관을 공식화하고 정책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일파 청산운동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실상 국가주도의 정신 혁명이자 의식 혁명, 문화 투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친일파 잔재 청산 등은 필요한 과정이라는 시선도 있다.

“이 정부의 과거 청산 개혁의 성격과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 이후 한반도로 밀어닥친 냉전과 그것을 통한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미·소 초강대국의 관여 등에 의해 다층적이고, 실로 복잡다단한 정치사를 우리에게 안겼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고 관여할 기회도 없이 휘몰아쳤던 역사적 사건, 공간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현대사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다층적 해석의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민족주의적인 이념과 가치, 민족정기를 중시하는 사람이 보면 우리의 굴곡진 역사에 분통이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라를 만들고 전쟁을 넘어서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것을 갑자기 청산한다면, ‘우리 사회 전체를 뒤집고 엎어서 한 번 대청소를 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게 가능하고, 또 바람직한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 당위적인 역사 해석은 우리가 폭넓게 역사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권력화’도 우려스럽다.

“촛불 시위 이후 민주당 정부의 성립과 그 운영 방식은 진보정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보적 시민운동의 동원을 통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정부-시민운동 연결망을 발전시키면서 이를 통해 국가에 흡수됐다. 사회의 전면적인 정치화와 더불어 시민운동은 국가에 흡수되는 대가로 권력화하기에 이르렀다. 자율적이었던 시민운동은 국가 관료조직의 외연으로 변질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정부는 환경 운동과 연계된 모든 운동단체가 중앙정부와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전국을 환경부 산하의 정부 정책 이행기구로 위계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최 교수가 언급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은 202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9월 24일 제정됐다.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제53조)를 설립·운영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와 사무국(제65조)을, 추가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탄소중립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이와 관련한 예산지원(제68조)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탄소중립법 시행방식은 과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킨다.

“직접민주주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시민·사회 단체의 정치 권력화로 국가 권력은 비대해졌으며 사회의 다원성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국가 조직이 비대해졌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운동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사회·문화·교육 정책 등 수많은 정책 분야가 국가를 정점으로 위계적으로 조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관장하는 관료 중심의 위계적 조직 방식은 역설적으로 이 정부가 증오하는 군부 권위주의와 유신체제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깨어 있는 시민, 민주시민, 개념시민’이란 표현을 이 정부에서 자주 듣는다.

“기존의 정치 엘리트, 정당과 반대되는 개념이자 민중의 소리를 대표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과 세력 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우리 사회를 둘로 쪼개놓는 것이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민중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포퓰리즘의 대표적 언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0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다”며 “개개인이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같이 해나가자”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에 대해 한 개인이 인간의 사적·공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과도한 정치화(over-politicization)’를 창출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정부가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통상 직접민주주의라고 표현하면, 시민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고 사람들이 직접 법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런 취지로 작동하고 시민의 반응도 긍정적일 수 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될수록 ‘선거’와 ‘투표’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점차 시민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 삶의 문제가 증가하는 것이다. 투표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는 부가적 문제다. 사회의 여러 문제는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무엇이 좋은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고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접’에 대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보완적 측면에서 접근해야지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국가 행동반경 키운 文 정부, 권위주의 상기시켜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 1차 회의가 2019년 1월 31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보의 개혁 정책이 과도하게 광범위하고 급진적이어서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정부’, ‘통법부’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적폐 청산, 권력 구조 개편 등 이 정부가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나 추구하는 정책이 굉장히 거시적(macro)이고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다. 그래서 국가의 행동반경과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정부 여당이 책임지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300석 국회 의석에서 2/3에 육박하는 압도적 다수당의 일방통행이 일상화됐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며 ‘(우리) 법안은 이미 결정돼 있으니 국회 본회의에서든 상임위에서든, 여야가 싸우다 통과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국회 입법 과정은 과거 권위주의 시기보다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권력 집중은 오래된 숙제다. 개헌으로 해결할 수 있나.

“개헌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헌법이 규정하는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가 좋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헌법은 헌법이다. 현행 헌법이 규정하는 정부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개정하는 것에 부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중심제가 가진 큰 문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제도가 정치를 좋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늘의 한국적 정치 조건에서,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가장 좋은 정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같은 의회중심제를 한다고 해서 한국 정치가 좋아질까? 제도 때문에 한국 정치가 좋아진다고 보지 않는다. 둘째, 제도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법을 제도와 규범으로 삼고 정치를 운영해온 관습, 사례, 운영 방식이 존재하고, 그것들의 뒷받침으로 제도가 작동한다. 아울러 이러한 운영원리를 습득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의 헌법은 1780년대 말에 제정, 시행됐지만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제도를 바꿀 생각보다는, 있는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정부 형태가 아홉 차례나 바뀌었다. 현행 헌법에서 규정하는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에 관한 내용과 정신을 지키기만 해도 지금 한국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정부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인가.

“아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규범·원리와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모든 정부에 해당할 수 있다. 현 민주당 정부의 문제가 있다면,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하면서 문자 그대로 혁명적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그리고 과격하게 개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추진한 개혁 정책들이 실패한 경우라 하더라도, 개혁의 의도와 출발점을 지칭하면서 정책추진자의 ‘선의’라는 말을 쓴다. 나는 그 선의를 인정한다. 다만 여기에서 정치는 어떤 정책이 실패했을 경우 의도가 좋다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윤리로 ‘목적 윤리’와 ‘책임 윤리’를 동시에 강조한다. 이 의미는 결과가 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이 정부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당으로서 보수 세력은 적합한가.

“진보, 보수 등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자유주의를 회복하는데 적합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한국 정치의 이념적 공간에서 현재 비어 있는 ‘자유주의적 공간’을 어떤 정당이 채울 것인가의 문제다. 현 집권 세력은 비자유주의적,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적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다고 보수 정당이 자유주의를 구현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보적 정당이든, 보수적 정당이든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적 이념, 비전, 정책 등으로 자유주의의 대변자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고 본다.”

“경쟁 정당 상호 인정하는 태도 갖춘 대통령 희망”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20년 6월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래통합당 등 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투표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쟁 정당 사이에서 상호 인정하는 태도를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보 정당으로는 정의당도 있다.

“한국에 진보 정당이 이름은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 지위 정도로 보인다. 젠더, 퀴어(동성애) 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한국 사회의 중심적인 이슈인지 의문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를 표방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다. 현재 청년세대 문제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와 계층적 세습과 고속 성장이 초래한 폐쇄적 사회의 계층 유동성에 기인한다. 아울러 사회적 해체가 불러온 가장 심대한 문제의 중심에 위치하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모순도 청년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다. 심각한 고민이나 노력도 없이 청년 문제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의당은 어떤 정당인가를 묻게 된다. 독일의 녹색당처럼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에만 집중하든지, 독일 사회민주당처럼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복지, 노동문제를 대표하든지 해야 하는데 정의당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부족하고, 특정 분야에 특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당의 시니어 지도자들은 자신을 정치 계급화하지 말고, 젊고 유능한 세대의 정치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과업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정의당만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제3지대’를 표방하는 안철수·김동연 후보도 있다.

“안철수 후보는 진보, 보수 또는 그 사이를 방황하지 말고, 그 중간의 자유주의적 영역을 일관되게 개척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독일의 자유민주당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동연 후보에 대해서는 평가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굉장한 업적을 남기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권력의 절제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경쟁 정당 사이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지도자이기를 바란다.”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나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대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러 정신이 있다. 다원주의적 정신과 그들 사이의 공존, 관용, 조화, 경쟁, 투쟁이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시대정신이 시대를 주도하고 계도한다는 표현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적 국제주의(nationalist internationalism)’의 확산이다. 자기 민족을 우선하고 국가의 이익만 중시하게 되면, 예컨대 중국의 정치체제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이 추세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결합할 확률이 높다.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고 포퓰리즘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을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골자로 하는 국가 복지체계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는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으며 재정 낭비라고 본다. 선별적으로 각 목적에 부합하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명당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세계경제대국 10위권 안에 드는 오늘의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에서, 수십 년 전에 만든 지금의 사회·복지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쟁할 수 있는 ‘조건’ 보장해주는 복지 필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오늘의 사회정책, 복지체제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을 구제하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경쟁으로 들어가기 이전, 경쟁의 평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 예를 들어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은 입시와 교육에 불리한 위치에 처한다. 이들은 경쟁에 뛰어들지도 못하는데 경쟁의 공정성이 중요하겠는가. 출발선이 같아야 평등이다. 이제는 경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이들이 경쟁선에 설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하는 사전적 복지체제로 변해야 한다.”

최 교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단어의 모호성도 지적했다. ‘공정한 경쟁’은 현 정부와 차기 대권을 다투는 여야 대선후보 진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다. 최 교수는 “단어의 뜻이 너무 막연하고, 경쟁이라는 게 질적·양적 측면에서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이를 통틀어서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개념 자체가 공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 급하다. 제도, 정책 방향, 민주주의 자체도 안 되면 무조건 제도부터 바꾸려 하고, 목표도 쉽게 바꾼다. 미래지향적인 것만 우선할 게 아니라 오늘의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자산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무엇이 우리의 전통 속에서 보존할 만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또 한국 사회가 변화를 추구하기 전에 출발점을 어디로 정할지 고민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이르는 여정을 생각해야 한다. 출발점이 분명해야 미래를 지향할 수 있고 철학도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역사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와 전통을 발견하고 어디를 지향할지에 관해 치밀하고, 사려 깊게 생각해 방향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

- 글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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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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